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에 동네 마트에 갔더니 이게 있더라.
"호래기회."
표준어로는 "꼴뚜기"라고 하는데 저기 남해안 지역에서는 호래기라고 부르지.
10월 말경 가을이 깊어지면 호래기 낚시가 제철을 맞는데 그때 쯤이면 내만의 방파제로도 호래기떼가 접근을 해서 바다가 가까운 지역의 사람들은 간단한 채비를 준비해 호래기를 낚으러 나서지.
오징어 종류이니까 집어등은 필수야.
내가 총각시절 마산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통영의 방파제에서 많이 낚아서 잡숴 보아 잘알지.
집어등을 밝히면 연안의 해수면으로 프랑크톤이 모여들고 이놈들을 잡아먹으러 호래기들이 몰려들거든.
특히 겨울로 접어드는 11월 초부터 호황시즌을 맞이하는데 밤이면 여기저기서 호래기 낚시를 하느라 환하고 시끌벅적해.
혼자 낚시를 즐기는 나는 방파제 한구석에서 집어등을 밝혀놓고 낚시에 열중했는데 운이 좋은 날에는 100마리 이상을 낚을 때도 있었다니깐.
1990년대 초의 불끈한 총각시절에 연애는 뒷전이고 그저 주말에 통영의 후미진 방파제에서 꼴뚜기들하고 놀고 있었으니 나도 참 어지간하지?
93년인가 12월 초 주말 밤에 통영의 달아공원 쪽 방파제로 호래기 낚시를 갔는데 그날 따라 기온이 급격히 내려갔는지 따뜻한 남쪽 바다에 보기 드문 솜눈이 내리는 거야.
그런데 이게 왠일? 호래기들이 줄줄이 낚여 올라오데.
아무리 춥고 허기져도 고기가 반겨주는데 낚시꾼이 외면할 수가 있나?
추위에 떨면서도 정신없이 낚아서 쿨러에 담아 놓았는데 입질이 뜸해질 즈음에 주변을 둘러보니 세상에~ 그 넓은 방파제에 나 혼자 있는거 있지?
길고양이 서너마리가 내 주위에 앉아서 보시를 기다리며 추파를 보내고 있을 뿐 조용히 밀려오는 파도소리와 눈내리는 소리만 귓전에 쌓이고 있었어.
냥이들에게 넉넉하게 호래기들을 나누어 주고 나는 라면을 끓여 깊어가는 밤에 홀로 소주 한잔했지.
살아있는 호래기를 넣은 라면 먹어보았어?
못 먹어봤으면 말을 하지마셔.
생호래기 라면은 말야 국물이 새까매.
깊은 해저의 감추어진 향기가 육지의 차고 맑은 공기와 만나서 삶의 쉼표같은 감동으로 뇌리에 머무는 환희를 경험하게 돼.
망망대해에는 환상처럼 떠도는 바다의 푸른빛이 보이고 닿을 수 없는 현생의 꿈들이 솜눈처럼 바다에 녹아드는 것을 무연히 바라보고 있었지.
누군가 떠오르는 그리운 사람도 있었어.
그 눈빛과 목소리가 그리워 괜히 눈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방파제를 왔다갔다 했지.
누구냐고?
참 오래된 그리움이고 추억인데 당시에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던 지금의 내 마누라야.
"여보! 호래기 그거 산것도 아닌데 회로 먹어도 괜찮아?"
"그럼.이 척박한 육지에서 산 호래기가 가당키나 하냐.원래 호래기회는 싱싱하기만 하면 죽은것들도 괜찮아.저 마산의 포장마차에서 파는것들도 다 이렇게 죽었으되 싱싱한 것들이거든"
"근데 뭔 술을 마시면서 그렇게 히죽히죽 웃고있어? 누구 생각나는 사람이 있나봐?"
아내는 빈잔에 술을 채워주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그럼.나 총각시절에 저 남해바다 방파제에서 겨울밤에 이놈들을 낚아서 술 마시며 보고싶어하던 사람이 있었지. 그래서 호래기 안주만 접하면말야 그 사람이 그리워 진다니까."
아내는 딱하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혹시 알고있는 것이 아닐까?
"괜히 실없는 소리 말아.근데 안주가 부족할 거 같네.먹고 있어.전에 남겨둔 떡갈비 구어 올께."
ㅋㅋㅋ 눈치 긁었구먼.
역시 우리 마누라야^^~.
2025.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