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우연한 기회에 제 고향이며 유년의 시절을 보냈던 충무로통. 을지로통을 지나게 되였고
소낙비가 한차례 뿌린 뒤라 그런지 상쾌한 기분이였습니다.
이쯤 어딘가 였었는데....보이질 않네.???
마침 신호대기여서 고개를 자라 목 마냥 쭉 빼고 밖을 살피니 없다.
허기야 군시절 휴가나와 그곳 극장에서 영화를 본게 마지막이니...강산이 벌써 세번하고도 몇년은 더 지났을터...
다음날 사무실에서 컴으로 검색하니 벌써 헐렸단다..."국도극장"이...
유년의 제가 살던 동내주변엔 극장들이 많았습니다.
말씀만 드려도 아실 퇴계로의"대한극장" 을지로"국도극장" 종로의"단성사" 그리고 "명보극장" 등등...
그래서 그런지 영화 포스터를 유독 많이도 보고 자랐습니다.
예전 제가 국민학교시절 저희 집 뒷채에 경상도 총각이 세 들어 살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무작정 상경하여 기술을 배워보겠다고 취직한곳이 지금은 없어진 국도극장에서
영화 간판을 그리는 견습생으로 취직을 했던거지요.
하루는 돌아가신 부친께서 타지에서 고생하는것이 안돼보이시던지 응접실로 불러 가정사를 물어보니
그때 고향이 대구 근방 "경산"이라고 대답했던걸 어렴푸시 기억납니다.
하루는 어느 일요일 극장에 놀러 갈래란 말에 따라갔더니 거기가 바로 극장 간판을 그리는 작업장.
아저씨한분이 흑백사진 한장에 페인트가 묻은 작업복을 입고 가는붓은 귓바퀴에 또 다른 붓은 입에 물고 앞.뒤로
심각하게 왔다 갔다 하면서 극장간판 그림을 그리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우숩기도 하고...
몇일 후 그 그림이 극장에 걸렸을 땐 와! 하고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습니다.
왜냐구요? 영화에서 보던 그 배우와 아주 똑 같아서 놀랐습니다.
60년대엔 우리나라의 영화 중흥기였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60년대 초반엔 년 80여편 정도 영화가 제작 되였던것이 2년뒤엔 100편. 60년대 후반엔 200편 가량
제작되였고 그리고 흑백에서 총천연색 영화 비율이 흑백필름을 압도한것도 이때부터라 합니다.
당시 유명배우라면 최민수씨의 부친이신 "최무룡"씨. 전영록씨 부친이신 "황해"씨. 이덕화씨 아버지"이예춘"씨.
그리고 박준규씨의 부친이신"박노식 "씨 김희라씨 부친이신"김승호"씨.김희갑.신영균.장동휘.이대엽씨 등등...
여배우 3대 트로이카하면 "문희" "남정임" "윤정희"씨였고 훗날 가수 나훈아씨와 결혼한 김지미씨도 유명 했었죠...
예전엔 길을 가다 벽이나 전봇대. 심지어는 동내 구멍가계 문짝에도 붙어있던 그 영화 포스터...
포스터위에 덕지덕지 또 붙이고 붙여댄 종이들이 너덜너덜 일어나던 모습들이며...허면 포스터맨들이
풀을바르고 새 포스터를 붙이고 가는 모습도 기억납니다.
요사인 영화 포스터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하기사 영상매체의 발달로 극장에 가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에도 없으며
하지만 내 기억속의 담벼락에는 지워지지 않는 흑백의 기억처럼 영화 포스터가 붙어있습니다.
그림만 보아도 그 영화의 줄거리반은 눈치로 알아낸 영화 포스터....여러분들도 생각이 나시겠죠......
그때를 아십니까 ?...
여러분들의 가슴속깊이 간직하고 있던 추억의 한 페이지 영화포스터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씨^__________^익
※ 그때를 아십니까? - 20편 "딱지"에 방문하시여 댓글로 용기주신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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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황학동 고물상을 들리면 추억이 깔린
지금 사진같지않은 그림과 흡사한 주인공들의
얼굴들이 나와있는 포스터를 보면 아릿한 향수를
자아내게 하곤 하였는데.....
지금 상영관은 거의가 멀티상영관으로 바뀌었고
포스터는 극장안에나 들어가야 보이지요
담벼락에 포스터 붙이면 불법이 될것같기도 하구요
찦차 꽁무니에 확성기 달고 포스터 붙이고
삐라 뿌리면 그 뒤를 따라 다녔던 그때가 그리워
집니다
타임머신이라는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면
그때쯤으로 시간여행 한번 할 수 있다면....
예전 텔레비젼에 영화포스터 모으시는분이 출연했는데
그 방대한양에 놀랐습니다.
주로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많이 구했노라 하더라구요.
영하포스터에 대단한 애정을 가지신 그분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봄봄님.
출조하시어 재미좀 보셨는지요?......
환절기 건강에 유의하십시요.^^
어릴적 에 초대권 얻으려고 포스터 붙여놓은 옆 구멍가게에 가서 사정 할때도 있었구요~(70년대)
좀 커서 는 서울 시내 극장 주말마다 다니곤 했습니다~(80년대)
전성기?때는 하루에 4편까지 봤다는거 아닙니까^^
첫 상영 부터 마지막 상영 까지 신문에 나온 광고 보고 시간표 봐 가면서 극장마다 예매 하느라 아침부터 돌아 다니고 ..
밤에 기억 하려니 짬뽕이 되서 뭐가뭔지-.-....
울 마눌도 국도극장옆 국도다방에서 처음 만나서 바로 극장으로 갔었지요^^
지금은 특별한 경우 아니면 불법 다운로드 받아서 집에서 본다는 아픈 사연이-.-........
항상 안출 하시고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영화 狂 이셨네요.
맞습니다,ㅎㅎ 포스터를 붙인 구멍가게엔 언제나 "초대권"이 있었습니다.
예!! 맞아요. 국도극장옆에 다방이 여럿있었는데.
지금 생각나는건 "약속다방"이 생각납니다. 유명(?)했었는데...
들려주시어 용기주심에 감사합니다.^_^*
여전히 잘 계십니더^^
간만에 챔질합니다
붕애 밥주러 다니다 보니
그때를 아십니까? 몇편을 읽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찬찬히 보겠습니다
아직도 '단성사'는 있지요
제가 83년~86년을 한양에서 살았지요
85년쯤 단성사에서 이보희 주연 '어우둥' 영화가
설촌에서 본 마지막 영화제 싶습니다
날씨가 점점 더 시원한 것으로 보아
봄이 다가 오는가 봅니다ㅎㅎㅎ
우야든동
"그때를 아십니까?"
100회까지 꼭 올려 주십시오.....
가안에 늘 좋은 일만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추억 담긴 글에 감사 드립니다^^
단성사 잘 있지요.ㅎㅎㅎ
어우동 생각나지요. 아~서울에도 계셨군요.
야전에서 고생고생하시며 올려주시는
조행기에 비하면 부끄럽씁니다.
댓글로 용기주시어 감사드립니다.^^
떠나시는 모습을 뵈오니..........!
세월 이겨내는 장사는 없다지만
그것이야 육신의 '이치'일터......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권형님의 영혼은 아마도.......
무지개빛날개 그 이상일듯 !
좋은글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900^^
인생의 사부님모시고 다니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지수님의 글을 보면 저 보다 연식(?)이 더 오래 돼 보입니다.ㅎㅎㅎ
얼마 안남았지요.?? 점점 얼굴이 크게 보입니다.^^
사는 자체가 영화인지라 극장가본 기억은 잘 없습니다.
많이 듣던 배우이름은 알겠는데요,
항상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그렇죠!!!...우리네 삶 자체가 영화요. 연극이니 말입니다.
자~뵙는날까지 안녕히 계십시요...
시골에 가끔오는 광목천 둘러놓고 상영하는 거는 기억나는데......
서울기경은 군에서 휴가나와 처음 했지유.... 스물둘?스물셋인가?
촌넘이 묵고 살려고 서울와 처음엔 시내버스를 제대로 못탔시유.
왜냐면, 울동에선 손흔들면 뻐스가 기둘려 주는데 여그엔 안그러대유.
사람들이 이리뛰고 저리뛰는게 신기하고 왜 뛰나? 생각했는데
버스가 정류장 많으니 서는 곳이 일정하지 않데유.
지는 지가 서있는 곳에 서야 타는 줄 알고 서있으면 뻐스는 횅~
촌넘티 파파팍 내고 댕겼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