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던 강물이 은빛으로 정지하고 깊은 골짜기도 흰 눈으로 덮혀 그 빛을 빼았길때
그때 깊은 겨울잠속으로 빠져버린 애벌레처럼 우리는 누비 이불속에 끼어 들며
시린 두손을 깍지 끼곤 했습니다.
찢어진 창호지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달빛에. 마찬가지로 찢어지게 가난한 몰골이
들어날 때면은 마디마디 단절음으로 울었던 그 서러운 소리.
더듬더듬 겨울밤길 헤처나가면 칠흑속에서 파랗게 일었던 "맹인안마사"의 피리소리는
냉기서린 웃목이나마 그대로 누워있는 우리들은 안절부절 하게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가까이 듯 멀리 듯 이어졌던 "고학생"들의 "찹쌀떡" 소리...
"메밀묵 사~~려 찹~쌀~떡"~~
파는이나 사는이 모두 가난했기 때문에 처량한 심사는 그렇게 애수어린 단조에 싣었던 그 시절...
지금은 어둠속으로 사라진 내 유년의 겨울밤 소리...
그러나 세월이 흘러 곰곰이 돌아보면 처마밑 어디선가 세월이 날려버린 그 여운들은
쇠잔한 바람이 되여 우리들 베겟머리에 슬며시 다가오곤 했습니다.
신작로 한 구석에서 멀리 반딧불처럼 떠 있던 "포장마차"는 그래도 도시 사람들에겐 더 없이
훈훈한 저녁나절 한때를 보태주곤 했습니다.
함석으로 통을 만들고 "카바이트"를 녹여 불꽃을 당겼던 "간데라 펙"
막 소주 몇잔에 "오뎅국물"이 당연이 그럴듯하게 어울렸습니다.
태엽풀린 "괘종시계"가 땡 ~ 땡 10시를 넘어 11시를 넘기면 그때 어머니는 언제나 조바심으로
아버지의 귀가길을 애태우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쫄아든 된장 뚝배기를 불에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시곤 했습니다...
통행하지 말라든 "싸이렌"소리가 울렸어도 그러나 우리살림을 짤짤거리며 흠처가던 "좀도둑"은
"통금싸이렌"에 아랑곳없던 시절이였습니다.
"고추장독"을 퍼 가기도 하고 빨아서 미처 마르지도 않은 헌 옷가지를 걷어가고...
있는집에 "쌀독"을 몇 됫박을 비워내는것이 고작이였지만 어쩌다가 보물처럼 아끼던"제니스"라듸오 라도
잃어버리기도 하는날에는 그 소문이 몇일씩이나 온 동네에 파다 했습니다.
그래서 별반 잃어버릴게 없는집 담장 위에도 병을 껜 "유리조각"을 꽂아 어설푼 무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통금"이 해제될때까지 순찰을 도는 "야경꾼"은 도둑을 쫓는건지 두려움을 쫓는건지 더욱 쎄게
"딱딱이"를 치곤 했습니다.
어둠보다 먼저 추위가 엄습해 오면 텅빈 골목길을 겨울바람에 섞인 "맹인안마사"의 피리소리가
찬바람에 흔들려 울곤 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옛것을 생각하며 깊은 겨울밤에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해 보았습니다........................끝.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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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이고서 추워서 우는 아이도 아량곳 없이 두부나~덴뿌라~비지사요~~~~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오나 눈이오나 골목길을 누비는 60년대에 우리에 그 아주머니가 생각이 나에요.
우리대한민국에 어머님들은 철인이였습니다.
고학생들에 찹쌀떡~~이소리가 왜그리 처량하게 들렸을까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우리에 아들 들은 참말로 호사 스럽게 자라고 있지요.
여름 방학때는 국민학교2~3학년 학생들도 학비라도 벌어 볼려고 아이~쓰케기여~~~~
참~먹고살기가 어려운 시절이였지요.
권형님 아련한 옛생각에 잠시 머물다 갑니다.
눈 맞으며 세상 밖을 돌아가는 사람들
등에 업은 아기의 울음소리 달래며 갈 길은 먼데 함박눈은 내리는데
정호승의 절창 <맹인부부가수이야기> 라는 시에 곡을 부친 안치환의 노래가 생각 납니다.
충청북도... 통금의 기억은 없습니다만,
저마다 먹고살기 바빴던 아픈 기억이 저문날과 겹쳐지면서 애잔해 집니다.
우리는 살만큼은 살고 있는 것 같은데도
더 잘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절대적 빈곤을 벗어난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요?
예전 시골고향에선 아이들이 장난으로 남의집 밥과 반찬을 훔쳐 갑니다.
긴 겨울밤, 친구들과 사랑방에 모여 수다?떨며 화롯불에 고구마 구워먹고
커다란 양푼들고 이집저집 부엌에 몰래 들어가 식은밥과 반찬을 싹쓰리하여
화롯불에 올려놓고 비벼 먹던 그맛 잊을수 없습니다.
아무리 요즘의 맛난 음식도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권형님!
옛생각 떠오르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같이 봄비가 내리는날 추억속으로 빠져들게하는 권형님의 글 감사 드립니다
청년시절 그때만 하더라도 길가에 포장마차가 엄청스레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기업형으로...
쩐이 귀하던시절 친구들과 우르르 포차에서 기본안주에 ( 쩐이 없어서리 ) 쐬주를 먹던 기억이 떠으릅니다
다른 녀석들보다 이슬이를 한잔이라도 더 먹을려고 두꺼비병을 쿠마앞에도놓고
옆에서 두꺼비병을 탐하는 녀석들의 손을 뿌리치기도 했었는데...
묵고싶어요...묵사발....ㅋㅋ
해장으로 묵사발 만큼 좋은것이 없습니다...
딴것은 다 안 넘어가도 묵사발에 조밥 한덩어리는 잘넘어 갑니다
올도 권형 님 덕분에 잃어버린 기억의 한조각을 맞추어 봅니다
건강하세요....
도심 한가운데 아파트에 사는 요즘에는 그 소리를 들을수가 없습니다.
야밤에 배는 고프고 먹을 것은 별로 없는 시절에는 찹살떡이 훌륭한 야식거리가 되었겠지만
요즘에는 한밤에 찹살떡 먹으면 건강에 나쁘다느니, 살이 찐다느니 해서 먹는 사람이
별로 없기도 하구요.
권형님 덕분에 겪어보지 못했거나, 기억이 가물가물한 옛 추억을 떠올려 보는것도 또하나의
즐거움입니다.
처음으로 인사 드립니다
추억여행을 되새김 합니다
항상 건강 하시어
좋은글 부탁 드립니다
사진의 가로등불 아래의 골목길이 정겹습니다.
개 짖는소리가 간간히 들려 오는 듯 합니다.
지금처럼 24시편의점은 없었고 통금이 있었어도 늦은밤 언제라도 문 두드리면 됫막걸리 받아올수 있고
동네 어느집 닭장에서든 내닭 꺼내 듯 가져다 가마 솥에 삶아 막걸리에 기나긴밤을 달려도
"어떤 넘들이 우리닭 다 잡아 먹어버렸네~"(실은 많은 중에 한 두마리인데)
아침이면 동네 떠들썩은해도 걍 장난이려니~ 넘겨 주던 그런 시골에 살았습니다.
권형님의 그때 그시절은 많은이의 옛 향수를 깨우는군요
잘읽고갑니다.
두부나 덴뿌라 비지 사이소~~
칼 갈아요~~칼~ 가시게도 감미더~~
굴뚝 뚜러~~
변소 푸소~~
새우젖 사려~~
정겨운 그소리가 듣기는 그때 그시절로 돌아 가고 싶어요...
나 다시 돌아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