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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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울 쯤 부터 아버지와 삼춘, 두분 께서 열심이 뒷산을 다니시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와 삼춘은 짬이 날때 마다 뒷산으로 얼음깨기 같은 꼬챙이와 삽,빵과 우유를 들고
일주일을 쉬지 않고 뒷산에 오르셨다가 해질녁쯤에 내려오시더군요.
한 일주일을 그러시더니 어디서 쌀자루 몇가마니를 들고 오시는 겁니다
그안에는 나무 뿌리 같은 것이 잔뜩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마' 아시조? 두분은 일주일 동안 뒷산을 돌아다니면서 마 를 캐로 다니신거 였습니다
이걸 깨긋이 씻어서 아랫목에 일주일을 또 말렸습니다. 다 말린 마를 서울 약제상이 있는곳으로
팔로 가신다고 두분이 나란이 나가시더군요.
그리고 돌아오셨습니다. 말린 마는 파셨구 다른 물건을 사가지고 오셨더군요
그당시 일명 '밧데리' 라고 불렸던 물건입니다
등에 선반을 둘러메고 그 선반에 자동차 밧데리 와 요상한 철판?? 쇠붙이 들이 있고
왼손에는 뜰채 오른손에는 꼬챙이 처럼 각각 + , - 가 연결 되어 있어서
두개를 물에 넣고 오른손에 잇는 꼬챙이의 버턴을 엄지로 눌러 주면
등판에 둘러맨 쇠붙이가 징징~~ 하면서 떨리면서 전기가 통하는
일명 물을 전기로 지지는 장치 였조
20년이 훌쩍 넘었으니? 괜찬조 ^^;;( 그 당시에는 밧데리가 유행이엇나 봅니다.
다른 어른분들도 밧데리 둘러맨 모습 종종 봣습니다)
두분은 그 밧데리 기계를 사들고 와서 벌써 흥분 부터 하십니다.
(일주일 산 타며 마 캐서 물물교환을 하신 셈이조)
다음날 해가 뜨자마자 두분은 합심하여 작은 계곡으로 밧데리를 둘러메고 출동하셨습니다
물가에 서서 뜰채와 꼬챙이를 물에 담그고 버튼을 누르니 징징~~ 이러면서 소리가 나고
얼마 안가 작은 송사리 들이 둥둥~~ 떠오르는거 였습니다 흥분 도가니~~ 우와 고기다 고기~~
그 송사리들을 뜰채에 모아서 집에 들고와 국수 넣고 맜있는 매운탕국수 해먹고~~
정말 꿀맛이더군요~~ 그렇게 한겨울 동안 밧데리를 둘러메고 두분 께서는
이곳 저곳 작은 계곡을 다니시며 연신 징징~~ 거리시면 맛있는 매운탕 꺼리를 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겨울이 끝나 갈때는 삼춘 께서 허벅지 까지 올라오는 긴장화를 어디선가 구해 오셔서
이번에는 큰 고기 잡아 보자고 동네에 저수지로 향했습니다.
장화를 허벅지 까지 올리시고 밧데리를 둘러 메고
저수지 수초 쯤으로 조심 조심 걸어 들어 가신 삼춘 께서
자 ~~ 잡아 볼까~! 이러면서~~ 버턴을 꾹 누르셨나 봅니다
징징~~ 징 이 소리와 함께 으 ~~~~ 헉 ~~~!!!!! 으~~~ 악~~!!!
삼춘도 같이 신음 하시더군요..
한동안 신음을 하시고 멍하니 서 계시더니.. 조심 조심 나오시더군요..~~
그때의 삼춘 표정이란 감히 말로 표현 하기 힘든~~ 얼굴은 창백 하고 ~~
머리털이 바짝 서 보이더군요...
그레도 체력이 좋으시던 분이라.. 버티고 올라오셨습니다.
장화에 작은 구멍이 하나 있어서 그리로 물이~~
고기를 지지로 들어가셨다가 자기 자신을 지지고 나오셨답니다
그때 당시는 천만 다행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웃음이 나오는군요
혼 ~~ 줄이 나신 두분은 바로 다음날 밧데리를 처분 하고 새우망과 투망
을 어디선가 들고 오셔서는 새우망으로 새우 잡고 투망으로 잡고 하셨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투망 한번에 월척 4~5 수는 아주 우습게 들어갔고 잉어들고
빨래판 만한 것들이 종종 나오고는 했습니다
그 잡은 고기들은 그 비싼 식용유에 밀가루를 입혀서 아주 맛있게 튀겨서 옆집들과
나누어 먹던 기억들이 나는군요
(예전 ~~ 이야기 니깐 ^^ 이해 부탁드립니다)
전 아직도 매운탕중에 최고는 민물새우매운탕에 물국수 넣고 끓인게 최고인듯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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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안으로 영양으로 청송으로 피래미 잡아 봉다리 봉다리 냉동 시켜두고
심심한 저녁이면 매운탕에 쇠주 캬~~~~~~~~~~~~~~~~~~~~
밧데리 이제는 사용하는 사람 없더군요.
싸이나, 밧데리 그때는 그렇게 잡아도 버글버글했는데~~~~~~~~
지금은 고기들 다 어디로 간겨~~~~~~~~~~
저도 밧데리 찌진적 있죠.
밧데리에 감전되면 찌릿찌릿하죠 ㅋㅋ
욕 얻어먹을 추억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