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우익 정치는 엘리트주의에 기반하고 있었으나, 2016년 이후부터 포퓰리스트 수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이로 인해 우익 포퓰리즘의 성격을 부분적으로 갖게 됐다.
대한민국의 우익 포퓰리스트는 기본적으로 반공주의 시각을 갖추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이들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수정주의 시각을 갖추고 있고,
이를 광주 폭동이라고 칭하는데, ‘북한군 개입설’은 이들이 신봉하는 대표적인 음모론에 속한다.
한편으로, 대한민국의 우익 포퓰리즘은 외교적으로 친미와 친일 성향을 강하게 고수하고 있고,
수많은 자유주의 정치가와 이론가는 우익 포퓰리즘이 법치와 의회 정치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민의 민주주의 의식을 지속적으로 훼손했다고 비판한다.
이어서 그들은 우익 포퓰리스트 운동이 갖는 극우적 역사 왜곡, 음모론 선동, 인종주의,
여성 차별, 배타적인 종교관, 무지함 등을 비판했다.
기성 보수 정치에 속한 정치인 및 보수주의 학자 일부는 우익 포퓰리즘의 성격 자체를 비판하기보단,
이 운동이 갖는 역효과를 주시하고 있다. 이들은 우익 포퓰리스트 운동이 전체 보수 정치와 보수적 군중의 극단화를 초래하여,
결국에는 전체적인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져서 보수 정치의 후퇴를 동반할 것으로 여긴다.
한발 더나가 정치적 극단주의 극우
"학문적으로 극단주의를 정의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현대정치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제도나 문화를 받아들이냐의 여부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민주주의적인 룰과 권리들,
법치주의와 헌정주의적인 원리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다원주의 원리들일 것입니다.
이런 것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공존해야 한다는 원리를 부정할 때 극단주의라는 명칭을 붙이게 됩니다.
보수는 좌파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지만 극우는 좌파를 척결의 대상으로 봅니다. 극우단체는 국가의 관리가 필요합니다.
서구에서는 극우단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합니다. 강제로 없애려는 연구가 아니라 이들의 특징을 분석하고
사회적으로 잘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입니다."
우리가 통념적으로 '극우'라 부르는 각각의 정치 집단은 모두 형성된 정치적 환경과 전통이 다르고, 때문에
극우는 한 두가지 요소로 정의내릴 수 없는
다소 복잡한 특성을 갖게 된다[ 또한, '극우'라는 표현이 정치적인 수사로서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다는 점은 사회학적으로 극우의 조건을 유형화하고
극우를 정의내리는 데 어려움을 야기한다.
한국의 경우, 민족주의적 극단성[9]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쉽게 '극우'로 불리는 어버이연합이나 태극기 집회 등의 수구 보수 세력은,
민족이나 인종적 극단성을 극우의 척도로 보는 전통적 좌우 스펙트럼의 개념 하에서
'극우'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해진다. 이는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리더쉽 아래 영도자처럼 취급하는
전체주의에 가까운 숭배, 폭력성이나 배타주의에 있어 유사성을 취할지언정,
극단적 민족주의에 기반한 인종주의적 배타성을 갖는다는 기존 극우 정의에는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극우'로 지목할 수 있는 세력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45년의 해방정국이 될 것이다.
6.25 이후로는 주로 이승만 정부나 자유당을 옹호하면서 진보계열 정치인을 백색테러한 정치깡패 또한 극우로 지목된다.
다만, 이들의 극우성에 대해서는 이념적인 측면보다는 독재적 권력의 옹호를 위해 폭력을 동원함으로서 반동적인 행태를 보여왔다는 것이 주목된다
그러나 2000년대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면서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권력을 유지해온 이들에 충격이 가해짐은 물론, 민주당계 정당이 과거 보수 세력의 도움 없이 자발적으로 대툥령을 배출하면서 보수 세력 사이에
'여론전에 밀렸다'는 위기의식이 공유되기 시작했고,
이는 이전까지 투표로 이야기하던 보수 성향의 인물들이 사회 전반으로 나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극단적 우파의 결집 또한 시작되었다.
참고,퍼옴 =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