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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로 완전 뻗어 버린 낚시 바늘……
아부지는 낚시터 주변의 버려지는 낚시바늘, 봉돌, 찌…등을 주으셔서 재활용 하셨습니다.
멍텅구리 바늘은 바늘만 빼어서 새로 묶어 쓰셨고, 봉돌은 신주철사를 고리로 만들어
고리봉돌로 만들어 쓰셨고 부러진 찌는 붙여서 다시 사용하셨습니다.
아부지의 손재주는 그야말로 예술 그 자체였습니다.
낚시 가방은 손수 재봉틀로 박아 만들어 쓰셨고 살림망은 못쓰는 낚시줄로 짰습니다.
새우틀은 모기장으로 만드시고 낚시의자는 물론 웬만한 것은 스스로 만들어 쓰셨죠.
저 역시 아부지 아들이라 어지간한 것은 고쳐서 쓰고
찌통,낚시대 거치대,민물.바다 뜰채,수초 제거기, 바늘 채비집, 지렁이통…등을 수리하거나
만들어 씁니다. 돈 아끼는 것 보다 수리하고 만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아부지 생각하면서 추억에 잠기기도 하구요.
컴맹수준이라 나의 낚시장비란에 올리지 못함을 아쉽고도 미안한 마음입니다.
아들넘에게 부탁하려니 좀 그렇네요.
저의 또래 아버지 세대 분들이 거의 그러하였듯이,
아부지 역시 근검,절약의 표본이셨습니다.
당신을 위해 쓰시는 돈은 낚시를 가실 때의 경비이외는 거의 없으셨습니다.
화장지, 절대 안 쓰셨습니다. 신문지를 오려서 쓰셨고,
담배도 아껴 피우신다고 한 번 피우시고 끈 다음, 이후에 다시 피우셨죠.
집에서 가내공업을 하셨는데, 언제나 한결 같은 모습으로 묵묵히 일만 하셨고
유일하신 낙이 일요일 낚시가는 것 이었습니다.
아부지의 그런 지나친 절약정신이 젊은 시절 저에게는 큰 반항을 불렀습니다.
삐딱하게 대답하거나퉁명스럽게 대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아부지는 가르치려 하시거나 훈계를 하시지 않고 빙그시 웃기만 하셨습니다.
그러던 제가 지금은,
아부지 하시던대로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휴지를 쓸때도 꼭 두 칸, 세칸을 따지죠. 낚시터에서 득템한 쓸만한 파라솔은
아직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쓰던 파라솔 고치고 고쳐서 15년 가까이 쓰고 있습니다.
20년 된 애마도 바꾸지 않았던 것은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아부지의 근검정신이 어느새 몸에 배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생각과 실천이 옳은 방식이라 말씀 드리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보아 주시길 바랍니다.
아부지는 저에게 매를 한 번도 들지 않았습니다.
형들에게 까불다가 혹은 공부 안한다고 맞은 기억은 있으나
아부지는 늘 무언의 미소로 나무라셨습니다.
화가 많이 나시면 아랫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정도였고, 그 때는 제가 알아서 꼬리를 내렸죠.
총각 때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다 새벽녘 귀가한 적이 있습니다.
깜빡하고 대문 열쇠를 가져가지 못했죠.
할 수 없이 대문옆 담을 타고 몰래 들어 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셔서 마당과 대문 앞을 쓰시다가 그 흔적을 발견하셨습니다.
눈물이 찔끔나도록 엄청 혼났습니다.
그리 화를 내시는 것은 거의 처음 보았으니까요.
그런데 아부지의 꾸중은 늦게 들어온 것에 대한 질책이 아니라,
담을 타고 넘다가 떨어지면 어떻게 되냐는 철 없는 자식을 걱정하는
사랑의 질책이셨습니다.
아부지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사셨지만
저에게는 하나의 큰 산으로 버팀막이 되신
제 인생의 큰 스승이기도 합니다.
삶이 힘들거나 지칠 때,
아부지가 더욱 그리워 집니다.
"아부지, 아부지 아들로 태어나 행복했었습니다.
다음 생이 있다면 또 아부지 아들로 연(緣)을 맺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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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아버님이셨군요.
지금은 아부지와함께님이 훌륭한 아버지이시고요.
잘 읽었습니다. 가슴이 찡하면서 흐믓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