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 균형있는 게시판 사용을 위해 1일 1회로 게시물 건수를 제한합니다.
· 여러개로 나누어 게시물을 올리는 경우 하나로 통합될 수 있습니다.
· 여러개로 나누어 게시물을 올리는 경우 하나로 통합될 수 있습니다.
전 어릴 적부터(중학생때부터) 동네낚시회의 주말 출조를
혼자서 따라다니며 낚시를 시작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꼴통입니다. ㅋㅋㅋ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차로 출조를 하지만,
당시에는 차를 가진 사람은 별로 없었기에
동네낚시회 출조가 거의 유일한 출조수단 이었지요.
아마 낚시를 시작하신지 30-40년 넘은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
그날도 어김없이 토요일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낚시회 버스를 타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조하였습니다.
장소는 강화도 내가저수지...
낚시회 버스에서 내리면 일행없이 혼자 온 어린 소년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어른들은 삼삼오오 헤어져서 포인트로 진입하고
전 어른들이 다 사라진 다음 가방을 메고 자리를 찾곤 했습니다.
왜냐구요?
산속 저수지에서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서 혼자 밤낚시하는게
그 시절에는 상당히 무서웠습니다.
또한 야식을 준비할 수 없는 저로서는 배고플 때
라면이라도 얻어 먹을 수 있는 분들이 필요하고...
마지막으로 간델라에 문제가 생겼을 때
성냥이나 삐삐선도 빌려야하고...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 이유죠... ㅋㅋㅋ)
그래서 저에게 같이 낚시하자고 하는 분들이 혹시 있을까봐
마지막까지 아저씨들의 눈치를 보며,
"야! 너, 혼자왔나 본데 아저씨들이랑 같이 하자”
라는 한마디를 간절히 기다리곤 했습니다.
대개는 이런 제안을 받지 못하고 혼자서 낚시하면서,
자기들끼리 낚시하는 아저씨들을 많이 원망했었는데,
지금의 저를 보면 그 때 그 양반들의 행동이 이해가 됩니다.
출조하는 날은 꼭 회사에서 땡땡이를 치고...
차를 몰고 출조지로 갈 때는 규정속도의 30-40km 이상으로 과속하고...
물가에 도착한 순간 맘이 너무 급해져서 남들보다 먼저 포인트로 진입하려하고...
아무튼 그날따라 오기가 발동한 저는 쪽좌대를 타기로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쪽좌대란 지금은 거의 볼 수 없지만 30-40년전에 저수지의 수심 1-2미터권에 설치된
가로 세로 1m 남짓의 나무 판자로 만든 위험천만한 개인용 좌대였지요.
지금 기억으로 쪽좌대가 노지보다는 조황이 좋았던 같네요.
제가 가진 돈 전부가 쪽좌대 값으로 지불됩니다.
따라서 일요일 저녁까지는 굶어야합니다.
이제와서 생각하면 대단한 승부수였습니다.
끼니와 좌대비의 교환...
지금 기억으로 당시 한 달에 2회정도 동네 낚시회 출조를 따라다녔는데
갈 때마다 2,000원 정도를 어머니가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집안이 아주 넉넉하지는 않은 상황이라 이 돈도 어머니에게는
어느 정도 부담이 되었던 것으로 지금 기억합니다.
이것이 미안했던 어린 마음에 전 상품을 겨냥해서
낚시를 지독하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출조는 35-40명 정도이며 계측해서 5등까지 시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상품은 대개 생활용품이라 5등이라도하면 본전(?)은 하는 셈이었죠...ㅎㅎ
큰 붕어를 잡아 좋은 상을 타려고 겁도 없이(2-3끼를 굶어야함) 쪽좌대에 올랐습니다.
2-3칸대 낚시를 세 대 펴고 그 좁은 쪽좌대위에 릴도 두 대나 던져놓았습니다.
이런 제 정성에 하늘도 감복하였는지 대를 펴고 얼마 지나지 않아 8치급으로 한 수 올렸습니다.
이 정도면 최하 3-4등은 따논 당상입니다.
어머니께 드릴 선물이 생겨 마음이 흐뭇합니다.
그 때 매점아줌마의 배가 지나가며 밥 주문할려면 지금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낚시회 버스의 맨 뒤에는 낚시회를 따라다니며 음식도 만들어서 파시고,
낚시소품도 파는 아주머니가 항상 따라오곤 하셨지요...
이 분들은 낚시터에 도착해서 관리인의 배를 빌려 좌대나 노지를 다니며 장사를 하셨지요...
기억나시는 분들 계시죠? ^^
그러나 전 주문하지 않습니다.
아니 못합니다. ㅠㅠ
그리고 아주머니에게 김밥하고 빵 많이 사왔다고 거짓말 합니다. ㅜㅜ
그날따라 씨알 좋은 붕어가 심심치 않게 올라 왔으며,
던져 놓은 릴에 한자 반 쯤 되는 잉어도 올라옵니다.
그런데 밤 11시나 되었을까?
하늘에 보이던 수많은 별들이 갑자기 사라지며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사방 1m 남짓의 쪽좌대에서 비가 억수같이 올 때의 상황은 당해보신 분 아니면 모릅니다.
소나기라고 생각했던 비는 점점 더 강하게 내리칩니다.
낚시고 뭐고 안전을 위해서 뭍으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심이 거의 2미터권이라 배를 타고 나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ㅜㅜ
당시 내가저수지의 쪽좌대는 다른 곳의 좌대와는 달리 널빤지를 이어 만든 것이 아니라,
직사각형 모양의 고무 다라이 같은 것 이었습니다.
물이 순식간에 불어 오르면서 다라이에서 50cm 쯤 남아 있던 수면이 10-20cm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 배에~ 배에~ 배에~ ”
목 터지게 배를 불러 보지만 배는 오지 않습니다.
경험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시죠?
비오는 날 쪽좌대에서 배 부르는 심정을...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배는 모터가 없는 것이라 빨리 이동하지도 못합니다.
관리소에서 가까운 쪽좌대에있는 사람들 먼저 뭍으로 실어 나르느라,
제가 있는 깊은 쪽으로는 올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 물은 점점 차올라 다라이안에도 물이 고이기 시작합니다.
버팀목도 흔들흔들 하는게 조금만 더 있으면 이대로 수장당할 것 같습니다.
얼굴에는 눈물과 빗물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얼마가 흘렀을까 배가 옵니다.
이젠 살았구나”하는 안도감과 함께 관리소 숙소에 와서 잠이 들었습니다.
눈을 감으면서도 흐믓한 생각이 듭니다.
"아마 내가 1-2등 일거야...
상타면 어머니께 드려야지...“
장비가 모두 젖은 관계로 다음날에 낚시하는 회원들도 없습니다.
그런데 철수때가 되어도 총무가 계측하자는 소릴하지 않습니다.
“버스에서 철수하며 하겠지...”
조금은 불안하지만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봅니다.
버스타고 돌아오는 길에 총무님의 날벼락 같은 멘트...
어제 비속에서 고생들 많이 하셨습니다.
어제는 낚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이번주 출조의 상품은 모두 다음주로 이월하겠습니다.“
"쿵!!!! (가슴이 내려 앉는 소리)”
"이게 뭔소리란 말여?
다음주에 출조한다는 보장도 없고 와도 등수안에 든다는 보장도 없는데...“
어린 마음에 아쉬웠지만 그래도 살아 돌아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버스안에서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쪽좌대가 거의 없어져서 이런 것도 추억이 되어버렸네요.
많은 분들의 공감을 사기는 어려운 글이지만
옛날에 쪽좌대 타보신 분들은 이해하시리라 믿고 글을 씁니다.
재미없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