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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터 풍경

내벗 IP : 4bef596c05897af 날짜 : 2013-02-25 12:38 조회 : 1671 본문+댓글추천 : 0

아 아저씨 이쪽에다 피세요
거긴 안된당께요

초등학교 줄 반장 처럼 그는 연신 팔을 휘 젖는다
차를 세우고 등짐을 진 새 낚싯꾼이 논두렁을 걸어 올때마다 그는 달려가 꾼들을 이끈다
헝크러진 머리 .원색을 알아보기 힘든 외투
그리고 오래된 그라스 대 한대
뒷꽂이도 없이 대 한대를 던져 두고 선심을 쓰듯 꾼들에게 포인트를 일러주는 그의 주변에
어느새 너댓사람이 이끌려 자리를 펴고 있다

나는 안다
눈보라 성성하던 밤
얼어가는 녹사지에 난로 하나 없이 저 모습 그대로 밤을 새던 그를 ..
그러나 그가 꾼들을 나란히 자기 옆자리에 대를 펴게 하는 미끼로
팔뚝만한 놈을 어제 ....가 그만의 미끼라는것도


늘 가는 단골터에서 그가 보이기 시작한건 작년 초가을 무렵부터 였다
때가 눌러 붙은 남루한 옷차림에 커다란 살림망 하나
글라스대 한두대 그리고 꾼들에게 얻은 지렁이 한곽
해가 나도 눈이 와도 그의 낚시 차림은 언제나 똑 같았다
약간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보이기도 해서 어두운 밤 둑 저 끝에 낚시대를 편 그가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도 했지만 말을 걸어 본적은 없었다

일요일 오후
단골터에 보트가 한대 떳고 연안꾼들이 오후 볕을 즐기러 한둘 모여 든다
지나 가던길
단골터 주차공간에 차를 세웠다
저만큼 보이는 그

여전히 그는 새로 드는 꾼들을 줄줄이 낚아 옆자리로 인도 하고 있다
어제 내가 이만한 놈 ...
그런데 오늘은 다른때와 달리 릴 한대를 펴두었다
글라스대 한대 .릴 한대
다가가 넌즈시 말을 걸어 봤다

어디서 왔소 ?
군남서 왔는디요
여러번 마주 쳤지만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릴대가 두개 있었는디 부러져 부러갖고 ..
찌 있쟎아요 대에 다는
그것도 두개 였는디 하나 부러져 부러갖고
낚시 한번 갈라면 겁나 복잡스럽당께요
주머니에 개구리를 숨겨둔 아이처럼 그는 반색하며 수다스런 말들을 쏟아낸다

딴엔 또 처음 본 꾼으로 생각 했는지 예의 그 단골멘트를 날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어제 내가 여그서 -팔뚝 내밀며 요만한 -놈 잡앗는디
한놈은 바늘이 부러져 부렀당께요
그에게 담배 한갑을 내주고 번잡한 단골터를 피해 다른곳으로 이동 하는데
사람을 보는 그의 선한 눈매가 아른 거린다


수심깊은 길가 방죽
볕 좋은 곳에 다대 편성을 하던 중 문득 그의 투박한 글라스대가 생각 났다
다대 편성을 멈추고 단촐하게 43대 두대만을 펴고 나서
그와 나의 낚시를 생각 해 봤다
40여대 두가방 가득히 대를 챙겨 다니는 나는
차 하나를 장비로 가득 채우고 다니는 나는
그보다 행복한 낚시를 하고 있을까
그는 매일 팔뚝만한 붕어미끼로 낯선 사람들을 낚으며 세상과 소통 하는데 ..

해가 지도록 미약한 입질만을 받고
결국 단골터로 돌아갔다
보트꾼과 연안 꾼들은 모두 철수했는데 아직 그는 남아있다
맨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방울도 안단 릴대의 두껍게 보이는 원줄만을
쳐다 보는 그

저렇게 또 밤을 셀 것이다
누군가 다가와 말 걸어주기를 바라며
그는 또 팔 걷어 부치고 눈을 반짝이며
어저께 여그서 나왔는디 ...
초라한 그의 장비와 낚시가 어쩐지 초라해 뵈지만은 않다
그가 발견한 낚싯터의 행복을 나는 아직 보지 못하였으니
장비 번잡한 나보다 간촐한 그의 낚시가 더 의미 있지 않을까

무엇을 낚으려 물가를 맴도는지 나는 아직 그 이유조차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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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산골붕어 13-02-25 13:18 IP : 565782a19b9a6f3
좋은작품 감상합니다
안정효씨보다 전혀 밀리지않는 필력 입니다
추천 0

2등! 바른생각 13-02-25 16:30 IP : dc6c12a1bfdf843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추천 0

3등! 비맞은대나무2 13-02-25 16:57 IP : cc7f5a4be7d25b8
항상 느끼지만 글을 참 사실감 있게 쓰시는거
같습니다

안정효씨 검색해 봤내요 ᆢㅎㅎ
추천 0

소풍 13-02-25 17:33 IP : 15b869628fc66b4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글이 돗 보입니다.

마지막 결론을 읽는 이의 몫으로 돌리는

배려 또한 감사할 뿐입니다.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무엇을 낚으려 물가를 맴도는지 나는 아직 그 이유조차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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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우리3 13-02-25 22:52 IP : 87d6c87649a3d8e
오랫만에 참좋은 글을 봅니다
월척의 당찬 손맛처럼
옹골진 글맛에 취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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