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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 랑 (2부)

IP : f005234bab57511 날짜 : 조회 : 2380 본문+댓글추천 : 7

“학생, 가슴을 누르고 안 되면 입을 맞춰 인공호흡이라도 좀 시켜 봐.”

건너편에서 외치는 어른들의 질책에 못 이겨 여자애의 봉긋한 가슴에 손을 대보니 왠지 내 가슴이 먼저 뛰었다.

가슴을 몇 번 누르다 이번엔 입을 맞추고 숨을 몰아넣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묘한 기분이 들었지, 여러 번 가슴을 누르고 입을 맞추다보니

처음의 기분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한참만에 여자애가 눈을 떴다.

그리고는 창피한지 본능적으로 풀어진 블라우스를 여미며 수줍어했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서는 강 가운데 백사장을 걸어 아래쪽으로 한참을 내려와야 했다.

아래쪽은 강물이 넓게 흘러 정강이에 닿을 정도였으니까 쉽게 건널 수 있었다.

조금 전 생각대로 하얀 백사장에 둘만의 발자국이 찍혔다.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

하늘에는 하얀 백로 한 쌍이 날며 내릴 곳을 찾고 있었다.

주변에는 사람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여자애는 말없이 내 뒤를 따랐다.

“너 몇 학년이니?”

“중 3이에요.”

고 3이었던 내가 그날 중 3이었던 그 애와 한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다만 강 한가운데 드러난 모래톱에 둘만의 발자국을 찍으며 힐끔힐끔 그 애를 보니

조금 전 죽음을 눈앞에 두었던 때와는 딴판으로 예뻤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학교에 갈 때면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여러 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너는 그 때 금강에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이 예비고사날이잖아요.

 시험 잘 보세요.”

그녀는 찹쌀떡을 건네주고 총총히 사라졌다.

 

그녀의 응원 덕분이었는지 예비고사에 합격해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그녀는 고 1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고등학교와 우리 대학은 같은 동네에 있었으니 우리는 오고가면서 가끔씩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중 3일 때보다 많이 성숙해 있었고 더 예뻐진 것 같았다.

그렇게 오다가다 한 번씩 만나다보니 언젠가부터 그녀가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한번 만나자고 해볼까? 그래도 대학생이 어찌 고등학생을…….’

대학생이 고등학생과 어울린다는 건 어쩐지 격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망설이다가 시간만 지나고 말았다.

나는 그렇게 소망과 현실의 괴리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말았다.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충남의 시골로 발령이 나, 3년의 세월이 흘렀다.

 

3월의 첫 출근날 신임교사의 인사가 있었다.

이제 겨우 교사 3년차인 나는 신규 발령을 받아 온 여선생님의 예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공식적인 인사가 끝나고 오후에 그녀가 우리 교실을 찾았다.

“선생님 댁이 공주시지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저 모르시겠어요? 미선인데요.”

나는 처음 본 여자이고, 처음 들어본 이름인데, 그녀는 나를 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자신을 모른다고 하자 여간 실망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금강에서 빨래를 하다 물에 빠진 자신을 건져준 남학생이 있었다고 했다.

소녀는 자신을 살려준 그 남학생이 그리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 후 그녀는 그 남학생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학교 가는 길목에서 기다린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고 했다.

어쩌다 그 남학생을 멀리서라도 보는 날이면 마치 자신의 몸이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지금이야 10살이 넘어도 부부가 되지만, 당시 중 3과 고 3의 간격은 너무나 컸다고 했다.

그러니 자신은 감히 그 남학생 앞에 얼씬거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한 해가 지나자 차이는 더 벌어져 남학생은 공주교육대학의 대학생이 되었고

자신은 겨우 고 1이라서 그냥 애만 태우며 남학생을 지켜볼 뿐 이었다고 했다.

 

친구들이 다른 고등학교 남학생 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떨어도, 자신의 귀에는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단다.

오직 자신을 살려준 그 남학생 생각뿐이었단다.

그렇게 혼자 짝사랑으로 애를 태우며 남학생을 지켜본 지 얼마 후 남학생은 훌쩍 공주를 떠났다고 했다.

2년제였던 공주교육대학을 졸업한 후 발령을 받아 서산의 어느 초등학교에 선생님으로 근무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남학생을 만나려면 자신도 공주교대에 입학을 해야 했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죽어라고 공부를 했단다.

결과 공주교대에 입학했고 주위의 친구들이 미팅이다, 연애다 희희낙락 해도 자신의 마음은 오로지 한 곳에 꽂혀 있었다고 했다.

비록 짝사랑을 하는 처지였으나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것은 불결하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운명이란 참 묘한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임으로 발령을 받아 부임한 곳이 여기이고,

그곳에는 바로 첫사랑인 내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그 때 중 3이었던 학생이 바로 선생님?...”

풋풋한 중학교 때 얼굴과 성인이 되어 화장품으로 덧칠해 놓은 얼굴은 딴판이었으니 알아 볼 수 없었다.

예전에 이름을 묻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이름도 몰랐었다.

또 대학 1학년과 고 1의 간격이 자랄 때는 무척 컸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자 3년의 간격은 별것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지려고 물에 들어가면 같이 죽는다.’

엄마 말씀 또한 맞는 말이었다.

나는 물에 빠져 죽기 살기로 매달리던 그녀에 코가 꿰어

40여 년째 같이 죽고(?) 있으니 어른들 말씀 새겨들어야 하겠다.

 

추억의 실타래를 다 걷고 나자, 결혼 당시 아름답던 미선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수화기를 들었다.

“오늘이 당신 생일이잖아. 어디 분위기 있는 곳에 가서 둘이 저녁이나 먹자구..!”

식당에 나타난 아내의 블라우스 한쪽이 다 젖어 속살이 비쳤다.

“예전 물에 빠졌을 때처럼 섹시한데?”

그러자 아내가 눈을 하얗게 흘기며 환갑이 넘어 주책을 떤다고 핀잔을 했다.

“애들이 올 때마다 우산을 다 가져가서 우산살이 2개나 부러진 것을 쓰고 와서 그래요.”

우리는 저녁을 맛있게 먹고 밖으로 나와 우산을 찾았다.

“누가 내 우산을 바꿔갔네.”

아내가 식당 주인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자, 손님도 다 가고 없는데 그냥 남은 것을 쓰고 가라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뛰면서 좋아했다.

“앗싸. 새 우산으로 바꾸겠구나.”

식당을 나온 아내가 우산을 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내가 바꿔온 우산은 살이 거의 다 부러져 한쪽으로 완전히 처지는 것이었다.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아내는 화를 내며 우산을 땅바닥에 내 팽개쳤다.

“조금 전 내 우산은 그래도 살이 2개밖에 안 부러졌는데...”

아내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아니, 더 좋은 우산으로 바꿨다고 입이 찢어지더니, 그것 봐! 바꾸면 더 좋을 줄 알았지?

결국에는 뉘를 고르잖아. 그러니까 첫사랑을 믿고 내세에도 그냥 나랑 결혼해.

텔레비전에 출연했던 할아버지 말처럼, 그래도 살아본 놈이 더 낫지 않을까?”

나의 악의없는 잔소리에 머쓱해진 아내는 하는 수 없이 내 우산 속으로 기어들어오더니 나를 꽉 잡았다.

예전 물속에서 나를 놓으면 죽는다는 듯 붙잡고 매달리듯이...

나는 소녀를 안고 백사장으로 기어오르듯 아내를 꼭 껴안았다.

(모셔온 글)


2등! IP : 02f61980d9315c8
아름다웠던 젊은 사절이 아련합니다
상상했던 그대로여서 ..
늙그막에는 그래도 함께한 곁지기가 최고지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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