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 균형있는 게시판 사용을 위해 1일 1회로 게시물 건수를 제한합니다.
남매지...붕어 잠깐 등장하는 이바구 (앞 편)
받았던 낚시터 남매지.
얼마 전 서울 사는 후배가 내려와 자기 친구와 남매지 길 건너 솔잎동동주가 생각나 가봤더니 옛날 그 맛이 안나더라는 이야기에 뭉실뭉실 그 남매못이 가슴 속에서 피어오른다.
상류와 하류의 중간쯤에 못을 횡으로 가로지르는 길이 나 있어 물이 마르면 둘로 나뉘어져 남매지 즉 오누이못이라 한다는 말을 들은 바 있고, 실제로 82년인가 83년에 전국적으로 심한 가뭄이 들어 온 나라가 타들어 가고 있을 때 그 길을 기준으로 상류쪽은 물을 다 빼서 그 일대의 사람들은 누구나 다 팬티차림에 반도를 들고 뻘 바닥으로 들어가 메기 가물치 붕어 잉어 등 한 바케스는 기본으로 잡아갔었고 우리 일행도 한 찜통 잡아다가 푸짐하게 잔치한 적이 있었다.
친구넘이 릴대로 업글(당시는 릴이 더 고급 낚시라고 생각한 적이 있슴)하면서 나에게 큰 맘먹고 주고 간 짧고 무거운 글라스롯드 2대
굵은 튜브 찌톱에 찌맞춤이라곤 모르고 던지면 수심 2미터를 1초도 안되어 쿵 하고 떨어지던 경상도식 가지바늘채비
떡밥은 던질 때 혹시 바늘에서 떨어지지 않을까..물에 들어가서 다 풀려 버리면 고기들이 물지 않을거야..해서 숨구멍 숭숭 뚫린 비닐봉지에 흙과 함께 넣어서 팔던 지렁이만을 미끼로
찌가 올라오면 붕어가 미끼를 물고 연안쪽으로 오는 것이라 생각하여 챔질도 않고 오직 찌가 물속으로 쑤욱하고 들어갈 때에만 챔질해야 잡히는 줄 알았어도 통통한 일곱 여덟치 붕어 기십 마리 정도는 망태기에 담아 후배들 오면 손수 밥하고 매운탕 끓여 먹이고 자취방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갖다 주면 매운탕에 밥 한 끼 정도 얻어 먹을 수 있었다.
일전에 학교 정문 앞 학사당구장의 머리가 훤한 사장님(아마 지금의 내 나이 쯤이었을거라 생각되는)이 서울식이봉채비(지금의 전통바닥낚시)라고 뭔가 설명해 주었는데 그냥 머리만 복잡하고 그렇게 안해도 이렇게 잘 잡히는데 뭐할라꼬...하며 귓전으로 흘려 들었다는...
1987년 6월 항쟁의 열기와 6.29 직선제 개헌선언으로 인한 들뜬 마음도 서서히 가라앉아 가던 7월 중순, 방학 임에도 불구하고 만학도에 예비역 복학생이었던 나는 취업공부를 핑계로 대구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학교 근처 월 5만원의 자취방과 남매지를 왔다 갔다 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 날도 어김없이 난 남매지 못둑 오른 쪽 끝을 돌아 조금만 가면 있는 나만의 포인트, 바로 가두리 양식장앞(향어들이 다 먹지 못하고 근처에 떨어진 사료 먹으러 붕어들이 바글거릴 것이라는 기대...^^;;) 경사진 곳에 자리 잡고 뭉게구름 듬성듬성한 사이로 작렬하는 한 여름의 뙤약볕 아래 나무작대기에 연결한 우산을 펼쳐 만든 그늘 속에서 웅크린 채 일렁이는 물 위에 한 뼘이나 불쑥 솟아있는 두 개의 찌를 응시하고 있었다.
삼십분이 채 되기도 전에 찌를 물고 들어가는 토실토실한 붕어 잡는 재미에 하늘이 잔뜩 찌푸려져 곧 뭔가를 쏟아부을 것 같은 날씨에도 아랑곳 없이 낚시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바로 뒤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저씨, 고기 많이 잡으셨어요?" 흔히 듣는 경상도 말씨가 아니다. 나한테 하는 말인가? 싶어 뒤를 돌아다 보니 스무 서너살 정도 되어보이는 한 아가씨가 노란 원피스를 입고 치맛자락으로 무릎을 살짝 덮은 채 쪼그려 앉아서 내려다 보고 있다.
그 때만 해도 몇몇 과후배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던 터라(남녀비율이 1:3 정도였으니 ㅎㅎ) 믿거나 말거나 좀 튕기는 편이었지만 뒤에 있는 이 아가씨는 그 차림새가 세련되고 몸매도 늘씬한 것 같아 우리 과후배 여학생들의 풋풋함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라.
한 순간 추리닝 바지에 슬리퍼 차림의 내 모습과 매치가 안 되는 것 같아 살짝 주눅이 든다."예, 그냥 좀 잡았심더.."
"낚시하는 것 아까부터 한참 봤어요. 뭐하는 사람이기에 이렇게 한가롭게 낚시를 하는가 하고..."
"아 예..조 앞에 못 건너편 학교 다니는 학생입니더.."
"예에~ 그런 것 같았어요. 대학생은 공부 많이 안해도 되나봐요?"
"........" 대답할 말이 없다.
"지켜보고 있으니 너무 평화롭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해서요..."
몇 마디 주고 받는데 아까부터 울먹하던 하늘에서 드디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이 아가씨"어머, 비 오네? 아저씨 낚시 그만 하고 저 밑에 식당에 가서 같이 술 한 잔 하실래요?" 한다.
지금은 그래도 소주 한 병 쯤은 마시지만 금복주 두 잔이면 머리가 띵~하고 얼굴이 홍당무처럼 물들어 술에는 영 자신이 없고 당시만 해도 술 마시는 젊은 여자들이 많지 않았기에 뭐하는 사람인가 의아스럽기도 하여 엉겁결에 한다는 말이 "저 술 못하는데예...?" 에라이...지금 다시 생각해도 한심한 대답이다.
"괜찮아요 그냥 제가 마시는 옆에 있어주시면 돼요." 어이쿠 이걸 어쩐다..숫기라곤 아예 없고 주머니에 있는거라곤 아까 지렁이 사고 남은 백원 짜리 동전 몇 개가 다 인데..망설이고 있으니 이 아가씨 거의 날 잡아 끌 듯이 가자고 보챈다.
어쩔 수 없이 낚시대는 그냥 두고 아가씨를 따라 못둑 오른쪽 모퉁이 바로 아래 있는 식당으로 따라 간다. 근데 이 아가씨 혼자가 아니고 일행이 있는데 그 또한 여자이다.
그 여자분 식당 평상 위에 술상을 차려 놓고 떡하니 퍼질러 앉아 동동주 잔을 기울이는 폼이 이 아가씨 보단 너댓살 더 들어보이고 한 눈에 척 봐도 만만치 않은 내공(?)의 소유자 같다. 아가씨가 이러쿵 저러쿵 나를 소개 시켜주는데도 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별 말이 없다.
내심 세련된 아가씨와 비 오는 날 단 둘이 술 한 잔 플러스 알파를 기대하고 왔는데 뜻하지 않은 방해꾼의 출현에 약간 기분이 다운된다.
어쨌거나 말주변도 없고 숫기도 없는 나는 동동주 한 잔에 국밥까지 얻어 먹고 얼굴이 불콰해서 있는데 느닷없이 이 아가씨 내 팔짱을 쏙 끼면서 같이 온 여자에게 말하길, "언니 나 이 아저씨하고 연애할래." 한다. 흠칫 당황스러웠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다. 한데 그 언니 왈, "가시나 정신차리라 그래가 돈은 우예 벌라꼬.."
끼어들지도 못하고 듣기만 한 두 사람의 대화 내용중 목소리 큰 내공녀의 말만 추리자면, 가깝지도 않은 경기도 쪽에서 이곳 낯 설고 물 설은 경상도 까지 돈 벌러 내려와서 아무 도움도 안되는 학생놈하고 연애해봤자 결국 니한테 돌아가는건 상처밖에 없다..뭐 그런 이야기이다.
난데없이 벌어진 해프닝 같은 일이고 눈치도 한참 모자란 편이라 말참견도 못하고 속에선 꿈틀하는 뭔가가 치솟았지만 그 언니 포스가 왠만한 남자는 그냥 찜 쪄먹을 정도라 그냥 묵묵히 앉아 있기만 하다가 어느덧 오후 서너시쯤 되었다.
"이제 고마 가자."하며 그 언니 혼자 일어서서 훌쩍 저만치 앞서고 노란 원피스의 그 아가씨 발그레한 얼굴로 뭔가 말할 듯 말 듯 하다가 "아저씨 미안해요. 저 가야해요 다음에 뵈요." 하곤 미적미적 언니를 따라 가버린다.
이미 술도 다 깨었고 비도 그쳤지만 황당하고 착잡한 마음에 낚시할 생각은 사라지고 송글송글 빗물이 맺혀있는 낚시대를 닦을 기분도 나지 않아 그대로 접어 넣고 자취방으로 와 책을 들여다 보자니 글귀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 일이 있은 후 한 동안 평소보다 더 자주 그 자리에 낚시 가선 괜시리 뒤돌아 보기도 하고 못둑 위에서 서성거리도 했지만 남매지에선 그 아가씨를 다시 볼 수 없었다.
<뒷편도 있심더....>
요즘 하는 일없이 놀고 있는 몸이라 내키면 훌쩍 가까운 곳이라도 가서 대를 펴곤 하지만 때론 너무 자주 가기도 눈치가 보여 월척지에서 눈팅만 하다가 낚시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생각도 나고 해서 없는 문장력이지만 크게 용기를 내어서 시도해 봅니다. 처음으로 올려 보는 글이라 많이 조심스럽습니다.
|
|
|
|
|
|
|
|
|
|
|
|
|
|
|
|
|
|
|
|
처음쓰시는글에 처음으로 댓글을답니다.. ㅎ
다음편 기대됩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