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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의 하룻밤 (완결)

외대조사 IP : 1d67bcb5b6659fb 날짜 : 2015-07-05 20:50 조회 : 5621 본문+댓글추천 : 0

낚시 잡설 : 그녀와의 하룻밤

★편의상 1편을 못 읽으신 분들을 위해 1편과 2편을 함께 올립니다.

작년 이맘 때 쯤 이다.
고향 후배인 똘배와 주말을 이용해 충주호 2박 3일 출조를 계획하고 있었다.

장마철 오름 수위에 월척은 기본이고 사짜를 무 뽑듯 낚아낼 수 있다는 똘배의 말에 고무되어
나는 월요일 월차까지 내고 주말을 초조히 기다렸다.

따스한 커피를 홀짝이며 안온히 밀려오는 새벽의 피곤과 한기를 쫒고 있다.
물안개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수면에선 지루했던 기다림의 정적을 깨고 시나브로 슬금슬금 치솟던 찌불이 움찔 움찔 옆으로 게걸음을 치기 시작한다.

나는 그 순간 방아쇠를 당길 것인지 좀 더 기다릴 것인지를 고민하다
옆으로 움직이던 찌불이 다시 솟구치는 순간 힘차게 챔질을 한다.

"부장~ 니~임!

큰 붕어를 얼마나 낚으시려는지 이번 주 내내 볼펜을 들었다 놓았다 하시는걸 보니 주말에 또 낚시가시나 보다.
낚시만 가지 마시고 저 외로운 김대리도 좀 챙겨 주셨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요.
호호호."

난 출조의 설레임과 흥분으로 대물을 낚는 상상을 하며 허공에 헛손질까지 해대었고
급기야 노처녀 김대리에게 조롱까지 당하고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다니긴 했지만 똘배를 사부삼아 본격적으로 낚시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불과 삼년 전 부터다.

똘배와의 첫 출조에서 월척을 낚아낸 흥분과 설레었던 기억이 뇌리에 박혀 나도 여느 꾼들처럼 붕어의 노예가 되어 주말 만 손꼽아 기다리는 처지가 된 것이다.

주 중에는
여러 낚시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여러 열혈 꾼들이 올리는 조행기를 탐독하며
수전증을 달래었고 퇴근하면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찌맞춤 통 옆에만 붙어서 나름 채비 연구에 골몰했는데
뒤늦게 시작한 나의 낚시공부에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은 우리 집 강아지뿐이었다.

수요일 쯤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장마에
낚시 사이트에서는 오름 특수로 톡톡히 재미를 본 꾼들의 사짜 사진으로 도배가 되다시피 하고 있었다.

나는 연일 똘배와 낚시 사이트에서
얻은 충주호 관련 정보를 가지고 서로 수없이 전화질을 해대며 입낚시를 즐기느라 일주일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몰랐다.

드디어 금요일
비는 주 중 계속 내려 오름 수위 출조의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퇴근 후
허둥지둥 차를 몰아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담배 한대를
피워 물자마자 똘배로 부터 전화가 왔다.

"형! 나 못가.
시골서 빙모님이 올라오셨다고
우리집서 처가집 식구덜 모여서 밥먹기루 했디야.

여펀네가 비 구질구질 오는 디 낚시갈거냐고 근 며칠 잔소리 해쌓더니...
아마두 이 웬수가 나 낚시 못가게 작전허느라구 일부러 빙모님 불른거 가터.

대신 내 낚시 친구놈덜이 마침 충주호 간다니께 따라갈라먼 가던지.
친구놈 전번 문자해줄테니께 전화허먼 애덜이 형님으로 모실겨"

절정에 달했던 흥분이 풍선 터지듯 순식간에 사라지자
맥이 풀리며 현기증과 함께 갑자기 피곤과 짜증이 몰려왔다.

똘배와의 통화 후 근 한 시간이나 차 안에 쭈그리고 앉아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담배만 연신 피워대고 있었다.
평소 허풍스럽고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똘배의 성격 때문에 종종 크고 작은 곤란을
겪어 왔지만 이번엔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럼에도 그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는 나이는 나보다 세 살 어린 후배였을 뿐 망정
엄연히 나의 낚시 스승일 뿐만 아니라 한때 서울의 한 지역을 휘어잡았던 깍두기들의 큰형님 노릇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가 나를 형 대접하며 낚시를 데리고 다니 것만 해도 감지덕지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야 월차까지 낸 낚시를 포기하기도 좀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다.
좀 구차스럽지만 똘배가 알려준 망치라는 사람에게 묻어가기로 마음을 굳히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고심 끝에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자초지종을 구구절절 써서 문자를 보냈더니 한참 만에 문자가 왔다.

"오늘낙 시안 감니다."

젠장 긴 글에 대한 답 문자치고는 대답이 간결하다.
하지만 띄어쓰기와 맞춤법 때문에 해석이 어렵다.
잘 보니 오늘 낚시를 못 간다는 내용이다.

'죽일 놈 똘배'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져 버렸다.
나 같은 초짜에게 경험 많은 동행이 없다면 장마철 충주호는 셀파 없이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그냥 다 포기하고 짐에 갈까?

집에 갈 생각을 하니 일주일일간 기대에 부풀어 달뜬 희망의 뭉게구름 속에서
살다가 절망의 먹구름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 죽기보다 싫었으며
집사람의 잔소리와 빈정거림이 벌써 귓전에 맴돈다.

"에구 인간아!
부부동반 여고동창 모임도 낚시 간다며 산통 깨 놓더니
왜 낚시는 안가고..."

그동안 똘배만 쫒아 다니느라 다른 낚시 친구를 사귀지 못한 것이
이 순간 한탄스러울 따름이었다.

‘김 대리에게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할까?’

하지만 김 대리는 포기한 낚시 대신 선택한 차선치고는 내가 잃을게 너무 많다.
착각일줄 모르지만 평소 김 대리가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술 마시고 사고를 칠게 뻔하다.
사내불륜 이라니...
난 조만간 가을 정기 인사에서 유력한 진급 대상자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 몸이다.

그때
낚시 사이트에서 동행 출조 할 꾼들을 구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났다.
안경을 치켜 올리고 침침한 눈을 연신 비벼가며 낚시 사이트에 검색어로
‘충주호 동행출조’ 라고 써보았더니
마침 글이 하나 올라 있다.

이 번 주말 충주호 동출 할 분 연락 주세요. 010 ○○○ ○○○○
글 작성자; 로테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더니 왠 여자가 받는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급히 통화 종료키를 눌러버렸다.

번호를 잘못 보았나 생각하며
아까 낚시 사이트에서 캡쳐 해두었던 로테라는 사람의 글과
전번을 다시 확인해 보았지만 번호는 정확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로테라는 닉네임의 주인공은 여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자가 충주호 동행 출조자를 찾는 글을 올리다니 웬만한 강심장을 소유한
여자 아니고서는 보통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질 않는다.

이제 더 이상 다른 대안도 없다.
다시 걸었다.
아까 그 여자다.

충주호 동행 출조 글을 올린 분이냐 물었더니 자신이란다.
전화가 몇 통 왔었지만 자기가 여자임을 확인 하자마자 모두
일언반구 없이 전화를 끊었다며 깔깔 웃는 목소리가 유쾌하다.

자신은 이미 출조 중이며 낚시를 하고 있지만 사정상 충주호는 아니고 천안 인근의 산속 소류지에서 독조 중인데 원하시면 주소를 불러 주겠단다.

천안이라면 나도 충청도가 고향인데다 십년 전 장모님이 작고하시기 전 까지 자주 드나들던 처갓집이 있던 곳이라 전혀 낮선 데는 아니다.

그런데 여자라니...
상황이 좀 맹랑하고 당혹스러우며
다소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지만 색다른 매력이 있다.
어차피 똘배의 전화를 받은 후부터 정상적인 출조는 힘들어 탓에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낚시를 끝낸 후 장모님의 산소에
다녀와도 괜찮을 듯 싶다는 생각을 하며 네비에 여자가 알려준 소류지 주소를 입력하고 출발한 시간이 8시를 넘었고
비 내리는 고속도로는 정체까지 겹쳐 11시가 가까워서야 목천 톨게이트를 통과했다.

고물 네비는 수원을 지날 무렵부터 화면이 흐려졌다 밝아졌다를 반복하더니
어느 마을 입구 교회로 보이는 건물 앞에 이르자 저수지까지
마지막 1키로 남았다는 화면을 끝으로 정지된 채 먹통이 되고 말았다.
그녀에게 위치를 확인 하려고 전화를 여러 번 걸었지만 받지를 않는다.

마을에서도 1 키로 더 진입해야 한다면 경험 상 상당히 외진 저수지임을 직감한다.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켜고 마을 인근 소류지를 찾아보았더니 산속에 작은 점으로 표시되는 소류지가 보인다.

빗줄기는 거세어 졌고 바람까지 세차게 불기 시작하자 또 마음이 혼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이런 날씨에 일면식도 없는 여자와 붕어를 잡겠다고 나선 꼴 차체가 참으로 한심하고 우스운 꼴이다.
아까 똘배가 못 간다고 전화 왔을 때
그냥 집에 들어가서 마누라 잔소리야 어쨌든 맥주나 마시면서 전쟁영화나 한 편 다운 받아보는 것이 훨씬 나은 판단이었으리라.

하지만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왔다.
고작 1키로 남았으니 그녀의 얼굴만이라도 보고가자.

그것이 통화한 사람에게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하며 스마트폰에 나온 지도에
의지해 간신히 소류지에 도착했다.

제방 밑에 주차를 한 후 트렁크에서 장박 낚시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먹을거리 중 일부를 그녀에게 주려고 봉지에 주섬주섬 담기 시작할 무렵부터 거짓말처럼 비바람이 그치더니 하늘에는 별까지 총총 보이기 시작했다.

모자를 쓰고 플래시를 켜니
잠깐 반짝거리더니 아예 켜지질 않는다.
젠장 일이 계속 묘하게 꼬인다.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고 제방을 넘어서자 아담한 소류지 상류 방향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파란 점들이 여러 개 보인다.

여자조사 치고는 내공이 있는 듯 보여 일단 안심이 되었고 어찌됐듯 상대가 여자라는 점에서
색다른 설레임 마저 일고 있었다.

아까 통화했던 사람인지 소리쳐 확인 하려다가
낚시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저수지 연안 옆 질척이는 숲길을 따라 더듬 더듬 케미가 보이는 곳으로 다가갔다.

희미한 어둠 속 누군가가 앉아있다.
나는 몇 걸음 더 가다가 헛기침을 한 번 한 후 ‘로테님이세요?’ 하고 물었다.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던 그녀가
화들짝 일어서더니 ‘안녕하세요’ 하고 명랑하게 인사를 한다.

나는 로테님인지 다시 물었고 그녀는 잠깐 졸고 있었노라 말했다.
그녀가 갑자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고 엉겁결에 잡은 그녀의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운데다 바르르 떨고 있어 흠칫 놀랬다.

비바람 속에서 낚시를 했으니 추운 것도 당연하리라.
비닐봉지에서 캔맥주를 하나 꺼내 주었더니 술은 못 마신다며 사양을 한다.

원래는 충주호를 정말 가고 싶었으나 자신도 낚시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혼자 출조는
엄두가 나질 않아 낚시 사이트에 동출자를 찾는 글까지 올렸으나 아무도 희망하는 이가 없어 어릴 적 외갓집 근처의 소류지가 생각나 이곳에 왔다 한다.

아까 지나쳤던 마을에 있는 조그만 교회가 자기 외갓집이라며 와주셔서 외롭지 않겠노라 감사하다며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조과는 있었느냐 물었더니 비바람 속에
물결이 일렁여 낚시를 포기하려 했는데 마침 내 전화를 받고 기다리고 있었노라 했다.

순간 마을 입구에서 포기하고 돌아갈 생각을 했던 내가 부끄러워지며 그 비바람 속에서 떨면서 언제 올지도 모를 나를 기다린 여자를 생각하니 애처롭고 숙연한 기분마저 들었다.

어둠 속인데다 모자를 쓰고 있어 얼굴은 자세히 확인하긴 어려우나 모델 같은 늘씬 한 키에 말투에서는 김 대리와는 차원이 다른 예의바른 교양마저 묻어 나오고 있었다.

어떤 사연이 있어 묘령의 처자가 산속 소류지에서 낚시를 하며 나 같은 사람과 인연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대물을 바라는 꾼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지는 듯 하다.

이왕 왔으니 대나 펴보자.
그녀에게서 30미터 쯤 떨어진 저수지 중간,
장마로 인해 숲에서 부터 새물이 꿀렁거리며 흐르는 옆에 자리를 잡았다.

비는 이제 완전히 그쳐 공기는 서늘하다 못해 한기가 느껴졌고
숲에서는 장마철 특유의 싫지만은 않은 나무냄새가 코끝을 자극하고 있었으며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느새 반딧불이도 간간히 날아다녀 낚시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일단 반응이나 보자는 심산으로 별 기대 없이 두 대만 펴고 옥수수를 달아 넣자마자 찌가 꿈틀 거리며 찌가 끝 모르게 솟아오다 옆으로 질질 끌린다.

언젠가 이 상황을 이미 경험한 듯 순간 데쟈뷰를 느끼며 자꾸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다 셋을 천천히 센 후 힘차게 챔질을 하자 씨~익하는 소리를 내며 대가 물속으로 쳐 박히기 시작했다.

1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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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가슴에선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는 소리가 귓가에 까지 쿵쿵 울렸고 한 참 힘겨루기 끝에 거칠게 반항하는 놈을 제압해 뒷걸음 쳐가며 간신히 끌어내니
엄청난 크기의 물고기가 펄떡이며 몸을 뒤집는다.

잉어 같은데?

스마트폰으로 비추어보니 분명 붕어가 틀림없다.
어림짐작으로도 사짜는 넘어 보인다.

계측자에 올려보니 사십을 넘어 사십 이센티에 육박하고 있다.
심장이 터질 듯 벅찬 환희가 밀려온다.

붕어를 살림망에 넣고 흥분된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떨리는 손으로 담뱃불을 붙이려는데
이번엔 옆 낚싯대의 찌가 슬금슬금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한 점이었던 불빛이 천천히 어둠을 뚫고
위로 아래로 갈라지며 시나브로 하염없이 벌어진다.

이젠 첫 입질에 비해 좀 여유롭다.

찌의 상승이 시작된 후 부터
천천히 넷까지 세고 챔질.

또 쉬이익 소리를 내며 대가 쳐 박힌다.

또 놈을 망에 넣고 그녀 쪽을
바라보니 기척도 없이 앉아만 있을 뿐 나의 연이은 대물 손맛에 반응이 없어 내심 서운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나만 손맛을 보는 듯 해 송구스러운 마음에 뭐라 농이라도 한 마디 할까 하다 그만 두었다.

내일 아침 사진 좀 찍어 달라 부탁 좀 하고 철수 길에
식사라도 대접해야겠다.

똘배를 생각하니 화도 나지만 녀석 때문에 이제부터 똘배 외에 낚시 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
낚시 갈 때 같이 가끔 동출 하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멋쩍어져 나도 모르게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괜한 헛기침을 몇 번 했다.

그사이 또 찌가 솟아오른다.
그날 나는 손목이 뻐근할 정도로 손맛과 찌르가즘을 원 없이 만끽을 했다.

동이 희부연 하게 밝아올 즈음에야
쉴 새 없이 이어지던 붕어들의 입질이 갑자기 끊어졌고
그제서야 나는 감당 못할 피로와 잠이 쏟아지는 바람에 망 속에서 몸을 뒤집느라 철석거리는
괴물 같은 덩어리들을 흐믓히 바라보다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시끄럽게 울어내는 새소리에 잠을 깼다.

사방은 이미 밝아졌고 기지개를 켜며 주의를 둘러보니 그녀가 보이질 않는다.
완전히 철수를 한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녀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자
남들은 평생 보기도 힘들다는 사짜손맛을 원 없이 봤다는 믿지 못할 희열과 감동보다는
갑자기 외로움과 아쉬움이 강하게 밀려들며 어찌된 일인지 슬픔마저
느껴져 머리가 혼란스럽다.

하늘에선 먹구름이 다시 몰려오기 시작했고 피곤 탓인지 이명과 함께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한다.

그때 후둑거리며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퍼붓기 시작하자 더 이상 저수지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일단 살림망에 들어있던 붕어들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하니 스마트폰이 작동을 하지 않는다.
그사이 배터리가 방전이 된 모양이다.
증거를 남기지 못함이 조금은 아쉽기도 하지만 허둥지둥 장비를 챙겨 저수지를 황급히 뜰 수밖에 없었다.

마을의 교회 앞을 지나치면서는 혹 그녀가 여기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잠깐 들려 인사라도 나누고 갈까 했지만 괜한 짓을 하는 것 같아 그만 두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정작 대물 붕어사진을 찍지 못한 때문만은 아닌 정체모를 아쉬움이
증폭되기 시작해 혼란스러웠다.

아마도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자리를 떠야하는 상황에 내가 곤히 잠들어있으니 차마 깨우지 못하고 철수 했을거야...

나는 그녀가 말도 없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나름 추리를 하며 고속도로에 접어들었고
2박3일을 예정했던 출조는 우여곡절 끝에 믿기지 않는 꿈같은 상황만을 머릿속에 남긴 채 단 하룻밤 만에 종료되고 말았다.

서울에 도착해서는 어딘가 위로 받지 못할 것만 같은 진한 아쉬움과 여운이 계속 몰려와
결국은 김 대리를 불러내 밤새도록 술을 마셨고 나머지 휴일을 김대리 집에서 보낸 후 초췌한 몰골로 집에 귀가를 했다.

월요일 출근하니 책상 위에는 인삼음료 캔이 하나 놓여있다.
캔 옆구리에는 부장님 파이팅 어쩌구 하는 내용의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는데 김 대리 글씨다.

김대리와 눈이 마주치자 찡끗 윙크하는 것을 멋쩍은 표정으로 애써 외면하며 옥상으로 가서 똘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똘배야 이게 무슨 일인지 도대체 이해가 안간다...
네가 금요일 낚시 못 간다 나에게 전화하고 나서....

한참 흥분해서 두서없이 금요일과 토요일에 걸쳐 일어났던 이야기를 마치자
똘배는 한참을 낄낄거리더니

“형 구라 좀 치지 마유,
형 같이 소심헌 사람이 무슨 여자랑 낚시를 했다구 그러는규?
난 여태 낚시 댕기먼서 여자 혼자 독조 허능거는 단 한 번도 못봤슈.
거기다 이쁘기 까정?
이쁜 여자가 뭐허라 낚시를 댕겨유.

그러구 사짜 비스므리한거 사진이라두 보내주먼서 구라를 쳐야지...
사진두 읎이 말루만 잡았다는거 인정 뭇허쥬, 낄낄낄“.

그나저나 형!
몇 년 전 신경쇠약 때미 병원에 다녔다더니 또 도지는거 아뉴?“

주 중 내내 되풀이 되는 전화에서 똘배는 믿어주기는커녕 급기야
나를 미친놈 취급하기 시작했고
김대리의 끈적거리는 눈길이 부담스러워 괜한 사고를 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으며
계속되는 비에 원인 모를 짜증이 몰려왔고
로테라는 여자의 특유의 맑고 명랑한 깔깔거림이 자꾸 귀에 울려퍼져 신경이 쓰였다.

수요일 무렵 야근을 핑계로 직원들을 다 퇴근 시킨 후
한참을 망설이다 ‘로테’ 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로 하고 옥상에 올라가
심호흡을 하고 발신을 눌렀다.

“이 번호는 없는 번호이니 다시 확인하고 걸어 주십시오. ”

“이 번호는 없는 번호이니 다시 확인하고 걸어 주십시오. ”

“이 번호는 없는 번호이니 다시 확인하고 걸어 주십시오. ”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똑 같은 기계음만이 되풀이 될 뿐이었다.
분명 지난 주 금요일 밤 통화까지 했던 번호가 갑자기 없는 번호라니...

나는 허둥지둥 사무실로 내려가 노트북으로 그녀가 충주호 동출자를 찾는다는 글을 다시 확인해 보기로 하고 충주호 동행 출조를 다시 검색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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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번 주말 충주호 동출 할 분 연락 주세요. 010 ○○○ ○○○○’

글 작성자; 로테 2013, 06, 26
...................................................................................................

나는 순간 머리가 쭈뼜 서고 전신에 소름이 돋음을 느끼면서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갑자기 몰려온 한기에 손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지난 주 금요일 차안에서 애플폰의 작은 화면으로 검색해 낸 ‘로테’ 의 글은 벌써 이년이 지난 글이었다.

그날 더듬 더듬 침침한 눈으로 간신히 로테의 글을 검색까지는 했지만 글이 등록된 날짜까지는 확인을 못했던 것이다.

도대체 상황정리가 되질 안으니 또다시 이명이 울리며 하늘이 빙빙 돌고 신열까지 오른다.

한참 만에 간신히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진정하며 그녀가 자신의 외갓집이라 하던
교회를 검색해 내고는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두어 번 가더니 할머니쯤으로 판단되는 목소리가 전화를 받는다.

‘ 여보셔유?’

“ 저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만 손녀따님과 통화하고 싶은데요.
전화번호가 바뀌었는지 통화가 안 되네요. 바뀐 전화 번호 좀 알 수 있을까 해서 전화 드리는 겁니다.“

“뭔소리 허능건지 모르겄슈. 우리는 손자는 있어두 손녀는 읎는디...

“거기 교회 아닌가요? 손녀라는 분이 그 교회가 자기 외갓집 이라는 소리를 했는데...

“어이구 이런 전화 또 왔네... 쯧쯧.

“이런 전화라니요?

“지금은 예배당 전화가 아니라 가정집 이구유.

목사님네 외동손녀 딸...

에휴...

먼 놈의 여자가 시집은 안가고 서른 넘다락 낚시에 미쳐 돌아댕기쌓더니...

저수지서 이 년전 요맘 때 목매 자살허구나서 목사님두 곧 시상 떴는디....

가끔씩 목사님 손녀 딸 찾는다고 남자덜 헌티 전화오는디 제발 즘 전화 즘 허지 말유.

그렇지 않어두 미서워 죽것는디....
.
.
.
.
할머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공포에 질려 내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리기 시작했고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며 똘배에게 전화를 하려는 순간.

우르르 꽈광!

천둥 번개 때문에 정전이 되어 사방이 암흑으로 변했고
몇 초 후 잠시 죽었던 노트북이 암흑 속에서 되살아나기 시작하더니
모니터에서는 어둠 속의 잔영을 배경으로 모자 쓴 여자가 희미하게 서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끝.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열왕기 6:15-23절 )

faked by 천안 외대조사
추천 0

1등! 달구지220 15-07-05 20:59 IP : d7c722671ff5b27
힠!!!

웬일이레유????
추천 0

2등! ⛅천궁™ 15-07-05 21:06 IP : 2a8ebd72e73dd0c
퍼유......
추천 0

3등! 물그늘 15-07-05 21:24 IP : 65c482a0bc90e15
외대조사님^^^
글을 읽는동안 긴장과 궁금증의 연속이었읍니다.
중독성있는글~잘 읽었습니다.
외대조사님의 다음 글이 벌써부터 기대되는군요!!?
추천 0

™피터 15-07-05 21:36 IP : 78f68a29081aed6
오랜만에 맛있는 글 맛있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추천 0

물향케미 15-07-05 22:22 IP : dd0b40d20474494
엉?엉엉!!
추천 0

ponza 15-07-05 23:28 IP : c44de57a35f0c06
휴 안타깝네요
2년전에 여인네라고
기왕이면 그날
찐한 데이트라도 하시지 ^^
추천 0

修身濟家 15-07-05 23:51 IP : 19049584904ae84
잘읽었습니다ᆢ글솜씨가참좋으세요
추천 0

노벰버레인 15-07-06 04:16 IP : 8b53f25061f1d45
감사 인사 먼저 드리고

글을 읽는동안.....즐거웠습니다

최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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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커피향 15-07-06 09:19 IP : ee665c0c355ac3d
간만에 재미난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작품도 벌써 기다려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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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와춤을 15-07-06 09:23 IP : 8935d27202179c8
흐으 저마저고 싸해 집니다.

이제 장마철 오는데 ~~~~~~~~~~~~~~

멋진 작품 잘 보고 갑니다.

다음편 또 기다려 봅니다.공짜로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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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 15-07-06 10:05 IP : 2b8538189199241
오............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단편 웹툰으로 올라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것 같습니다

다른 이야기 또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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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15-07-06 16:39 IP : d51c3c1d98880e0
완전한 한편의 소설 입니다.....
잼나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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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냐 15-07-06 16:58 IP : f58afd32fac31f4
외대조사님의 필력에 혀를 내두르고 갑니다...
정말.....소설 써보셔도 될듯 하네요.....허
근데...김대리는?? 외전같은거 없으려나요?? ^^;;(노..농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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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붕어 15-08-18 14:45 IP : 58ffce4d5c1b080
faked by ...ㅎ

똘베로 시작해서 딸기로 냉각시키고 로테로 서늘한 여름 잘 보냅니다~^^

좋은 작품 많이 읽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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