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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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니 너의 다정한 인사 대신 휑한 바람만 나를 반긴다.
반쯤 열린 네 방문을 닫다가 갑자기 울컥하여 바로 문을 닫아 버렸다.
널 데려다주고 칠곡 지나왔다는 네 엄마의 전화를 받고는 혼자 밥상을 마주한다.
쓸쓸한 밥상은 씁쓸한 입맛으로 혀끝에 머무른다.
네가 입대하는 곳까지 따라가지 못한 것이 금방 후회가 되었다.
일이 바쁘다는 것은 두 번째 핑계였고, 실상은 약한 애비의 모습을 보여줄까
두려웠던 것이 더 큰 이유였음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2. 그 이튿날
일이 바빠 늦어진다는 네 엄마의 전화를 받고
또 혼자 저녁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매번 명절 전에 선물 받는 LA갈비를 구워 술 한잔 곁들인다.
네가 참 맛있게 먹었는데……
너와 도란도란 얘기하며 하루의 피로를 씻고 도타운 부자지간의 정을 쌓았는데……
아! ㅆㅂ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구나.
너와 같이 먹던 그 맛이 아니었고 질기기는 왜 또 그렇게 질긴지,
쏘주 한 병을 마셨는데도 별로 취하질 않더구나.
3. 셋째 날
네 엄마와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보다 네 엄마의 허전함이 더 크리라 생각하면서
애써 태연한 척 네 얘기를 하며 술 한잔 곁들였다.
잠자리에 들면서 네 엄마에게 나지막이 얘기했다.
"앞으로 10년쯤 뒤라 생각하자. 지금 그 예행연습이라 여기자."
4. 넷째 날
모임이 있어 친구들과 한참 떠들며 술 한잔하고 있는데 네 엄마의 문자가 왔다.
'아무도 없는 집에 가기 싫다.'(중략) '
그리고 아빠는 욜켸 보냈다.
'이틀 동안 나는 혼자 술만 빨았다. ㅠ ㅠ '
모임 끝내고 바로 집으로 가려는데 커피 한잔하자며 붙든다.
(이런, 마누라가 눈 빠지게 기다리는데……)
5. 다섯째 날 설날 연휴 시작
나흘 동안 큰집에 왔다 갔다 하면서 비는 시간, 집안 대청소를 했다.
큰방,거실,부엌 창고,네 방까지 깔끔하게 정리를 했다.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은 욕심이겠지.
애착이라기보다 집착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제부터는 하나씩 버리자고 네 엄마에게 얘기했다.
버리면 아쉽지만 채워지는 것은 아마 가벼움 속의 풍요이리라.
네가 떠난 빈자리의 아쉬움은 엄마 아빠가 더 가까워지는 것으로 채워지고 있다.
사랑하는 아들, OO!
군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가족의 소중함이리라.
누구나 스스로 느낄 수 있는 마음이지.
그리고 강인함을 배운다.
이것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극복해야만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군대는 시간의 허비가 아닌
강해질 수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이다.
훈련이 시작되면 체력보다 정신력으로 버텨야 할 경우가 많을 것이다.
강인해지기 위한 단련이라 생각하며 이겨내는 장한 아들이 되길 바란다.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는 날을 기다리며 이만 줄인다.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 내 아들 OO!
2017년2월5일 아부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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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만 느껴졌던 2년이 금방 지나가 버리네요.
현재 군 복무 중인 우리 아들 같은 장병들의 무운을 빌며,
모든 부모님께도 응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