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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칠삼삼 ㅡ 1

IP : 09988382ca01a7f 날짜 : 조회 : 8333 본문+댓글추천 : 0

당신은 왜 고향에 한 번도 안 가요? 라고 아내가 물었을 때 그는, 글쎄... 내가 왜 그랬을까? 라고 대답했다. 글쎄... 내가 정말 왜 그랬을까? 두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데, 이십팔 년이면 나를 기억하는 이 아무도 없을 텐데... 눈물 나도록 행복했던 날들은 희미한 아쉬움으로 남았고, 죽도록 아팠던 순간들은 이제 책갈피 속 이파리처럼 박제되었는데... 그래, 가보자, 진주. 라고 그가 말했을 때, TV를 보고 있던 아내가 리모컨으로 설날 풍경을 껐다. 설날이었나 봐. 초저녁이었어. 고 1이면 열일곱 살인가? 아버지는 납치 사건 때문에 며칠째 외근 중이었고, 엄마와 여동생은 진주 터미널에 외갓집 식구들 마중을 갔었고, 누나들은 선생님께 세배드리러 갔었지. 나는 베스 ㅡ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야. ㅡ 와 집에 남았었어. 나는 드라이버로 전화기를 분해하고 있었지. 집 전화가 며칠째 고장이었거든. 아, 그때는 내 취미가 그거였어. 라디오ᆞ벽시계ᆞ전축 등을 수리했었지. 물론, 한 번도 성공하진 못했지만. 뭐 하여튼 전화기를 만지고 있는데, 우와 ! 띠리링 ! 그때 전화가 온 거야. 네~. 육칠삼삼입니다~. 죽이지? 삼십팔 년 전의 전화번호를 기억하다니 말이야. 어떻게 기억하냐고? 6733. 육고기에 칠을 하면 맛이 삼삼해. 기발하다고? 사실은 그 아저씨가 가르쳐 준 거야. 그 아저씨가 누구냐고? 나도 몰라. 그냥 이상한 사람이었는데, 끌렸어. 이상하게 끌렸어... 아까 하던 얘기 계속하자. 네~. 육칠삼삼입니다~. 라고 말을 했지만, 상대방은 아무 말이 없데? 그때 베스가 컹컹 짖어대는 거야. 베스 ! 베스 ! 통화 중이잖아 ! 조용히 해 !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무 말이 없더라고. 이상하다~. 전화 온 게 아니었나?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상대가 말을 했어. 베스... 강아지 이름인가? 아주 먼 데서 말하는 듯한 낮은 목소리였어. 네. 아저씬 누구세요? 아버진 안 계신데요? 베스... 며칠 전에 변소에 빠졌었나? 아저씨가 어떻게 아세요? 아버지 친구예요? 그가 또 말을 멈췄어. 쫑긋, 귀를 기울여봐도 가는 숨소리만 들렸었지. 얼마 후, 그가 말했어. 아버지께 꼭 화장실 뚜껑을 만들어 달래라. 네. 저도 그럴려고요. 6733. 육고기에 칠을 하면 맛이 삼삼하지. 우와~. 아저씨 천재 같아요 ! 맹랑하구나. 밝아서 좋다. 늘 그렇진 않아요. 자주 우울해요. 힘드니? 뭐가요? 아... 사는 거요? 그래. 글쎄요. 뭐... 그렇죠. 그래도 꿈꾸는 걸 멈추진 마라. 희망이... 희망이, 라고 말을 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내가 왜 이러지? 왜 모르는 사람에게 주절대고 있지? 아저씨, 그만할래요. 아버지한테 뭐라고 전할까요? 잠깐만, 한 마디만 할 테니 뒤 문장을 연결해 봐라. 말씀하세요. 사랑이 유치하고, 라고 그가 말했고, 희망이 천박하다, 라고 내가 대답했어. 또 그가 말을 멈췄어. 쫑긋, 귀를 기울였더니 낮은 흐느낌이 들렸지. 아저씨, 울어요? 아니다... 네 이름이 뭐니? 피러요. 그... 그래, 피러야. 네. 힘들다고 생각 마라. 네. 언제나 그렇듯, 그랬듯이 말이야. 네. 지금 뭘 해야 하는지만 안다면 지금은 우리에게 아주 근사한 순간이란다. 네. 외롭겠지만, 잘 살아내라. 네. 울고 있니? 네. 왜? 모르겠어요. 그냥 눈물이 나요. 근데요, 아저씨. 말하거라. 나는, 내 인생은 외로울까요? 아마도. 하지만 즐기게 되겠지. 네. 이만 끊을게. 외롭겠지만, 잘 살아내거라. 네. 아저씨도요. 당신처럼 이상한 사람이었네. 그랬지. 근데, 내가 이상해? 응. 이상해. 그것도 많이. 정말 이상한 건, 전화기는 고장이었어. 무슨 말이야? 고친 게 아니었어. 불통이라 결국 새로 샀거든. # 너무 길어 두 편으로 나눕니다. 저는 뭐 여전히 붕어 괴롭히며 잘 살고 있습니다.
육칠삼삼 ㅡ 1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1등! IP : 3c19c7e30efc159
오이네개가 칠천이백삼십원.
524.7230. 삼십여년전 친구네집 전화번호인데
지금도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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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IP : b77edc93dbd34c8
반갑습니다.
본가전화9353
차번호 9352
핸펀번호 9351였던게 생각납니다.
건강하시고요..
추천 0

3등! IP : 15bc15bef389924
뚱딴지 같은사람 !

보고 싶네요!!
하긴 먼산보고 돌아가라 란 어느분의 말씀처럼 한박자 쉼표는 지혜라 하더군요!

잘 계시지요?
추천 0

IP : 0d4ec41ef0abd9f
소식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 없이 읽다가 다시 글쓴이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여전히 꽃미남에 미소도 아름다우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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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78d73d715ace889
2국에 4496
우리 집에 설치된 동네 첫 다이얼 전화기.

두 개의 내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릴 적 산이며 들로 참으로 많이 쏘다녔습니다.
온갖 상상과 계획과 이웃의 얼굴,죽은 개 등
그 모든 것을 소재로
허공에다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어머닌 지금도 말씀하시지요.
" 못하게 하니 이불 속에 들어가 손가락으로 그 짓을 하더라 "

그때 이상한 놈 취급받으며 손가락으로 펼쳤던
'자문자답'의 배회가
아직도 유효하며 계속 됩니다.
추천 0

IP : 12226e50f913e3e
잘계시죠 필력은 여전하십니다. ㅎ

새해 더욱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잘되길 기원드립니다.

참고로 제 전번은 파리한마리 죽었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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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8b231ed80dcd8a7
첯 핸펀전화번호 오리구이5292
오리요리집에서 전화번호 팔라고 연락왔던기억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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