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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무서운 말이지요...
빨갱이...
그 혐오스런 빨갱이란 단어가
얼마나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증오하게 만들었으며
얼마나 무고한 생명들을 앗아갔는지...
거창 양민 대학살 사건....
1000여명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경찰,군인,공무원 가족만 다 열외시키고
나머지는 무참히 학살시켰다는....
빨갱이란 단어를 습관처럼 사용하시는 몇몇분들을 보면
그분들도 슬픈 역사의 희생양이란 생각이 듭니다...
연평해전 전사자유족들은 지금도 가슴에 한을 안고 살고 계시리라 생각하며
저 자신도 돌아가신분들께 고개숙여 명복을 빕니다,
저두 잘 모르는 법이라 지금 찾아보니,
그당시만해도 법이 공무상 사망자로 처리하도록 되어 있더군요
일반국민이 생각해도 미흡한 부분들이
2004년에야 개정 되었답니다
그리고 두번째 부분부터는 설, 카더라.... 이부분은 통과 하겠습니다
어디까지나 확인 안된 설 이니까요
마지막 부분....615선언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출처] 6·15남북공동선언 [六一五南北共同宣言 ] | 네이버 백과사전
어느 부분이 잘못된 부분인지요?
저는 봐도 잘 몰라서....
가장 좋은 통일 방안은 흡수 통일 일 겁니다
허나,흡수 통일을 하자면 우리가 부담해야할돈이 10년간 1000조원정도가 예상 된다 합니다
우리나라 현실로서는 안하는게 낫죠
그 부분은 저역시도 평화통일을 바라는 바입니다
허나 북한이 우리가 요구하는대로 순순히 우리나라가 정한대로 굴복하고 통일을 하려 들까요?
김전대통령은 대통령되기 오래전부터 3단계 통일 방안을 제시 했었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그부분은 변하지 않았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가정이 파탄이나서 둘로 쪼개 졌습니다
다시 합쳐야 한다는건 둘다 알겠는데 어떻게 하는게 자연스럽게 가능 할까요?
제생각엔
서로 대화가 오가고, 그다음 서로 왕래하고
그다음에 합치는걸 논의 하는게 서로에게 부담이 없으리라 봅니다
어느순간 한쪽이 한쪽에 굴복하고 합쳐진다는건
너무 많은 시간과 감정이 쌓인다는거죠....
사실 제1차 연평해전에서는 우리 해군이 "눈치 없이" 너무 잘 싸웠지요.
그래서 노벨평화상 타려 김정일 눈치나 보던 김대중은 곤란한 처지가 되어버렸지요.
실제로 국정원에서 북측 선박 통신을 감청해서 알았던 북측의 피해상황은 훨씬 더 심각했다 합니다.
허나 김대중은 북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북측의 사상자 수를 줄여 축소보도를 했지요.
"교전수칙" 이라는 국군의 손발을 묶는 걸 만들어
서해 상에서 선제사격이 금지 되어버렸습니다.
노무현 정권 때에는 휴전선 근방에서 심리전도 중단되었습니다.
남북간 합의라는 소리 하면서 실시했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양보한 겁니다.
왜놈들과는 국교가 수립되었고, 국가적 명예와 결부된 사안이기에 국민성금 전달했지요.
정상들이 수시로 만나는 사이에서,,물론 저는 한 푼도 안냈지만.
허나, 북괴는 주적이잖습니까?
왜놈들의 식민지배는 안타까운 과거이나
해방이 된지 몇년 되지도 않아 민족의 가슴에 총질을 해댔던 자들과 왜놈들이 비교 대상이라 보시나요?
왜놈들은 같은 동포도 아니고 가족도 아닙니다.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동포고 가족일 수도 있지만,
왜놈들이 님께서 말씀하신 가정파탄나서 갈라진 가족 구성원에 포함이 되는지?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개인적 정체불명 통일방안을 대한민국 전체의 통일방안인양 김정일이에게 제시하고,
더 나아가 그 통일방안에 북괴 적화통일방안인 연방제에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으로 통일을 추진한다고 약속한 것은,
헌법 제4조을 정면으로 유린한 것입니다.
헌법 제3조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대한민국의 영토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남북 연합도, 연방제도, 낮은 단계든 높은단계든 모두 헌법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금강산 관광사업 으로 많은 외화를 벌러들이게 하였으나
우리에게 돌아온건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에맞아숨지고.금강산의 우리측재산이 북한에 몰수되는결과만초래했습니다
개성공단으로 진출한 우리 중소기업이 과연흑자로많은이익을 보았느냐하면
진출한 업체중 겨우 30%만 흑자이고
비상시 기업자금을 회수할 대책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좋게평가한다면 상직적인 의미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베트남 방문후 호치민묘소에서 양국의불행한과거에대해사과하고
2001년 베트남주석한국방문시에는 불행한전쟁에 참여해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준것에대해 사죄한다고 말했습니다
평화를지키위위해 참전한 우리국군의 피와땀을 의미없이 만들어버렸습니다
또한 유일하게 일본국왕을 천황으로 격상해서 불렀고
우리영토인 이어도를 공동수역으로 인정해 중국과의 영토싸움에 빌미를 제공했었고
물론
임기5년 잘한정책이 외 없겠습니까
하지만
국가가 국민에게 해줄수있는 최고의 정책은 마음껏생업에종사할수있게 안보를튼튼히 해주는것이라 믿습니다
문어대가리가 한짓은 국내에 머물뿐이지만 김대중이가 한짓은 무너져가는 김씨 왕조를 살렸을뿐만아니라
"북한은핵을 만들 능력도 의지도 없다" 면서 대북송금을 몰래 해버렸죠
지금 가장 문제시되는 북핵 문제가 김대중이 만든것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죽기 몇달전에 한말이 더 점입가경이죠
북한 김정일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 안하던 작자가 노망이 들었는지... 우리나라 국민이 엄청난 차이로 당선시킨 대통령을
독재자라 칭하고 항거해야 한다고.... 정말 웃기지 않나요?
진짜 독재자 한테는 돈도 갖다 바치면서 노벨상 탈려고 아양이나 떨고있고...
이명박은 김대중처럼 이적행위도 안했는데, 어찌 저주에 인신공격을 그렇게 받는지,,,,
위 두분이 누굴 칭하시는지는 모르겠는데,
대한민국의 기초인 헌법을 우습게알며, 대한민국을 아직도 DMZ내에 수습못한 6.25 전사자들의 유해가 몇 만구가 된답니다.
그분들이 그 곳에 누워 김대중의 행태를 어찌 생각하실까요.
도피안님...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 사시지 마세요..
항상 님의 말씀이 진리처럼 말씀을 하시는데
저희 집안에도 한국전쟁에 참전하신 자랑스런 분이 계시고
해병대에 입대하시어 월남전 참전용사로 성함만 대면
해병대 전우회에서 아시는 분이 많이 계십니다...
명절날이면 항상 찿아뵙는데
술한잔 나누시면서 정치얘기 오가면
이명박은 인간 취급도 안하십니다...
박정희 대통령이나 박근혜를 신처럼 좋아하시긴 하지만...
뭘 님께서 국가를 위해 대단한 일을 하셧다고
그리 깝치시는지 정말 한삼하기만 하네요...
앞으로도 쭈욱 혼자 키보드로 애국하세여...
이승만 ''''12년집권 -15억$적자 67 -> 82
박정희 ''''18년집권 - 233억$적자 82 -> 1,636 .. 세계 4위 외채국 만듬.
전두환 ''''''7년집권 + 8억$최초흑자 1,749 -> 4,268 ..세계 4위 외채를 30억 달러까지 줄임.
노태우 ''''''5년집권 -132억$적자 4,268 -> 7,811
김영삼 ''''''5년집권 -366억$적자 7,811 -> 7,355 ..물러날때 외환보유고가 39억달러
김대중 ''''''5년집권 +846억$흑자 7,355 ->12,646
................1200억 달러 세계 4위 외환보유국 만듬
................1999년 9월부로 대한민국을 최초로 순채권국으로 만듬
그후 이명박이 지금 엄청나게 외채를 늘렸죠
집권초기 구조정으로 인하여 말도 많았지만
그로 인해서 지금의 삼성 LG 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기업이 만들어질수 있는 초석을 마련한겁니다.
잘했던 못했던 한나라에 대통령이었던 분들에게
성을빼고 이름을 부르질 않나 쥐세끼니 뭐니 하질않나
이슈방에서 장문에 글과 토론을 할정도면 나이와 학벌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이 싫어하더라도 국민이 투표로 선택된 분들에게 뭐하는 짓입니까
이나라에 지도자가 그렇게 보기싫고 막말을 할정도로 미운데 왜 이나라에 살고들 계신지요?
싫으면 이민가세요
님들만 보고 토론하는곳 아닙니다
만ㅇ은 월님들이 보고 계십니다
제발 막말은 삼가하시고 대통령은 안써도 됩니다
풀네임은 씁시다 친구도 아니고 영삼이 대중이 명박이가 뭡니까
빨갱이라 불리우는 이유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현실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위하여 그많은 이유들 중에는 객관성이 부족해 보이는 이유들도 많이 있습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그동안 북한의 주장.행동과 공통적으로 일치하는 것은 우연일까요?
북한의 한국민족민주전선에서는
김대중 부정비리에 관한 북한의 한국민족민주전선 폭로의 글을 밝히고 맙니다.
1982년 미국으로 떠나며 전두환 대통령에게 30만불 받은 것을 시작으로 후일 평민당 창당 자금 300억을 全대통령에게 따로 받았다.
전두환대통령이 대통령의 예우를 받을 수 없게 된 것을 외교관 여권을 주어 방일할 수 있게 한 대가로 5백억원의 사례금을 또 받았다.
노태우 前대통령에게는 김대중 본인이 받았다고 털어놓은 20억은 껌 값이고 6공 비리에 관한 중간평가 유보를 떡밥으로 수차례에 걸쳐 총 1200억을 갈취했으며 집권 후 재벌과 기업주를 상대로 개혁과 구조조정을 내세우며 압박을 가해 총 5000억에 달하는 통치자금 즉 비자금을 쉽게 확보했다.
이외에도 미국한인사회서 광주희생자들을 위한 모금과 민주화운동 자금으로 들어온 수백만불. 여기에 평민당 공천사례금으로 거둬들인 돈 등을 모두 합치면 대략 8000억 정도...
1차 폭로 5개월 후 1999년 12월 일본 문예춘추지에 김정일이 김대중을 압박하는 육성녹음 전문이 소개되었으며.
김일성수령으로부터 사랑과 배려와 도움을 받고도 배은망덕하다는 내용이다.
이때 동 김병식이 위 김대중에게 대통령 당선을 기원하며 보낸 편지가 처음으로 함께 공개됐다.
한국민족민주전선은 金大中의 부정축재 비리를 앞서 폭로하고 김정일은 직접 金大中의 매국적 반국가적 행위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기 시작.
(모든 자료와 김병식의 편지는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함)
이무렵에 노동당기관 잡지 구국전선은 책자와 전단을 통해 김대중의 불법자금 스위스은행 보관사실을 휴전선과 해외동포들에게 뿌리며 김일성주석의 은혜에 빨리 보답하라는 압박을...
이후에 2000.3.9일 김대중은 베를린자유대학 연설에서 햇볕정책의 시발점인
베를린선언 WIN-WIN으로 북한정권보장에 대한 세 가지 공약을 합니다.
북한의 경제회복을 돕는다.
우리는 북한의 안정을 보장한다.
북한의 국제적 진출에 협력한다.
위 사실들의 인과관계를 보면 북한의 폭로성 압박에 쫏기듯 급조된 햇볕정책은
대한민국 헌법을 철저하게 무시하며 또한 국민적 합의도출.시도조차 없이 6.15선언을 많들어 냅니다.
그리고 결국은 대통령 재임 시절이던 지난 2001년에는 “북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
그래서 우리의 대북지원금이 핵개발로 악용된다는 얘기는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다.
북이 핵을 개발했다거나 개발하고 있다는 거짓유언비어를 퍼트리지 마라. (만약 북에 핵이 개발된다면) 내가 책임지겠다”...
이명(耳鳴) 현상이 나타났다. 왼쪽 귀였다. 오랜 독방 생활에 김대중의 몸은 무너지고 있었다. 고관절 장애는 고통 자체였다. 다리가 붓고 곧잘 쥐가 났다. 1982년 12월 10일 안전기획부 간부가 김대중을 찾아왔다.
"몸도 불편하신데 미국에서 치료받지 않으시겠습니까."
뜻밖이었다. 하지만 혼자 미국으로 떠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민주화 투쟁을 하다 갇힌 동지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다 수감된 광주 시민들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었다.
"뜻이 그러하다면 나를 풀어주고 국내에서 치료받게 해주시오."
안기부 간부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돌아섰다. 그런데 얼마 후 아내가 찾아와 미국 출국을 간곡하게 권했다. 이번에는 김대중이 답을 하지 않았다.
김대중은 왜 저들이 미국행을 권하는지 따져보았다. 전두환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정치인과 민주 세력을 탄압하며 철권을 휘둘렀다. 정통성이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국내외의 역풍은 만만찮았다. 또한 김대중을 석방하라는 국제 사회의 압력은 갈수록 거세졌다. 김대중 석방은 국내외 국면 전환을 위해 필요했다.
며칠 후 다시 아내가 면회를 왔다. 이번에도 이희호는 간곡하게 미국행을 설득했다. 가족들과 안병무, 예춘호 등도 출국을 권유했다고 전했다.
"해외에서도 우리가 할 일은 많을 것입니다. 또 당신이 미국으로 떠나가야 구속된 분들이 나올 수 있답니다."
그 말에는 반박을 할 수 없었다. 김대중은 결국 미국행을 결심했다. 그러자 안기부 간부가 찾아와 각서를 써 달라고 했다. 이런 요지였다.
'병 치료에만 전념하고 정치 활동은 안하겠으니 선처해 달라.'
김대중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출국을 위해서 필요한 절차일 뿐 절대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기부장 노신영은 이희호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절대 발표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 인격을 믿으세요."
김대중은 각서를 썼다. 그러나 저들에게 '인격'은 없었다. 각서는 문공부 장관 이진희가 기자 회견을 하면서 즉각 공개해 버렸다. 김대중은 신군부 쿠데타 세력에게 선처를 구걸하는 비루한 정치인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런 속사정을 알릴 사람도, 방법도 없었다. 어쩌면 김대중은 저들에게 속아 주었는지도 몰랐다. 인격에 오물을 투척하고 이미지를 구겨서 정치생명을 끊으려는 수법을 김대중이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김대중은 12월 16일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출국을 앞두고 이희호는 비서들을 동교동으로 불러 모았다. 정표나 기념물이 될 만한 김대중의 물건을 나눠주었다. 누구는 담배 파이프를, 누구는 김대중이 덮었던 담뇨를, 누구는 반지를 받았다. 언제 다시 만날 지 알 수 없었다. 이희호가 말했다.
"우리가 죽지 않고 살다보면 반드시 다시 만날 날이 올 것입니다. 무엇보다 건강을 지키세요."
모두 고개를 숙였다. 비서들은 주먹으로 눈물을 훔쳤다. 김대중 없는 동교동, 김대중 없는 야당 그리고 대한민국을 떠올렸다. 간절히 뵙고 싶었다. 그 앞에서 절이라도 올려야 했다. 성치 않은 몸을 끌고 다시 망명길에 오른다니……. 정권은 무도했고, 시절은 여전히 수상했고, 현실은 서러웠다.
12월 23일 밤 김대중은 아내, 두 아들(홍업, 홍걸)과 함께 극비리에 김포공항으로 실려 갔다. 가로등은 모두 꺼져 있었다. 공항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비행기 트랩 앞이었다. 노스웨스트 항공이었다. 김대중이 막 자리에 앉았을 때 청주교도소 부소장이 나타났다.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읽었다.
"형 집행 정지로 석방한다."
김대중은 그 누구의 배웅도 받지 못했다. 이희호가 눈물을 훔쳤다. 그 시간 서울 밤거리에는 캐럴이 나뒹굴고 있었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비행기는 어둠을 걷어차며 이륙했다. 그리고 이내 어둠에 잠겼다. 1973년에는 납치당해 모국 땅으로 끌려왔는데, 9년 후에는 이국땅으로 쫓겨나고 있었다. 다시 망명객으로 떠돌아야 했다. 고단한 시간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노스웨스트 항공기는 12월 23일 밤 10시 45분 워싱턴 내셔널 공항에 도착했다. 깊은 밤에 김대중이란 망명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300여 명이 김대중을 연호했다. 최성일, 한완상, 이근팔, 패리스 하비(Pharis J. Harvey) 목사 등이 보였다. 김대중의 사진과 '행동하는 양심'이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문동환 목사가 환영사를 했다.
"다니엘을 사자굴 속에서 건지신 하나님은 김대중 선생을 악랄한 독재자 전두환의 손에서 건지셨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김 선생께서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에 큰 역할을 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문 목사가 큰 눈에 눈물을 담았다. 문동환은 김대중의 앞날이 험난하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내 이희호가 연신 눈물을 찍어냈다. 상원의원 에드워드 케네디가 보낸 그의 수석 비서관은 환영 메시지를 읽었다.
망명객 김대중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교회와 대학, 인권 단체와 협회에서 김대중을 초청했다. 미국에 머물던 2년 1개월 동안 150회가 넘는 연설을 했다. 주제는 거의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이었다. 김대중은 늘 길 위에 있었다. 어디서 누가 불러도 달려갔다. 수십 명이 모여 있는 연설회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물론 수천 명이 모인 집회도 많았다.
그해 9월부터 하버드 대학 국제문제연구소(CFIA, Center for International Affairs)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에즈라 보겔(Ezra Vogel), 제롬 코언, 에드 베이커, 벤저민 브라운(Benjamin Brown), 쿠퍼(Cooper) 교수 등을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 하버드 수학 중에도 강연 요청은 끊임없이 들어왔다. 하버드 대학 '아시아법률센터' 강연에서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지금 망명까지 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는데 그것이 과연 가능합니까. 민주주의는 서구 사회의 산물입니다. 한국의 전통에는 민주주의 요소가 없지 않습니까."
사실 김대중은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주한 미군 사령관 위컴도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 정권을 지지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은 들쥐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돼도 따를 것이고, 체질상 민주주의가 맞지 않다."
주한 미 대사 리처드 워커는 이런 폭언을 했다.
"한국 국민은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없다."
한국에 파견된 고위 관리들의 생각이 저럴진대 일반 미국인들의 의식은 어떨 것인가. 김대중은 미국인들의 조소 섞인 질문이 아팠다. 한민족의 역사를 뒤져 의구심을 걷어내려 최선을 다했다.
"첫째, 단군 신화를 비롯한 우리 민족의 건국 설화들 속에서 민주주의의 근본정신의 하나인 민본 정신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단군 신화에 나오는 홍익인간 사상은 백성을 근본으로 해야 한다는 전제로 이뤄졌습니다. 신라나 가야의 건국 설화를 보면 백성이 모여 왕을 추대합니다. 어떤 나라 건국 설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예입니다.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것이니 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둘째, 최근 100년의 역사가 곧 권위주의에 맞서 싸운 투쟁의 기록입니다. 조선 왕조가 망한 지 9년 만에 일어난 3·1 운동에서 왕정복고를 주장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프랑스가 대혁명 후에도 근 200년 동안 끈질긴 왕정복고의 역사를 거듭했던 것과 비교해 보더라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60년 4·19 혁명, 1979년 부산·마산 항쟁, 1980년 광주 항쟁 등이 민주 정신에 입각한 투쟁이었습니다.
셋째, 조선 왕조 500년을 지배하던 유교의 근본정신은 민본주의였습니다. 따라서 흔히 유교적 전통을 가진 나라가 민주주의에 친숙하지 않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맹자의 주장입니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임금은 하늘의 아들이다. 천자는 하늘을 대신해서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 사명을 받았다. 그런데 천자가 하늘의 뜻을 어기고 백성에게 학정을 한다면 백성은 들고일어나 임금을 쫓아내고 새로운 임금을 들여올(易姓革命)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넷째, 우리나라는 국민의 교육 수준이 세계 정상급입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교육 수준 없이는 창출될 수 없으며, 교육받는 국민만이 주권 의식과 책임 의식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지켜 나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하지 못한다면 어느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김대중은 망명 생활 내내 형편이 어려웠다. 망명일지와 같은 김대중의 육필 메모를 보면 돈에 관련한 얘기들이 빈번하게 나온다.
'요즘은 경제 문제로 고민이 크다. 사무실을 집으로의 철수를 고려 중.' (1984년 3월 8일)
'가구 렌트에 2500불이 들어서 아파트 얻는 것은 포기해야할 형편.' (5월 5일)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김대중이 미국에서 호화생활을 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고급 아파트에서 잘 먹고 잘 입는다. 손가락에는 커다란 루비 반지를 끼고 다닌다."
"수많은 경호원들을 데리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김대중이 서울을 떠나올 때도 "대통령이 제공한 특별 전세기를 타고 갔다." "이희호가 이순자에게 20만 달러를 받았다"는 등의 얘기가 사실처럼 굴러다녔다. 모두 안기부가 생산해낸 터무니없는 것들이었다. 국내 언론은 그런 내용을 양념을 쳐서 슬쩍슬쩍 보도했다. 용서 못할 행태였지만 김대중에게는 방어할 아무런 무기가 없었다.
김대중은 틈틈이 그간 주창해온 '대중 경제론'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유종근 박사의 도움을 받아 '대중 참여 경제론'으로 발전시켰다. 뉴저지 주정부에 근무하는 유종근은 김대중의 논리를 정확하게 간파하여 그 속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이 논문집은 하버드 대학 측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고, 부교재로 채택했다.
하버드 대학에서는 지식뿐만 아니라 사람도 얻었다. 필리핀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Benigno Aquino)도 만났다. 김대중과 아키노는 조국을 떠나와 이국땅에서 똑같이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친해졌다. 현실을 보는 눈과 가슴에 품은 이상이 같았기 때문에 다른 설명이 필요 없었다. 아키노는 소탈하고 호방했다. 그의 부인 코라손 아키노(Corazon Aquino)는 상대적으로 과묵하고 차분했다. 어느 날 아키노가 말했다.
"우리가 아예 모임 하나를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좋지요. 우리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위한 공동의 조직체를 만들어서 함께 일합시다."
언젠가는 '아시아 민주 전선' 같은 민주화 운동의 구심체를 만들기로 했다. 아키노는 명석했고 친화력이 뛰어났다. 그런 아키노가 갑자기 귀국을 서둘렀다. 김대중은 불길했다. 아키노는 세계의 비상한 관심 속에 귀국길에 올랐다. 예감은 적중했다. 아키노는 마닐라 공항에서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다 총격을 받고 쓰러졌다. 비극적인 장면은 긴급 뉴스로 종일 방영됐다.
김대중은 큰 충격을 받았다. 즉각 아키노 피살 관련 성명을 발표했다. 재미 필리핀인들의 집회에도 참석, 추모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키노의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김대중도 귀국을 서두르고 있었다. 역시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님께서 이런 전기를 올려주시면
제가 객관성 부족으로 제외.논외로 한다고 말씀드린 또 다른 이슈들이 반복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토론에서 객관성이 결여된 토론은 논쟁만을 불러오는 부작용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첫째는...
준법을 생명처럼 지켜야 할 공직자(행정부의 수장 대통령) 신분으로 법을 위반한것이
제가 말하는 관점의 요지이며
둘째는...
햇볕정책을 발표한 시기가 한민전의 폭로 이전에는 일체의 언급이 없다
폭로에 쫏기듯 급박하게 서두르다 보니 국회와 국민들과 일체의 상의를 못했다는 점
(님이 대통령이었으면 통일에 대한 선언을 국회나.국민의 동의없이 졸속으로 강행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셋째는...
국가의 환란이라고 불리우는 IMF로 국가경제가 무척 어려운 시기에
단1불 이라도 달러가 귀하디 귀해서 국민들에게 장롱속의 금반지 까지 내놓으라 장려하던
그 어려운 시기에 상상못할 거액을 실정법을 어기면서 까지 바치면서 정상회담을 해야할만큼 6.15선언이 급박했는지요?
이는 개인의 욕심이 앞선 것 이라는 비판이 잘못되었나요?
(노벨상을 돈으로 매입했다는 비난은 여기에서 출발된 것이 아닌가요?)
넷째는...
햇볕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세력들에게.
지난 2001년에는 “북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
그래서 우리의 대북지원금이 핵개발로 악용된다는 얘기는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다.
북이 핵을 개발했다거나 개발하고 있다는 거짓유언비어를 퍼트리지 마라. (만약 북에 핵이 개발된다면) 내가 책임지겠다”... 라며 6.15선언을 비난하는 세력은 통일을 반대하는 나쁜세력이라고 대한민국을 기만하고 협박한 사실이 분명합니다.
국민정부.참여정부
그 어느 누구도 북한 핵무장에 대하여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심지어는 북한의 핵 개발은 어쩔 수 없는 최소한의 자위권이라며
북한의 핵은 대한민국을 위협할 무기가 절대 아니라고 대변하는 모습을 좌경화 되었다고 보는게 잘못되었나요?
아무리 김대중을 감싸고 보호하려는 마음을 십분 이해해서
정말 이 잘못되어가는 현실을 외면한다해도 김대중은 자신이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에게 한 말에 대하여
법적.도덕적 책임을 지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국민들에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것이 아닌지요?
하나로님
그리고 자칭 진보라 여기시는 여러분들게 당부드립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와 자가당착(自家撞着)에도 경우가 있어야 하는것은 아닌지요?
제가 문제시하는 위 사항에 대하여 상세하게 반론의 근거를 주셔서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면 적어도 김대중 前大統領은 좌빨의 논란에서 어느정도는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냥자자님,
저도 외환위기시절 서울구로구에서 소규모였지만 제 사업체 넘겨주고 지금은 강원도에 와서
작으나마 자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뭐 경제에 지식이 많은것두 아니어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능력이 안되구요
말씀하신내용중에 부족하나마 제가알고있는 부분만 말씀 드리지요
제가 의사전달을 하고자 함은...
이념적으로 선을 그어놓고 니편 내편이 아닌 객관적 입장이라고 서두에 말씀드렸지만...
역시 님께서도 김대중 前大統領을 빨갱이라고 하는것은 오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심지어 어느 자칭 진보라는 어느분은 냉소적인 비웃음으로 적대감 마저 내비치고 계십니다.
저는 김대중이 왜?
무엇 때문에?
좌향좌의 사고를 지닌 정치인이라 정의되고 있는가?
매우 궁금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올바른 토론을 원하신다면 자신들의 신념이나 소신만을 앞세워
감정적으로 토론 상대방의 글을 읽지 마시고 글쓴이의 의도를 차분하게, 천천히 그리고 올바르게 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옛말에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이라 했습니다.
제가 말했던 것은
1. 북한의 폭로,발표를 신뢰한다 하는것이............. 아니며
(저의 글 어느곳에 한민전의 폭로를 신뢰하는듯한 문구가 있나요?)
북한 한민전의 폭로시점과 햇볕정책의 시점.시기의 인과관계가 성립되는 문제와...
2. 위의 상황논리에 따라서 조급하게 급조한 햇볕정책을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헌법을 위반해가면서 무리하게 추진했다고 말 했습니다!
3. 통일이라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숭고한 염원이...
국민적 합의에 대한 논의와 합의도출에 대한 일체의 논의도 없이
김대중이라는 한사람의 개인적 욕심으로 국민의 혈세를 IMF라는 국가 초유의 경제적 환란의 시기에
헌법과 실정법(외환관리법 위반)을 무시한 불법.탈법적인 방법으로 제공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
4. 대한민국의 헌법을 무시한 북한의 고려연방제에 종속되어지는 6.15 선언을 독단적으로 선언.서명한것은...
대한민국의 국민의 의사를 철저하게 무시한 것이며
대한민국의 입법부.사법부.행정부를 농락한 오만방자한 행위로서
대통령의 직권을 남용했다고 생각하여
“대한민국 헌법을 무시한 대통령이라는 비난은 피할수 없는 사실입니다.”
라고 개인적으로 판단했습니다.
5. 아울러 정치인 김대중이 아닌
대한민국의 대통령 김대중의 입장에서
햇볕정책을 졸속적으로 불법.탈법적으로 무리하게 강행하는 과정중에...
“북이 핵을 개발했다거나 개발하고 있다는 거짓유언비어를 퍼트리지 마라. (만약 북에 핵이 개발된다면) 내가 책임지다”...
라고 강변하면서 6.15선언의 문제 제기 의견을 일축하며
통일에 대한 국민.정당들과의 진지한 논의는 일절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6.15선언만이 진리이며 6.15선언에 이의를 제기하는 세력은 통일을 음해하는 세력이라 단정지으며
대한민국을 고압적으로 윽박지르다시피 하면서 북한의 미사일실험, 핵개발을 묵인하는
이적에 가까운 행위를 지속하면서 국민의 혈세를 대책없이 퍼 붓더니 결국은 북한이 핵무장 선언을 하고 나니...
결국은 북한의 핵개발은 일종의 자위권이며...
자신이 독단적으로 추진한 햇볕정책 덕분에 한반도의 평화가 정착했다고 대한민국 국민을 기만하는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퇴임후에도
단 한번이라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거나 반성하는 책임있는 자세를 보인적이 없으며!!!
또한 온 국민을 향해 특유의 달콤한 언어로 혹세무민(惑世誣民) 하며
현 정권을 향해 투쟁하고 궐기하라고 섭정을 하듯 진보층에게 일갈하였습니다.
이런 김대중의 모습에서 보수의 의견과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좌편향적이라 보았다면 수구꼴통이라 말하실 것 인가요?
6. 이곳 이슈토론방에서 자칭 진보라는 분이
자신의 좁디 좁은 잣대를 기준으로 단정적으로 말을 하시더군요.
대충 투표하는 중도층이라고...
자칭 진보이신분의 대단하신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혜안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진보라 생각하시는 분들의 오만한 말 한마디가
저와 같은 무색.무취의 중도층은 무개념으로 대충 투표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해방의 혼란스러운 시대도 아닌 부조리한 언론권력이 난잡한 행태로 이전투구하는
이시점에 자신들의 정략적 이해관계를 앞세운 언론.정당들이 일방적으로 선을 그어놓고
진보.보수를 따지며 이분법적 논리만으로 편가르기 하는 월척내의 진보.보수에게 묻고싶습니다.
조우들 한 가운데다 꼭 줄을 긋고
너는 이쪽 너는 저쪽이라고 꼭 둘 중하나를 택하라 해야 하는지요?
양단간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안 될 절명의 가치가 보수요 진보라도 된단 말인가요?
어느쪽에 서지 않으면 회색분자라거나 무식한자로 매도당하는 듯 한 모양은 분명 해악입니다.
무색무취의 중도층이 진보에게도 눈총 받고 보수에게도 발길질을 당한다면
우리나라는 또다른 이념, 생각, 사상, 철학, 정치에 이르까지
남북분단보다 더 크고 무서운 사상분단으로 인해 우리는 점점 힘들어 질 것이며.
WASHINGTON (Yonhap) -- A U.S. court has upheld a 2008 ruling to grant political asylum to a former South Korean intelligence agent who claims to face threats from both South and North Korea, sources here said Tuesday.
Kim Ki-sam, who left South Korea's state spy agency in 2000, applied for asylum in the U.S. in 2003, saying he would face persecution and prosecution if he was forced to return to South Korea because he had revealed information about secret operations to help then-President Kim Dae-jung win the Nobel Peace Prize.
One of those operations was the transfer of a $500 million "bribe" to North Korea that led to a historic inter-Korean summit, Kim said.
He claimed that he was facing threats from North Korea as well.
The immigration court in Pennsylvania approved his asylum bid in 2008 but prosecutors lodged an appeal.
An appellate court in Philadelphia, however, confirmed the previous ruling late last month, the sources said.
Kim, 49, resides in Harrisburg, Pennsylvania, and has passed the bar exam in New York State, according to the sources. (Yonhap)
"DJ 노벨상에 눈멀어 김정일에 뇌물…"
김대중 전 대통령이 거액의 대북송금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김기삼(49) 전 국가정보원 직원이 최근 미국에서 최종 망명승인을 받으면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그의 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김 씨는 지난 2010년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비봉출판사)라는 책을 통해 "국정원 직원이라면 비밀을 무덤 속까지 가져가야 하겠지만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에 눈이 멀어 민족을 배반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면서 "나의 양심상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김대중이 '그토록 어처구니 없는 대북 정책을 오랫동안 일관되게 잘못 추진한' 근본 이유는 노벨평화상에 대한 지독한 노욕(老慾)때문"이라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목적으로 국정원을 동원해 해외공작을 진행하는 한편, 김정일에게는 약 2조원(15억달러 상당)에 달하는 뇌물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김 전 대통령이 1999년 7월 '필라델피아 자유의 메달'을 수상하면서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돌파구만 마련되면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1999년 말, 온 세상이 새천년의 기대에 한창 들떠 있을 즈음, 김대중과 김정일은 극비리에 뇌물 뒷거래 협상을 마무리지었다"며 "북한에 제공하기로 한 뒷돈은 미화로 15억 달러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의 공보비서 출신인 김한정이란 인물이 국정원 대외협력보좌관실에서 ▲휴전선에서 '평화 음악회' 개최 ▲스웨덴과 노르웨이 현지에서 공금을 들여 김대중의 인생 역정을 미화한 전기 발간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1993년 노벨 평화상) 방한(訪韓) 등을 추진했다며, 국정원이 동원된 정황을 설명했다.
김 씨는 또 "북한은 (남한으로부터 받은) 돈을 고폭장치 등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핵심 물자를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구입했다"며 "북한은 현금을 챙기고 남북정상회담 등 위장된 평화에 호응해 줌으로써 김대중이 노벨평화상을 받도록 도왔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씨는 국정원 재직 중 김대중 정권의 노벨상 수상 공작과 남북정상회담의 추진 과정 및 그 후속 과정 등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퇴직 후 암살의 위험을 느낀 그는 미국으로 몸을 피했고, 망명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지난 2008년 4월 열린 1심에서도 미국 망명을 허용받았지만 미국 검찰이 항소하면서 3년 가까이 재판이 이어져 오다 지난해 말 최종 망명이 승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국정원 간부 출신 인사는 "국정원 출신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이런 사안을 두고 허위로 증언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특히 미국에서 망명 신청이 승인되는 과정에서 김 씨의 증언 내용도 함께 미국측에서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빨갱이...
그 혐오스런 빨갱이란 단어가
얼마나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증오하게 만들었으며
얼마나 무고한 생명들을 앗아갔는지...
거창 양민 대학살 사건....
1000여명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경찰,군인,공무원 가족만 다 열외시키고
나머지는 무참히 학살시켰다는....
빨갱이란 단어를 습관처럼 사용하시는 몇몇분들을 보면
그분들도 슬픈 역사의 희생양이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