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고 소 때가 풀을 뜯는 들판을 지나가 보면 기차에 놀라 달아나는 소들이 보일 때가 있다.
만약 그 소가 형이상학자라면 아마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내 욕망과 소망과 공포는 모두 나 자신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러니 귀납법에 따라 우주의 모든 것은 나와 관련이 있다고 결론 지을 수 있다"
"따라서 저 기차는 내게 이롭거나 아니면 해로운 것이다.
저렇게 무서운 형상을 하고 달려오는 것을 보면 기차가 내게 이로움을 주려 한다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마리 신중한 소인 나는 저 기차로부터 달아나고자 힘쓸 것이오"
이 형이상학자 반추 동물에게 [기차는 철로에서 벗어날 생각이 결코 없으며 소 떼의 운명에도 완전히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설명 해 준다면 이 가여운 짐승은 그토록 부자연스러운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 것이다.
인간도 이와 똑같은 경험을 했다.
자연현상은 인간들에게 때때로 불행을 때때로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인간들은 이러한 일들이 우연히 일어난다고 믿을 수 없었다.
철로에 길을 잘못 들어서 기차에 치여 죽은 동료를 본 소에게 만약 대다수 인간의 특징인 적당한 수준의 지성이 있었다면,
그 소는 철학적 사색에 빠져들어 마침내 자신의 불행한 동료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철도의 신에게 벌을 받았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미신을 통해 인간은 자신이 굴복할 수밖에 없는 불행들 가운데 여러 가지를
성공적으로 설명 할 수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굳이 자존심을 다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때로 덕이 가득한 사람에게도 불행이 닥치는 경우에 대해 어떻게 설명 해야 할까.
그 불행은 필연적으로 다른 누군가가 지닌 악의에서 비롯되어야만 한다.
즉 누군가가 자신의 이기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증오 때문에 우리를해치고자 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바로 이러한 정신 상태에서 악마와 마녀 및 사악한 마술에 대한 믿음이 생겨났다.
이러한 것들은 어떤 이익을 얻을 목적이 아니라 순전히 악의 때문에 이웃들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다.
구약성서에 "마술을 부리는 여자는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러한 구절을 토대로 종교 재판소는 마녀뿐만이 아니라 마녀, 악마 또는 마술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 사람까지도 처벌했다.
악마와 마술을 안 믿는 다는 것은 곧 이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해서 나의 오래된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정치 ---> 인간의 이상심리를 이용하여 먹고 사는 다단계 사기집단
종교 ---> 인간의 불안심리를 이용하여 먹고 사는 다단계 사기집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종교는 인간의 멸망이 올때까지 끝까지 함께 갈 것이다
그것은 인간 스스로가 신이 되지 않는 한, 영원한 귀납법에 속하는 메타포일테니까.....!!
살아남고 번창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공동의 목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 중하나가
토테미즘을 비롯한 종교를 중심으로
씨족. 부족 사회를 이뤘기때문이죠.
이후
종교의 폭주를 막고자
정치를 따로 하기 시작했죠.
결국,
같은 배에서 난 같은 것이고
필요악입니다.
선택은 개인의 몫으로 자유로우니
스스로 깨닫고 거듭나는 것만이
정치와 종교의 다단계에서
벗어 날 수 있겠지요.
사족.
정치와 종교는 겉으로나마
착한 일을 도모하고
착한척이라도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