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토론방

· 회원이 토론의 이슈를 제안하면 그 주제에 대해 자유로운 댓글을 통해 참여하는 방식의 토론방입니다.
· 이슈의 범위는 제한하지 않으나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자극적이거나 비매너적인 댓글은 삭제됩니다.
· 뉴스기사 및 타 사이트의 게시글을 옮겨와 단순히 게시하는 것, 본인의 의견이 아닌 글은 삭제됩니다.
· 균형있는 게시판 사용과 신중한 이슈 제안을 위해 게시물 횟수를 3일 1회로 제한 합니다.
· 댓글에 답글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12. 1.19. 시범 적용)

한반도에 찾아올 봄 평화협정, 카쓰라테프트 밀약을 기억하는가!

적수역부 IP : a7e08e4e5989087 날짜 : 2018-04-18 13:02 조회 : 3184 본문+댓글추천 : 0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듯이 한반도에도 봄은 다시 찾아 오는가!

오늘의 뉴스이다.
청와대 "정상회담서 정전협정→평화협정 전환 방안 검토"
靑고위관계자 "당사자 간 종전선언 추진..일단 남북간 합의 기대"

원래 하나였던 조선이라는 나라가 일본제국주의침략자에게 국권을 강탈당하여 온갖 착취와 인권유린 살상만행을 당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2차대전 종전으로 미국을 향해 전쟁을 벌이던 일본이 급기야 미국의 원차폭탄 투하로 패망함으로서 우리도 일체침략으로부터 해방되는듯 한 것도 잠시 순간의 일이었을 뿐...

전쟁에서 맞붙었던 전승국 미국이 패전국 일본의 침략행위를 완전하게 응징하지 않고 카쓰라테프트 밀약을 이어간다.
다시 한반도에서 6.25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실패한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실패는 되풀이 된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미일 군사동맹과 카쓰라테프트 밀약]-<펌>

일제의 한반도 식민통치,
분단과 6·25전쟁, 냉전의 근본원인으로 간주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정체를 알아본다.

1905년7월27일, 미국 육군성(국방부의 전신) 장관인 윌리엄 태프트는 일본 도쿄를 방문해 가쓰라 다로(桂太郞) 수상과 장시간 회담을 했다.
1924년에야 그 내용과 실체가 알려진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이 회담의 산물이다.

도대체 밀약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밀약과 관련해 어떤 점이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는가?
우선, 1905년 7월의 동북아 국제정치 상황부터 살펴보자.
1904년 2월 발발한 러일전쟁은 한반도와 만주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두 강대국이 벌인 일전이었다.

일본은 1905년 초, 난공불락의 요새로 알려진 러시아 점령하의 뤼순(旅順)을 함락시켰고, 3월에는 펑톈(奉天·지금의 선양)의 육전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그해 5월 동해상에서 당시 세계 최강이던 러시아의 발틱함대까지 전멸시킴으로써 마침내 전쟁의 승기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막대한 군사적 손실을 입은 러시아는 물론, 일본 또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여력이 바닥난 상황이었다.
일본으로서는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는 외교적 협상 구도를 미국을 통해 모색하고 있었고, 따라서 미국의 협조는 불가결했다.
우선 절실했던 것은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독점적 지배권을 관련 열강으로부터 확인받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일본에 대해 지지의사를 표명한 나라가 미국이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그 배경에서 탄생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세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는 당시 미국이 점령하고 있던 필리핀에 대해 일본이 어떤 공세적 의도도 갖고 있지 않음을 확인한다는 점,
둘째 일본측의 일본-영국-미국비공식 동맹’ 제안에 대해 태프트는 미국이 의회의 승인 없이 ‘조약적 의무’를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는 점,
셋째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이 러일전쟁의 논리적 귀결이라는 일본의 의견을 미국이 인정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 회담 내용의 일부는 1905년 10월 일본 신문 ‘고쿠민(國民)’ 지면을 통해 흘러나오기도 했으나, 회담의 전체 내용은
1924년 미국 외교사학자 타일러 데넷에 의해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대일 비밀조약(Theodore Roosevelt’s Secret Pact with Japan)’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전문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었다.
‘밀약’이라는 표현은 데넷의 글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韓-比 맞교환 가능성은 낮아>

데넷의 논문에는 회담 직후 태프트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전문이 실려 있는데, 전문에 나타난 회담 내용 가운데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세 번째 사안이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 문제와 관련해 가쓰라는 “한국이 일본과 러시아가 벌인 전쟁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한국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 전쟁의 논리적 결과이며, 이는 일본에 실로 중대한 문제”임을 밝혔다.
또한 그는 “만약 전쟁 이후에도 (아무런 조치 없이) 한국에 맡긴다면 한국은 또다시 다른 국가들과 협정이나 조약을 맺어 전쟁 이전과 같은 복잡한 상황을 재발시킬 것이므로 일본은 이러한 상황의 재발 가능성을 막기 위해 모종의 확실한(definite)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여기엔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내세운 논리, 즉 동양의 평화를 위해 한국을 지배해야 한다는 논리가 명백히 드러나 있다.
당시 정황으로 미뤄볼 때 태프트는 ‘모종의 확실한 조치’가 보호조약 체결을 암시한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태프트는 가쓰라의 ‘논리적 정당성’에 대해 충분히 인정하면서 “한국이 일본의 동의 없이 외국과 조약을 맺지 못하게 요구하는 범위에서 일본 군대로써 한국에 대해 종주권(suzerainty)을 확립하는 것은 전쟁의 필연적 결과이며, 극동의 항구적 평화에 직접적으로 이바지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 비밀협상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논쟁점을 던졌다.

첫째 이 협상 내용에 미국과 일본이 한국과 필리핀을 상호 교환하는, 이른바 ‘외교적 주고받기 흥정(quid pro quo)’의
의미를 담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고,
둘째 그것이 단순히 양국 고위관료간 의견교환 수준인지, 아니면 양국간 장래의 행동을 상호 약속하는 ‘협정(agreement)’의 의미를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그 비밀협상이 한국-필리핀의 맞교환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물론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 약소국 문제를 외교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 추세였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전문의 내용상으로는‘A 대신 B’라는 논리가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더욱이 필리핀에 있어 미국의 입지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지배권 승인 요구는 외교적 흥정 대상으로 적절하지 않았다. 적어도 미국의 인식은 그러했다.
일본은 한국 지배권 독점에 대한 국제적 승인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반면, 미국은 1898년 이래 이미 필리핀을 군사적으로 점령한 상태에서 반군 토벌작전을 진행하고 있던 점이 달랐다.
루스벨트 자신도 회담 3개월 후 태프트의 방일(訪日)이 외교적 흥정이었다는 소문이 일본 신문에 실리자 상당히 불쾌해하면서 미국은 “영토보전을 위해 누구의 지원이나 보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했던가?
그것은 몇 가지 요인이 결합된 결과였다.

루스벨트의 인종주의적 문명관과 친일론적 인식도 중요한 원인이었고, 그것이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판단과
결합되면서 나타난 결과였다.
당시 미국의 주된 관심사는 중국시장이었다. 이미 1899년, 1900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은 중국 문호개방 원칙을 천명해 놓은 터였다.
즉 군사적 개입이라는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서 중국시장에서 미국의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었다.
문호개방 정책에 대해 일본은 외교적 지지를 보내고 있었던 반면, 러시아의 만주 진출은 문호개방 원칙에 대한 도전이라 인식했다.
따라서 루스벨트는 일본의 대(對)러시아 전쟁을 “미국의 게임을 일본이 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할 정도였다.
미국의 그러한 기대감은 러일전쟁 후 일본이 만주로 진출하고 러시아와 다시 손을 잡게 되면서 적대감으로 바뀌게 된다.
그것이 동아시아에서 미일 충돌의 원인(遠因)이 됐다고 해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협정인가, 각서인가 >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양국간 법적 의무를 가진 협정의 성격을 띠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한 의견교환, 즉 각서로
볼 것인지는 다소 복잡한 문제다.
태프트 장관이 회담 직후 루스벨트에게 보낸 전문에는 이 회담의 성격을 합의각서(agreed memorandum)’로 밝히고 있다.
만약 그것이 단순히 각서라면 미국은 아무런 법적 의무도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일부 학자들은 주장해왔다. 법적 의무란
미국이 1882년 조미수호조약에 명기한, 우호적 중재(good office)와 관련한 체약국 의무를 의미한다. 게다가 태프트는
특히 한국 문제에 관한 그의 의견 표명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루스벨트 대통령에게서 어떠한 지시도 받은 바 없으며, (외교문제에 관한 한) 태프트 자신이 어떤 직권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 그러면서도 그의 의견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동의할 것이라는 점을 덧붙이고 있다.
그 자신이 육군성 장관이라 외교 문제에 관한 그의 발언이 국무성 업무에 관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우려도 이 전문에 드러나 있다.
이 비밀협상을 단순히 각서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비밀에 부쳐졌다는 점, 회담 내용상의 표현, 그리고 구체적인 외교적 거래를 명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논리의 근거로 내세운다.

<루스벨트는 밀약에 동의했다>

반면 이것이 실제로 협약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드러난 형식보다는 국제정치적 중대성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이 비밀협상의 실질적 의미, 즉 일본과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그 회담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협상 이후 미국의 한국 정책이 어떻게 수행됐는가 하는 관점에서 그 의미를 이해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루스벨트 자신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국제정치적 중요성과 미국의 외교정책적 영역에서 그 의미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한국 문제에 대한 태프트의 발언에 대해 루스벨트는“우리의 입장이 더는 그처럼 정확하게 언급될 수 없다”고 하면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미국의 대한(對韓)정책에서 갖는 시기적 적절성과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루스벨트는 당시 미국 외교정책 결정과정의 핵심이었다. 1903년 여름 이후 미국 외교정책은 사실상 그가 주도했다. 그를 일컬어‘일인(一人) 국무성’이라고 불렀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태프트는 회담에서 대통령에게서 아무런 지시도 받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태프트를 일본으로 보내기 전, 루스벨트는 한국 문제에 관한 자신의 의도가 무엇인지 태프트에게 미리 알려줬다.
그는 1905년 4월20일 태프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본이 한국을 지배한다는 조항이 포함되는 한 나는 강화조약의 일본측 안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일본의 한국 지배를 미국이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일본의 한국 지배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 지지를 확인해준 것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루스벨트는 태프트가 보낸 전문을 읽고 난 즉시 태프트에게 보낸 회신에서 “당신이 가쓰라 백작과 나눈 대화는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타당하다.
당신이 말한 모든 말을 내가 추인한다고 가쓰라에게 언급해주길 바란다”고 하여 태프트의 발언을 대통령 자신의 의견으로 인정하는 한편, 가쓰라-태프트 협약의 내용을 미국의 공식 견해로 재확인시켰다.
더욱 주목해야 하는 점은 그 밀약의 국제정치적 위상을 루스벨트 자신이 어떻게 인식했느냐 하는 문제다.
1905년 11월, 그의 친구이자 영국 외교관인 스프링 라이스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나의 지시에 의해 태프트가 일본 수상 가쓰라와의 회담에서 재차 강조한 것은, 구체적으로 영일동맹에서 명기하고 있고, 또한 포츠머스(Portsmouth) 조약에서 인정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우리가 전적으로 승인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루스벨트에게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일본의 한국 지배에 관한 국제적 승인이라는 점에서 제2차 영일동맹이나 포츠머스 조약과 동등한 중요성을 갖는 협정이었다.
영국과 러시아가 조약을 통해 그렇게 했듯, 루스벨트도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했던 것이다.
적어도 미국의 핵심적 외교정책 결정자의 인식구도에는 그러한 등식이 성립돼 있었다.
아울러 루스벨트 외교방식의 특징을 고려해야 한다. 그는 공적인 외교 채널보다 사적 채널을 중시한 이른바 ‘개인 외교
(personal diplomacy)’ 방식을 선호했던 인물이다.
1905년 미국의 한국 외교에도 그 방식이 채택됐다. 태프트의 협상 임무에 있어 국무성 관료들은 사실상 철저히 배제됐다.
어쩌면 루스벨트 대통령은 한국 문제와 관련된 대일외교를 추진하는 데 교묘하게 국무성을 배제했을 것이다.
국무성 관료들 일부가 가지고 있던 친(親)러적 정서를 우려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국무성에는 그것에 관한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으며, 루트 국무장관이나 주일공사 그리스콤도 뒷날까지 그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국의 사망증명서에 날인’ >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한미 양국관계에, 그리고 한국의 운명에 큰 충격을 줬던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승만의 전기작가로 잘 알려진 로버트 올리버의 표현에 따르면 그 밀약은 ‘한국의 사망증명서에 날인(to seal Korea’s death warrant)’하는 행위였다.
한국의 국제정치상 위상과 존립에 관해 미국과 일본의 고위층 사이에 합의된 의견이 교환되고 상호 확인됐다는 사실은 미국 정부가 1882년의 한미수호조약에 명시된 ‘우호적 중재’라는 체약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기로 이미 결정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미국이 1903년 친일 구도를 골격으로 하는 외교정책을 선택한 이후 일본의 한국 문제 처리에 대해 보여준 행동 가운데 가장 명백한 의도를 담고 있는 행위가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그런 사실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乙巳勒約)이 맺어지자마자 한국과 외교적 관계를 단절한 최초의 국가가 미국이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내용을 외교적 실행으로 옮겼던 것이다.

김정기 연세대 교수
추천 0

1등! 키큰붕어 18-04-18 14:15 IP : a61b3d0d34103f2
시발쪽발은 영원히 우리와 안맞는 개쌔이들
어떻게든 뚜디리잡아야 우리가 산다
추천 0

2등! 낚싯대 18-04-18 14:31 IP : b5180f0d6d757bb
당시 시대 상황을 공부 하려니 제법 만만치 않네요...;;

가쓰라-태프트 밀약

첫째,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고, 일본은 필리핀을 침략할 의도를 갖지 않는다.
둘째, 극동의 평화 유지를 위해 미국·영국·일본은 동맹관계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지배적 지위를 인정한다.

이것을 미국과 일본이 합의 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로서 여기에 대한제국이 일본의 보호국(protectorate)으로 되는 것을 동의 했다고 주장 했다는데 아마 을사오적 등의 친일 세력들 지지가 있었고 그것을 대한제국의 의사로 본것으로 결국은 을사늑약을 체결하게 된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정확할까요?
추천 0

   
3등! 적수역부 18-04-18 14:35 IP : a7e08e4e5989087
미ㅔ일 간의 '카쓰라테프트밀약'
이것은 조선의 사망선언이라고 봐야죠,
그러기에 그것을 발판삼아 일본이 조선을 침략만행한 것이고요.
외세의 타국에 대한 국권침탈 지배권을 밀약한것이니까요...
추천 0

낚싯대 18-04-18 14:33 IP : b5180f0d6d757bb
아직도 주위 중국 일본 미국 애들 하는거 보면 정신 바짝 차려야지 한방에 훅~ 갈지 모릅니다.
추천 0

바람속고래 18-04-18 21:00 IP : cdd156bbb8a8044
경인선?이중요하지 ㅎ

결론이먼가요?

지금한국이 미국.일본의식민지인가요?

수십년 침략한일본은 욕해도되지만

천년동안 조선을 식민지화한중국은?

친일파 난리칠때 그친일파후손 민주당에

다있고

미투도민주당 ㅋ ㅋ

미국.일본 역대최저실업률이랍니다

한국은 역대최고?

세큼으로 경제살린다는정부?

지금 그딴게중요한게아니라

먹고사는게 더중요합니다 맞죠?
추천 0

어사헌 18-04-19 09:58 IP : 1670ea7533376ff
"그 친일파 후손 민주당에 다있고" ㅎㅎㅎ
지나가던 굼벵이가 웃겠습니다.
추천 0

적수역부 18-04-19 11:21 IP : a7e08e4e5989087
바람쏙고래 이자는 역사적 사실에 관한 글에조차 자신의 썩어빠진 폄협한 정피적이념외경색 배설을 일삼으며 상습적으로 본질을 물타기하며 덮으려 발광을 하는데...


바람쏙 고래 이양반아..
본 글이 당파적 이해관계 있는 글인가?
도댜체 눈은 달고 있는것이고 자신의 뇌속에 가득차 있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면서도 그걸 감추려 발악하고 다녀봤자 아무소용 없는 일인줄도 모르고서

무엇이 두려워 무슨 목적으로 전범일본의 조선침략만행과 음모의 역사사실을 덮어주려 상습적인 물타기로 그리 발광하는 것이며 왜 그러고 사는지 .....

일본의 식민개가되어 조선을 도륙하는데 앞장섰던 반역 종일분자가 아니고서야 원.......
추천 0

   
낚싯대 18-04-19 11:41 IP : b5180f0d6d757bb
조선시대라면 적수역부님은 마치 훈장님 같은 느낌이 납니다. 욕은 아니니 오해마셔요.^^; 대쪽 같은 느낌도 나고 말썽꾸러기들은 어김없이 회초리 맞고 벌서게 할것 같고... 회초리 맞던 녀석이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어 결혼할 때가 되면 술 사들고 찾아뵙고 주례는 꼭 훈장님께 부탁을 드렸을것 같은데...ㅎㅎ 전 은사님께 부탁드리지 못했지만 제 마음은 그랬드랬죠~ ㅎㅎ 세월은 흘러 세상이 변하니 훈장님의 모습도 말썽꾸러기들도 벌 서는 방법도 모두가 변해 가네요...이번 주말은 마누랑 함께 출조를 하기로 했습니다. 마누라의 은총입니다. ㅎㅎ
추천 0

숨만숴 18-04-19 13:53 IP : e1e2aba16e75cbb
걸레같았던 19c말 20c 우리 역사
정말 거지같은 조선이었죠 외세의 어떤나라도 이나라를 유린하지 않은 나라가 없던 시기 노류장화같았던 나라 ㅜㅜ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직도 19c의 모지리들 처럼 미국을 왜 욕하느냐 중국은 왜 욕을 못 하느냐 성조기를 흔들며 신의 나라인냥 사대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무리는 있는듯...
청나라는 대외적으로 외교가 뭔지도 모르던 조선의 종주국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일본놈들이 그걸 깨줬다 왜냐면 지들이 먹어야 했으니까 미국놈들은 조선에 관심도 없었으며 영국놈들도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중국을 통하지 않고 끌어들인 러시아조차 이나라를 유린하고 있었다 제1차 영일동맹에서 조선은 일본의 지배에 있었고 제1차 한일협약으로 대한제국은 고문정치로 외교와 내정이 벌써 일본에 의해 제한되고 있었다 가쓰라테프트밀약을 시작으로 2차영일동맹 포츠머스강화조약(미국의 관여)으로 제2차 한일협약 즉 일사늑약이 체결됨으로 외교권은 박탈당하게된다
우리는 미국이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러시아든 어떤 개나리들도 사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편가르기를 너무 좋아한다 집단의식이 강한나머지 마치 구석기 원시인들 같은 구석이 있다 일단 자신들의 편을 확정하고나면 세상이 무너져도 그들을 버리지 않는 가족애? 같은 게 있다 ㅋㅋ 원시인들인거다

그걸 대의로 믿던 조선은 그렇게 망했다

더ᆞ
추천 0

   
적수역부 18-04-19 15:10 IP : a7e08e4e5989087
역시 숨만숴님 핵심을 꽤뚫는 헤안이...
조선채망의 본질은 사대주의이죠.
자강핮디 못하고 국권이 외세에 넘어가는것도 불사하면서 자신들의 권력탐욕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사대매국노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친명반금정책을 펴기에 이른 결과는 병자호란으로 이어지고,
현재는 이 사대주의가 명나라가 아니라 일본, 미국으로 바뀌었다는 점이죠
당대의 지식인, 정치인들은 국민의 안위나 국가의 부흥보다는 자신의 안위와 권력, 부에 골몰했으므로 당연히 자기나라 (조선 대한민국) 보다 더 우월한 힘을가진 일본, 미국에 빌붙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의 바로 위에 있는 사람을 치고 권력과 부를 움켜쥐는 것이다.

말이 좋아 친미 친일 동맹이니 하는 것이지...

아직도 이런 나라를 외세에 팔아쳐먹는 것도 불사하는 막가파 사대주의 매국반역자들이 드글드글....
추천 0

푸른노을™ 18-04-20 18:43 IP : 49e701c44a665fc
숨만숴님
적수역부님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조선의 패망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능하고 애민의식이 부족했던 군주와
백성의 안위나 나라의 부흥보다는 자신의 안위와 권력, 부에 골몰했던 대신들(사대주의자들)에 의해서 기인한 겁니다

을사늑약과 병합조약 내용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자신의 안위와 권력과 부에 집착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은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의 유지를 보증한다”(을사늑약 제5조)
( 을사늑약은 원래 이토 히로부미가 갖고 온 4개조뿐이었는데 군주와 대신들이 요구하여 5조가 추가된 것.)

병합조약.
8개 조항중 5개 조항이 일본이 조선의 군주와 대신들에게 무엇무엇을 해주겠다는 내용.
( 즉 황제·태황제·황태자를 비롯한 황실과 전·현직 대신들은 그 직위에 맞는 대우와 세비 등을 지급한다는 내용).

을사늑약과 병합조약 내용만 보더라도
국가의 주권을 빼앗겨도 백성들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고 황실의 안녕과 존엄과 대신들의 안위만 유지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애민의식이 없었던 군주와 사대주의에 찌들은 대신들이 자신들의 신분보장과 대가를 받고, 500년이 넘는 나라를
일본에 넘긴 거라는 게 한일 합방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지금의 자한당 놈들을 보면 그 옛날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나라와 백성들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이
나라를 팔아쳐먹는 것도 불사하던 사대주의 매국반역자 대신들을 보는듯 합니다
추천 0

   
적수역부 18-04-20 19:09 IP : a7e08e4e5989087
반쪽짜리 해방이후 친일파들에 의해 줄곧 역사를 날조 왜곡해왔고 최근들어 이명박근혜정권하에서 또다시 식민사관을 앞세워 역사오ㅑ곡을 시도하려 발버둥 쳤지만 으나 근래들어 그 식민사관에 의한 매국적 역사왜곡의 허상을 발가벗기는 역사자료 정보들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역시 권력이나 정파의 이익보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입장에서 역사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는 혜안이 돋보이는 늘푸른님의견에 공감합니다.
추천 0

誠敬信™ 18-04-21 07:29 IP : 9054a6bd5b10856
먹고 사는것만 중시 한다면

개 돼지와 뭐가 다를까요?

과거를 알지 못하면 미래도 없거늘.......

댓글을 살피다 측은지심이 생기는이 있네요^&^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적시해줘도

이해못하는 불충들은 포기해야 하나 봅니다
추천 0

푸른노을™ 18-04-22 02:57 IP : 2cee7b12127c908
나향욱의 개돼지 발언이 괜히 나온 말이겠습니까

먹을 것만 던져주면 영혼이라도 팔
인간들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