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 (수요일) 날씨: 약간 흐림

뒤늦은 장마비가 몇 일째 쏟아져 내린다.
일주일 이상 퍼붓는 비에 좀이 쑤시며 손이 근질근질하다.
창 밖의 비를 보고 있노라니 강에 살고있는 물고기들이 그리워지며 울적해진다...
"오겡끼 데스까? 아나타와 겡끼데스....."
나도 이제 진정한 꾼 이 되어 가는 모양이다. -.-;;;;
아래층에 사는 친구 놈이 올라온다.
"뭐? 오뎅끼와 놨다꼬?"
"아니, 손이 근질근질해서 낚시나 함 가자고..."
"아닌게 아니라 나도 그렇다. 비도 그쳤고 하니 폐인들 동원소집 하자."

폐인이란 직업(?)의 특성상...모두 '예스'라고 말하면서도 동원령에 불응하는 자가 종종 발생
하다보니..일일이 찾아 나서야 할 때도 있다.
"고폐(고수폐인의 줄임말)님 계십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고폐님께서 이부자리 터시고 부시시 거동하신다.
대문을 나서는데 고폐 어머님께서 굽은 허리를 톡톡 치시며.. 나직히 한마디 던지신다.
"우리 집에 큰솥 하나 있다."

폐인클럽 4인방.. 우선 대형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고른다.
음료수, 건빵, 종이컵, 나무젓가락, 삼겹살, 김치에 라면, 김튀각..거의 캠핑수준이다.
(이건..뭐 놀러 가는 것인지..낚시하러 가는 것인지.. -.-;)
쇼핑하는 중에 고폐님 눈에 무엇인가 띄었다.
손에 든 것은 고구마 전분.
"큰놈들은 고구마를 좋아한다."
그러자 모두 한가지씩 손에 든다.
면초보(초보 면한..)친구는 냄새가 좋다며 바닐라향 가루를 들고..
초폐(초짜폐인)는 날콩가루 한 봉지.
중폐(중수폐인)는 고추씨가루 한 봉 골랐다.
"매운거 좋아하는 놈도 안 있겠나?" 면서..

서로 "그래, 물고기가 누구 미끼를 제일 잘 먹나 함 보자."
(어째~ 낚시방에 온 듯한 분위기...)
이렇게 아줌마들 요리재료를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의기양양하게 대형마트에서 나왔다.

차를 몰고 임동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수위(水位)가 장난 아니다.
물이 차 있었던 흔적인 붉은 경계선 이상으로 물이 들어차 나무들까지 잠겨 있었고
낚시 할 장소라곤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었다.
낚시 할 만큼 물이 빠지려면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임동 가는 길에 있던 다리부근에만 몇몇 낚시꾼들이 몰려 낚수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사월 쪽엔 몇몇 가옥들이 침수되어 농민들은 수재(水災)를 당했다.
물가로 수박이며 호박이 넝쿨째 떠다니고 있었다.

저번 7월 한여름 뙤약볕에 수박밭에서 농약 치던 할배의 얼굴이 떠오른다.
농약분무기에 노즐이 부실해서 우리들에게서 칼을 얻어 주름진 손으로 어렵사리
노즐을 정성스레 한참 다듬으셨던 검게 그을린 얼굴의 할배...
그렇게 애쓰며 가꾸던 수박밭이며.. 고추밭들이 다 잠겨버렸으니... ㅠ.ㅜ
아 맴이 아프구나...
(정부는 수재를 예방하려는 노력은 게을리 하고 해마다 이때가 되면 방송에서 수재의연금을 거둬 뒤늦게 지원하는 데에만 급급하니... 정부에서 제대로 하면 맴이라도 덜 아프지...)

찾아 헤매던 끝에 낚시할만한 장소를 그나마 물색하긴 하였으나..
싯누런 흙탕물에.. 완만한 경사로 인해 들낚은 어려운 상황. 옆의 고추밭에선 침수되어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농부들 보기에도 민망스럽다.
단돈 2,000원 되는 수재의연금도 못 낼 망정.. 한 해 농사 다 망친 농민들 곁에서
낚수 질이라니..

"이거 도저히 안되겠다. 다른 데로 가던지..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
"00유원지 쪽으로 가보는 건 어떨까?" 중학교 때 거서 붕애 몇 잡은 기억이 있다."
"거기 시끄러워서 될라..?"
"어차피 고기는 밤에 잡는 거 아이라.. 밤에는 조용하다카이.."
"으이그, 거긴 물도 적고 시끄러워서 안잡힌다. 잡혀봐야 잔챙이밖에 더 있겠나?"
"하여튼 난 거기서 잡아봤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저거. 초짜말 들어도 될라나..?"
"아이다. 거기 팔뚝 만 한 것도 있다카이.."
"니 안잡히기만 해봐라...어이? 대삽으로 자진 생매장이다. 알았나?"

큰일났다. 고폐의 저 위협..
모두를 설득하려고 거짓말을 해버렸는데... 고폐님의 지고지순(?)한 성질까지 건들어 버렸
으니.... >.<;;<br>
현장에 도착해서 낚싯대 펼쳐놓으니 8시.
장마 끝난지 3-4일 되어서인지 물은 어느 정도 탁도(濁度)를 유지하였고 수량도 좀 많은 것
같다.
펼쳐놓자 입질이 바로 시작되며 달려오는걸 보니 피라미.
"이거 날 샜구만..수심도 1m정도밖에 안되잖아?"
"니 팔뚝만 한 거 안잡히면 바로 생매장이다. 어이?"
덕밥과 지렁이에 피라미와 납자루(일명: 짭쪼래기)10여수 정도 낚인다.
"그래도 심심하진 않지. 고폐님아?"
"닌 밥 안하고 뭐하노? 하여튼 팔뚝 안잡히면..."
그 이후로 계속해서 눈만 마주치면 "팔뚝~" "팔뚝~" 이라고만 했다.

가스불에 밥 잘 지으려면 무조건 약한 불에 하면 된다.
밖에서 해먹는 밥맛은 꿀맛이다. 밥 먹고 나니 저녁9시.
잠깐 앉아 쉬려고 하는데 고폐님 릴이 갑자기 휘청인다.
"이거 뭐꼬? 말풀에 바늘 걸린 모양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낚싯줄이 좌우로 요동치는 것이다.
"어.. 어...? 안되겠다. 뜰채 가와봐라."
"뜰채 없다. 고폐님아."
중폐가 손으로 끌어올리려 팔 걷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첨벙. 푸더덩~!"
"어쭈, 이놈 힘쓰는 거봐라. 내 손에 잡혔니더!"
"그래, 잡긴 잡았나?"
"................"

버드나무 뒷쪽으로 참매미의 맴맴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그 버드나무 아래 고폐님께서 담배를 연신 피워대며 넋나간 듯 널부러져 계신다.
"40...50....뜰채....잉어...."
하는 소리를 중얼거리면서....


1박 2일의 총 조과
최대어: 면초보 친구가 중층낚시로 잡았다는 참붕 34cm 하나.
(이놈 덕분에 난 생을 연장 할 수 있었다...-.-;)
그 외: 붕애 20여수, 띄워준 피라미 30여수, 발갱이 2마리

쓸만한 고기들은 큰솥을 소유하고 계시는 고폐 어머님에게로....


보태기) 망태 속에 담아둔 물고기들의 주둥이가 하나같이 헐어 있었다.
살펴보니 망태에서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치다가 생겨난 상처들이었다.
낚시점 수족관속의 붕어들의 주둥이가 벗겨지고 지느러미가 헤진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볼품없이 축 쳐져있는 물고기들을 보고 있노라니 측은하게 느껴진다. ㅡ.ㅜ

아! 이래서 풀어줄 놈이라면 망태에 담지 말고 바로 풀어주라고 하는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