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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  랑 (1부)

IP : f005234bab57511 날짜 : 조회 : 3301 본문+댓글추천 : 5

첫  사  랑 (1부)

 

첫사랑이 그리운 아침이다.

밤새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설쳤는지 주방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다소 이른 시간인데도 아내는 벌써 일어나 아침밥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오늘따라 밥 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애들 둘이 결혼을 해 다 나가고 우리 부부만 살다보니 나는 안방에서 자고 아내는 거실에서 잔다.

각자의 곳에서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를 누워서 보다가 따로따로 잠들고 깨는 시간도 다르다.

우리 부부는 밥을 먹는데도 식탁을 마다하고 거실에서 가부좌를 틀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먹는다.

아내도 나도 말 없이 밥만 먹다가 가끔씩 고개를 들어 텔레비전에 나온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늘그막이니 아내와 별로 할 말도 없기에 방송을 봐가면서 밥을 먹으니 서먹하지 않아 좋다.

마침 방송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하는 ‘늘 푸른 인생’이란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다.

키가 작은 유명한 사회자가 나와 시골에 사는 칠십 된 노인 부부에게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아내와 또 결혼 할 거예요?”

 

남편이 잠깐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야지. 다른 여자라고 별수 있겠어. 그래도 살아본 여자가 좋지.”

사회자가 반대로 아내에게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남편과 다시 결혼할 거예요?”

그러자 아내는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손을 내저으며 경악을 한다.

절대로 지금의 남편과는 결혼을 안 한단다.

사회자가 왜 그러냐고 묻자 대답이 걸작이다.

어디 가서 어떤 놈을 만나도 지금의 남편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것이다.

방청객 모두가 배꼽을 쥐고 웃었다.

 

나는 밥을 먹는 아내를 슬쩍 곁눈질로 보다가 이내 물었다.

“당신은 어때?”

“나도 저 할머니와 똑 같아.”

아내는 주저하지도 않고 단숨에 대답했다.

혹시나 했던 나는 아내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먹던 수저를 놓으며 언성을 높였다.

“내가 살아가며 뭘 그리 잘못을 했다고?

저 할머니처럼 다시 태어나면 나를 개비한다고?

바꿔봤자 별수 없어. 고르고 고르다 뉘 고르고 말테니까.”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자 아내가 뒤에 대고 구시렁거렸다.

“그깟 농담도 못 받아들이고 꼭 밴댕이 소갈딱지 같으니라고...! "

 

농담이라는 말이 살짝 들렸으나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안방에서 아내의 진심이 뭔지를 생각하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오면서 힐끗 아내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아내는 예전과 별 다름이 없이 우산을 챙겨주었다.

 

오늘이 아내 생일이라는 걸 미리부터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그 놈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다 망쳐놓은 것이다.

저녁에 외식을 하자고 하려다 아까 한 말이 괘씸해 그냥 나왔다

 

학교에서 수업이 끝난 후 애들을 돌려보내고 책상에 혼자 앉아 있자니

하루 종일 내리는 비에 몸이 선득거렸다.

이제 올해만 지나면 평생을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을 맞는다.

서글픈 마음에 커피 한 잔을 타 마시며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옛 추억이 활동사진마냥 펼쳐졌다.

진한 커피향이 코끝에 와 앉으니 마음까지 차분해졌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내 말고 다른 여자는 알 틈도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첫사랑과 평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똑같이 교육도시라 불리는 공주 금강 가에서 살았으나 서로의 동네는 좀 떨어져 있었다.

우리가 만날 당시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아내는 중학교 3학년이었지만

처음부터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72년 6월 6일 현충일 날이었다.

공휴일이기에 집에서 예비고사 공부를 하다가 심난한 마음에 금강가를 걷고 있었다.

그 때만해도 공주의 금강은 이름 그대로 비단을 펼쳐놓은 듯 물이 맑고 아름다운 강이었다.

그 해에는 날이 가물었기에 물이 강 전체로 퍼져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강가 한쪽으로 몰려 흐르고 있었다.

그러니 강 가운데는 넓게 모래톱이 생겼고 강가로 흐르는 물은 깊어 사람이 건너 모래톱에 갈 수는 없었다.

‘공부하기 지겨운데 저 백사장에 발자국이라도 찍으며 걸어봤으면 좋겠다.’

예나 지금이나 고 3은 공부에 지쳐 있었다.

그래서 잠시 아름다운 마음을 먹으며 강가를 걷고 있을 때였다.

 

“누구 없어요? 사람 좀 살려주세요.”

강가 바위에서 빨래를 하던 아주머니가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내가 언덕 밑으로 달려 내려가 보니 물속에 사람 하나가 빠져 몇 번인가를 솟구치더니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여자의 산발된 머리가 맑은 물속에서 훤히 보였다.

 

순간 두려움과 함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지려고 들어갔다가는 둘이 같이 죽는다.’

금강이라는 물가에 살았기에 어려서부터 엄마가 주의를 주려고 늘 하던 말이었다.

그렇다고 수영을 할 줄 아는 내가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망설일 수는 없었다.

더구나 옆에서 애타는 엄마의 절규에 못 이겨 나는 엉겁결에 물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이내 후회하고 말았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더니,

나를 붙잡고 늘어지는 여자애의 힘을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었다.

 

이제는 여자애를 살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살아야 했다.

내가 살기 위해 여자애를 떼어내야 했는데 도저히 떼어낼 수가 없었다.

하는 수없이 그녀를 끌고 헤엄쳐간 곳이 바로 강 가운데에 드러난 모래톱이었다.

뛰어 들어간 쪽으로는 물살이 너무 세 도저히 나올 수가 없었다.

모래톱으로 나간 나는 너무 지쳤기에 한참을 백사장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지르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옆을 보니 여자애가 누워있었다.

하얀 블라우스는 물에 젖어 속살이 훤히 비쳤으나 여자애는 정신을 잃고 있었다.
 

- 2부에 이어집니다 -


IP : b8f8f040b33fb71
이런청춘소설오랫만에..보네...
호반도시..춘천호반..사랑얘기많이있었는데..
ㅋㅋ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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