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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 않았기에 당연히 대답도 없었지만,
나는 집사다, 라고 미리 못 박는다.
설령, 쥔장이 거부해도 뭐 어쩔 수 없다.
내게 딱 하나 남은 욕심이다.
경남 함양에 위치한 풍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의 물벗 대두 소풍님이 쥔장이다.
서울에서 하던 업을 접고 귀향한 소풍군은
본가에서 가까운 곳에 복상사를 지었는데,
훗날 우리는 이곳을 혼외정사라고 부르게 됐다.
(나는 소풍군을 귀두무분ㆍ제수씨를 사타구니라고 부른다)
지금부터는,
음란한 혼외정사보다 순결하게 풍가라고 칭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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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가는 호사스럽게도, 물 맑은 저수지를 끼고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둑방 옆에 차를 세우고 심호흡을 하는데,
풍가 초입의 라벤더 향기를 맡기 위함이고,
또 귀두무분 소풍과의 대면을 앞둔 긴장을 풀기 위함입니다.
방심하면 날아오는 촌철살인을 이번엔 꼭 피할 것입니다.
고요한 게, 다행히 아무도 없는 듯합니다.
살금살금 저수지를 돌아 골자리에 자리를 잡습니다.
오빠 왔어? 샛길에서 우수수 낙엽들이 달려옵니다.
ㅡ 올라오이소. 산책 하입시다.
축사에서 돌아온 소풍군을 따라 풍가를 돌아봅니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소풍군의 정성이 자리를 잡아갑니다.
ㅡ 전부 다 일이네. 고생 많았겠다.
ㅡ 하이고 말도 마이소.
ㅡ 아니, 자네 말고 제수씨.
ㅡ C...
ㅡ 우야든동 몸 챙기면서 열심히 해라.
ㅡ 와요?
ㅡ 곧 은퇴하고 들어올 기다.
ㅡ 허락도 없이요?
ㅡ 암만 ! 니는 내 밥이야 !
ㅡ C...
살다 지치면 풍가를 찾습니다.
별채 커다란 창문으로 보이는 새벽은 일품입니다.
바람을 타는 물안개.
그 사이로 보이는 앞산은 마치 엎드린 공룡 같습니다.
소풍군은 저를 무지 존경하고 흠모하지만,
그는 결코 먼저 다가오지 않습니다.
저의 사색을 침범하지 않는 배려라는 걸 압니다.
그의 시선을 느끼고 물어봅니다.
ㅡ 자네가 봐도 사색하는 내가 멋지나?
ㅡ 먼소리요? 형수가, 물에 들어가는지 감시하라 카데요.
ㅡ C... ㅡ,.ㅡ"
이틀, 잘 쉬다 옵니다.
엄마 품처럼 아늑한 풍가가 있어 참 다행이고,
멋진 벗이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제가 이런데, 소풍님은 또 얼마나 좋을까요.
어디 가서 소풍님이 저 같은 사람을 만나겠습니까 !
신분 상승의 기회. 가문의 영광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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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일상.
탈출이 필요하신 분이라면 풍가행을 권해 드립니다.
근교의 관광지는 덤이고,
풍가의 고즈넉 속에서 몸과 마음을 달래 보세요.
단풍 아래 젖어들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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