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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글이 영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창씨개명? 조선시대 조선사람 절반이 성씨가 없었다.(누가 그럽디까?증거좀 대주시죠?)
성을 가질 자격도 갖지 못한 짐승들이었다.(그럼 당신 아버님은 개?돼지?염소?여우?어떤 짐승인지 궁금하구먼요)
이런 짐승들한테 성을 갖게 해준 것이 일본이었다.(아~!그래서 김씨 이씨 박씨가 생겼구만요)
이런 지난 역사를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어느역사?)
이런 식으로 조선인들이 뻔뻔스럽고 후안무치하고 가증스럽게 뻗대는 한 우리 민족에게
희망은 없다.(아~그럼 우리집에 강도가 들어오면 극진하게 대접하고 존경해 드려야 하는거군요?)
왜 나라가 통채로 남의 손에 넘어가는데 2천만명이나 되는 민중이 팔자거니 하고 받아들였는지,(누가 받아 들였는데?그럼 3.1절은 왜?)
왜 많은 조선인들에게 일제시대가 오히려 축복이었는지
그 뼈저린 과거를 있는 그대로 돌아보고 우리의 뼈에 새겨야만이 우리 민족이 거듭날 수 있다
(일제가 축복이었다구요? 왜 우리나라가 갈라졌야 했는데?왜 우리 할머니들이 위안부로 짐승같이 살아야 했는데?
아~!짐승들의 딸이라서 짐승취급 당연한거군요?)
삼척동자도 알만한 독립군이 옳은거냐?
친일파가 옳은거냐?라는 물음에도 답을 못하는것 보면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을터인데........
이제 본론으로 들어 갑니다
박정희의 친일 행적부터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다카기 마사오로 스스로 개명했습니다
통계상 나와있는 8%의 상위권 입니다
그리고 일본국인 아닌 만주군으로 갑니다
우리나라도 일본에 합병되었으니 그때당시 한국인은 모두 일본인이다 라고 억지주장을 펴시는 분이
묘하게도 만주국은 일본이 세웠다고 하면서도 일본이 아니라 하십니다
스스로 창씨개명 하고 일본의 통치국인 만주군관학교에 혈서로 맹세하고 입학하는 사람과
전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에 매진한 독립군과 누구를 더 존경해야 하겠습니까?
사실 대답이 필요없는 질문입니다
허지만 누구는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독립군이 좋으냐?친일파가 좋으냐?라는 물음에 엄마가 좋으냐?아빠가 좋으냐?하고 묻는것이 똑같다 하십니다 ㅋㅋㅋ
그럼 독립군이 엄마?친일파가 엄마?
그럼 친일파가 아빠?독립꾼이 아빠?
이제 저도 애매 모호해 지려고 합니다^^*
혈서 조작된것이라구요?
증거로 제시해주셔야지요?
지금쓰는 일본어가 있다느니 어떻다는둥?
공신력이 있는 카페에서 퍼오신겁니까?
공신력이 나름대로 있는 위키에는 그런글 한마디도 없습니다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친일명단에 등재시 박지만씨가 소송을 하였죠?
결국 패소했습니다
위키에서 퍼왔습니다
"박정희를 친일파로 분류하지 않은 친일진상규명위는 혈서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혈서를 작성했다는 만주신문 기사도 사전 발간 직전에 알게 돼 다시 거론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29]
한편 박정희와 같이 교사생활을 한 유증선은 조갑제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박정희에게 혈서를 쓰도록 권유했으며, 그 말을 들은 박정희가 즉시 시험지에다가 핏방울로 혈서를 썼다고 말했다. 조갑제도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할 때 혈서설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라고 평가했다.[30] '박정희 평전:가난에서 권력까지'를 쓴 이정식 경희대 석좌교수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혈서에 대해 "1939년과 1940년 당시 일본군에 입대하기 위한 혈서 제출은 일종의 유행이었다"라고 말했다. [31]
박정희의 혈서에 대해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시각도 있다. 보수논객으로 꼽히는 김광동은 박정희 혈서 존재의 신뢰를 따지려면 우선은 만주신문의 권위성을 따져야 하며 또 당시의 시대 상황과 분위기를 살펴야 한다고 하였고 당시는 군인들이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 맹세나 혈서를 쓰고 교회도 신사참배를 하던 상황”이라며 “이것이 특별한 게 아니라 일반화된 시기였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친일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무리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양영태 자유언론인협회장은 "박정희가 썼다는 혈서 보도 내용을 어떻게 믿느냐”고 했다. 그는 “이런 것을 증거라고 제시하며 박정희를 친일사전 명단에 넣는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그간 좌파가 역사를 위조, 조작하고 그것을 진실인 양 말해왔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장한 박정희 혈서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32]"
이렇듯 중립적인 입장에서 보면 아직도 진행형 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작질이니 뭐니 하며 조작한 문서를 증거로 제출하시면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제시한 신문기사 현대과학으로 풀어보면 위조인지 아닌지 바로 알수 있지 않을까요?
발행년도 라던지 등등으로요?
허지만 현재 친일파로 몰린 박정희측에서 결정적으로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위키백과엔 혈서만이 존재하지 님께서 퍼오신 조작이니 무어니 하는 글은 없습니다
박정희에 대한 제자들의 증언도 위키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디에 있는 글인가요?
박정희 전기에 있는 글인지요?
대신 부정적인 글은 존재 합니다
위키에서 퍼온글 입니다
“박 선생님이 만주로 떠난 지 3∼4년이 지난 어느 여름방학 때 긴 칼 차고 문경에 오셔서 십자거리(문경보통학교 아래에 있는 네거리)에 계신다는 얘기를 듣고 달려갔지요. (중략) 하숙집으로 자리를 옮긴 뒤 박 선생님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문턱에 그 긴 칼을 꽂고는 무릎을 꿇고 앉아 ‘군수, 서장, 교장을 불러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세 사람 모두 박 선생님 앞에 와서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마 교사 시절 박 선생님을 괴롭혔던 걸 사과하는 것 같았습니다.”[50]
여기서도 제 사견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지청천장군 백선엽,김수환 추기경을 말씀 하셨습니다
먼저 지청천 장군입니다
역시 위키에서 퍼왔습니다
"구한말 1908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교했다. 당시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는 1907년 여름에 군대해산으로 간신히 폐교를 면하고 축소된 형태로 존속했던 상태였다. 그래서 여기에 입교한다는것은 당시 굉장히 까다로워 유력한 사람의 보증이나 추천이 필요했었다. 지청천이 입교할 수 있었던데에는 그의 모친이 집안사람을 통해 엄 귀비에게 손을 쓴 결과 가까스로 입교할 수 있게 되었다.[1] 그러나 이듬해 1909년 8월, 2학년때 통감부의 압력으로 군부가 폐지되면서 동시에 무관학교도 폐교처분을 받았다. 이때 일본 측은 선심을 써서 재학중인 1, 2학년 생도 50여명을 일본의 동경육군중앙유년학교로 유학을 보내 위탁하기로 했다. 이에따라 지청천은 동기생 및 후배들과 함께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2] 이 때까지는 본명인 지대형을 사용했다. 유학 도중 한일합방이 되자, 일본 육군사관학교 보병과로 편입되었고, 1914년에 26기생으로 졸업하였다. 중위로 진급한 후 1919년에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 교성대장이 되어 독립군 간부양성에 진력하였다. 이때 망명하면서 일본군의 병서(일종의 전술교범)와 군용지도를 가지고 갔다고 한다. 유일하게 정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지청천의 가치는 독립군에게 아주 중요했을 것이다."
비교가 되실겁니다
다음은 백선엽 이양반 친일파 맞습니다
어느정도 연세가 있으시다니 기억 나실텐데요
선인학원 비리정도는 말입니다
다음은 김수환추기경 입니다
위키에서 역시 퍼왔습니다
"1944년 졸업을 얼마 남겨 놓지 않았던 김수환은 일제의 강압으로 학병에 징집돼 동경 남쪽의 섬 후시마에서 사관 후보생 훈련[9]을 받고 일본군 장교로 임관하였다. 이때 일본 군복을 입고 전석재 신부와 함께 촬영한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어 비난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이듬해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다시 조치 대학에 복학하여 1946년 12월에 다시 귀국했다. 서울 성신 대학교(현 가톨릭대학교)에 편입하여 학업을 지속하다가 1951년 9월 15일 대구 중구 계산성당에서 로마 가톨릭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강제 징집 이었습니다
다음 개구라니 무어니 하며 정말 중학생나 고등학생이 쓴정도의 글은 가치가 없어 넘어 갑니다
들통난 민족연구소의 허위기사 유투브는 구동이 안되는군요
시작하는듯 하다 전혀 다른 내용만 나옵니다
해서 제가 직접 유투브에서 검색해봤는데 마찬가지 입니다
오카모투 미노루 이건은 증거 없는것 맞습니다
그저 낭설일수도 있습니다
허나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부분은요
북한에서 발설한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걸핏하면 종북이나 좌파니 하는 보수쪽에서는 할말 없으면 빨갱이로 몰아버리는 특기를 가지셨죠?
위키에서 퍼왔습니다
"박정희가 '오카모토 미노루'(일본어: 岡本實)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창씨개명을 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재미 언론가 문명자는 1999년 그의 저서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에 “만주군관학교 시절 박정희의 창씨명은 다카기 마사오. 그 곳을 졸업하고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편입했을 때 박정희는 창씨명을 완전히 일본사람 이름처럼 보이는 오카모토 미노루로 바꾼다.”라고 서술하였다.[47] 2005년 도쿄대학교에서 출판한 《일본 육해군 총합사전》 2판에는 박정희가 '오카모토 미노루'로 소개되었다.[47] 조희연 교수도 자신의 저서에서 이러한 내용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김병태 건국대학교 명예교수는 “박정희가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관동군 23사단 72연대에 배속됐는데 거기 연대장의 이름이 오카모토였다”고 설명하였다. [48]《오마이뉴스》와 《한겨레》는 이에 대해 “자료로 입증된 사실이 없거나 공식 기록으로 확인된 바 없으며 타카기 마사오로 한 차례 개명한 사실만 확인되었으며 자료로 입증된 사실은 아니다”라고 밝혔다.[46][49]"
자료로 입증된 사실은 아니라고 한겨레와 오마이뉴스에서도 밝혀 놓았네요
다음은 김병기 옹이네요
박정희의 주변인물 입니다
공정한 입장이 될수 있을까 의구심이 듭니다
박정희가 광복군 첩자였다?^^*
위키에서 퍼왔습니다
"해방 이후 박정희는 한국 광복군에 입대하였는데[출처 필요] 만주군 출신이었던 박정희가 광복군에 바로 입대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당시 광복군이 만주에 있던 조선인들에게 선전했던 투쟁지침과 관련 짓는 주장도 있다.[56] 비밀리에 일본군 내 조선인 장교들에게 살포된 이 선전문을 보면 일본군에 위장 침투한 한국인에게 고하는 것으로서 본문에는 “아직 전민족적으로 총궐기할 때는 아니다. 때를 기다려라. 제군들은 일군내에서 작전을 방해하고 손상시키는 게 임무다. 자신이나 동포에게 위험이 없는 범위에서 활동하라. 겉으로는 친일(활동)을 하라”는 등의 내용이 실려 있다.
1945년 8월 이전에 박정희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증거는 없다. 비밀 선전문은 전 광복회장 김우전으로 확인되고 있으나, 박정희가 비밀광복군에 연관된 듯 알려진 ‘원전(原典)’은 1967년 박영만이 쓴 소설 ‘광복군’이었다. 당시 정황을 비교적 잘 아는 김승곤 전 광복회장은 “박영만은 청와대에서 돈을 받을 줄 알고 ‘광복군’을 썼는데, 내용을 훑어본 박 대통령은 ‘내가 어디 광복군이냐. 누가 이 따위 책을 쓰라고 했냐’며 화를 냈고, 결국 박영만은 돈 한푼 못 받고 거창하게 준비한 출판기념회도 치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박정희 비밀광복군설이 거짓임은 확인된 사실이다. 5·16 이후 반혁명 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박창암 전 혁명검찰부장 앞에 박정희를 지하독립운동 리더로 묘사한 책을 쓰자고 제안하였으나, 거절당했다. '실록 군인 박정희'에 따르면 1967년 박영만은 자신의 책을 박정희에게 전달했으나 환대는커녕 호통을 들었다[57]는 설도 있다.
말그대로 소설일뿐입니다
힘드네요
3일후에 다시 반박글 드리겠습니다
3일있어야 다시 원문을 달수 있다는게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처음 해보게 됩니다
이제 제생각은 될수 있음 말하지 않고 중립적인 글만 그리고 공신력 있는곳에서만 퍼다 제시할 생각 입니다
님께서 퍼오신글중 비유를 해도 스타크래프트니 뭐니
기준점이 되는것을 보면 철부지들의 글로 보이게도 할수있는 오해의 여지가 있습니다
조금더 진중한글을 전 원합니다
우리 민족을 비하한 위의 내용말고는 님과 진중한 토론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정말 친일파들이 작성한듯한 윗글에 공감한다는 자체가 전 우리민족으로 보여지지 않습니다
박정희는 그렇게 존경하시면서 우리 어머니,아버지들을 짐승으로 치부함에도 공감을 가질수 있는지요?
극일을 말씀하시는 분이 자기자신의 뿌리도 업수이 여겨가며 극일이 가능하겠는지요?
참 통탄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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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친일청산을 말하는 제가 종북좌파가 되어야하는지 가슴이 답답합니다.
이제는 불가능해진게 아닌가하지만 최소한 그들이 부끄럽게 살아가야하는 나라가 되었음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