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 균형있는 게시판 사용을 위해 1일 1회로 게시물 건수를 제한합니다.
· 여러개로 나누어 게시물을 올리는 경우 하나로 통합될 수 있습니다.
· 여러개로 나누어 게시물을 올리는 경우 하나로 통합될 수 있습니다.
반짝이던 것들이 서서히 광채를 잃어가고, 날카롭던 것들은 시나브로 무디어진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순간들이 시들고 녹슬어 사라져 간다.
안간힘 다해 버텨보지만, 나는 언제나 무력하게 무릎 꿇는다.
그것은 무정해서 잔인하고, 무심해서 더 난폭하다.
냉정함과 무심함의 난폭자, '시간'이 내게 그러하다.
시간은 내게 망각을 주사하고, 나는 추억으로써 반항한다.
잊으면 편해, 라는 시간의 주술과 결코 잊지는 않겠어, 라는 나의 반항.
오래전 이야기를 해볼 텐데, 이거 팩트야? 라고 묻는다면 사실 썩 자신이 없다.
내 무의식이 분명 몰래 각색을 했을 터, 나도 나를 다 믿지 않으니...
< 왜 하필 나냐? >
결혼하고 울산에 정착하여 몇 년이 흘렀으니, 1995년쯤이었겠다.
인테리어 사무실을 개업한 나는 목하 성업 중이었고, 설계팀과 연일 밤샘을 하곤 했다.
나는 내 핏속의 공간감각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내 유려한 스케치는 상대를 주눅들게 했고, 내 현란한 언변은 상대를 마취했다.
나는 나날이 건방져졌다. 덤벼라, 세상아 !
어쩌자고 나는 세상에게 덤볐을까.
화가 난 세상은 내게 악당들을 보냈고, 나는 속수무책 당했다.
씨 바, 알고 보니 나란 놈은 별거 아니었다.
아파트 세 채와 업무용 차량 네 대와 사무실을 헌납했다.
졸지에 폐인이 된 나는 월세방을 나와 물가로 갔다.
산속 소류지는 울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한점 거짓 없이 나를 울리고 싶었다.
무너미 안쪽 좌측 연안에 앉아 눈물 몇 방울 섞어 떡밥을 비볐다.
ㅡ 씨 바, 화무십일홍이었나...
바늘에 떡밥을 달며 퉁퉁 부은 눈을 들어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석양이 깔딱깔딱 산을 넘자 바람이 자고, 잔잔한 수면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퐁 !
찌가 떨어지며 석양을 해체했고, 찌가 서며 석양을 합체했다.
갈기갈기 찢어진 나도 봉합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커피를 마시며 석양이 깔린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멈칫 한곳을 주시했다.
저쪽 소류지 초입, 무너미 위에 웅크린 저것, 저건 대체 뭐지 ?
# 계속...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