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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좌대 이야기

꾼들의낙원 IP : 70c860ef2447a30 날짜 : 2022-11-29 22:58 조회 : 6701 본문+댓글추천 : 12

 

저는 96년도에 처음 경산에 왔습니다.

윈도우 95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마이크로소프트사 빌게이츠가 컴퓨터에 창문 개념을 도입한 시스템으로 컴퓨터 업계 지각변동을 일으키던 그때(?)

엥~ 이건 아니가!!! 낚시랑 뭔 상관, 세상이 혁신과 변화의 추세에 몸살을 앓고 있을 때 여유자적, 태평하게 낚시에 빠진, 물 만난 고기 같았던 그때의 저는 바늘 크기의 개념조차 없었지요.
 


붕어바늘 5호, 콩떡밥 낚시!!!

손가락 두마디, 어쩌다 손바닥 네마디의 6치 붕어라도 낚게 되면 그날은 횡재였습니다. 황금빛의 붕어는 음계와 같습니다. 표본이자 규칙이란 뜻이지요. 여기서 떡밥신공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일취월장 꾼의 반열의 시작이 되느냐가 결정되던 시기였습니다.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은 남매지!!!
그러니까 경산시 계양동에 위치한 지금은 경산시청이 자리잡고 공원화 된 못.
제가 경산에 처음 낚시를 올 때만 해도 크나큰 저수지였죠.
가장 오래 남은 기억이란 덜떨어진 왕초보 낚시꾼인 제게 봄날이었던가요.

상류에 새물이 들어오는 진흙탕 자리에 인접한 아저씨가 붕어를 잡을 때마다 끓이고 있는 라면에 통째로 풍덩~ 사양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젓가락 하라고, 하라고!!!!!!!!
저는 씻지도 않고, 흙탕물에서 막 잡은 붕어를 보고 아닙니다. 아닙니다. 손사래치는데 어른이 권하는 걸 자꾸 거절하는 것도 그래서 어쩔수 없이 한젓가락 했습니다.
놀랐습니다. 세상에나 그 장소, 그 시기, 그 여건, 그 지형, 그 상태의 꾀죄죄한 몰골로 결코 나올수가 없는 라면 맛이었습니다.
아직도 충격과 당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그 맛이 기억속을 맴돌고 있고 이후 아무리 좋은 재료, 신선한 해산물을 넣어도 그때 당시의 라면맛을 재연해 낼 수가 없었죠.
남매지는 이후 준설공사와 낚시 금지구역으로 경산 자인으로 지나가는 길목이 되었습니다.
 


경산지역에서 유료낚시를 처음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경산지역의 유료터(청소비명목)를 통해 어분에 대한 대략적인 감각을 익힙니다. 사실 향어와 잉어라는 대상어종은 붕어바늘 5호로는 당연히 감당이 불감당이죠.
이는 E컵의 탄탄한 육감적인 가슴을 맞지 않은 옷차림에 구겨넣고 붕대로 싸맨 것과 같았지요.

낚시점에 팔던 흔하디 흔한 붉은색의 목줄이 매인 여차하면 끊어지고 부러져 짜증지수를 500만배 확장시켜 머리끝까지 찜통으로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쑤발의 급발진 요인!!!!!
왜 이럴까, 왜 자꾸 끊어질까, 왜 남들은 30마리씩 망태기에 잡는데 나는 입어료 3천원, 5천원 날리고만 있고, 메기나 작은 붕어에 만족하고 있는 걸까?
잉어바늘과 서울바늘(양바늘)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녹색의 목줄에 매달려 위용을 자랑하던 큰 치수의 잉어바늘 ㅋ
드디어 저도 잉어낚시의 람보와 코만도가 되어 m60을 한 손에 들고 난사하듯이 잉어와 향어 타작을 하게 된 것이었죠.
구멍치기로 어분을 밀어넣으면 하룻밤에 몇 십수씩은 아주 그냥 쥑여주는 거였고요.

*양어장의 잉어와 향어는 손맛이 꽤 좋았지만 고기넣는 날 잡히는 잉어와 향어는 그냥 질질 끌려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팔려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데 집도 절도 없이 가생이만 서성거리다가 초보꾼에 잡히는 탓이었습니다.
그렇잖아요. 마음이 편해야 혈기왕성, 입맛 따봉이었던 것이죠. 사람이나 고기나 환경이 불안하면 가출하고 거리를 전전하면서 방황하게 됩니다. ㅋ

암튼 경산은 낚시의 메카가 분명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꾼들을 통해서 채비법, 미끼, 찌의 선택, 봉돌과 부력, 붕어낚시의 전반을 배웠으니까요.
관통찌, 들어뽕, 백초찌, 물찌, 방랑자채비, 해결사채비, 군계일학, 스위벨채비, 얼레채비, 중통채비, 사슬채비, 옥내림, 옥올림채비 등등 온갖 설왕설래와 경험과 여럿 성격의 꾼을 만나고 낚시에 진심인 시기였습니다.
500여 곳이 넘는 저수지, 엄청난 어류의 분포도, 대물터가 곳곳에 산재한 꾼들에게는 실로 낙원인 지역이었지만 유별나고 괴짜도 많고 스티로폼은 기본, 파이프 박아 나무판자로 만드는 좌대가 기본, 낚싯대 도둑도 많고, 그물쳐 고기 잡는 이도 많았던 지역!!!!
정말 그곳에서 치열하게 낚시를 배우긴 했습니다.



■받침대와 뒤꽂이

당시 낚싯대는 2대나 3대 셋팅이 주였습니다.
잔챙이 붕어를 잡고, 떡밥낚시를 하는데 굳이 여러대를 편다는 것은 일종의 자연에 대한 배신이자 환경에 대한 욕심이라 생각했고 그때 당시 드물게 다대낚시를 하는 분들은 저수지에 붕어 씨를 말리려고 지혼자 밖에 모르고 여럿 낚시꾼들에게 민폐라 생각했습니다.
뭐 얼마나 잡겠다고 좁은 저수지에 혼자 8대씩, 10대씩 편성하느냐고 다들 혀를 차며 수근거리곤 했습니다.
지금  그때 당시를 되돌아 본다면 그들은 선구자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붕어낚시의 다대편성이 아무렇지 않게 유행한 것은  FTV의 개통과 더불어 폭발적으로 저변이 확대가 된 것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또한 지금처럼 특정 메이커로 완전 깔맞춤하여 눈요기로 압살하는 낚싯대 전시의 장도 아니었고요.
기본으로 잘 사용하는 몇대, 아니면 낚시가방 안에 굴러다니는 한번 관절이 끼면 잘 빠지지도 않는 온갖 종류의 받침대와 낚싯대, 뒤꽂이가 제멋대로 활용되던 시기였죠.

양어장, 유료낚시터 낚시는 다니는데 바늘 호수도, 바늘 맬줄도 모르고 잉어와 향어를 잡았고 그런 가운데 주변 낚시꾼들로 하여 붕어 월척에 대한 개념과 채비법, 원줄과 목줄의 선택, 다대편성에 대한 최초의 감을 잡아가던 시기였습니다.

아 물론 조구회사들의 용품 또한 초보수준을 벗어나기 힘든 수준의 시기였고요.
파라솔은 파라솔대로, 약한 살대와 햇빛 가림의 용도조차 만족스럽지 않은 무지개색, 파라솔 텐트는 강한 파람에 설치조차 제대로 안되는 경우로 짜증을 불러왔죠.
지금처럼 지퍼로 잠금장치하는 일체형이 아니라 덮어씌워서 끈으로 묶는 형태이고 워낙 얇은 천쪼가리인 탓에 가림막으로서의 기능성 보다는 낚시꾼이 낚시하고 있는 자리의 의미가 컸습니다.

모래넣은 포대나 나뭇 파레트를 차에 싣고 다니면 낚시골수꾼이 되는 형편이었습니다.
받침대와 뒷꽂이는 존재했고 총알의 개념은 공깃돌 놀이 만큼도 잡히지 않았던 시절.
스티로폼 보트의 등장과 현지인들의 말뚝좌대가 기발함을 넘어 서서히 볼쌍사나운꼴로 자리잡았던 그 시절,
누구나 낚싯점에서 사온 물품껍질과 지렁이통, 사용한 떡밥봉지, 수퍼표 검은 봉다리는 물가에 버리고 가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
담배꽁초는 물가에 투척해야 불이 안난다고 믿었던 시절,
누가 민폐를 끼치는지 너나나나 형아우도 없던 시정잡배의 시절.
좀 사이즈가 크면 그 자리에서 배를 따고 매운탕이며 월척이라도 잡을라치면 찜통에 통채로 푹 삶고 고아서 몸보신이라며 온갖 지인들에게 맛보라며 한달 보름, 올챙이 뱃살 허옇게 드러낸 상반신 누드로 온 저수지를 제 집인양 돌아다니며 이곳저곳 간섭하면서 생색은 또 다내는 장박을 하던 꾼의 모양새가 저수지마다 넘치던 시절.
버리고 간 낚시 쓰레기가 산더미를 이루던 저수지의 입구와 둑방, 그 꼴을 보고도 기어이 자신도 에라이~하면서 보태고 모른척 가던 시절!!!!



■섶다리의 등장과 지각변동

4대 이상을 펴면 붕어 씨를 말린다고 주변 꾼으로부터 눈총을 받던 꾼들에게 받침대와 뒷꽂이를 청석밭에 꽂지 못해 모래포대를 가지고 다닐 필요없고 어떤 지형이나 잘 펴고, 모양과 뽀대마저 근사한 섶다리의 등장은 가히 낚시인에게 혁명이었습니다.

받침대나 뒤꽃이가 청석밭에 꽂힐리가 만무할 때에 섶다리는 천군마마를 얻은 것 같았고 꾼들은 이제 나날이 편리한 조구용품에 눈을 뜨게 되었죠.
연질대, 중경질대, 경질대와 같은 낚싯대의 혁신 또한 시작된 시기였죠.
나뭇가지 꺾어 받침대와 뒤꽂이를 만든 유유자적한 낭만은 사라지고 낚시꾼과의 경쟁의 서막은 그렇게 도래합니다.
누가 먼저 포인트를 선점하여 가장 붕어를 잘 잡느냐, 이왕이면 채비를 어떻게하면 멋지고 깔삼하게 까느냐, 그리고 월척잡기가 유행처럼 번졌지요.
한정없는 고기욕심은 장비가 변할수록 더 한껏 욕망에 영혼을 저당잡힌 것입니다.

섶다리의 등장은 당연하게도 발판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초기는 무겁고도 단순무식한 형태였지만 대물낚시가 불러온 다대편성은 효율적이며 편리한 공간적 포지션 선택에 목마른 낚시꾼들에게 기회의 장이 되었고 섶다리와 발판, 받침틀의 등장이라는 무한경쟁의 조구업체의 신제품과 낚시꾼의 탐욕이 맛물려 일취월장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 것이죠.

그리하여 낚시꾼은 절대호구라는 신조어 또한 서막을 알립니다.





■발판과 좌대 그리고 받침틀


자리는 혼자 죽어라 차지하면서 주변은 배려할지도 모르고, 기본이 말술이요, 목소리는 기차화통을 삶아 먹고
온 저수지를 지들만 전세내는 동호회가 불나방처럼 꼬이고 꼬여서 점차 낚시꾼들의 커뮤니티에  입방아로 핫이슈로 오르내릴 때에, 파라솔과 파라솔 텐트 시절은 저물고 낚시텐트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자동으로 잘 펴지는 텐트, 캠핑텐트와 달리 펴기 쉽고 액션이 많은 몸동작에 걸리적 거리지 않고, 협소하고 가파른 저수지의 지형 형태에 따라 가로식인가, 아니면 세로식인가 뭣이 더 낫냐의 꾼 사이에서도 사용후기나 호불호, 입씨름의 향연이 정점이었죠.

발판을 놓으니 어디든 편해졌고, 발판 위에서 채비를 설치하자고 받침틀이 등장했고 발판은 그래도 좁고 불편하다고 좌대가 등장하고 기필고 대좌대로 몸빵을 한정없이 불리게 됩니다.
당연하게도 짐빵이 곧 고생문으로 열리게 되었고요.

편리를 넘어 뽀대의 각축장!!!
아노다이징을 통해서 알루미늄 표면처리를 통한 경도와 내식성, 색상을 입히고 우리 제품이 젤 잘나가를 시전하면서 가격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가난한 꾼들은 조과도 시원찮은데 삐까뻔쩍한 물품경쟁의 희생양도 되어 한탄의 한숨만 자욱해졌던 것입니다.
시대의 흐름이 그리 흐르도록 만든 것은 우리 꾼들의 선택이니 어쩌겠습니까!!!



■물가에 집을 짓다
 

외대 일침과 쌍대로 시작된 낚시가 이젠 10대를 넘어 21대까지 해가 갈수록 낚싯대는 느는데 조과는 빈타작과 꽝조사만 양산하는 추세입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면경은 사라지고 주말이고 평일이고 두메산골 오지에도 낚시꾼들이 터를 잡았습니다.
고독을 숭상했던 낚시가 방송범람이라는 유튜브의 등장으로 더욱 몸살을 앓게 되었습니다.
낚시라는 취미가 엔트테인먼트식으로 변한 것이지요.
씁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그만큼 풍족한 세상을 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시끌벅적한 세상이라고 한들 꾼은 여전히 물가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이 미덕이지요.
세상사 가파르게 변한들 찌불을 밝혀 계절이 잠든, 고요와 맞닥뜨린 자화상 만큼의 매력을 과연 어디서 얻을 수가 있을까요?.
그렇게 흐르다보니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중년을 훌쩍 넘었네요.
노인과 바다가 아닌 젊은 오빠(?)와 저수지가 되었습니다.
산속 계곡지에 깃든 꾼의 선택을 응원하고 이토록 복잡해진 세상이지만 낚싯대를 드리우고 찌를 담굴 수 있는
숨쉴 곳이 존재함을 응원하고, 더불어 인식이 개선되어 우리가 뛰노는 곳의 환경을 스스로 가꾸고 아끼는 꾼의 참된 변화를 성원하고 응원합니다.

물가에 집 한채 짓는 것은 그곳에 새로운 의욕과 내일을 위한 숨고름과 희망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대좌대의 이야기가 갑자기 감상적으로 흐르면서 미화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모순을 지적하시는 분들에게.......,
그렇습니다.!!!

여전히 꾼의 선택은 유효하니까요.
가내수공업의 조구업체들과 상생만이 낚시인의 살길이요. 상업적 범람의 위기 가운데서도 상호 협력이 꾼의 살맛나는 물가 행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꾼의 도전은 지금도 시작이니까요.
건강한 조행, 멋진 조행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을 낚는 조행이시길 빌어봅니다.







Ps

*저의 대좌대 사용후기는 사용기에 올려져 있으므로 pass~~~~~
구독과 좋아요 알람설정 또한 pass~~~~ㅋㅋㅋ

추천 12

1등! 부처핸섬 22-11-29 23:16 IP : be45e77d48211d5
낚금된데 많지요?^^
남매지도 블루길 빨리퍼진중한곳...
삼정지 뽕치기..
적재지는 지렁이넣음
대물 빠가사리 겁나나오고..
전부 낚금된지 오래네요..
추천 0

2등! 대꼬쟁이 22-11-29 23:17 IP : a42884f90940acc
남매지매운탕을 드셔서
얼굴이 꼭~미남 이시군요.ㅡ.,ㅡ
추천 0

3등! 논두렁a 22-11-30 09:06 IP : ec50543780144d9
꾼낚님은 정말 많은 지식을 가지고 게신분같아요

꾼낚님의 글속에서 많은걸 생각하고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추천 0

대물도사™ 22-11-30 09:17 IP : 5988ebdbb5a694e
어느순간 수변공원으로 바껴버린
남매지...간드레들고
버스타고 힘들게 낚시갔던 기억이나네요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추천 0

해뜰무렵 22-11-30 09:44 IP : d18149e470d2f0a
자전거에 낚시대 한대 묶어서 남매지 다닐적이 생생합니다.
추천 0

콩나물해장 22-11-30 09:49 IP : 7ba75103441d253
지금은 간이로 짖고 이~삼일 머물다

오는게 다이지만

나중에

물가에 집한채 짖고 투숙객 받는걸 목표로

빡시게 살려구요 ㅋ
추천 0

엄따거 22-11-30 10:18 IP : de3d251e4496fce
95년 처음 강원도에 왔습니다.

동네마다 있는 작은 못과 둠벙을 벗어나
10살 적 동생과 함께 몇 번의 버스를 바꿔타며
걸어걸어 낙동강에서 잡은 월척(?)의 손맛을 기억나게 합니다.

붕어찜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생각나 잡은 고기를
큰 양은 주전자에 구겨 넣고 의기양양 걸어왔던 그 시절..

빨간떡밥과 500원짜리 대나무 낚시.. 형이 만들어 준
대나무 받침대..

기억 저편의 향수를 불러 준 님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추천 0

어인魚人 22-11-30 10:36 IP : 725deae6f2a8a41
전 겨우 40대 중반이 넘어가는 얼라지만,
실제 낚시는 초딩때부터 내돈내산 조립낚시를 시작으로
꾸준히 낚시를 취미화 하여 지금까지
년수로는 대략 35년정도 낚시를 하고 있기에....
하신 말씀들이 전부 추억으로 와닿고 재미납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패스라서 패스합니다^^
추천 0

여울사랑 22-11-30 11:59 IP : b08e68fc2ea375a
초등학교 때

그랏스로드 대 들고 지렁이 낚시 시절이 그립네요

벌써 40년 전 이야기 입니다
추천 0

낭만피싱 22-11-30 14:15 IP : ebf91ea72a6b174
금년에 낚시를 몇년 쉬다가 다시 시작했습니다. 다시 시작해보니 장비값이 장난아니네요.
섶다리도 초장기엔 부담되는 가격이라 한참을 고민하고 구매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머 돈 100만원은 우습게 넘어가니
방송에서 대물낚시 = 다대편성이라는 상업적 개념을 만들어내고 선배님 말씀대로 낚시꾼은 절대호구가 맞는것 같습니다. ^^
추천 0

추억일기 22-12-01 11:03 IP : 56c357ce3433b34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공감두되구 추억이생각나네요
저도 imf때 대구에서 살었드랬죠
고향이 대전이라 댐낚시를 좋아했는데
조그만 소류지는 왠지 재미가없어서
달창저수지로 낚시다녔네요
그당시 배스나 블루길두 거의없었구
희나리하고 토종붕어가 주종이었죠
그립네요
추천 0

돌콩 23-09-15 13:49 IP : 54c59a10ec048c1
낚시라는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으로 참 가슴을 울리는 글 잘보고 갑니다.
저와 비슷한 시기에 경험하신 모든 내용이 이토록 닮았을까 싶습니다.
항상 안전하고 즐거운 조행길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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