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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진보인사와 보수인의 불꽃튀는 논쟁
상대방을 비난하고 비방하는것이 아닌 대화형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게제한 글임을 밝힙니다
아이구 무섭구나, 박사모!....2009.10.23 21:12
josephkim
6만 몇천명이라고 했지?
저러다가 무성이가 살아날 수 있을가 걱정이다.
박사모가 움직이는 소리는... 나의 상상이 얼마나 유치한 수준인가를
반성케하고...그리고 오히려 인민투표해서 사람 죽이던 6.25때가
기억날 정도로 소름이 끼치는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정말 무섭구나!
민주주의 "민"자도 모르는 독재 군단.....!
그래서 그때가 갑자기 생각난다.
5.16의 탱크들이....그리고 그 수많은 거리를 질주하며, 독재에 항거하던
나의 그 빼앗겨 버린, 불행하던 아직 어린 시절의 날이....주마등 처럼
뇌리를 스쳐간다.
그렇지, 근혜가 그 독재자의 딸이지....
지금도 이른 가을만 되면, 그 때 군화발에 채이고,
오금쟁이에 장작을 끼어서 짓이기던 서대문 경찰서,
남산 그 고문실이 기분나쁘게 용트림을 한다.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내 피묻은 가슴의 역사....
그 후유증으로 ....
지금은 겨울이 없는 나라를 찾아 살지만....
아서라!
나는 무성이가 불쌍해 보인다.
고향이 같아서였나?
자금줄이 커보여서 였나?
내 늙은 가슴으로 지켜보겠다.
무성이를 죽이는 그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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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구나 박사모란 글을 읽고...
2009.10.23 23:15 ....rlawhtk
josephkim 님!
5.16의 탱크들이 당신에게 고통을 주었나요?
님께선 남산의 고문실을 구경이나 하셨나요?
이보세요 그 어줍잖은 글 솜씨로 누굴 기만하려 하십니까
5.16은 총알한방 사용안한 무혈 혁명이였고
남산 정보부는 국가의 존립에 위협을가하던 무리들이나 끌려갔던 곳입니다
당신의 글로 당신의 나이를 대충은 유추할수있네요
그 나이였다면 소시적 보리고개를 기억할수있겠지요
먹지못하고..아니 먹을게 없어 허기진 배를 옴켜잡고
봄이면 풀뿌리를 찾아 산야를 헤메던 모습들 ...
그 기막혔던 춘곤기의 가슴쓰린 광경도 보셨겠군요
어쩌면 모를수도 있겠습니다
남산의 기억이 용트림한다는 당신은 그나마 겨울이없는 나라로
당신의 안위와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자 훨훨 날아갈수나 있었으니까...
부럽습니다 그시간에 조국의 당신 또래는 배고픔을 이겨보고져
한마음 한뜻으로 피고름 흐르는 고통을 감내하며 조국의 발전에 목숨을 받쳤지요
그 알량한 도피의 시간동안 조국은 엄청 발전했답니다
세계가 인정하는 한강의 기적도 이루고
자가용없는사람이 없고 주말이면 외국으로 여행가는국민도 많습니다
그 중심에는 국민 75%의 지지를 받는 박정희라는 위대한분이 있지요
당신의 말대로 그가 국민에게 고통주는 독재자였다면
지금 그분을 그리워하고 존경하는 국민 75% ( 특정지역을 제외하면 거의99%)가
속깊이 그분에게 지지를 보내는 뜻은 무엇입니까?
외국에서 겨울이 없는 호사를 하는 당신!
이기적이고 편향된 당신의 사고에 한계를 느끼는 바임니다
나이든 내가슴에 더이상 지난시절의 배고팟던 생체기를 기억치않게 해주세요
허나
지금은 살만함니다
독재자 박정희가 그가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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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lawhtk님에게 공개 편지!
2009.10.24 17:07
josephkim
내가 쓴, "아이구 무섭구나, 박사모!"란 글이 님에게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군요.
어떻든 관심을 주시고, 글도 있어서 좋군요.
단지, 님의 글에 오해가 몇가지 있는것 같아서 귀정을 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서
몇자 씁니다.
먼저, “5.16의 탱크들이 당신에게 고통을 주었나요? 남산의 고문실을
구경이나 하셨나요? 이보세요, 그 어줍잖은 글 솜씨로 누굴 기만하려
하십니까"라고 했는데,
나는 내 글에서 ‘기만이 아니라, 사실을 기억하고 쓴것 밖’에는 없습니다.
님은 60년대의 ‘서대문 경찰서’를 아십니까? 그리고 학원 사찰을 하던,
남산의 정보부의 2국이나 6국이나, 그리고 심지어 대공관계 사찰을 하던
5국을 아십니까? 그렇다면, 이런 글을 쓰심은 무지의 소치에서나, 아니면,
너무 자신에 넘쳐 글을 흘리는 편향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알량한 도피의 시간"이라는 표현이나, "겨울이 없는 곳에서
호사를 하는 당신"이라는 표현도 너무 왜곡이 되었군요.
전혀 사실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내가 상당 기간을 한국을 떠나 사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도피를 해서가 아니라, 내 일자리가 외국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격의 글에 나의 일을 밝힘이 덕이 안되어 말할 수 없지만,
외국에 거하는 모든 한국인들이, 다 호사를 위함이 아니고
(혹 그런 분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NGO기관이나, 기타 이유로
외국에서 사는 사람도 불과수이기 때문입니다.
바햐흐로 지금은 소위 지구촌 시대가 아니던가요.
그리고 “나이든 내가슴에 더이상 지난 시절의 배고팟던 생체기를 기억치않게 해주세요”
그리고 “독재자 박대통령 때문에 한강의 기적”도 이뤘다는 표현도
극히 직업적인 표현 같아서 내게는 마치도 자토방에서 보는 글 처럼 역겹군요.
왜냐하면, "독재자 박정희 때문에 잘 살게 되었다는 님의 사고와 믿음에
나는 결코 동의를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의 저해 요소요, 독재자의
딸을 마치도 차기 대통령이 되기나 한 것 처럼 처신하는 박사모의
멘타리티나, 그리고 사용하다가 자기와 조금 의견이 다르다고
하루아침에 팽하는 모습으로 비쳐진 점이 바로 나로 하여금
잊혀진 독재자 박정희를 기억하게 하면서, 어떻게 보면 좀 지나쳐보이는
글을 쓸 수 밖에 없게 만든 이유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요. 이점이 바로, “아이구 무서워 박사모!”라는 글을 쓰게 만든 이유랍니다.
내 글이 좀 지나치다고 오해할 표현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집사람도 평하기를, "당신 답지 않은 글을 썼다”는 평을 했기 때문이고,
내 글에 대하여 많은 댓글을 주신 어느 따스한 분도, “그 동안 쓰던 글과
달리 분노가 가득하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는 글”이라고 평을 해주심을
봐도 그 점이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의 의도는, "한국 민주주의 성숙과 의회민주적 사고 방식의 발전”을
위하여 권위주의적, 일방 통행적, 또는 “군사 문화적 통치행태” 내지
“주군의식의 통치행태”는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이상의 행태들은, 우리가 사랑하는 민주동지들과 함께 소위
생명 내놓고 싸웠던 주제요, 그리고 우리 같은 4.19 세대, 60년대의
데모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이런 개념들이 두두레기와 같은 반응을
하게 된다는 점을 솔직히 시인해야 하겠군요.
너무 길어졌군요.
좋은 인연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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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kim1님 "공개편지"를 읽고 답글
rlawhtk
2009.10.26 09:44
josephkim1님께서 본인에게 보낸 공개편지 잘 보았습니다
정독하고 탐독했지요..ㅎㅎ
우선 님과 같이 4.19와 60년대를 민주동지들과 함께 소위
생명 내놓고 싸웠다는데 대하여 진심으로 경의와 찬사를 보냄니다
그시절 아득한 기억속 가슴 깊은곳에서부터 솟구쳐오는 설움에
흐려져오는 자판기를 두드려 봅니다
6,70년대 남들은 민주화를 위해 생명을 받치는 그날 난 무엇을했던가
목이 메는군요
꽁꽁 얼어버린 보리밥을 더운물에 말아 씹어삼킬 시간도없어 물마시듯
목구멍으로 흘려보네고 10km가넘는 길을 달려야했던 쓰라린기억
한부라도 흘릴까 두팔로 안고 뛰었던 그 신문뭉치는 왜그리 무거웠는지...
살을 파고드는 송곳같은 눈보라는 왜 그리 혹독해던지...
뛰었지요 정말 바삐 뛰었지요
이틀에 한번은 추위에 울어야했고 삼일에 한번은 지각을 해야했답니다
님, 그렀네요 그렇게하지않고는 도저히 밥을 먹을수없었고 학교를 다닐수없었지요
첩첩 두메산골 손바닥만한 비탈 밭데기를 일구어 많은 형제가 배골아 죽지않고
살수있었던것도 하느님에 보살핌이였고
그나마 도회지로 유학? 을 갈수있었던것도 큰 은총이였지요
요즘은 아르바이트하는 젊은이들도 많더군요 업종도 셀수없이 많고요
참 세상 살기좋아졌네요
하지만 그때 그시절 어린 학생이 할수있었던것은 그다지 많지않았습니다
그져 신문배달. 아니면 찹살떡장사.그외는 별로없었지요
그것마져도 마음대로 할수없었지요 심한 경쟁으로..
지금의 잣대로 그시절을 조명한다면 지금 아이들은 상상도 할수없겠지요
그래도 님께선 행복하셨네요 배고픈 돼지는 아니였으니까요
민주화를 위해 데모하고 막걸리 마시며 데모크라시를 논하고 ...
참 별세계를 사셨군요 부러운 과거였고 낭만이 넘친 젊은 시절이였네요
하지만 그당시 1960년도 GNP가 80달러로 세계 125개국중
103번째의 최빈국이 한국이었다고 합니다
곡창지대라는 전라남도에도 절량농가가 17만호나 되고
95만여명이 굶고 있었다고하더군요
미국의 농산물 원조가 대한민국의 일년 예산에 8할이나 되는 불쌍한 내조국
얻어먹지 않고는 대책이 없었던게 내 조국 한국의 어찌할수없는 실정이었다고 합디다
자유당의 부패로 나라살림은 한계에 다달았고 정치는 더 이상 두고볼수없어
용기있는 우리 선배들이 분연히 일어섰던 4.19 학생의거!
그후 장면내각은 어떠했나요?
민주화가 이뤄지고 국민이 행복했나요
아니지요
온통 권력다툼으로 국민의 생황은 더욱 피폐해졌고 고통은 더욱 클수밖에 없었기예
국가를 수호하던 군이 궐기를 한것이지요
혁명,구데타... 상관 없습니다
굶어 죽어나 총뿌리에 죽으나 기왕 죽을바엔 변한 세상에서
마지막 몸부림이나 쳐보고 죽자고 국민 거의가 5.16을 지지했다고 하더군요
물론 일부는 아니였겠지요
국민의1%도 안되는, 민주주의 외쳤던 일부는 군인들의 혁명을 비난했겠지요
그러나 결과가 어떻게 됬는가요
그후의 흐름은 잘아시겠지요 세계가 놀란 눈부신 경제발전!
여기에도 태클거는 특수층도 있두만요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세종대왕도, 이순신장군도 파렴치한이고 소영웅적인 하찮은 사람으로 매도될수밖에 없을겁니다
님께선 지난 과거를 현제의 시각으로 조명해보는 오류를 범할분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님의 글중
"그 후유증으로 ....
지금은 겨울이 없는 나라를 찾아 살지만...."
이렇게 표현하셨지요 그리곤 또 다른 글에선
"내가 상당 기간을 한국을 떠나 사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도피를 해서가 아니라 내 일자리가 외국에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셨군요
처음부터 이렇게 말씀 하셨으면 저의 "겨울이없는 나라에서 호사한다"는 말은 없었겠지요
님께선 분명히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내 피묻은 가슴의 역사....그 후유증으로" 라고
표현했기에 겨울이 없는 외국에서 호사했다고 말했답니다
님께서 어떤 고초를 당했는지는 알길없으나 저도 가슴 아프군요
하지만 혹 반대급부로 생각해 본적은 없나요?
내가 조국의 발전에 걸림돌은 아니였던가 하고?..
태생적으로 반골 이단아적 기질을 타고난게 아닌가하고?..
우리나라에도 일부 그런 족속들이 있지요 겉과 속이 다른 나부랭이들이..
또 님의 글중엔
한국 민주주의 성숙과 의회민주적 사고 방식의 발전”을
위하여 권위주의적, 일방 통행적, 또는 “군사 문화적 통치행태” 내지
“주군의식의 통치행태”는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현제 우리나라의 정치구도가 의회민주주의가 아닌가요?
그럼 현 우리나라의 정치구도는 무엇이란 말임니까?
님의 고견을 듣고 싶군요
또, 군사문화적 통치형태라니요
님께선 외국가셔서 조국엔 전혀 관심이 없었나보군요
아직까지 군사통치 운운하고 계시다니..ㅎㅎ
주군의식요?
그 말을 들으면 엄청 대단한것 같네요...글쎄요
외국이든 한국이든 정당정치를 하는 나라에선 정당을 대표하는 주군이있지요
주군이라하니 듣기가 그렇습니다만 당을 이끄는 대표라는 말이지요
정당이든 회사든 어떤 단체든 대표자는 있어야하는게 아닐까요
그것을 주군 어쩌구로 표현한다면 ...
글로서 말을 멋지게 만들어 보려는 글 장난쯤으로 생각되는군요
josephkim님!
님 보단 좀은 적은 연배지만 저도 그 시절 캠프스에 있었고 데모 무리에서
쓸데없는 짖거리를 한적이있지요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고 철없던 행동이였다고 생각됨니다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확실치 않은 그 철없던 시절
군중심리에 방항했던 허깨비같은 군상들... 참 우습네요 지금 생각하니
혹 님께서도 그 무리 속에서 아무런 뜻도없이 분위기와 함께 동조했던 일개 깨비가 아니셨는지요...ㅎㅎㅎ
참! 나도 데모 한 두어번 참가했으니 민주화 동지가 될련지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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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kim1944...2009.10.26 10:11
고맙습니다. 답변을...좋은 교제 멀리서나마 글로라도 나누십시다. 형께서도 지긋하신분 같은데...우리 동시대를 함게 산 자들로서 좋은 나라 되기를 원하는 마음 같을 것 같군요...! 건필하시고..오늘도 좋은 날 되소서!
rlawhtk...2009.10.26 10:17
님의 아량에 고개숙여 감사 드림니다 타국에서나마 조국의 발전을 기원하여 주시고 또한 님의 건강도 멀리서나마 기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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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성이가 불쌍해 보인다.
고향이 같아서였나?
자금줄이 커보여서 였나?"
josephkim 님의 글에서 제가 화가났었던것은 고향을 들먹인 이유 때문이람니다
이분의 고향이 정말 부산시 남구였을까요?
저는 소인배입니다 소심하고,결단력없고, 마음약하고...
하지만 인간 , 비인간적인 인간들에겐 참을수없을만큼 분노를 나타냅니다
좋은글에 왜 고향을 들먹일까요? 과연 이사람의 고향이 부산시 남구였을까요?
논객님들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