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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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인 색(色)에 약한겨...(3)

청버들 IP : 6d1081386914dae 날짜 : 2005-02-19 10:47 조회 : 6919 본문+댓글추천 : 0

품에 숨겨두었던 칼을 꺼냈다.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을...
 그게 색 고운 여인네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이라는 걸 굳이 말할
 이유도 없다. 난 하루라도 빨리 그 고운 솔피찌를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찌 재료로 될 만한 소나무 껍질은 첩첩 산중에서 수수백년 풍진에
 씻긴 소나무에게서만 있는 줄 알았었다. 그러기에 산행을 작심하고
 길을 나섰지만, 과연 그런 소나무를 만날 수 있을지 여간 걱정한 게
 아녔다.

 하지만 그런 기우는 산에 도착하자마자 싱겁게 되어버렸다. 소나무란
 그렇게 큰 게 아녀도 엄청난 껍질을 주럭주럭 달고 있었다. 그것도 눈
 닿는 곳은 어디나... 그러기에 굳이 찾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우와~~! 이게 다 찌가 될 수 있는 재료라 이 말이랬다...’

 난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궁하면 공한다.’ 라는 말이 왜 나왔
 는지 알 법도 할 것 같았다. 쓸 만한 솔피를 그렇게 간단히 구할 줄이야!
 역시 세상사 구해서 안 되는 게 없는 모양이다. 설령 그게 청초한 여인네
 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6개월 건조한 후 소금물에 30분간 끓여 다시 한 달을 말린다.

 젠장~!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보니 솔피를 얻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걸
 저렇게 정성을 드려 준비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나오는 게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그 긴 시간을 어찌 견딘단 말인고...!

 수절하는 여인네 대침으로 허벅지를 찌르며 그 긴 동지 밤을 견뎌내듯 겨우
 겨우 한 달을 견뎌봤으나 이젠 더 이상 참아낼 자신이 없었다. 고운 색을 향
 한 간절함은 본시 사내들 몫으로 밀쳐져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하는 건 고금의 이치. 그렇지만 난 그걸 이겨내지 못하고
 성급하게 칼을 들었다.

 곱다!

 부드럽게 깎이는 솔피의 무늬가 곱디곱게 한 겹씩 들어났다. 난 진짜 명품 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 손끝에서 그렇게 고운 무늬를 찾아 낼
 수 있을 거론 일찍이 짐작도 못했거늘... 예리한 칼날에 숨겨졌던 솔피의 아름다
 움이 그렇게 쉽게 들어날 줄이야!

 성급하게 칼을 잡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를테면 옥녀봉 계곡 밑에
 있는 선녀탕에라도 가서 사흘 낮밤 동안 음기로 몸을 씻는 것이며 봉정사 법당
 에서 지극 정성으로 부처에게 향불을 피워놓는 것 등, 심신을 좀 가다듬었어야
 했다는 자성도 들긴 했다.

 ‘음... 색 고운 여인네를 빗는 게 그렇게 쉬운 건 아닐 테지.’

 정성으로 칼질은 했으나 잘 안되었다. 모양도 그렇고 중심도 잘 안 잡혔다. 하지만
 처음엔 다 그러려니 하는 생각으로 실패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10개 20개...
 된장(?)... 그런데 깎으면 깎을수록 뭔가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닌가!

 무늬가 엄청 고운 솔피를 결국 실패라는 판단을 해야 하는 아픔은 실로 가슴팍을
 도려내는 느낌이 들었다. 손재주가 유별스럽게 없는 탓에 어찌 그걸 써먹으려 이쪽
 저쪽 조심스럽게 깎다보면 그렇게 굵은 솔피가 나도 모르게 이내 손톱 만해져버리니
 대체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고...!!

 그렇게 일주일간 실패를 거듭하고 나니 세삼 잃어버린 아픔이 더 절절해졌다.

 그리고 한 달여...

 난 드디어 5개의 솔피찌를 만들었다. 칠도 무려 8번.

 ‘이쪽을 좀 더 깎아야 하는 게 아닌가!’

 ‘금분은 좋은데 사포질을 좀 더 하고 했어야 할 것 같은데...’

 ‘전체적으론 그런듯한데... 색깔이 너무 짙군!’

 닝기리...

 천신만고 끝에 겨우 겨우 5개의 솔피찌를 만들어 근처 사람들에게 자랑을 했더니
 칭찬이나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트집을 잡는 게 아닌가!

 ‘녀석들... 내가 이렇게 만든 걸 부러워서 그럴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하고 곱게 그것들을 찌통에 넣어 두었다. 모양이야 어찌 되었든 칠을
 8번이나 해놓으니 윤기가 반지르르해 적어도 피부미인은 될 듯싶었다.

 그리고 다시 한 달.

 아직 민물낚시 시즌은 안 되었다. 하지만 난 이따금 찌통을 열어보고 그 찌들을
 꺼내 소중하게 만져본다. 시간이 지나 냉정하게 살펴보니 친구들 지적이 옳았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난 그게 세상 어느 찌보다도 더 소중하고 가장 아름답다.

 마치 공부는 잘 못하지만 그래도 튼튼하게 잘 자라주는 아이들과 예쁘진 않지만
 그래도 세상 어느 여자보다도 더 곱고 아름답게 보이는 집사람 같이...

 그러기에 난 이번 봄이 남다른 모양으로 기다려지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 월척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2-21 09:10)
추천 1

1등! 낚시꾼과선녀 05-02-23 13:42 IP : 60ddd5f9dd00543
청버들님...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정성을 들여 솔피찌를 만드셨으니...그게 어디 보통찌입니까?
세상에 통틀어 5개밖에 없는 희귀종 아닌가요.
올 봄에 그 솔피찌로 대물 많이 낚으십시요.
장문의 글 쓰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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