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토론방
· 회원이 토론의 이슈를 제안하면 그 주제에 대해 자유로운 댓글을 통해 참여하는 방식의 토론방입니다.
· 이슈의 범위는 제한하지 않으나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자극적이거나 비매너적인 댓글은 삭제됩니다.
· 뉴스기사 및 타 사이트의 게시글을 옮겨와 단순히 게시하는 것, 본인의 의견이 아닌 글은 삭제됩니다.
· 균형있는 게시판 사용과 신중한 이슈 제안을 위해 게시물 횟수를 3일 1회로 제한 합니다.
· 이슈의 범위는 제한하지 않으나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자극적이거나 비매너적인 댓글은 삭제됩니다.
· 뉴스기사 및 타 사이트의 게시글을 옮겨와 단순히 게시하는 것, 본인의 의견이 아닌 글은 삭제됩니다.
· 균형있는 게시판 사용과 신중한 이슈 제안을 위해 게시물 횟수를 3일 1회로 제한 합니다.
" 1년뒤 비극 " 몰랐던 99.9% 당선
1978년 7월6일
박정희가 서울의 장충체육관에서 제9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초선도 재선도 아닌 자그마치 다섯 번째 당선이었다
체육관에 출석한 통일주체국민회의 2579명 가운데 2578명이 박정희에게 표를 줬다
이토록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낸 비결은 무엇일까?
간단했다. 후보가 박정희 한 명만 나왔다
그나마도 반대표가 두려우니 찬성표를 던질 사람만 골라 투표권을 줬다
물론 체육관 밖의 세상은 이들을 비웃었다
당시 어떤 반정부 전단은 앞면에 단일 후보 박정희가
99%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는 7월6일과 7일치의 신문기사를 아무 논평 없이 실었다
뒷면에는 정부에서 발행한 중학교 반공 교과서로부터
" 공산국가의 선거는 민주국가와 달리 단 한 사람의 후보만 출마하고
99% 이상의 찬성으로 당선된다 "고 서술한 대목을 인용했다
역시 아무 논평 없이 말이다.논평이 필요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이렇게 공들인 정권이 1년을 조금 넘기고 무너졌다
이듬해 10월에 부마항쟁이 터졌고,
이를 어떻게 진압할지 자기들끼리 다투던 중 김재규가 총으로 박정희를 쏘았다.
운명의 10월26일,무소불위의 권력도 99.9%의 압도적인 지지도 박정희를 지켜주지는 못했다.
펌: 나는 역사다 중에서....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반대표를 던진 그분이 누군지 궁금해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