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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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의행복 IP : a0d819de5a6168c 날짜 : 2018-01-27 00:14 조회 : 20881 본문+댓글추천 : 18
마누라에게들은 1성?
내 이마에 손을대보고는 "아직괜찮네"와" 이정도면 데리고 살만하네". 한마디로 아직은 미치지않었다는 말입니다.
30년정도의 이야기입니다.
저의 직장은 건설회사 현장입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아침새벽에 일어나 잠실 나루터에서 약 2시간정도 낚시하다가 출근하거나, 퇴근후에 저녁먹고는 가평군 설악면 사룡리에서 낚시를 많이했습니다.
사룡리에서 배를타고 건너편의 산자락에서 혼자 낚시를 했지요. 휴일이면 가끔은 우리부부가 아이들3을데리고 가기도했는데,
밤에는 마누라와 아이는 사공 어르신댁에 머물게하고는 아침까지 낚시를했지요.
사공어르신과 친분이 두터워지면서 사룡리에 갈때는 고기를 사서 갑니다. 낚시장소에서 나무로 불을피워 석쇠위에다 고기굽고는 사공어르신과 간단하게 한잔하기도했고, 고기를 많이샀기에 슬며시 가족과 드시라고 전해주기도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배를타고 건너편에서 전과 다름 없이 낚시를 하는데 밤 12시쯤인가부터 비가 폭우로 내리기 시작하네요.
우비도 없지, 파라솔도 없지해서 맨몸으로 산밑에서 비를 맞으니 한여름이라도 얼마나 추운지 몸이 막 떨리더군요.
저녁먹고 가서 새벽5시까지 낚시하고는 출근하곤 했는데, 소리치면 사공어르신이 오시곤했습니다.
그때는 아무리 소리를쳐도 빗소리에막혀서 들리지 않았는가바요.
새벽 어스름 해지니 사공 어르신이 배를타고 건너오셔서는 "이정도되면 소리를치지 잠귀가 밝아서 들을수있는데." 하시는데, 어르신에게 머라 할수도 없으니 "와주셔 고맙습니다." 하고는 건너편을 보니 제 마누라 같은 사람이 서있는게 보여요.
어라, 내가 죽었나? 헛것이 다보이네. 자세히보아도 형상이 내마누라입니다.
사공 어르신께서 "자네 집사람이와서 깨워서 이렇게 오게됬네."하시는거에요.
순간 눈물이 핑 돌더군요.
낚시짐이야 3대만피고 하니까 비오고나서 바로 싸두었으니 배를타고 건너왔습니다.
그때마누라가 한말입니다. "아직 괜찮네"와 "이정도면 데리고 살만하네" 였습니다.즉, 미치지는 않었다는 말이겠지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1시가되고 2시가되도 안들어오니까 걱정이 되더랍니다.
내성격에 그정도 되면 일찍 올텐데,기다려도 안오니까 가슴이 막 쿵쿵대면서 몸이 떨리기에 그먼곳까지 택시를타고 온것이지요.
운전하고 오는데 아무말도 안하더군요.
집에와서 밤새 떨었던몸에 뜨끈한 국물에 밥을 먹으니 금방 곯아떠어지기도했지만, 아이들이있을때는 내게 잔소리는 안합니다.
그것이 빌미가되어, 한달동안 차키를 빼았겼고, 퇴근후에는 곧바로 집에들어갔으며, 근신을 착실히했습니다.
어느날에 거금을 들여서 그 비싼 무전기핸드폰하고,카폰을 달어놓았습니다.
그때는 핸드폰이 통화가 잘안된다는걸 어디서 들은 모양입니다.
내가 대뜸 하는말이 "내목에 쇠사슬달기냐"며 항의했지만, 그날에 얼마나 놀랬으면 이러겠나싶어 싸우자고 하다가 말었습니다.
그후로는 낚시간다면 계절에 마춰서 옷이랑 우비랑 파라솔이랑 찌개랑 씻은쌀이랑은 꼭챙서 실어주고, "어디있는지 전화해"이럽니다.
지금은 밤낚시는 금지되었어요.
나이가있으니 너무 피곤하게는 하지마라 입니다.
한때는 산속에서 혼자 낚시할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무서워서 못합니다.
대나무낚시대와 깐드레불빛으로 찌에 야광테이프붙여서 하던때, 찌를 1열종대로 세우고 밧테리빛으로 낚시하던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어제도 영하19도인 곳으로 빙어낚시를 다녀왔습니다.
이정도이면 병일까요?
영원히 못고치는 병 일것입니다.
재미없는 글 읽어주시느라 고생했습니다.
2018년에도 행복도듬뿍,어복도 듬뿍,건강도 활기차게 살아 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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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건강히 오래오래 즐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