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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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주말 오후 잔 비 맞으며 무리해서 공 쫓던 나는
일요일 아침 늦도록 쑤시는 삭신을 추스리고 있었습니다.
게으름이 잔뜩 묻은 내 귓가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허겁한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어젯밤에 "월롱지(月弄池)"에서4짜가 나왔다네...
잘만 쪼우면 월척 한 두수는 기본이고
4짜 얼굴도 구경할 수 있다더구만...
요즈음 며칠간 연짱으로 쏟아진 모양일세!"
본래 허풍 센 친구라는 걸 알면서도
대물에 귀 얇은 나는 또 짐을 꾸리고 말았습니다.
오락가락 하는 빗속을 뚫고 30여분을 달려
예의 저수지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세시.
극성 꾼 몇 사람의 파라솔이 비바람에 펄럭이고 있었고
우리는 습성대로 수선스러움을 피해
조금 힘들어도 약간의 땀방울을 대가로
한적한 중상류 산아래 또아리를 틀었습니다.
가끔씩 쏟아지는 빗줄기가 청승맞기도 했지만
보랏빛 습기 머금은 저수지의 분위기는
첫 투(投)를 하는 내 대 끝에 대물에의 꿈을 걸어주었습니다.
참붕어 잡아 꿰어 수초 옆으로 바싹 붙여
좌우로 두 대씩 네대를 벌려놓고
가운데 빈 공간은 두 칸 반대에 콩알 달아 넣었습니다.
입질은 역시 콩알이 빨랐습니다.
예쁘게 솟던 찌가 달고 나온 놈은 여덟 치는 됨직한 누런 토종붕어.
잘 생긴 녀석의 좌우로 헤집던 저항만큼
내 대물에의 꿈도 한껏 부풀어 갔습니다.
그리고 잔챙이 몇 마리...
무료해질 무렵 떡밥을 메달아 놓은 찌가 급박하게 물 속으로 끌려들어 갑니다.
살치 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볍게 대 끝을 땡겨 봅니다.
"어렵쇼?"
대 끝이 세워지지가 않습니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서 팔에 힘을 주어보지만
생각보다 강한 힘이 대 끝을 물 속으로 쿡쿡 쳐 박습니다.
불쑥 머리 속에서 친구가 날 꼬득였던
4짜라는 단어가 맴을 돌면서 불안해 집니다,
보통 힘으로 잡아끄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대의 탄력을 최대한 이용해서
녀석의 머리를 돌려보려고 애쓰며
어떻게든 수초틈새로 파고드는 것을 막기 위해 대를 쳐듭니다.
"잡아내야 한다!"
줄이 울고 대가 부러질 듯 한
긴박한 줄다리기가 얼마쯤이나 계속 되었을까?
힘의 기울기에 부담을 느꼈는지
물 속의 녀석이 돌아서며 뛰어 올랐습니다.
"이게 뭐야?"
가물치였습니다.
"제길 헐!"
머리 속에서 4짜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불안감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녀석도 힘이 빠졌는지 몇 번의 실랑이 후에 저항을 포기한 체 끌려나왔습니다.
크긴 엄청 컷습니다.
녀석의 몸 둥이 위에 뼘을 대 보았습니다.
세 뼘이 다 되었습니다.
"아! 콩알 물고 나오는 철없는 가물치야,
한 뼘이 모자라도 좋으니 네가 붕어 였었드라면 얼마나 좋았겠니!"
쓴웃음을 짓고 맙니다,
아기와 바람은 밤이면 잔다고 했습니다.
고요와 어둠 속에서 가랑비를 맞으며 친구와 난 4짜를 기다렸습니다.
상념과 희망을 찌불에 끼워놓고 새벽 세시 반까지...
그러나 참붕어 물고 아홉치 붕어 두수만 더 올라왔을 뿐,
쏟아진다던 월척도 운 좋으면 구경할 수 있다던 4짜 붕어도
끝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희망이었습니다.
하룻밤 쪼움으로 쉽게 잡혀버리는 대물 붕어라면
그것은 우리들에게 이미 갈망의 대상이 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무지개처럼, 신기루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안타까움이
대물을 향하는 우리 꾼 들이 물가를 찿는 이유중 하나 일거라는
그런 생각도 들었구요.
돌아오는 길에 뚝 위에 서서 어두운 저수지를 바라보며
저 속에는 "오짜붕어가 살고있을지도 모른다."는
친구의 중얼거림이
꾼의 희망을 말하는 것 같아
비를 맞으며 대물을 노렸던 하룻밤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런 조행 이었습니다.
어느해 여름의 조행일기를
어유당(魚有堂)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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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수필같은글..오늘도 잘읽고 갑니다
더워지는날씨...안출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