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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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터를 처음 찾은날
내낚시에 메인 줄은 원줄 3호
목줄 2호
그게 지난해 유료터를 찾기 전까지 10여년을 변함없이
지켜진 낚시줄 채비의 불문율이다
맹탕을 찾을땐
2호원줄에 1.5호
물론 모노사이다
떡밥 낚시를 아예 하지 않으니 합사 목줄을 사용해 본적이 없다
모노 가지채비가 이십수년을 변함없이 내 낚시대에
매달려 있었다
유료터를 찾은 첫날
유료터에서 20수년 잔뼈가 굵었다며
경기도 모 낚시터 대회에서 받았다는 금반지
찌를 자랑하며 70-80잉어는
물론 40넘는 떡붕어를 하루에도 마리수로 잡았다는
자랑을 늘 질펀하게 쏟아붓는 형(뻥이 좀 심하여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았았지만....)
첫날
유료터 채비라며 유동채비를 하지않고 늘 고정찌 채비만
고집하는 내 낚시대에 유동찌채비와 0부력맞춤을 해 놓았다며
두대를 새로 라인을 매고 부력도 맞추어 주었다
짧은 대에서 잘 나온다는 사전 정보를 흘려 들은 터여서
대는 두칸반대 하나 두칸대 하나 그리고 혹시 싶은 마음에
3.2대 하나.....
3.2대는 새우채비 그대로 던지면 그냥 퐁당소리를 내며
갈아앉는 무거운 채비
채비를 하고 유료터는 품질이 조과를 좌우한다고
입버릇처럼 하던 형의 말을 따라
밤톨 만하게하여 열심히 품질을 하였다
그러던 차에
2.5대 찌가 슬몃 옆으로 흐른 것을 채자
붕어로선 맛볼 수 없는 좌로 2m가량을 그냥 내달리는
잉어입질
간단히 제압하고
"형님,먼저 한 수 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허사장"
그리고 머지않아
역시 두칸반대 찌를 한마디 올렸다가 살며시 갈아앉는 입질을 받고
챔질
"어,어"하는 사이에 좌우로 내달리기 시작하는데
연질 보론대론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엄청난 용트림
옆에서 지켜본 형
"절마는 성주 깡패잉언가보다"
연타로 두번 걸어내고
이어서 형이 한마리
그리고 조금 후 우당탕하는 굉음과 함께
"어,뭐 이런기 있노"
형의 뒷꽂이를 통채로 빼어 좌대밑에 떨어뜨리고
낚시대는 총알처럼 저수지 중앙으로 달아난다
첫날 조과
내가 잉어 3수
붕어 5수
형이 잉어 3수
그렇게 유료터 사부와 제자는 첫날부터 제자와 사부의
조과가 엇박자로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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