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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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오랜 동안 내가 즐겨온 취미생활엔 낚시와 축구가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갖는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며 또 그것들이 이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자신의 생활을 한층 풍요롭게 했단 사실을 나이가 들수록 새삼스레 느끼곤 한다.
헌데 이처럼 같은 취미를 꽤 오랜 시간 두고 즐기다보니
그런 데로 인정받을 만큼의 실력이 쌓여서인가!
아니면 그 연륜에 따른 부수적인 거품 현상인가?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그 분야에 대해서만은
하찮은 명성(?)이라도 얻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다.
어쩌다 낚시터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요즈음도 운동 열심히 하시지요?' 하고 인사하는가 하면
운동장에서 만나는 후배는 게임 중에도 팬티 끈을 잡고 늘어지며
"형님 요즈음 붕어 잘나오는 곳 한곳 내놓으시지요!" 하고 생 떼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명성이라는 것이
더러는 사람을 피곤하게 할 때가 있음도 얘기하고 싶다.
연륜만큼 잘 해주려니 하는 주위의 기대감과
또 내가 잘해야 된다는 스스로의 부담감이 그것이다.
축구의 경우 가끔 도민체전이니 생활체육이니 해서 지역을 대표하는 멤버로
큰 시합에 나갔다 게임에 져버리기라도 하면
그래도 오랜 동안 나를 믿고 맡겨주었던
골게터로서의 못다 한 자괴감(自乖感)이 그랬고
낚시의 경우는 친구들과 나들이 삼아 나간 하찮은 망둥이 혹은 숭어잡이를 할 때나
감생이 배낚시를 할 때도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모두들 나를 바라보았고
베테랑이라는 그 같잖은 너울 때문에 내 맘은 더 조급해 지곤 했던 게 사실이었다.
며칠 전
가까운 친구 몇 명이서 모여 작은 술판이 벌어졌을 때,
목포 연안의 갈치가 이젠 제법 커서 먹는 맛뿐 아니라 손맛까지도
쏠쏠히 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때만 해도 그랬다.
모두들 나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저 녀석 대답만 얻어내서 배 한 척 빌려 타고 나가면
목포 앞 바다 갈치는 모두 제 앞의 횟감 내지는 얼큰한 갈치지짐으로 변할 것이라는
기대감 이 잔뜩 묻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쩌랴!
그래도 꽤 긴 시간 동안 많은 장르의 낚시를 경험했고
어디 내놓고 말은 않지만 바다에도 민물에도 온 나라 헤매고 퍼 질러 다니면서
미칠 만큼은 미쳐 보았었고 누구만큼은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나였지만,
아킬레스의 발뒤꿈치가 완벽(完璧)중의 맹점(盲點)이 되었듯이
내가 할 수 있는 낚시 중에 제일 자신 없고 서툰 것이 그것이었으니,
친구 따라 얼싸덜싸 따라 나섰던 방파제 위에서의 원투에서도,
작년 철늦게 덤벼본 배낚시에서도,
물고 늘어지는 갈치입질에 엉겁결에 몇 마리씩 잡아내긴 했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된 챔 질 방법을 터득할 수가 없어 쓴 입맛만 다시고 돌아선,
그놈의 갈치낚시만큼은 확실한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하구언(河口堰)의 갈치가 꽤 굵어 졌다고 하네!'
흐트러진 집안 분위기 때문에 차마 낚시 가겠다는 말은 못하고
슬쩍 던져본 헛 챔질에 생각지도 않았던 아내의 예신(豫信)이 들어온다.
'바람이나 쏘이고 오지 그래요!'
그러나 그 예신 속에 숨어있는
'주부는 비린내만 실컷 풍기고 실속 없는 붕어보다는 옅은 맛 담긴 갈치를 훨씬 좋아한다'는
지엄하신 분부를 낚시꾼이라면 미루어 짐작 할 줄 알아야 한다.
단 투자되는 금액보다도 많은 양의 갈치를 잡아야 한다는
주부로서의 치밀한 계산 깔린 무언의 압력까지도..
삼호 방조제를 향해 차를 몰았다.
낚시 베테랑으로서의 위신을 세우기 위한 예행연습과
일요일이면 집에 올 사랑하는 아들 입 속에
뼈 없이 발라낸 허연 갈치 살 먹이고 싶어하는 아내의 염원을 싣고서,
해질녘의 가을 바다는 제법 출렁대고 있었다.
배낚시용 감생이 대 세대에 채비를 묶어 내리고
비릿한 갯 내음을 맡으며 대 끝을 응시해 보았으나
심한 너울거림으로 입질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맘씨 좋은 선장부인이 준비해 주신 갈치조림에 갓김치 곁들인 기막힌 맛의
저녁으로 오장단속(五腸團束)을 하고 다시 낚싯대 끝을 주시해 보지만
아홉 명 탄 배에 한 사람만이 간간이 끌어내는 솜씨를 보일 뿐,
나머지는 공부 못한 학생 시험지 풀고 있는 꼴이다.
이러다 새도록 갈치 꼴도 못보고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조차 슬슬 드는 것이
오늘 또 배암 날 되면 어쩌나 싶어지기까지 한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좋았다.
너나 나나 빈손이었으니까!
바람이 자고 파도가 잔잔해 지면서 입질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주위 꾼 들의 환호성이 터지기 시작하는데도
내 낚싯대만은 변사또가 기대하는 춘향이 수청(守廳)이었다.
선장과 그 부인까지 곁에 와서 코치하고 응원하는데도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니
별 생각이 다 든다.
'아까 저녁 먹을 때 고수레를 안 해서 이러나?'
시계를 보니 한시가 지나고 있다.
배타고 일곱 시간동안을 몸부림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수모라니!
이건 조력 오십 년 낚시꾼을 같잖은 갈치가 가르치려 드는 거 아닌가?
보다못한 선장부인이 커피 한잔을 끓여 주더니 손수 자리를 옮겨준다.
어지간히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신기한 것은 자리를 옮기자 말자 입질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란 것이다.
밋밋한 바다에도 포인트가 있나 싶게?
헌데 이번엔 예의 챔 질이 문제였다.
옆 사람은 김장할 가을 무 뽑듯 쏙쏙 잘도 뽑아 내는데
내건 아무리 크게 쳐 박아도 당기면 허탕인 것을...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시쳇말로 뚜껑이 열리고 뺑 돌아 버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도 헛손질이니 입질 오는 게 두렵기까지 하다.
이런 사람 환장할 실랑이를 한참이나 하고 난 후에야
난 그 챔 질의 비밀을 겨우 알아 낼 수 있었다.
'머리가 나쁘면 몸뚱이가 고생한다' 는 말은 그냥 생긴 말이 아니었다.
문제는 붕어낚시였다.
찌 솟음에 맞춰 잡아채기만 했던 붕어낚시,
그러나 갈치의 취이습성(取餌習性)은 붕어와 같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바닥을 향해 45도 정도의 각도로 먹이를 흡입하는 붕어는
찌 솟음의 정도에 맞춰 챔 질 시 걸림이 가능하나
갈치는 붕어와는 달리 대부분 머리를 위로 둔 상태에서
입질을 시작하기 때문에 어신과 동시에 챘을 경우
먹이 끝 부분만 끊어먹고 달아나 버리는 현상이 나타난단다.
그러므로 일차 어신이 오면 오히려 대 끝을 늦추어 주어
갈치가 먹이를 삼키기 쉽도록 해주고 그 후에 나타나는 강력한 어신에
챔질이 이루어 졌을 경우 스트라잌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것을 채득한 것,
'주고 나서 먹어야 된다'는 그런 간단한 진리를 무시하고
거저 먹으려 들었던 게 그 긴 고생의 동기였던 것이다.
옛 말에 '망건(網巾) 쓰다 장파(場破) 한다'더니!
아둔한 머리로 챔질의 비밀을 알아냈을 때는 이미 동녘이 밝아 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입질만 받으면 쉼 없이 잡아내는 내 낚시 솜씨를
'저 사람 갑자기 무슨 약 먹었나' 하는 표정으로 주위 꾼 들은
경탄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아침 짐을 챙길 때는 스무 마리도 넘는
제법 통통한 갈치가 내 아이스박스 안에 길게 누워 있었다.
'조금 더 하고 가시라'는
수더분하고 인정 많은 선장 내외분의 작별인사를 받으며
하룻밤 내내 고통과 환희의 틈새를 넘나들게 했던 낚싯배를 떨치고 나설 때
그날의 여명을 한층 상쾌한 기분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이젠 아내에게 체면도 섰다.
친구녀석들이 갈치낚시 가자할 때 눈치보지 않고 큰소리 쳐도 된다.
아침햇살을 받으며 집을 향해 달리는 차의 속도가 상쾌했다.
라디오의 볼륨을 높여본다.
'부라더즈 포'가 부르는 '그린필드'라는 제법 오래된 노래가 흐른다.
'원스 데어뤄 그린 필드 키쓰 바이 더 썬...♪~♬'
(Once there were greenfields kissed by the sun.)
얼핏 눈을 돌려 들판을 바라보지만
벌써 푸른 들판은 사라지고 추수 끝난 들판에
갈꽃의 몸짓만이 허허롭게 흔들리고 있었고
밤새 갈치를 노리던 낚시꾼의 가슴엔
어느새 또 황금색 가을 붕어가 꿈틀대고 있었다.
어느 해 가을 붕어꾼의 갈치낚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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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어유당님 글 보니 너무 반가워서 1등으로 댓글 달려고
제대로 정독하지도 않고 서둘러 글씁니다ㅎㅎ
빨리 인사 여쭙고 다시 정독하렵니다
저번 조행기 올리신 영암 금정 토동진가요?
조행기 읽은후 바로 달렸답니다^^
어유당님 앉으신 자리에 앉을까 하다가 정자 바로 밑 부들밭에 앉아 붕애 일곱수하고 철수했었지요
월척 조행기 읽고 출조해본 저수지는 처음이라 기분이 새롭더군요
어유당님과 동출 했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지요
이정도면 어유당님의 열성팬이라고 할만하지요?ㅎㅎ
주옥같은 글 늘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안출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