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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맛 그리고 또 다른 손맛

아부지와함께 IP : b99a86b45f1c2ce 날짜 : 2018-11-13 13:02 조회 : 6025 본문+댓글추천 : 0

1. 붕어낚시의 손맛


어릴 적, 아부지께서 붕어를 잡으시면
"돌아라~돌아라~" 하시며 저를 약 올리셨지요.
제가 폴딱폴딱 뛰며 약 올라하는 모습에 빙긋이 웃으시며
마음껏 손맛을 즐기셨던 것 같습니다.


붕어낚시의 묘미 중 하나는 단연 찌올림맛이라 생각합니다.
낮낚시의 찌올림도 좋지만,
밤낚시의 찌올림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라 할 수 있겠지요.
어둠을 살며시 가르며 올릴 듯 말 듯 애간장을 태울 때는
순간적으로 호흡이 멈춰지며 해후(邂逅)의 설렘 같은 달콤함을 주며
농익은 석류가 속살을 벌리듯
찌올림이 어둠을 살며시 벗기며 솟구칠 때는
짜릿한 전율로 전신을 휘감아버리는 카타르시스 같은 맛을 선사합니다.

클라이맥스의 정점에서 이어지는 후희(後戱) 같은
또 다른 쾌감을 주는 것은 바로 손맛이지요.
손끝으로 전해지는 앙탈스러운 떨림과 육중한 저항은
강약의 완벽한 조화로 이루어진 하모니로 다가와 감흥을 만끽하게 합니다.
붕어낚시의 화룡점정(畵龍點睛) 같은 이 손맛의 짜릿함은
우리 꾼의 손에서 가슴으로 뇌리로 깊숙이 박혀 버립니다.
시각과 촉각이 결합한 완벽한 쾌감이 비로소 이루어지는
붕어낚시의 결정체라 하겠습니다.
만약 붕어 손맛이 없다면 9회말 역전 만루홈런을 치고
환호 없는 텅 빈 그라운드를 도는 느낌이리라 생각합니다.

그 한 번의 찌올림과 손맛에 현혹되어
우리 꾼은 다반사로 꽝치면서도 낚시를 다니나 봅니다.



2. 또 다른 손맛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허영만의 식객 중에서


저녁을 먹으며 '한국인의 밥상'을 보았지요.
최불암 님께서 전국 각 지역의 대표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인데,
평창의 고랭지 배추로 담근 김치에
맛깔나게 삶은 돼지고기 수육을 싸서 먹는 장면이 나왔을 때
아들은 연신 감탄사를 퍼부었습니다.
아무 곳에서나 맛볼 수 없는 깊은 맛이 밴 음식을 보면서
어머님이 생각났습니다.

"아들, 할머니께서 끓여 준 정말 맛있는 붕어탕이 생각나는데…"
순간 울컥하여 더는 말을 잇지 못하였습니다.

아부지께서 붕어를 잡아 오시면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붕어요리를 하셨지요.
푹 고아 붕어 가시를 일일이 발라 된장을 풀고 배추를 넣은 붕어탕,
민물새우와 함께 마늘을 듬뿍 넣은 얼큰한 매운탕,
붕어를 말려 기름에 살짝 튀긴 후 양념 조림을 한 붕어튀김조림,
화학조미료를 싫어하셨던 어머니의 손맛으로만 만든 붕어요리는
아직껏 어디에서도 그 맛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오래전, 어머님께 요리법을 물어 적어 놓았지만
그 맛을 다시는 찾지도 느끼지도 못할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어머니의 손맛을 버무릴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아부지와 함께 낚시하며 재미졌던 손맛의 추억과
어머니의 손맛이 어울려진 저녁상이 그리워지는군요.

봄이 되면 붕어 손맛을 볼 수 있겠지만,
어머니의 손맛은 이젠 볼 수 없음이 아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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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복이굿™ 18-11-13 13:12 IP : 90449a5f4ab05c8
어머니의 손맛...
매일 먹는 음식이다 보니 무심코 지나쳤는데
저도 나중에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울 날이 오겠지요
좋은글 잘보구 갑니다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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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랩소◇디 18-11-13 13:14 IP : 0bfbda6de4e5df9
이제
아부지선배님께서 자식들에게
아부지의 손맛을 보여줄 차레군요
그러면 또 그자식의 자식에게로 손맛과 함께한 추억이
대대로 전해지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이유로 또 다른 손맛 보러 가입시더,,,,,,ㅎ
지난 주말 문어 손맛도 꽤 좋았지만
에궁 힘들어서 두번은 못하겠습니다
손목이 너무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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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 주관 18-11-13 13:36 IP : b5f8b2cc0c1b89c
글쏨씨가
시인입니다
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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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붕어 18-11-13 13:56 IP : fba6b93430bf578
글쓰시는게 정말 대단하시네요...어디서 주워들은 어려운 단어들 조합해서 억지로 짜마춘 그런글들과는 정말 글맛이 다릅니다..님글은 '글맛'이 있네요 종종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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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와함께 18-11-13 14:21 IP : b99a86b45f1c2ce
복이굿님, 우리는 매일 어머니의 손맛-사랑을 먹으며 컸습니다.

랩소디님, 특식(?)은 늘 제가 요리합니다..^^;;

주관님, 부끄럽고, 그리 보아 주시니 고마울 뿐입니다.

대머리붕어님, '글맛'이라는 말씀에 고개 숙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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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천 18-11-13 14:50 IP : 0454c39af7d574d
부자지간,모자지간의 정이 깊게 느껴지는
글입니다.

모처럼 가슴이 따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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淡如水 18-11-13 15:13 IP : 38006c38e73202e
어릴적 물고기 잡는다고 여기저기 싸돌아니다 집에 오면
공부는 뒷전이라며 짐짓 혼내시면서도
바닥에 무 깔고 자잘한 붕어들을 조려서 맛나게 드시던 선친 생각이 나네요.

지금은 월척 붕어를 그만큼 깔아드릴 수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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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와춤을 18-11-13 16:00 IP : 12226e50f913e3e
손맛은 그닥입니다. 늘 자동빵이라 힘다빠진 붕어만 끄집어 내니깐요

입맛은~~

선배님 저는 저 나름데로의 레시피를 갖고 있습니다.

그 어떤 매운탕 보다도 맛은 자신 있습니다. 어무이가 끓여주시던 맛보다 더~~~~~~~~~ㅎㅎ

하지만 어무이가 만들어놓으신 된장 고추장이 없어니 그맛이 안납니다.

결국 어무이 맛이었던 것입니다.

냉동실에 붕어 몇마리 넣더 두었습니다. 매운탕 한번 끓일려구요.

집사람이 어무이 손맛을 물려받았는데,장맛이 안납니다. 이젠 촌동네 물맛이 그립습니다. 고향의 샘물로 담궈야 될까봐요.

여봉~~~물떠로 가자

늘 멋진글에 탄복하고 갑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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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와함께 18-11-13 17:25 IP : b99a86b45f1c2ce
효천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근데 왜 쏘주 생각이 날까요?⌒ ⌒ 언제 함 뵈어야 하는데…

淡如水님, 춘부장께서는 아마 淡如水님이 잡아 온 붕어라서 더욱더 맛있었을 겁니다.

붕어와춤을님, 자동빵 손맛에서 뿜었습니다.ㅋㅋ 언제 한 번 시간되면 매운탕 맛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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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초사랑 18-11-13 18:57 IP : 403c358a549a658
문장력이 대단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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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2427 18-11-13 19:05 IP : e605dc630bd9ccc
가슴따뜻해지는 글
잘읽고갑니다ㅡ
필력이 대단하십니다ㅡ^^
추천 0

메이저킹 18-11-14 08:55 IP : 1408f886a6eba0a
이곳 '월척'에........
윗 글처럼 향기로운 글들이 ...가슴 따뜻해지는 글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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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어 18-11-14 09:15 IP : 8fee8e07a3b1dbc
편한 낚시만 추구하는 저같은 이는
이제 천방지축 다니던 낚시도 시들해 질 계절입니다.

찬바람이 불고 놀이터가 허전해지면
뜨뜻한 방구석에 앉아 눈팅만 합니다.

다가올 긴 겨울
따뜻하고 아련한 추억이 서린
좋은 글 자주 올려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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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민들레 18-11-14 09:17 IP : a04562b889ecde7
어마니의 손맛~~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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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큰붕어 18-11-14 09:44 IP : ab09640338dbac2
이 가슴 뭉클함은...

글솜씨가 보통 아니시네요

내친김에 낚시글들 책으로 엮어서 등단 한번 해 보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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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뜨면낚시생각 18-11-14 10:36 IP : 77b8fd1f97c6605
아침부터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욕하는글 말고 항상 이런 가슴 따뜻해지는 글들만 올라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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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와함께 18-11-14 10:51 IP : b99a86b45f1c2ce
글을 쓸 때마다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진솔하게 쓰고 싶은데 내 모습이 발가벗겨지는 것 같아 머뭇거릴 때도 있고
필력이 딸리다 보니 문맥이 매끄럽지 않아 고심할 때도 많습니다.
이런 미천하고 부족한 글에 과한 칭찬을 주시니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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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18-11-15 12:45 IP : 398bee9ab2b4ead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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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육백사부 18-11-15 13:08 IP : 3da91203f2df1c9
글을 읽다보니 콧마루가 저려오네요 84년 작고하신 부친생각에~ 여든 넘으신 노모에게 조금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결심을 이글은 이끌어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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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삿갓 18-11-15 15:16 IP : f22c3578ae182dc
필력이 대단하시네요
코끗이 찡한 이 마음...빨리 제자리로 돌려놓아 주세요 ㅎ
돌아가신 제 아버지가 문득 생각나는 ,
노란 은행잎 우수수 떨어지는 깊어가는 가을입니다...
그 나무 아래로, 아버지와의 추억 아래로 간절히 걷고싶은 오후입니다
환절기 건강 꼭 챙기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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