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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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력

꾼들의낙원 IP : 1d5f37fd769dc87 날짜 : 2015-07-17 21:49 조회 : 3875 본문+댓글추천 : 0

언젠가 나는 섬에 방치되어 있었다.사실 섬은 고립을 뜻한다. 기실 방해받고 싶지 않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여도 섬을 감싸고 도는 것은 바다의 물길이요
파도이다.
파도에 몸을 내맡긴 채 뿌리부터 허물어져 먼 대양으로 휩쓸여 가는 것은 몸의 흔적이다.
남겨진 것과 잃어버린 것의 사이에는 흔적이 남는다.




몇 년 전 나의 단골카페 모임에서 ' 나는 만만하지 않는 놈'이었다.
기실 사소한 것으로 싸움이 벌어지는 온라인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아군도 적군도 없으며 동조자와 회피자도, 파괴자도 건설자도 뒤섞여 버리는 진흙탕에서 유일한 생존도구는
휴전이 아니라 망각이었다.
사람들의 처세의 버릇은 모두 자기중심에서 비롯된다. 그 중심에 타인에 대한 욕구보다 인정을 염두에 둔다면 싸움은 시작도 되기 전에 싱겁게 끝나버리니까



그 모임은 토론그룹이라 치열한 논쟁의 각축장이 되곤했는데 조금의 빈틈을 보인다고 느껴지만 득달처럼 달려들어 토론은 논쟁을 넘어 상대에 대한 비난과 음해성 질투와 인간성 마저 깡그리 짓밟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했던 것이다.
그런 우열을 가리는 것조차 힘든 아집과 반목의 틈바구니에서도 내가 '만만하지 않는 놈' 으로 불릴 수 있었던
비결은 언제나 '관망'이었다.
그리고 절대적인 '예의'였다.


화가 나고 상대의 거친 발언들이 목구멍 밑바닥까지 기어올라 참을 수 없을지라도 나는 절대로 상대의 인간성을 건드리거나 트집을 잡거나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거나 하는 흥분을 억지로라도 꾹꾹 가슴에 눌렀다.


몸은 불두덩이가 되어 씩씩거릴지라도 자판은 정말이지 냉정하게 썼다.
화가 날수록 상대를 예의로 대했던 것이다.
그럴때면 가식이니, 성인군자니, 쇼를 하니, 비상식적인
언급들이 상대로부터 날아왔고 그럴땐 스스로 접속을 끊고 아예 상대를 하지 않았다.





넘실대는 파도가 생채기를 내고 흉을 남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섬을 감싸고 도는 것은 바다인 것처럼
고립된 섬에 날아오는 바다새와 갈매기, 육지로부터 날아와 노란 꽃을 피우는 민들레처럼
열린 마음에는 언젠가는 모든 것이 담기는 까닭이다.
사방으로 터여서 누구라도,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벽일지라도 공중에 나는 새 한마리는 자유로운 날개짓으로
아무데나 훨훨 날아가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나는 온라인에서 관망과 예의가
어떠한 몰염치도 이겨낸다는 것과 상대의 화난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지혜로운 대처라고 지금껏 믿고 있다.




초보조사로서 바늘 하나 맬 줄 모르던 때는
오히려 고기가 더 많이 잡혔는데 나의 입장이 더해지고
스스로 봉돌을 깎아 무게를 맞추고 부력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순간엔 물고기가 내 맘 같이 않게 잡히지 않는 것처럼 때로는 가장 기본에서 시작해야 할 필요성을 깨달았던 것이다.


물론 댓가없는 배움이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충분한 근사치와 정교하고 세밀한 찌맞춤을 했다고 스스로 황홀해하는 동안에도 봉돌에 가해지는 물의 압력과
그 반발력의 무게로 수면 위로 찌를 솟구치는 부력이
생각보다 오차범위를 벗어날 때의 실망감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물고기 한 마리에 대한 기싸움과 잔존부력에 대한 나의 계산착오는 얼마든지 가감하고 골몰하며 그 수치를
가장 만족스러운 범위까지 끌어 당길 수 있지만
애초에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그렇게 계산되는 것이 아니었다.
입술을 떠난 순간의 말의 파장은 늘 제어되지 않는 수준으로 범위가 확대 되고 모두 그 파편을 맞고 패잔병이 되어 종국에는 무엇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다하는지도 모를만큼 뼈아픈 흔적만을 끝까지 남기니까 말이다.




모든 인과관계의 시작은 작용과 반작용에서 시작된다.
내가 가하는 힘만큼 상대 역시 그것을 되돌려 줄 것이며
그러한 연관성을 부정할수록 모든 사람들이 힘들게 된다.
그리고 처음부터 분탕을 목적으로 선량함을 뒤집어 쓴
과시욕에 대해서는 관객이 되는 편이
싸움의 단초를 제공하지 않는 가장 좋은 지름길이다.





봉돌과 찌와 잔존부력에 대한 나의 노력은
그래도 여전히 붕어의 습성을 이길 수 없음을 깨닫는 것이지만 충분히 낚시의 경이로움에 한 발자국
다가섰다는 위안일 것이다.




며칠 전인가 어느 카페에서 읽은 글 하나로 이 추억의 조행기인지, 서툰 지난날의 고백인지도 모를 글을 마무리
지어야 겠다.


<만약에 당신이 지금껏 인터넷 상에 적은 모든 글을 포털사이트 방송국, 기자들,SNS에 게시하는 조건으로 <br/>1억을 준다고 한다면 당신의 선택은?>


과연 나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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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TM미끄덩 15-07-18 08:15 IP : 8470f6beda2fac9
부력이라~~~??


글의 가벼움을....??


제목처럼


제가 적는 넷상의 글들이.....많이 가벼움을 저도 느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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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아일랜드 15-07-19 10:09 IP : 7457bda3baa3a00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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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 꾼들의낙원 15-07-19 13:24 IP : 2da3083dfccedac
미끄덩님 이제사 댓글을 다네요^^
가볍고 유연한게 무겁고 딱딱한 것을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 가벼움은 성급함을 가급적이면 버리는 거겠죠
저도 그게 잘 안되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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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 15-07-22 12:01 IP : 2b8538189199241
가급적이면 전 무게를 줄이고 답글을 적으려고 노력합니다

백인백색이라는 말을 실감하기에...힘든건 오프라인 한곳만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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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들의낙원 15-07-22 22:34 IP : 2da3083dfccedac
네 소유님 적당한 집착과 다른 이들에 대한 넓은 포용심이
온라인 생활을 즐겁게 만드는 지혜라 저 역시 늘 염두에 둔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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