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조행기
· 화보조행기 - 작품조행기와 습작조행기가 화보조행기로 통합되었습니다(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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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조행기] <조행기> 낚시 숙제가 주는 의미 (완결)
흐린 날씨에 비가 후득거리고 있었다.
수면에는 수많은 사연들이 분말처럼 떨어져 흔적을 만들고 있었다.
"비온다!"
"엄마, 낚시 그만하고 집에 가자."
"그래, 파장이다. 집에 가자."
후배는 자리를 접고 오렌지 껍질이랑 뒷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나는 낚싯대를 접고 받침대를 씻었다.
"이 선배! H읍에 칼국수 잘 하는 집 있는데 한 그릇 하시고 들어가실래요?"
"마, 됐다. 뒤에 시간 내서 한 그릇 하자. 신발하고 바지가랑이 봐라. 식당 주인이 받아주지도 안 한다."
낚시장비랑 소품들을 차에 실었다.
빗방울이 제법 굵어지고 있었다.
"내가 선도할 테니 뒤에 따라와."
"그러세요."
60㎞로 달렸다.
사이드 미러에 따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주말 저녁시간이라서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철길부터 시작해서 직진·좌회전 신호를 받기 위해 차량행렬이 줄을 지어서 있고 후배 차는 윈도우 부러쉬를 작동하며 바로 뒤에 정차해 있었다.
이번 신호를 받아내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 전화기를 꺼내어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가는 소리를 들으며 룸미러를 통해 뒤를 보았다.
뒷좌석 아이들이 앉은자리에 핸드백이 있는 모양이다.
"응. 나야."
"예."
"지금 좌회전 신호 떨어지면 신호 받아서 바로 직진해서 대구로 들어갈 테니 집으로 들어가라. 오늘 아이들 데리고 수고 많았다."
"주말 오후에 선배가 고생하셨죠? 고맙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알았어."
전화를 끊었다.
반야월을 경유해서 아양교를 통과하는 것보다는 범안로를 통해 월드컵도로로 빠지는 게 요금을 주더라도 편리할 것 같았다.
운전을 하면서도 후배의 목소리는 환청처럼 귓전을 맴돌고 있었다.
"야속하지만 보내놓고 보니 남편의 자리가 왜 그리 큰 고목이고 난 큰 그늘 밑에 있었다는 걸 그때는 모르고 이제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왔는지 지금도 꿈만 같아요. 그런데 그게 현실인데...... 선배! 사모님께 잘 해드리세요. 자식에 대한 부모노릇은 책임이고 의무입니다."
뭇 이야기가 범벅이 되어 울렸다.
차창이 흐려져 에어컨을 가동했다.
이젠 내가 한 이야기를 스스로 또박또박 끊어서 혼자 중얼거렸다.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 잔을 들고 창밖을 보면 건물 옥상 난간에 매 한 마리가 매일 날개를 퍼덕이며 앉아 있어. 수놈인지 암놈인지는 몰라. 그게 새끼를 위한 의무 때문에 먹이를 찾다가 쉰다고 난 늘 생각했어. 세월은 흘러가고 사람의 머리 속에는 지식의 습득과 인지보다 망각이 점유하는 공간이 나이가 들수록 범위가 커진다고 생각해. 나는 어제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도 깜빡할 때가 있어."
차는 유료도로를 벗어나고 있었다.
후배가 늪에 빠진 현실에서 벗어나 빨리 제자리에 돌아오도록 빌었다.
토요일 오후, 물가에 앉아 많은 생각을 하며 인생의 의미와 삶의 본질에 대한 모든 면을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의 신호등이 노랗게 점멸하고 있었다.
멈추라는 의미이다. 앞으로 달려 질주만 하지 말고 빨강 불이 들어올 테니 잠시 쉬다가 가라는 표시이다.
오늘 아이의 숙제 해결이 아닌 어른들의 삶에 대한 숙제를 하기 위해 선문답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끝>
*허접한 조행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월척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가내 두루 편안 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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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질!기다림님 조행기가 아니라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한편의 수필을 보는듯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담에는 꼭 한번 뵙고 싶어지는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