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조행기

· 화보조행기 - 작품조행기와 습작조행기가 화보조행기로 통합되었습니다(19.10.11)
· 동영상 조행기는 동영상 게시판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화보조행기] <조행기> 낚시 숙제가 주는 의미 (완결)

입질!기다림. IP : 038a54b019fea6e 날짜 : 2003-06-23 18:36 조회 : 3572 본문+댓글추천 : 0

  아이들 고함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흐린 날씨에 비가 후득거리고 있었다.
 수면에는 수많은 사연들이 분말처럼 떨어져 흔적을 만들고 있었다.
 "비온다!"
 "엄마, 낚시 그만하고 집에 가자."
 "그래, 파장이다. 집에 가자."
 후배는 자리를 접고 오렌지 껍질이랑 뒷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나는 낚싯대를 접고 받침대를 씻었다.
 "이 선배! H읍에 칼국수 잘 하는 집 있는데 한 그릇 하시고 들어가실래요?"
 "마, 됐다. 뒤에 시간 내서 한 그릇 하자. 신발하고 바지가랑이 봐라. 식당 주인이 받아주지도 안 한다."
 낚시장비랑 소품들을 차에 실었다.
 빗방울이 제법 굵어지고 있었다.
 "내가 선도할 테니 뒤에 따라와."
 "그러세요."
 60㎞로 달렸다.
 사이드 미러에 따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주말 저녁시간이라서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철길부터 시작해서 직진·좌회전 신호를 받기 위해 차량행렬이 줄을 지어서 있고 후배 차는 윈도우 부러쉬를 작동하며 바로 뒤에 정차해 있었다.
 이번 신호를 받아내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 전화기를 꺼내어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가는 소리를 들으며 룸미러를 통해 뒤를 보았다.
 뒷좌석 아이들이 앉은자리에 핸드백이 있는 모양이다.
 "응. 나야."
 "예."
 "지금 좌회전 신호 떨어지면 신호 받아서 바로 직진해서 대구로 들어갈 테니 집으로 들어가라. 오늘 아이들 데리고 수고 많았다."
 "주말 오후에 선배가 고생하셨죠? 고맙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알았어."
 전화를 끊었다.
 반야월을 경유해서 아양교를 통과하는 것보다는 범안로를 통해 월드컵도로로 빠지는 게 요금을 주더라도 편리할 것 같았다.
 운전을 하면서도 후배의 목소리는 환청처럼 귓전을 맴돌고 있었다.
 "야속하지만 보내놓고 보니 남편의 자리가 왜 그리 큰 고목이고 난 큰 그늘 밑에 있었다는 걸 그때는 모르고 이제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왔는지 지금도 꿈만 같아요. 그런데 그게 현실인데...... 선배! 사모님께 잘 해드리세요. 자식에 대한 부모노릇은 책임이고 의무입니다."
 뭇 이야기가 범벅이 되어 울렸다.
 차창이 흐려져 에어컨을 가동했다.
 이젠 내가 한 이야기를 스스로 또박또박 끊어서 혼자 중얼거렸다.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 잔을 들고 창밖을 보면 건물 옥상 난간에 매 한 마리가 매일 날개를 퍼덕이며 앉아 있어. 수놈인지 암놈인지는 몰라. 그게 새끼를 위한 의무 때문에 먹이를 찾다가 쉰다고 난 늘 생각했어. 세월은 흘러가고 사람의 머리 속에는 지식의 습득과 인지보다 망각이 점유하는 공간이 나이가 들수록 범위가 커진다고 생각해. 나는 어제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도 깜빡할 때가 있어."
 차는 유료도로를 벗어나고 있었다.
 후배가 늪에 빠진 현실에서 벗어나 빨리 제자리에 돌아오도록 빌었다.
 토요일 오후, 물가에 앉아 많은 생각을 하며 인생의 의미와 삶의 본질에 대한 모든 면을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의 신호등이 노랗게 점멸하고 있었다.
 멈추라는 의미이다. 앞으로 달려 질주만 하지 말고 빨강 불이 들어올 테니 잠시 쉬다가 가라는 표시이다.
 오늘 아이의 숙제 해결이 아닌 어른들의 삶에 대한 숙제를 하기 위해 선문답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끝>
 

*허접한 조행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월척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가내 두루 편안 하시길 빕니다.

추천 0

1등! 탈퇴한회원 03-06-23 19:13 IP : 60ddd5f9dd00543
아이고 이런 글재주는 난 왜 없는걸까~~~
입질!기다림님 조행기가 아니라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한편의 수필을 보는듯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담에는 꼭 한번 뵙고 싶어지는 분입니다
추천 0

2등! 휘모리 03-06-23 22:05 IP : 60ddd5f9dd00543
입질!기다림님 개인적으로 저 역시 비슷한 사연이 있읍니다
다만 대상이 누나입니다
일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아직도 힘 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있읍니다
슬픔이 있으면 기쁨이 있고 불행이 있으면 행복이 있읍니다
영원한 슬픔도 영원한 불행도 없을것 입니다
언젠가는 떨치고 일어날 그 모습만 말없이 기다리고 있읍니다
저 역시 개인적으로 한번 뵙고 싶어지는군요
추천 0

3등! 물사랑 03-06-23 22:31 IP : 60ddd5f9dd00543
용하님과 휘모리님의 말씀이 몽땅 저의 말씀이네요....
님의 글은 바로 시이며 삶의 의문이며 답입니다.
뵈어야지요.
뵙고 싶을 따름 입니다.

시인을 뵈면 무슨 말씀을 드려야할지는 모르겠지만
꼭 뵙고 싶습니다....
추천 0

안동어뱅이 03-06-24 10:29 IP : 60ddd5f9dd00543
입질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재미가 있습니다.
아니, 재미있다기 보다는 잔잔하게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하지요.
NT나 다른 곳에서 많이 읽었는데, 입질님 글은 빠뜨리지 않습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느끼고 살아 갈 때가 많습니다.
그중 에 가장 어려움이 배우자를 사별할 때가 아닐까요?

후배가 빨리 털고 일어나 새로운 삶을 힘차게 사시길 바랍니다.

좋은 글 자주 올려주십시오.
추천 0

탈퇴한회원 03-06-24 10:40 IP : 60ddd5f9dd00543
괴기도 없는 조행기....
뭐 몇 칸데가 어쩌고, 찌가, 캐미가.그런것두 안 나오고...
그래도 조행기란에서 인기 짱이네.....ㅎㅎ

입질!기다림님!
범안로 타시면 담티고개 넘어 오시겠죠?
제가 신호등 조작할터이니 노란불 들어오걸랑
고가도로 타고 우회하시어 잠시 쉬었다 가시지요..^^
추천 0

입질!기다림. 03-06-24 13:16 IP : 60ddd5f9dd00543
정말 딴따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무슨 조행기가 붕어도 없고 찌도 없습니까?
하하하......
월척사이트의 장점은 서로간에 얼굴은 모르지만, 정말 사람이 살아가는 따뜻한 인간미와 훈훈한 정이 넘치는 좋은 사이트 늘 생각을 합니다.
경륜이 많은 선배 조사님들이나 동년배 조사님들이 올려주시는 댓글을
보면, 격려와 과분한 칭찬을 들을 때마다 항상 그러한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인생경험이 많지는 않습니다만, 사람이 살다보면 자신이나 아니면 주위에 계시는 친지나 동료, 후배들 중에서 아픔의 상처가 있을 수 있는 게 인생살이가 아니겠습니까?
물론 좋은 일만 계속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만, 그렇지 못할 때 건네는 한마디의 위로가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는 연고의 역할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의 약속이 아닌 기회가 닿는다면 제가 평소에 존경하는 분들과 오프라인에서 낚싯대를 던져 놓고 소주잔을 기울일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고 믿습니다.
월척사이트를 통해 자주 뵙는 친숙한 용하님, 휘모리님, 물사랑님, 안동어뱅이님, 딴따라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이트 운영자이신 월척님, 늘 수고하시는 떡붕어님, 앞에서 언급한 물사랑님외 많은 분들의 노고가 월척사이트를 빛나게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분들께서 항상 건강하시고, 가내 편안하시며 좋은 나날의 연속이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추천 0

낚시꾼과선녀 03-06-24 16:39 IP : 60ddd5f9dd00543
입질!기다림님...
완결편을 오늘에서야 읽었습니다.
후배님 빠른시간내 아픔 훌훌 털고 일어서시길 진슴으로 기원합니다.
조행기 잘 읽었고요...
덕분에 글 써나가는법도 쬐끔 배웠습니다.
건강하시고......
추천 0

지산맨 03-06-25 00:05 IP : 60ddd5f9dd00543
님의 손길을 스친 글은 보는 이의 가슴을 찡하게 하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중요한 그 무엇인가를 생각나게 합니다.
우리 고유의 장맛과 같은 깊은 글맛을 느껴본 시간이었습니다.
욕심이겠지만 님의 글을 자주 읽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추천 0

머슴 03-06-25 10:32 IP : 60ddd5f9dd00543
으앙~~~~~~~~~~~>>>>>>
머슴 눈물납니다...........
책입지싶시요~~!!!!
추천 0

탈퇴한회원 03-06-25 12:41 IP : 60ddd5f9dd00543
이제 입질! 기다림님의 글도 한 단원을 넘어가나 봅니다.
어려워 집니다.
글을 다 읽고나서 한번만 고개를 끄덕이거나
지나가는 미소로 맛있어 하는게 제 한테는 딱인데...
두 번 읽어도 점점 머리가 어지러워지는것은 ??????
아이고 답답합니다.
그리고 클 났습니다.
추천 0

날마다 03-06-27 19:30 IP : 60ddd5f9dd00543
정말이지,
오랜 기다림 속에서 ,
한번의 좋은 입질을 받은 느낌 입니다.
너무나 훌륭한 글이었고, 앞으로도 좋은글 로서 저희들 곁에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