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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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십분내에 도착할거 갔습니다.’
그녀의 메시지를 보았을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김노인이었다.
그에게 그녀가 오고 있음을 말해주고 자리를 피하게 해야할지 아니면,
모른척하고 있다가 그녀와 마주치게 하는 것이 나은 건지 쉬이 판단이
서질 않았다.
어는 것이 김노인과 그녀를 위한 길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김노인의 존재가 그녀와의 재회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생겨나고 있었다.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나는 잠시 판단을 보류한채 김노인을 이야기를 재촉하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미영이가 도저히 않돼 겠던지 새벽에 짐을 싸서 도망을 가븐거여
미영이 엄니한티 아직 동도트기 전에 전화가 왔어.
미영이 갸가 서울갈라구 도망을 가브렀다구 꼭 잡아야 한다구,
그래서 오토바이를 몰고 읍내로 가는 길을 달려갔어.
어차피 어떤 길로 오던 결국 읍내 초입을 지날거 같기에 초입에서
기다리다 갸를 잡은거여.
제발 자기를 못봤다구 해달라구 애원을 하드구만
‘아부지 저 죽는꼴 볼라구 그래요’ 하믄서....
......
근디 그때는 어떻게든 갸를 영한이하고 맺어주는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했어.
애원하구 않따라온다고 길길이 날뛰는 갸를 머리채를 끌고 오듯이
달래고 때리고 해서 어떻게 다시 델꼬 왔지.
......
오는 내내 갸가 울면서 ‘아부지 제발 보내주셔요.’하고 애원을 했는디
모른체 했어.
같이 살 부딪끼고 살다보믄 없던 정도 생기는 것이고
다 그렇게 살아지는거라고 생각했거든....
우리들이 원래 그랬지,
누가 얼굴보고 혼인했간디 부모가 정해주믄 인연이려니 다 그렇게
짝을 맺고 살었제.
.....
근디 그때 갸를 보내줬어야 했어
글믄 그렇게 까지는 않되었을 것인디
그냥 보내 줬어야 했는디....
.....
근디 말이여 하늘에 대고 맹서할수도 있어
나는 말이여 다 미영이가 행복하게 살게 할라구 그랬던 것이여
한때 그래도, 다 행복하게 살게 될거라구 철썩 같이 믿었어.....“
김노인은 잠시 울컥하는듯 하더니 감정을 추슬러 나갔다.
나는 김노인의 빈 술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마음속에선 끊임없는 의문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김노인의 입을 통해 듣게된 지금까지의 이야기 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는데 그보다 더한 일들이 있었다는 듯한 김노인의 말에
또 다시 머릿속은 복잡해 지고 있었다.
“도대체 뭔 일이 더 있었던 거여요. 둘이 혼례를 치르긴 치렀나요?”
통속적인 드라마 속의 여러 가지 가정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혼례를 치르기 전날 밤 신부의 잠적이라든지, 혼례를 치른후 한동안 같이
살다 사라진 신부라든지 그런 것들이었다.
김노인은 묵묵히 술을 마셨다.
그녀가 도착하기 전에 어떻게든 이야기의 끝을 알아야 된다는
조바심이 일었다.
“답답하네요. 시원하게 말씀좀 해주셔요.”
나는 침묵하는 김노인을 다그쳤다.
김노인이 몸을 돌려 미루나무를 가르켰다.
“쩌기에 물가로 뻣은 굵은 가지가 있었어.
그네를 매어 놓아서 애들 놀이터 였제,
지금은 잘라브러서 없지만....
거기에 영한이가 목을 매 브렀어.“
영한이 자살을 시도한건 예기치 못한 반전이었다.
그의 자살 시도 이유가 명쾌히 떠오르지 않았다.
사랑을 얻지 못한 좌절 때문인지 아니면 사랑을 얻기 위한 시위였던지
쉽게 판단이 서질 않았다.
“왜요. 왜 그랬데요.”
“후에 들어본께 자기를 용서할 수 없어서 그랬다데,
영한인 그 후에 고시를 포기 했어 자기는 누구를 심판할 자격이 없다고....
......
근디 문제는 영한이가 아니었어....
미영이를 잡어다가 못나오게 방에다 가두고 빗장을 질러 가둬브렀제...
근디 그날 오후에 미영이가 영한이가 목을 메는걸 처음부터 다 봐븐거여
영한이가 나무에 줄을 매는 거부터....
........
미영이가 어쨋것어.....
문은 빗장이 쳐져서 나올수도 없제....
오빠는 목을 메고 있제....
그러믄 않된다고 얼마나 소릴 쳤것어....
........
나중에 본께 어찌나 달려 갈라구 몸부림을 쳤던지
문 창호지고 문살이고 다 찢어지고 뜯기고.....
손톱이여 손가락이여 다 엉망이 되어 있더구만.....
하다 하다 않돼 것든지 뒷창을 찢고는 산밑 밭에서 일하고 있던
엄니하고 우리 안사람한테 죽을 힘을 다해 미영이가 소릴 질렀어....
다행이 더 가까이 있던 우리 집사람이 무슨 비명같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가 여기에 목을 맨 영한이를 발견한거여....
둘이 죽는다고 달려와서 몸이 축쳐져버린 영한이를 끄집어 내렸어....
다행이 영한이는 죽지 않았는디....
.........
근디 미영이가 이상한거여....
목을 매는 거부터 몸이 축쳐저 죽어갈때까지 다 보고 소리를
질러댔으니 얼마나 충격이 컷었어.
애가 넋이 나가버린 사람같이 우둑커니 앉아 있다가 히죽이죽 웃다가
이러다 사람하나 잡것구나 싶더구만.....
.......
미영이는 미영이데로 제정신이 아닌디....
또 강영감은 강여감데로 제정신을 잃어버린 것이여....
영한이가 겨우 집에서 정신을 차리긴 했는디 강영감은 어땟것어.
미영이가 영한이를 죽게 만들엇다고 생각한거여
미영이가 영한이를 안받아 준께 영한이가 목을 맷다고 생각한 거여
‘내가 어떻게든 니각시 만들고 말것이여’
이 한마디를 뱃고는 강영감이 그길로 미영이 집에를 쫒아 올라갔어.
밤에 씩씩거리며 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던지 미영이 엄니가 나가서
강노인과 실갱이를 벌리며 그를 말리려 했는디
그사람은 이미 눈이 뒤집혀븐 상태라 말릴 수 있었것어....
실갱이 소리를 듣고 미영이가 문을 안에서 걸어 잠궈븐거여
........
그사람이 옆에 있던 낫으로 문을 부수기 시작했어.
엄니는 울부짖제, 영한이 아부지는 나오라고 소리를 지르며
낫으로 문을 부수제.... 갸가 얼마나 무서웠것어.....
미영이는 영한이 아부지가 자기를 죽이러 온 것이라고 생각했던가봐
어두운 방안에서 얼마나 두려웠것어....
......
내가 도착해서 강노인을 뜯어 말리고 방으로 들어 갔더니....
정신이 가버린 사람처럼 구석으로 숨으며 비명를 고래고래 질러대....
그러더니 눈이 뒤집혀 버리더라구....
......
병원에 6개월인가 입원을 해 있었어.
다시는.... 다시는.... 이곳에 오질 않았어“
술잔을 든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밤과 같은 감정의 폭주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김노인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멍하니 듣고 있었다.
머릿속에 아무생각도 없었다.
어지러운 현기증이 일어 주위가 빙빙 도는 듯한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잘 버텨냈구나!’
가슴속에서 한마디 독백이 터져 나왔다.
그 질곡의 사연들을 이겨낸 그녀의 삶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려 졌다.
가슴이 아프게 져며져 왔다.
김노인은 이야기를 마친 후,
미동도 없이 제방쪽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의 약간 굽은 등이 자꾸만 내 눈길을 끌어 당기고 있었다.
세월이...., 건너 뛴 세월의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듯 했다.
나는 그등을 바라보며 김노인과 그녀는 만나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그만은 그녀를 만나 건너뛴 세월을 슬픔을,
한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피하세요. 제가 보기에 어르신은 미영이를 피할 이유가
없는 거 같은데요.
미영이도 어르신을 보고 싶어 할거 같은데요“
내말에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갸를 위해 해준 것이....”
그가 말을 꺼냈지만 내 시선은 제방 위를 올라오고 있는
밝은 헤드라이트 불빛을 향하고 있었다.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 무심코 그차를 바라보던 김노인이
그차가 누구의 차인지 깨달은듯 용수철처럼 튕겨져 일어났다.
그는 허겁지겁 낚시텐트 뒤로 몸을 숨겼다.
그를 설득하거나 말릴틈조차 없었다.
그녀의 차가 저수지 옆길을 지날 때,
그녀가 이곳에 들릴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아주머니 댁으로
갈 것인지 궁금했다.
상황이 어찌되었던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녀의 체취를 느끼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했다.
나를 그냥 지나쳐 가버린다면 나를 무의미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도 내가 그러하듯 내 얼굴을 마주하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걸 원하고 있길 바라고 있었다.
다행이 차는 미루나무 아래 멈춰섯다.
낚시텐트 뒤에는 김노인이 숨어있었지만 그것과는 무관하게
가슴이 심하게 두근 거렸다.
그녀와의 만남은 어떤 목적도 없더라도 너무나 기쁘고
황홀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차를 세웠다는 것 자체가
그녀 또한 나에게 어떤 것이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날 더 기쁘게 했다.
그녀는 차를 세운 후에도 한참을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걱정이 되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그대로 다시 위로 올라가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일었다.
나는 운전석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실내등이 밝아지며 차문이 열렸다.
그녀가 차에서 내리더니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내쪽을 향해 다가왔다.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 왔을때 그녀는 내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채
다른 생각에 깊이 몰입되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던 그녀가 내게 눈인사도 건네지 않은채 그대로 섯다.
얼굴에 렌턴을 비추지 않았지만 밝은 달빛아래
그녀의 볼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이 보였다.
그녀는 울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올라오는 길에 영한이라도 마주친 걸까? 아님 강노인 이라도....
나는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반응에 흠짓 놀라고 있었다.
그렇게 감정을 추스르며 서있던 그녀가 울음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모기같이 작은 소리로 웅얼 거렸다.
“아....아부지....”
그녀는 내 차옆에 세워진 오토바이와 제방위에 올라설때 보았던
사람의 융곽으로 김노인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먼거리라 정확히 보이지 않았겠지만, 핏줄 같은 인연이 가져다주는 예감으로
그녀는 김노인이 근처에 숨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엇던 것이다.
그녀는 주체할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듯 그를 큰소리로 불렀다
“아....아.... 아부지”
그 소리는 저수지 전체로 울려 퍼졌다.
텐트뒤에서 김노인의 오열하는 소리가 들려 나왔다.
상처입은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안으로 안으로 삼켜지는 울음소리 였다.
그녀가 텐트 뒤로 돌아갔다.
김노인은 그대로 등을 돌리고 쪼그려 앉은 채 터져나오는 오열을
견뎌보려 애쓰려 하고 있었지만, 가슴속에서 밀려나온 오열이
그의 입술밖으로 연신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좀전 내가 바라보던 그의 등에 얼굴을 파묻은채 오열을 터트렸다.
“아부지.... 아부지.....”
그녀에게도 이제 기대어 울 사람이 생긴 것이다.
기대어 울 가슴과 등이, 따뜻한 체온이 생긴 것이다.
나도 코끝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이대로 있다간 나도 울음을 터트리게 될 것만 같았다.
자꾸만 시야가 흐려져 왔다.
나는 흐려지는 시야 속에 길을 짚어 둑방쪽으로 걸어나갔다.
“우리 아가.... 우리 딸....”
김노인의 오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들의 오열이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멀리 걸어 나갔다.
그들의 재회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가슴 아픈 재회를 보고 듣노라면 나도 울음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시야는 자꾸만 흐려졌지만 입에선 나도 모르게 자꾸만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그건 그들의 재회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였던가 보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보니 나는 제방을 넘어 길 반대편
무너미까지 와 있었다.
제방이 소리를 막아주는 것인지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를 쳐다 보았다.
밝은 달빛이 청명한 하늘에 길게 뻣어나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밤하늘이었다.
마음속에 기쁨이 일어서 그런지 유난히 아름다운 달빛이었다.
잠시 넋을 잃고 달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을때 무너미 건너편
작은 오솔길에 나무들과 섞이지 못하는 인위적인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자전거 였다.
‘웬 자전거가 저기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되돌아 섰다.
그때 강노인의 얼굴이 머릿속을 퍼뜩 스치고 지나갔다.
놀라 뒤돌아서 자세히 쳐다보니 강노인의 자전거였다.
그는 저수지에 오지 않은게 아니라 매일밤 저수지에 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영한의 기다림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고
나와 그녀의 만남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고
김노인과 나의 모습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두려움이 일었다.
그날밤...
그녀와의....
그 모습까지 보아 버렸을까?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
그곳은 너무 먼 거리였고 차엔 조명이 켜져 있지 않았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지금 저 무너미 너머 풀숲 어딘가에 강노인이 몸을 감춘채
김노인과 그의 딸 미영이의 재회를 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자신의 존재를 발견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가 난처하지 않도록 아무것도 모르는척 태연하게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p.s 댓글 열심히 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에 한편도 빠짐없이 댓글 주신 분들도 몇분 보이네요.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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