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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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부터 아버지는 항상 엄해서 말도 제대로 해보질 못햇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께서 막둥아 하고 부르신다
네~ 하고 안방으로 건너갔는데
아버지 하시는 말씀 니 나이가 33살이 넘었는데 너는 언제쯤이나
이 애비한테 손주안겨줄래 하시는 아버지 왠지 모를 이상한 느낌 (누구나 느끼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 다음날 난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엘 갔다
아버지는 아무이상도 없는데 머하러 쓸데없는 돈을 쓰냐며 면박을 주셨다
그렇게 설득에 설득을 해서 겨우 병원에 도착
병원에서 m R A 검사을 하는동안 난 병원을 빠져나와 담배을 한개피 물었다
별의 별 생각을 다하면서 말이다
검사을 다 마치신 아버지는 웃으시며 야 힘들다....휴휴
이어 의사 선생님이 나만 들어 오라한다
왠지 모를 이상야릇한 기분 똑 똑 노크을 한후 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헌데 표정이 넘좋지 않다
둘 사이는 잠깐동안 말도 하지않은채 시간이 흘럿다
잠시후 선생님께서 말문을 열었다
저..... 뇌종양 입니다....켁 무슨말씀을 하신 겁니까.?
이미 종양들이 뇌전체에 퍼져서 수술도 힘들고 그냥 편하게 쉬시게 하는게
좋은 방법일꺼 같네요
이런 개***소리 하고 있네
시도도 해보지 않고 포기를 하라니 니 부모 같으면 넌 그렇게 할수있어
난 너무 화가 나서 그만 선생님께 욕설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난 아무런 일도 없는 것처럼 병원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난 아버지께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이윽고 아버지 아무이상 없다고 하지..아버지도 내심 궁금했던 모양이다
네 조금 안좋은데 큰병원에 한번 가보라고 하네요
큰병은 아니고요 머리에 혹이 하나 생겼다고 하네요
아버지 우리 큰병원에 가서 혹떼러 가는게 어떻겠어요
머하러 돈을 써야 내나이 70에 무슨혹을 뗀다고 병원을 가야 난 개안타..
그날 난 집으로 와서 한참을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하지 의사말처럼 그냥 편하게 쉬게 해드려
그래도 기적이라는 것도 있는데 시도라도 해봐야지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저 저 아버지 우리 서울대 병원으로 갑시다
아버지 고개만 흔들 흔들 난 안간다 집요하게 난 아버지를 꼬셧다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안가신다고 버티신다
안되겠다 큰아버지 작은아버지께 전화을 해서 병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전해 드렸다
두분께서는 바로 달려오셨다
오랜설득 끝에 우리는 서울대 병원에 갔다
켁 근대 이건 무슨 일이야 서울대 병원은 예약이 안되면 입원이 안된다...
그래서 난 아는 지인한테 전화을 걸었다
자초 지정을 이야기 하고 부탁을 했다 (아는 지인동생분이 서울대 병원 조금 높은 간호사다고 하신다)
전화을 끈고나서 한참후에 전화가 왔다 5병동 몇호실로 올라오라고 한다
난 잠시나마 기뻐서 웃음을 지엇다
아버지 하시는 말씀 야 여그는 암병동 아니야...
아..네 병실이 없어서 여기서 치료하라고 하네요
그렇게 해서 치료는 시작이 되고 아버지는 자꾸 야위어만 가고 넘 힘들어 하셨다
그러던중 아버지께서 나를 불렀다
야 막둥아 나 집에 가고 싶다
아버지 어짜피 시작을 했는데 조금만 더 참아요
지금 많이 좋아졌다고 하네요....(지금도 생가하면 너무 잘못한 말중에말)
그러나 나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멀리와 버렸다
그렇게 하기를 5개월 어머님도 너무 지쳐버리셨다
난 어머니와 이야기를 했다
우리 그냥 아버지 편하게 쉬시라고 할까
어머님은 안된다 어차 시작했으니 끝을봐야지..
항암치료 8번째 아버지는 머리카락도 다빠져서 대머리가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점점 더 너무 힘들어 하셨다
이제 정말 어찌해야 하나 그냥 내려갈까 아니면 조금더해봐.............
오랜 고민끝에 결정이 내려졌다
시골로 내려가서 그냥 편하게 쉬시게 하는게 좋은방법인것 같다
아버지께선 이제 거동도 못하신다
에이 ~씨* 이게뭐야 그냥 편하게 쉬시게 할껄 난 후회을 많이 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셔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장마가 시작되고 아버지께서는 사람도 못알아 보실만큼 되어버렸다
장마가 막바지에 이르럿을때 아버지는 운명을 달리 하셨다
우리는 삼일장을 치루고 집으로 돌아왔을때
어머니는 너무 힘들어 하셨다
날마다 어머니 흐느끼는 소리에 혹시 딴맘먹고 계신는건 안닌지
매일 가슴 조이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난 어머니를 모시고 동네앞에있는 냇가로 향했다
낚시대 3대와 지렁이 한통 지금은 안사람이된 그녀와 어머니 나 셋이서 ....
처음에는 안가신다던 어머니께선 나중에 오늘은 낚시 안가냐 하면서
어느덧 낚시에 취미를 붙이셨다
그 후로 우리는 낚시를 많이 다니면서 모자간에 사랑도 많이 커졋다
지금도 봄 여름 가을이면 가끔씩 낚시를 다니곤한다
지금은 가족이 5명이다..ㅋㅋㅋ 나의 보물들 사랑스런 나의 아들들..사랑한다
글재주가 없어서 ....끝까지 읽어주신 회원님들 감사합니다..꾸벅
회원님들 낚시도 좋지만 효도 하면서 살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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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아버지 보내시고 잠시 어머니와 낚시한 기역 이있습니다
그저 바람 쇠로 나가자시면
마냥 좋아 하셔는데
이제 홀로 낚시 를갑니다
집사람이 한참동안 어머니와 함께 해던
강 저수지 같이다닌 적이있습니다
사는것이 정말 힘으로 되는것은 아닌 것같습니다
좋은 내용 잘보고 갑니다
하늘에서도 마르샤님을 보고 게실리라밉습니다
항상 안출 하시고 가족 모두 행복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