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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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초등학교 5학년 정도였을 것으로 기억하네요.
당시 중학교 행정실에는 5촌당숙이 근무를 하시고 계셨었습니다.
당숙께서 그곳 사택에 거주하시면서 당숙모께서는 매점도 운영하셨던 탓에 또래 6촌형제도 볼 겸, 저는 그곳을 자주 놀러갔었더랬습니다.
그날, 사건이 발생했던 날은 4월 5일 식목일.
동네 친구와 후배 몇이서 중학교로 향했습니다.
그 당시 부유한 편에 속했던 당숙네에 맛있는 것 있나 볼 겸, 6촌 형제들도 볼 겸, 그곳 농수로에서 낚시도 할 겸.
분유깡통에 지렁이를 잡아, 룰루랄라 자전거를 타고 중학교로 향했겠죠.
낚시대라야 2칸 남짓한 대나무가 전부였고(직접 베어서 다듬어 낚시대로 사용),
낚시채비는 그 당시 정말 유명했던, <조립낚시 채비>.
그 농수로는 콘크리트 구조물과 두꺼운 철판으로 물을 막고 수문을 열어 배수가 가능한 구조였습니다.
제일 깊은 수심은 어른 키도 넘을 정도로 깊었고,
피라미, 송사리, 꺽지, 메기, 장어, 자라, 모래무지, 마자, 각시붕어, 가물치, 붕어 등
온갖 어류의 집합소 같은 곳이었습니다.
여튼, 중학교에 도착한 저는 당숙께 인사를 드리고, 형제(4형제)들과도 인사를 나눈 후 친구들과 낚시나 하겠다며 뒤켠 농수로로 향했습니다.
메기도 피라미도 붕어도 잘 나오던 그 농수로에서 피라미만 몇마리 낚고 그날 따라 별로 입질이 없더군요.
이상하다 하면서 그 농수로를 가로로 가로질러 흙탕물이 들어오는 좁은 쪽수로를 우연하게 보게 됐는데,
그 콘크리트 쪽수로에서 물이 들어와 낙하하는 지점에, 붕어 여러마리가 튀어오르는 것이 보였습니다.
마침 잘 됐다 싶어, 작게 소용돌이 치는 그곳에 지렁이를 꿰어 낚시대를 드리웠지요.
낙수하는 물에, 찌가 떠내려가다 가라앉길래 꺼내서 다시 던지려는데, 낚시대 끝에 손맛이 느껴지는 겁니다.
제일 먼저, 7치 붕어를 잡고 그 다음 8치, 또 5치.. 6치...
속된 말로 넣으면 나오고, 넣으면 나오고 하더군요.
어느 새 주전자가 꽉차, 당숙네 집에 가서 세숫대야를 가져오기에 이릅니다.
낚아낸 붕어를 세숫대야에 붓고, 다시 낚시를 시작하는데,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이 낚시대에 전해졌습니다.
처음엔 돌에라도 걸렸나 싶었지만, 분명 물속에서는 꾸불텅 거리며 살아있는 생명체의 요동이 느껴졌었지요.
저는 낚시대를 부여잡고 용을 쓰면서 "잡았다!" 꽥~ 소리 소리를 질렀고요.
그 소리를 들었는지, 한 살 많은 6촌 형이 우리가 낚시하는 곳으로 왔고, 형이 기르는 그 무섭게 생긴 도사견도 펄떡펄떡 뛰어왔습니다.
저는 두 칸 남짓한 가느다란 대나무로 그 큰 붕어를 어떻게 낚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지만, 간신히 물밖으로 들어올려 콘크리트 바닥에 내동댕이를 쳤고,
우리는 알을 배 더 커다랗게 보이는 그 큰 붕어를 둘러싸고 "우와!" 소리만 연발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던 중, 평소에도 전교 1~2등을 다투던, 보통의 그 당시 개구장이들과는 뭔가 차원이 달랐던 한 살 많은 그 형은 어디서 들은 건 있었던지, 의미 있는 미소를 날리며 붕어길이를 재보겠다며 30cm 플라스틱 자를 가져오겠다고 사택으로 향했고,
우리는 세숫대야에 누워 숨을 헐떡이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그런 커다란 붕어를 손가락으로 눌러도 보고 이리저리 만져도 보고 했습니다.
어딜 가도 잽싸고 영악한 친구는 있기 마련인지라, 제가 낚시하던 곳을 재빠르게 차지하고 낚시대를 넣던 녀석이 붕어를 다시 낚아내자,
다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낚시에 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자기가 저 큰 붕어 보다 더 큰 걸로 잡겠다며 제가 낚아낸 붕어는 안중에도 없이 다들 돌아서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사택쪽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지 뭡니까.
무슨 소란인가 다들 고개를 돌려 사택쪽을 보는데, 그 무섭게 생긴 도사견이 뭔가를 물고 날뛰고 있었고, 6촌 형이 그 뒤를 긴 막대를 들고 쫓고 있었습니다.
뭔가 상황이 잘못된 것을 짐작한 저는 세숫대야를 확인했습니다.
역시나 제가 낚은 그 커다란 붕어가 보이지 않더군요.
우리가 등을 돌려 낚시에 열중한 사이, 형을 따라왔던 그 도사견이 물욕에 눈이 뒤집혀 내가 낚은 제일 큰 붕어를 물고 냅다 줄행랑을 친 겁니다.
우리가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교묘하고 음흉하게...
저는 낚시대를 공중으로 내던지고, "야! 저 똥개 잡아라." 하며 달렸지요.
같이 낚시를 간 친구와 후배들이 "와!" 소리를 내며 도사견을 몰았고,
사택을 돌아 운동장으로 내빼던 도사견을 겨우겨우 구석으로 몰아 목덜미를 낚아채 도사견 입에서 붕어를 빼앗기에 이릅니다.
헌데, 문제는 붕어 상태가 이미 꼬리자루는 잘려 어디로 가고 없고, 머리와 몸통만 있더군요.
그 토막난 붕어를 들고, 잘려진 꼬리를 찾겠노라 또 한바탕 난리가 나고서야 화단근처에 떨어진 너덜너덜한 붕어꼬리도 찾았습니다.
덩치는 크지만 겨우 1년생이나 될까말까 했던 그 도사견을 제가 붙잡아 때릴려고 하자,
형이 대신 사과하며 미안하다더군요.
눈에 눈물이 맺히는 걸 억지로 참고, 형이 길이나 재보자며 플라스틱 30cm 자에 토막 난 붕어를 어찌어찌 맞춰 길이를 재는데,
그렇게 쟀어도 30cm는 가뿐하게 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6촌 형은 축하한다고 했지만, 저는 내가 왜 축하를 받아야 하는지 의아했고, 내 머릿속엔 그저,
형 몰래, 저 도사견 녀석을 어떻게 때려줄까만 생각했었습니다.
토막이 나고 도사견 이빨 자국에 사방에 구멍이 뚫리고 비늘도 털려 보기에도 흉한 붕어를 보고는, 모두들 낚시 기분도 잡쳐 낚시를 그만두고, 낚아낸 붕어는 그냥 당숙께 드리고, 억울한 마음에 코를 씩씩 불면서 집으로 돌아왔었던 기억이 있네요.
* 이후로 제가 낚은 그 큰 붕어얘기는 낚시를 갈 때마다 친구와 후배들에게 회자되어 저는 영웅대접을 받곤 했었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붕어 크기는 대략 32~3cm 정도였을 것으로 기억합니다.
토막난 상태로 대충 끼워맞춘 상태에서도 분명 30cm가 넘었으니 원상태였었더라면 길이가 더 나왔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럼, 생애 첫 월척을 토막 낸 그 도사견은 어찌 됐냐구요?
그 일이 있고 몇달이나 지났을까 그 도사견은 사고를 많이 친다는 이유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군대에 가 첫 휴가를 나온 6촌 큰형님께서 형장의 이슬(보신용)로 사라지게 했다고 전해들었습지요.
최근 중학교 농수로를 지나다 불현듯 떠올랐던, 황당무개하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생애 첫 월척사건(?)이 생각 나 글을 올려봅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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