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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사지 풍경(월척 숨은 천사님들께)

은둔자✿ IP : 97172aa999cb01f 날짜 : 2013-03-17 13:01 조회 : 2911 본문+댓글추천 : 0

토요일 저녁부터 비가 내리겠습니다 ...

비가 예보된 이상 녹사지 조황은 빈작이 틀림 없을 것이다
금요일부터 시작된 배수로 수위가 30쎈티 빠졌고 밤낮의 기온차가 극심하니
하룻밤 한두번의 입질도 귀할것이다

이미 금요일 저녁을 보냈지만 빈작 이었다
바람 없어 고요한 수면에 연안에서 열대를 편성해서 단 두번의 입질을 봤을 뿐이다
단 두번의 입질
그러나 만족한다
굵은 새우를 묵직하게 올려주는 입질이어서 그 두번으로도 충분하고 남았다

오늘은 토요일
이제 그 두번의 입질도 귀할것 같은 녹사지로 다시 낚시를 간다
보트를 폈지만 예상대로 포인트 어디에도 입질이 없다
연안에 둘러선 사람들에서도 챔질소리.물소리가 나질 않는다
어차피 낚시가 목적이 아닌 조행
오늘은 그를 만나려고 녹사지에 왔다

초저녁 일찍 보트 텐트를 내려 덮고는 카텐트를 폈다
핫팻 대여섯장을 침낭속에 붙혀 놓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담배 한가치 필 거리보다 가까우니 집에서 자고 와도 되련만 어쨋든 그를 만나야 하니
이편이 쉽다

아침 ..
학교건물을 배경으로 아침 해가 찬란하다
한두사람 빈 살림망을 털어 철수를 준비하고 녹사지 외딴집 주인은 쓰레기를 줍고있다
7.8년 하루가 멀다 하고 낚시를 해온 곳이니 늘상 줏어 내지만 주말후엔 늘 새로운 쓰레기가 생긴다

줏어온 쓰레기를 분리 수거 하는데 녹사지 외딴집 남자가 말을 걸어 온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나를 형님이라 부른다
형님 보트 항상 싣고 다니세요 ?
응 .. 저것때문에 차도 못 바꿔
그럼 우리 창고에 넣어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가시면 돼쟎아요
형님 열쇠하나만 사오세요
그래도 돼 ?
그럼요

덕분에 큰 짐을 덜었다
보트를 덜어내니 집칸이 텅 비었다
외딴집 주인남자와 얘기하는동안 기다리는 그가 보인다
비료포대에 대 한두대 들고 해를 등진채 그가 온다
나는 그를 기다렸다

도와줘야 겠다 생각 했지만 말 꺼내기가 쉽지 않다
조금 염치 없어 만날때 마다 담배한갑 주세요 하는 그지만
막상 헌옷가지 .낚시용품들을 주려니 그의 반응이 걱정된다
담배한갑 정도로 마음 편하게 받아주면 좋으련만
쉽게 받을거라 생각 하는것 자체가 좀더 가진 자의 자만으로 비쳐질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행히 그는 아는척 인사를 해준다
전화 있어요 ?
집전화도 ?
무작정 들이대니 저의가 무엇이냐는 듯 슬쩍 경계를 보인다
아니 다른거 아니고 지난번에 찌 잃어버렸다고 하길레 몇개 나눠 줄까 하는데 ..

대답이 없다
짐을 정리해 싣고는 부지런히 집으로 가서 그에게 줄 짐을 실었다
월척의 좋은 분들께서 보내주신 깨끗한 옷가지들 .낚시용품들
그리고 그에게 다시 가 집을 물으니 녹사지에서 불과 2-3분 거리다

거 펴놓은 릴 그대로 두고 나랑 어디좀 갑시다
어디요 ?
당신 집 가깝다면서요
왜요 ?
일단 가 봅시다
이것 저것 따지다 보면 조심스러워 못주고 말것이다
일단 밀어부쳐 보는거다

역시나 ...
도와줄 사람을 제대로 찿았다
허름한 농가 한켠 창고방이 그의 방이다
서른하나
부모님 돌아가시고 서울계신 형님이 전기세와 방값정도를 보내주신단다
혼자만의 살림 단촐하고 초라하다

벽지는 다 닳고 방바닥엔 얇은 이불이 펼쳐져있다
전기밥솥 . 간단한 식기들
생뚱맞게도 부엌엔 깨끗한 군화 한켤레가 어울리지 않게 오똑하다
그 군화를 보고 가난한 그가 아니 .생계도 꾸리기 힘든 그를 나라가 군인으로 복역시켰나 싶은
별난 생각이 든다

깨끗한 청바지
낚시줄 .캐미 ,낚싯대 .받침대 .찌 .후렛시 .외투와 봄옷들..
두박스 가득 방안에 풀어놓으니 그가 눈을 휘둥그레 진다

이거 ..
낚시하는 좋은 사람들이 모아준건데
당신이 찌 없다고 하길레 내가 받아왔는데 괜챦죠 ?

처음으로 그가 웃는걸 봤다
아니 좋아서 어쩔줄 몰라 한다
간단한 대답 정도만 하는 그가 형얘기 부모님 얘기를 한다
무던히도 추웠던 지난 겨울
홋이불 하나로 전기장판에 의지해 겨울을 보냈다고 한다
냉장고 아니 반찬도 쌀도 보이지 않는다
언제 밥을 했을지 모르는 전기밥솥 ....


꾸벅 인사를 하는데 그의 모자가 농약이름이 적힌 여름모자다
모처럼 어울리는 모자라며 집사람이 사온걸 내주고 말았다
일 해야지 ?
일도 하고 돈도 벌어 장가도 가고 수염도 깎고 옷도 깨끗히 빨아 입고 응 ?
이불이며 쌀 같은거 좀 가져다 줄테니 ..
착하게만 살어 응 ?
일거리도 좀 찿아보고 ?

돌아 나오는데 꾸벅 인사를 하던 그가 아저씨 ..하고 부른다
혹시 담배 있어요 ?
이미 자존감을 잃어버린 그
염치라는걸 가르켜 주고 싶다
돈 벌어서 담배 사 피워야 하고 일해서 돈 벌어야 하고 깨끗해야 하고
말도 좀 많이 하고 사람들 보고 피하지 말고 늘 웃고 다니고 ....

그래야 정상적인 사람으로 사는거야 다른 사람들 처럼
그럴수 있어 ?
그렇게 하면 아저씨가 아니 형이 도와줄께
노력해서 댓가를 받으려고 노력해야지 그냥 줄거라 생각하면 안돼
알았지 ..


도와주신 여러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보내주신 깨끗한 옷들로 인해 그는 처음 염치 .체면 . 정상적인 삶에 대한 얘기를
듣기 시작 할 겁니다
군청 사회복지과에 문의해서 수급자 여부와 일거리등 자립할수 있는 여건등을 마련해 볼 생각 입니다
여러분이 서른한살
어쩌면 그렇게 살다 가고말 어떤이의 삶에 커단란 변화를 주는 단초가 됐는지도 오릅니다
라면 몇박스 사들고 가끔 들여다 보겠지만 그에게 더 중요한건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일일것 같습니다
여러분 덕분 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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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대물☆참붕어 13-03-17 13:05 IP : 1c0ca5d0ed0f6e6
한사람의 인생을 바꿀 만한
정말 크고 좋은일 하셨네요
복 받으실겝니다
추천 0

2등! 소박사 13-03-17 13:07 IP : 846e087e689a890
^^~ ♥♥
추천 0

3등! 붕어가사람 13-03-17 13:48 IP : 241add82219fc6c
한해 사회,복지예산만 100조가 넘고
자국에 살지않아도 한국국적만 있음 매달15만원씩 아동수당지급하는 나라에서
그 많은 복지혜택을 누리며 사는것도 이글을보니 능력이라 생각이드네요

한사람의 작은관심이 그분에겐 삶에 희망이되고 미래가될수있길바래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추천 0

죽안지 13-03-17 14:27 IP : 5e0294064aef766
도움이 되진못했지만 마음으로 응원드립니다.

꼭 도움의 손길이 필요해보입니다.

글속에 따스함 느낍니다. 좋은 휴일되세요
추천 0

공간사랑™ 13-03-17 14:33 IP : e39265334bf2d6e
서른 한살이면 한참 젊은 나이인데

그리 사는건 사정이 있나 보네요..

누군가를 돕는다는건 어려운 일인데 큰일 하셨습니다.
추천 0

무안이 13-03-17 14:34 IP : 5a51663dda40248
마음에 박수를 쳐드리고

저분은 오늘 행복하시겠습니다
추천 0

삼손 13-03-17 15:19 IP : 386d0c286a828b7
베푸는 이의 표본을 보는것 같아 제자신이 부끄러워 옵니다.

갖잔은 것 베풀면서 으스대지 않았는지,고압적이지 않았는지,생색내지 않았는지,겸손한척 하지 않았는지...

모쪼록 그친구도 삶의 표본을삼아 달라진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고,은둔자님도 더욱 멋진삶 살길 빌겠습니다.
추천 0

비맞은대나무2 13-03-17 15:27 IP : e39b10ff6c03225
자존심을 다시 찾게 해준다는 말이 와 닿습니다

좋은일 하셨내요 ᆢ 짝짝짝 ^^
추천 0

파스타 13-03-17 16:01 IP : 07b742833bf2cb5
마음이차분해지고,
가슴이뜨거워지는걸 느낌니다.
몇년씩걸려만든 다큐한편보다 더큰감동이젼해집니다.
은둔자님및 그외도움드린 조사님 존경합니다!
추천 0

이박사2 13-03-17 16:05 IP : 13b260c3c4d4bf5
아.. 진짜...
괜히 코끝이 찡하면서...
추천 0

붕어꾼66 13-03-17 16:17 IP : a52699680c184e9
어찌글을달아야할지모르겠습니다.

멋진일을하셨군요.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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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13-03-17 16:58 IP : 4e0c3cf27834730
님의 마음이 닿는 만큼의 몇 프로 만이라도 변해가면 좋으련만..
편치 않겠습니다 마음이..
짠 합니다.. 예전 물가에서 경험이 있어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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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짜혹부리 13-03-17 17:17 IP : 82797aac4c30137
수고 하셨습니다.

훈훈합니다~!
추천 0

찍사 13-03-17 18:38 IP : f2228823d1c175b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말을 해 드려야 어울릴까도 생각해 봅니다
행복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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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켜알바 13-03-17 18:46 IP : 622afddbbdd90cb
어려운 일을 하셨네요...

많은 생각 얻어갑니다.
추천 0

아부지와함께 13-03-18 09:22 IP : 690c835d05eed72
낚시용품,생필품보다

더 소중한

따뜻한 마음과 정성이

그의 삶에 조그만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은둔자님, 복 받으실 거구만유~^^
추천 0

먹뱅이아 13-03-18 10:05 IP : 7f52bd15d8f7dd8
잘 되길 바래 봅니다.

둔자님이, 한 인생의 방향을 좋은 방향으로 바꿔 놓으실 수도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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