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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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로 연가(3)

입질!기다림. IP : 7547d073aa11ca2 날짜 : 2005-07-29 10:44 조회 : 5465 본문+댓글추천 : 0



귀가를 하니 식구들은 거실에서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샤워를 마친 후, 부러진 낚싯대 수리를 위해 O사 홈페이지에 접속을 했다.
오늘 망가뜨린 2번대와 받침대 주걱 등 소모품 신청을 하고 인터넷 뱅킹을 마쳤다.
며칠 동안 바쁘게 다니다 보니 메일 확인을 할 겨를이 없었다.
접속을 했다.
스팸 메일을 걸러도 여나믄통이 들어와 있었다.
파란색의 굵은 인쇄체 글씨가 눈에 확 들어왔다.
발신자 Gina Yoon.
윤 혜림이었다.
기억의 저 깊은 늪 속에 빠져있는 첫 사랑의 여자.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고, 한 점을 만남으로 해서 안타깝게 멀어져간 대각선 속의 여자.
하얀 피부에 석고상같이 이국적인 분위기의 얼굴, 기인 생머리의 여자.
강원도 양구라는 도시와 늘 같이 오버랩되는 여자.
가장 최근의 만남은 5년 전 일본 동경이었다.
2005년 파리 에어쇼에 참석한 후 현재 프랑스에 머물고 있단다.
베트남과 일본을 거쳐 이번 달 말에 제주공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다고 했다.
내 자식들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의사표시에, 성인이 된 아들과 딸이 판단하도록 하자는 유보의 말을 나누고 헤어졌다.
“저도 당신의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기회는 있었어요.”
그 말이 귓전을 생생하게 울려왔다.
흐느끼던 모습도 떠올랐다.
스위스 은행에 입금된 거액의 돈 문제도 떠올랐다.
갑자기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가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두개의 첨부 파일 중 처음 파일을 열었다.
여자는 까치발을 딛고 두 팔은 남자의 목을 휘감고 있었다.
긴 레인 코드를 입은 남자는 한손에 우산을 받치고, 한손은 여자의 허리를 안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는 우중에 연인이 우산 속에서 진한 키스를 하고 있었다.
빗소리를 배경으로 패티김의 노래가 들려왔다.
헤드셋을 바로 하고 볼륨을 올렸다.

가슴 속에 스며드는
고독이 몸부림 칠 때
갈길 없는 나그네의 꿈은 사라져,
비에 젖어 우네.
너무나 사랑했기에
너무나 사랑했기에
마음의 상처 잊을 길 없어
빗소리도 흐느끼네.

후렴부분이 다시 반복되고 있었다.
윤 혜림.
내 인생에 아련한 미련과 아픈 상처로 남아 있는 여자.
초우를 좋아하고 즐겨 부르던 여자.
다시 두 번째 파일을 클릭 했다.
빛바랜 사진이 모니터 가득 배경사진으로 올라와 있었다.
1970년대 중반의 대구 망우공원이었다.
동상아래 팔짱을 낀 장발머리의 우스꽝스런 남자는 내 청년시절의 모습이었다.
내가 소장하고 있지 않은 사진을, 그녀는 지금 까지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팔짱을 끼고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이 어제 일 같았다.
지금은 아스라이 먼 추억의 깊은 늪에 침잠이 되어 있었다.
당시 내가 즐겨 부르던 함중아의 노래이었다.
그녀는 변화하는 긴 세월의 흐름 속에 살면서도, 시간이 멈춘 당시의 기억을 지참하고 있었나 보다.

자욱한 안개 속에 희미한 가로등아래
쓸쓸한 두 그림자 아무 말 없이,
마지막 잡은 손.
따스하던 그 손길이 싸늘히 식어가지만
너를 위해 보내야지
너를 위해 가야지.

다시 2절로 넘어가고 있었다.
노래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 윤 혜림의 지난 잔상이 불꽃처럼 살아났다.
지금까지 있은 그녀와의 모든 지난 추억 속에 깊이 빠져 들고 있었다.

자욱한 안개 속에 희미한 가로등아래
쓸쓸한 두 그림자 아무 말 없이
돌아서야 하는가. 다정했던 그 추억에
미련을 두지말자 너를 위해 보내야지
너를 위해 가야지.

사람의 두뇌는 지난세월의 시간을 거슬러 역류할 수 있는 장점과 단점을 공유하고 있다.
또 뼈저리게 아픈 기억과 미칠 것 같은 추억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망각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세월이 약이라는 말을 하는가 보다.

1970년 중반에 어려운 대학 시절을 보냈다.
시골에서 유학을 온 촌놈의 주머니는 항상 가벼웠다.
객지에 머무는 촌놈의 마음도 늘 비어 있는 여백이 많았다.
비 오는 토요일의 오후 시간 이었다.
월말에 고등학생 과외지도를 하고, 수고비를 받은 날은 채워진 주머니와 마음의 여유도 같이 가질 수 있었다.
수고비를 받은 그날도 친구와 둘이 만났다.
시작은 향촌동 주점에서 찌그러진 주전자에 담긴 물탄 막걸리를 마셨다.
동성로 한일극장 곁에 있던 로즈가든이란 레스토랑에서 폼을 잡고 와인을 마시며,
2차를 하고 있었다.
실내는 자리가 만원이었다.
들어온 시간이 많이 흘러, 재떨이를 비우는 웨이터가 눈총을 주었다.
우리는 시선을 피한 채, 굳건하게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주말이라 좌석의 여분이 없어서 여기 저기 합석을 하는 곳이 보였다.
손님을 먼저 합석을 시켰다가 빈자리가 생기면 웨이터가 옮겨 주곤 했었다.
시간이 많이 경과한 찰거머리들에게 비켜 달라는 소리는 못하고, 자꾸 눈치를 준다.
그게 먹혀들지 않으면 쫒아내는 작전은 웨이터가 손님을 합석 시키는 방법을 선택한다.
남자둘이 앉아 벌써 찍혀 버린 우리에게, 웨이터는 정중함을 가장하고 손님 합석을 청해왔다.
남자나 커플이 아닌 아가씨 한사람의 합석 요청에 흔쾌하게 수락을 했다.
합석한 아가씨는 첫눈에 보아도 미인이었다.
새로 온 손님 앞에 물 컵을 놓고 웨이터는 사라졌다.
사라지는 총각의 뒷모습이 조금 전과는 달리 고맙게 느껴졌다.
친구는 팥으로 메주를 쑨 다해도 보통사람들이 믿게 만들어 버리는 말재주를 가졌다.
하지만 두 시간 이상을 이곳에 머물러 우리 둘만의 화제는 이미 고갈이 난 상태였다.
그때 고마운 웨이터가 분위기를 반전 시켜줄 신선한 기회를 제공하여 주었다.
우리는 감격을 하고 말았다.
그녀는 애인을 기다리는지 통로 곁 좌석에서, 출입문이 열릴 때 마다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만약 사내 녀석이 나타나면, 우리는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될 것이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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