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이 토론의 이슈를 제안하면 그 주제에 대해 자유로운 댓글을 통해 참여하는 방식의 토론방입니다. · 이슈의 범위는 제한하지 않으나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자극적이거나 비매너적인 댓글은 삭제됩니다. · 뉴스기사 및 타 사이트의 게시글을 옮겨와 단순히 게시하는 것, 본인의 의견이 아닌 글은 삭제됩니다. · 균형있는 게시판 사용과 신중한 이슈 제안을 위해 게시물 횟수를 3일 1회로 제한 합니다. · 댓글에 답글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12. 1.19. 시범 적용)
불러본적도 없고... 물론 들어본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노래가 탄생하게 된 계기. 5.18 항쟁 당시 투사였던 나로서는 오늘 5.18기념식의 대통령 기념사를 들으며 감회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 그때 광주에서 있었던 그 일들을 떠올리면서.허허 이 나이에 눈물이라니. 주책이라 생각하면서도 눈물과 함께 풀어져나오는 마음 깊은 곳의 응어리들.
사실, 이번 선거에서 문통령을 지지하지는 않았었지만, (물론 내가 철면피당이라 여기는 당의 후보를 찍진 않았습니다) 그 양반이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이 몇일간의 행보로 볼때 이제야 우리가 정말이지 훌륭한 지도자를 갖게 된 것 같아 정말 기쁘게 생각 합니다.
5.18 당시 복학생으로 대학 1학년이던 난 정치적 견해에 그리 적극적이진 않았었지요. 하지만, 그때의 그 울분과 분노, 그리고 복학생 신분으로 동생들 앞에 앞장서야 한다는 혈기에 거리로 뛰쳐나갔었습니다. 최루탄을 가슴에 정통으로 맞아 숨이 막히고 앞도 볼 수 없어 넓은 운동장으로 뛰어들어 땅을 구르며 몸부림 치기도 했고, 충장로 거리에서 군에 쫓겨 뿔뿔히 흩어져 도망치다 건물로 뛰어들어 은신했던 일. 밖에 나갔던 형이 소총을 들고 흥분된 상태로 집안으로 뛰어들던 일. 고생한다고 김밥과 음료수 삶은 달걀을 차로 올려주시던 시민들. 미대생이던 내가 철없이 야외스케치 간다고 화구를 들고 나갔다가 소총과 실탄박스로 오해한 군인이 날 쏘려했던 일. 친구를 찾는 친구 어머니를 투쟁자들 시신을 모아논 곳에 안내하고 갔다가 차마 보지 못할 것들을 목도한 일. 군인들이 젊은 학생들은 모두 잡아들인다는 소문에 고향으로 은신해 보리를 베던 일. 하나하나 까맣게 잊고 살았던 참으로 오랜 일들이 새삼스레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울었습니다. 오늘 님의 행진곡을 들으면서.
님을위한 행진곡. 난 단 한번도 불러본 적 없는 노래지만, 오늘 그 노래를 들으며 노래 작사가가 어찌도 당시의 우리들 마음을 그리도 잘 알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역시 작가는 작가인 게죠.
그랬습니다. 우린 그때 그랬었지요. 사랑도 명예도 원하지 않았고, 그저 뜨거운 피로 거리에 뛰쳐나갔습니다.
그랬습니다.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고, 우린 가슴으로, 눈으로, 미소로 약속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세월은 흘러도 산천은 알 것입니다. 그때 자유와 영혼을 위해 싸웠던 우리를. 가끔 홀로 낚시를 즐기는 저는 가끔 생각하곤 했었습니다. 그 때 그 일을 누가 기억해줄까. 하는.
그랬습니다. 군인의 총탄에 죽어가도 맨손으로 대항했고, 앞선자가 쓰러지면 뒷선저가 그를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죽었습니다. 가끔은 살아있음이 부끄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앞선자는 태극기를 들고 외쳤습니다. 앞서니 따르라고.
박근혜 탄핵이 무효라고 외치던 집회를 태극기집회라 하는데 진짜 태극기 집회는 그런게 아닙니다.
그때 그 뜨거웠던 함성이 귀에 생생합니다. 들려옵니다. 그리고 생각납니다. 금남로에서 태극기를 들고 도청으로 차를 몰고 가다 사살당하는 젊은 피가. 그때 그 일은 내가슴에 평생 화인으로 남아있습니다. 한때는 나라도 나서서 백담사 담을 넘어 전두환이를 죽여버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했었지요. 진심으로.
...아래 푸른노을님이 쓴 글의 댓글들을 보다가 씁쓸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댓글에 분노를 느낍니다. 5.18을 맞아 소주병 앞에 두고 절절한 마음으로 몇글 올립니다.
이웃의 가슴 아픈일을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이 강한 우리사회....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우리 시대의 양민(시민)학살, 좀 따져봐야 합니다. 죽은 자는 그 이유도 모르고, 발포자와 명령자는 숨어버리고,.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죽은 자의 가족들은 어디에 하소연도 못하고, "빨깽이, 부역자, 간첩"이라는 분홍글씨를 가슴에 담고 차별되고 소외받고, 소리 지르지도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발포자와 명령권자는 최상의 권한을 누리고,, 이제는 좀 따져 봅시다....권력자나 정치인에 의해서 조정되는 몰지각한 일부 국민들, 그러시면 안 됩니다.. 깨우치지 않은 국민은, 반성하지 않는 국민은 소수에 의해 지배되어 노예처럼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민주주의는 그냥 얻는 것이 아니고 선대들이 고통과 노력으로 주어진 것이니, 우리들은 민주주의를 관리하고 개선해서 후대들에게 남겨주어야 합니다.
권철욱1919씨. 당신은 알고있소? 그때 우리가 외쳤던 수호를? 아니 모를거요. 북한? 빨갱이? 공작금?
그때 네가지 구호가 있었소. 계엄령 철폐하라.는 구호부터 시작되어 제일 마지막 구호. 그것은 바로 김일성은 오해마라 였소.
그대는 순수하게 구호를 외치며 평화시위하는 학생들을 군을 투입해 무력 진압하는데 그것이 정당했다 여기시오?
목숨을 지키기위해 경찰서 무기를 꺼내 싸운거요. 자유수호를 위해 싸운거요.
아시오? 수많은 무기가 시민들에 뿌려지고 치안은 마비 되었어도. 아니, 마비가 아니라 경찰도 투사의 편이었소.
아시오? 그렇게 무기들이 통제가 않되었어도 당시 광주시에 은행이 털렸다거나 무기강도 횡횡했다는 말 들어봤소?
난 지금 경북에서 15년째 살고있소. 경상도사람의 사고도 잘 아오. 대부분 몰랐었다 그럽디다. 정치적 농간에 사실이 외곡된건 이모 모르는 사람이없소.
하지만 당신같은 사람은 어디에나 꼭 있지.
이야기 하다, 야 그새끼 전라도놈이잖아. 역시 전라도놈은 어쩔 수 없어.
내가 경북에 살며 수십번도 더 들은 여기사람들의 말이오. 몰론 내게 한 말은 아니었소. 아마도 당신같은 사람들이 내뱉은 말일거요. 예전엔 그말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구쳤는데 이젠 모든걸 다 떠나 참 불쌍하다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
그날은 댁이생각했던것처럼 소설이 아니고 실화입니다 그때 내나이19세 고3 광주공항 앞집이 우리집이고 군인들이 탱크 몰고와 목포 영광쪽 가는길 차단하고 ~교련복입고 그땐 민주화보단 우리마을 우리고장 그리고 우리형제들 없앨가봐 참가했던 사람입니다5~6번 버스 에 우유 넣어주고 같이 동참했던 아픈기억을 당신은 내게 또하나의 기억을 지울수 없게 합니다 애써 당신이 빨갱이 어쩌고하는생각이 아마도 당신의 생각을 멈추게 할것입니다 다시는 아무도 슬프지않도록 생각을 바꾸심이~~참고로 그땐 송정리 차단하면 묵포나 영광을 못갔답니다
저는 지역적인 비하나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냥 권씨라고 하겠습니다. 일베인지 무엇인지는 모르나 권씨는 분명히 현대史를 잘못 알고 있습니다. 또한 올리신 글은 사실을 왜곡하는 부분이 있으므로 법적시비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지난 과거의 사건을 현장에서 직접 겪어보거나 사실여부를 확증할 증거가 있다면, 그것은 사실로 봐야 합니다. 이미 법적으로 시비가 결정된 5.18민주화운동에 관련된 개인적 판단을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유투브에서 레드 툼(Red Tomb)를 검색..구글에서 "대구10.1사건 또는 대구10월 항쟁"를 검색하시면 집권세력이 힘없는 시민을 무차비하게 회생한 사건입니다.
레드 툼은 1950년 한국전쟁 초기 이승만 정권에 의해 예비검속에 이어 집단학살 당한 국민보도연맹 민간인 학살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들 대다수는 이승만 정권이 좌익세력을 회유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든 반공단체인 ‘국민보도연맹’에 영문도 모른 채 가입했고,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전투와는 상관없는 지역에서 집단 학살됐다.
국민이 무슨 우파, 좌파가 있습니까? 구태적 정치인들이 만든 정치적 이념용어(좌익, 우익, 좌파, 우파, 빨ㅇㅇ, 종북)에 현혹되는 일부 시민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파 정치인과 좌파 정치인과는 공생하는 정치인 관계는 유지하고, 우파 국민과 좌파 국민과는 계속 이념적 대립으로 싸워서 갈등을 부추기고, 이제는 그러지 맙시다.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는 민주주의이면 되었지.. 매우 편향적인 정치이념으로 즐거운 낚시포털을 우환(憂患)으로 만들지 맙시다.
5.18기념식을 보고 올만에 감정이 잡혀 옛 이야기좀 올렸는데, 긍정적 댓글 주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모두 대물들 하세용.
글고, 부정적 글로 앵앵거리는 사람은 꽝이나 쳐라.
휴- 한때 민주화 운동했다고 밝힌 입장에서 상스럽게 욕하면 옛 동지들 욕먹이는 꼴이니 그러진 못하겠고 ...걍 잉어가 낚숫대나 몽땅 물어가 버려라. ㅎ-
참 답답하네요.
5.18민주화운동을 아직도 폭동이라고 한다니
그래서 교육은 평생교육인가봅니다.
소싯적에 폭동이라 세뇌당했다고,지금은 민주화라 인정하는데도,아직까지 폭동이라구 하잖아요.
공산주의 사상교육보다 더 무서운게,
민주주의 세뇌교육이랍니다.
제 글에 불만 있으신분들 댓글달아주세요.
댓글도 안달구 비매너 누르신분은.....
개 상열의 쉐끼를 넘어서 ,호루라기 쉐리입니다.
세월이 참 빠르게 흘렀다는걸 새삼 느끼네요.
제 나이 벌써 60세가 되었으니..
5.18 아픈상처입니다.
저역시 그당시 젊은나이에(현역군인은 아니었음)
낮에는 조직에 얽매어 나가보지 못하고, 퇴근후 밤에는 그 대열에 합류했었었죠.
열심히 불렀었죠.
목이터져라 불렀었죠.
그당시에는 "님을위한 행진곡"뿐만 아니라" 전두환이 물러가라" 노래도 불렀었죠.
전두환이 물러가라.. 믈러가라..
전두환이 물러가라,, 물러가라..
전두환이 물러가라, 전두환이 물러가라, 전두환이 물러가라.
이렇게 가사는 똑같이 반복되었었고 멜로디만 달랐었죠.
역사의 진실은 언젠가는 꼭 밝혀지지요.
벌써 40여년이 지났어도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지만, 우리같은 그당시의 세대가 눈을 감더라도 꼭 밝혀질겁니다.
저는 이제 더이상 노여워하거나 화내지도 않습니다.
세월이 그렇게 무디게 만들더군요.
그당시의 광주의 아픔과 비극을 모든국민이 다 이해할수는 없겠지요.
언론이 통제되었고, 실제 그모습을 보지 않은 타지역의 국민들도 있기에..
그러니 저를 슬프게 하는것은
소위 정치권.. 그중에서도 제1야당(자유한국당)의 대변인이라느 사람이 언론에서 하는말..
은근히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그런내용도 시중에 떠돌고 있다느니 하면서 국론을 이간질하더군요.
어떻게 비극적인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그런 유언비어가 나돌수 있는건지..
저는 아념을 따지지 않습니다.
보수면 어떻고 진보면 어떻습니까?
그러나 5.18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제는 젊은 할애비, 세손주를 둔 젊은 늙은이로써 하고 싶은말..
광주를 욕되게 하지 마십시오.
지워지지않는 그 아픔의 상처를 앞으로도..영원히 안고 살아가야하는 슬픈 국민이니까요.
1980년.
제 나이 스물둘의 대학생이었습니다.
TV에서는 불과 몇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시민보다 경찰과 군인의 사상자가 오히려 더 많았다고 했으나 미국 문화원에 붙어있는 외신에는 수천명의 시민들이 사망했다고 했습니다.
공무원이셨던 제 선친께서는 TV를 보시면서 저 빨갱이들을 빨리 없애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셨고,
미국 신문에선 우리 언론이 다 거짓이라고 한다고 하는 저와 심각한 말싸움까지 했었습니다.
그 당시 군부가 언론을 휘어잡고 통제하던 시절이라
일반인들 대부분이 공영방송 뉴스만을 믿고 있었지만 젊은이들,특히 대학생들은 진실을 알고 있었기에 데모가 끊이지 않았었죠.
그리고 지금 제 나이 59세.
그때 그 진실을 잘 알고있던 친구들 상당수가 어이없게도 그때 기억을 머리속에서 깨끗히 지워버리고 군부통치를 그리워 하기도 하는 그런 혼돈의 세대이기도 합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자기는 보수,저는 진보라고.
자기는 우파, 저는 좌파라는 뜻이겠지요.
솔직히 저는 보수와 진보,우파와 좌파중 어느쪽인가
구분해 본 적도,생각해 보지도 않았었는데 저보고 진보고 좌파라고 하니 머리 속이 혼란스럽더군요.
저는 그냥 진실이라고 느껴지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였을 뿐인데 왜 그렇게 나누는 걸까요?
더이상 이런 유아적인 구분짓기는 그만뒀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과거의 권력자들이 자기들의 놀이를 쉽게 하기위해 만들어 놓은 틀일 뿐입니다.
그들은 그 틀속에 사람들을 가둬놓길 좋아했으니까요.
수십년이 흐른 지금,굳이 왜 그 낡은 틀속에 우리
스스로를 넣어놓고 구분지어서 그들이 원하는 싸움을 해야하나요?
싸움을 하더라도 선의를 바닥에 깔고 도움이 되는,
정중한 싸움을 했으면 합니다.
흠뻑 취하고 싶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