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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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지...이 번엔 붕어 안나옵니더(뒷 편)
"오늘 됐나?"(오늘 한 잔 진하게 마시고 놀아 볼래?라는 뜻의 고도로 함축된 경상도 말)
"야 니 돈 있나?" 걱정스레 물어보는 에프엠 후배. "전번에 니 집에 갔다온 다음 날 경보극장 옆골목 방석집에 가서 한달 생활비 한 방에 다 날리고 지금까지 빈대치고 있잖아..."
"얌마, 돈없다고 술 못묵나? 내 책임지께 가자. 오늘은 방석집 말고 싸롱가서 한 잔 하는기라."
다들 술기운은 올랐고 걱정반 기대반 하여 그 후배를 따라 경산시내에서 학교로 가는 길에 한 두 번씩은 봤을 법한 대로변의 '청사초롱,맥주 양주'라고 쓰여있는 네온이 깜빡깜빡 윙크하는 싸롱으로 쭈뼛쭈뼛 들어간다.
"어서옵쇼" 까만 양복에 깔끔하게 넥타이까지 맨 웨이터가 공손하게 우리를 맞고 주렴이 쳐진 룸으로 안내한다. 맥주와 과일 마른 안주를 주문해 성급히 한 잔 씩 마시고 있자니 이윽고 아가씨들이 들어오고,"안녕하세요? 10번 김양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아가씨들이 자기 소개를 하곤 알아서들 자리에 앉는데 마지막에 77번이라고 인사하는 아가씨가 낯설지가 않다.(여담이지만 그 당시는 그런 업소에서 아가씨들에게 번호가 주어졌고 대부분의 업소에서 77번은 에이스로 통했슴)
어슴프레한 불빛이고 화장을 진하게 해서 여럿이 같이 서 있을 땐 구분이 가지 않았는데 혼자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눈에 익은 얼굴이라 자세히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친다. 순간 잠시 흔들리는 것 같은 눈동자를 보고서야 '아.. 그 노란 원피스..'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앞서 언급한대로 워낙에 술도 못마시고 숫기가 없는 편이라 같이 오긴 했지만그런 자리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기도 하고 생각지도 않았던 장소에서 그 아가씨를 마주치다 보니 너무 당황스러워 모른 척 하고 있지만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은 차에 공수부대 출신 후배가 그 아가씨를 와일드하게 끌어안으려 하고 아가씨는 자꾸 뿌리치고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자리에서 몇 번이나 솟구쳐 일어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달래가며 버티는데 전에 그 내공녀가 바깥 홀에서 주렴을 확 걷으며 가게 문 닫을 시간 됐다고 계산하고 가라고 하니 아가씨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나가 버린다.
그제서야 일행은 현실로 돌아온다. 계산...하긴 해야지...근데 누가 어떻게... 다들 앉아서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다가
공수부대 후배가 벌떡 일어서서 나간다. 음...역쉬 공수부댄 달라...허나 나간지 10분이 지났는데 다시 들어올 기미도 안보이고 바깥이 좀 소란한 것 같아 슬며시 주렴을 통해 내다보니 단정하게 넥타이를 맨 그 공손하던 웨이터가 어찌 아까하곤 영 분위기가 달라 보인다. 카운터 옆 홀에는 덩치 큰 형님 두어명 어슬렁거리며 힐끔힐끔 쳐다 보기도 하고.
짜식이 지가 책임진다고 왔으니 일단 앉아 있긴 하는데 돌아가는 상황이 불안하기만 해 일각이 여삼추라 다들 손목에 찬 시계며 주민증 학생증 이런 것들을 떠올려보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한 달 하숙비를 훌쩍 넘어 버린 오늘 술값 감당이 될 리가 만무하다.
바깥에선 옥신각신 하는 소리가 더 거칠어지고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지는 것 같아 우리 일행도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 슬며시 일서서서 나가는데 77번 아가씨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에게 슬쩍 눈짓을 하고 화장실 가는 바깥쪽으로 나가기에 따라 갔더니 내 예상과는 달리 표정이 어둡지 않다.
"아저씨, 제가 알아서 할테니 그냥 나가시고 다음부턴 이런데 오지 말아요." 하며 화사하게 웃는다. 심봉사 눈 뜬 것 마냥 갑자기 세상이 확 밝아지는 것도 잠시 이내 부끄럽고 미안하고 염치없는 마음이 들지만 어쩌랴 이 상황을.
카운터로 와서 후배들 데리고 한 쪽 구석으로 모아 좀 있어보라고 이야기 하고 사태가 수습되기만을 기다리니 77번 아가씨가 우리 쪽으로 돌아와서 이젠 가도 된댄다.나가면서 보니 그 때 그 내공의 언니가 눈에 들어오기에 엉거주춤 인사하는 둥 마는 둥 하니 쏘아보는 눈매가 곱지 않다.
따끔거리는 뒷통수 때문에 감히 뒤돌아보지도 못하고 큰 길 건너서야 겨우 목덜미에 담걸린 듯 뒤돌아보니 77번
아니 노란 원피스 그 녀가 아직 우리 쪽을 보고 서 있다. 대충 흘러가는 분위기로 보아 그 아가씨와 내가 아는 사이라고 짐작한 후배들이 하나같이 말한다. "형 가 보이소 기다리는 것 같은데.."
요즘의 반에 반만 되었어도 난 모른 척 하고 "어..그래? 그라마 함 가보까?" 하고 갔을 법도 한데, 또 다시 말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숱한 후배 여학생들의 육탄공세(?)에도 꿋꿋하게 버티며 오히려 "너거뜰 암만 그래봐야 내한텐 여자로 안보인다. 고마 해라" 라며 일갈했던 벽계수과 였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됐다 마 사나가 쪽팔리게..."
근데 이 넘들 지들이 괜히 입맛을 쩝쩝 다신다.
추석을 집에서 보내고 다시 학교로 돌아 왔다.
다들 집에서 군자금도 넉넉히 챙겨왔겠다 몇 일 만에 다시 보는 후배들이 청사초롱으로 가서 술 한 잔 하자고 은근히 유혹한다. 하지만 난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아 후배들 또한 가지 못하게 단속하곤 몇 일이 흘렀다.
한 달 생활비로 받은 돈 15만원에서 방값 5만원 도서관식당은 한 끼에 400원이니 하루 두 끼로 줄이면 한달에 2만 4천원 담배값 6천원 정도 지렁이값 등 기타 잡비 해서 3만원 정도 빼면 채 5만원도 남지 않는다. 방값만 지불하고 나머지야 후배들한테 빈대 쳐가며 버틴다 하더라도 남는 돈이 10만원...
"그래 한 달 얼굴에 철판 깔고 살 작정하고 그 때 술값 반 정도라도 해줘야 내 마음이 편하지..."싶어서 아무도 안데리고 혼자 청사초롱으로 간다. 딸랑거리는 여닫이 문을 밀치고 들어가니 마침 카운터에 앉아 있던 그 내공녀가 고개를 돌리더니 나를 보고는 이내 인상이 흐려진다.
"여는 와 왔는교?"
"저...전에 그 아가씨한테 술값 좀 갚아드릴라꼬 왔는데예...."
"가 여 없심더. 추석 쉬러 집에 간다꼬 가디만 아직 안오네예."
"예? 그라마 술값은...?" 으이그 한다는 말하곤...
"됐어예 가가 그 달 받을 월급에서 다 제하고 갔으이...내 생각엔 가 이젠 영 안 올 것 같아예."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 다시 못볼거라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혹시 그 일로 인해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해를 입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멍하니 돌아서 가던 내 귓전을 때리는 소리,
"가가 학생 오마 이래 전하라 캅디더. 낚시 쪼매마 하고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데 취직하라꼬예."
<끝>
무언가에 쉽게 빠지고 싫증도 그만큼 빨리 내는 편인데 이 넘의 낚시만큼은 아직 질리지가 않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도시에서 자랐기에 아주 어릴 적 부터 낚시를 접하진 못했지만, 고 2 때 친구따라 처음 해본 낚시 세월이 어느덧 33년 정도는 된 것 같습니다.
지긋이 올라 오는 찌불이 황홀하고
손 끝에 전해지는 생명의 파동은 짜릿하고
이리 저리 다니면서 접하는 풍광이 아름다워
낚시대를 접지 못하기도 하지만
낚시터에서 만났던 여러 사람들과 이런 저런 사연들이 있기에 더욱 더 그러한 것 같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기억이 다소 흐릿해서 이야기 전개상 약간의 픽션이 가미되었지만 큰 줄거리는 논픽션임을 밝히며
뭔가(?)를 기대했던 분들께는 다소 허전한 결말일거라 생각되어 괜히 죄송스럽네요.ㅎㅎ
그 당시 '선데이서울'이나 '주간경향'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은 시대상의 일면
--집안 형편이 어려워 여자의 몸이라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던 많은 우리의 누이들..--
일 뿐이라 흘려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아직까지 그 일이 문득 떠오르면 그 아가씨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지금은 좋은 데 시집가서 아들 딸 낳아 반듯하게 키우고 잘 살고 있었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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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같은 글솜씨 입니다
나이는어리지만 저두 그런 비슷한경우가....
오늘웬지 저나연락한번 해볼까..싶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