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올림픽 이후 부터 인 것 같습니다.
고향의 모습은 참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전체적인 경기가 좋아서인지 때마침 일어난 석산 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조용했던 산골 읍내가 갑자기 수많은 외지인으로 넘쳐 나기 시작 했고
그에 따라 식당,술집,도박 등으로 흥청 되기 시작 하더군요..
그 중의 압권은 티켓 다방.
다방 마다 무수히 많은 아가씨들.
길에는 온통 커피 보자기를 싼 아가씨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오토바이 탄 배달맨의 등뒤에 껌 같이 붙어 다녔습니다.
소위 말하는 "오봉파"의 시대가 온 것이었습니다.
밤이면 또 시간제로 티켓을 끊어서
노래방으로 술집으로 그리고 그 다음엔 ...
조그만 시골 읍내에 다방만 근 100군데가 넘으니
아가씨들 떠나면 경기가 휘청 거릴 거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웃겼던 것은 다방의 이름이었습니다.
녹원 다방,문화 다방, 그 다방 등등
뭔가 고색 찬연한 이름이 사라지고
"뽕 다방","떡 다방", "털 다방" 등등 가히 그 이름만 들어도
발육 왕성한 청소년은 코피를 쏟을 정도였습니다.
“소주 한잔 하자” 는 말보단 “커피 한잔 하자”라는 말이 더 친숙해진 그 무렵
반 백수 양아치 친구 녀석.
뒤 늦게 메기 릴 낚시에 재미를 들인 그 녀석은
늘 낚시를 가면 티켓을 끊는 고정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그 넘 말은 어부 딸내미 같다고 합니다만
여하튼 참 가관이었습니다.
"어이 김양아!"
"예 옵빠!"
"깨벌레 좀 달아라. 이쪽엔 지렁이 달고..”
“어이 김양아!”
“예 옵빠!”
“뭐하노 . 바늘 안 빼고 .어여 망에 넣어야지”
깨벌레나 볼펜 만한 지렁이 또는 거머리를 바늘에 달고, 잡힌 물고기 빼는 건 오로지 아가씨 몫.
이놈은 방울 소리 나면 손 맛 보며 릴 감는 일만 합니다.
그 놈 왈.
"낚시는 좋은데 꿈틀거리는 건 만지질 못하겠다..비린내도 싫고.”
설 명절때 오랜만에 친구들이 시켜 주는 배달 커피를 마시며
예전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 김양은 지금 어디에서 거머리를 꿰고 있는지..고기 배를 따고 있는지..
우리 회원님들도 티켓 다방에 얽힌 추억 하나 정도는 있을 듯 한데..
우리끼리니 속닥하게 이야기 좀 한번 풀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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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게 자게방 재미죠
잘 읽었습니다
답글 하나 쓰겠습니다
짜르르한 이야기 기대 합니다.
월척나라님!
ㅎㅎ 훌륭한 일 하셨습니다.
작명료라도 두둑히 챙겨셔야 할 텐데..
동부이촌동 복지아파트 앞에서
낚시연습하다 복지..ㄱ 자가 바늘에걸려
빠지는바람에
보g 아파트 가됬지여
그다음은 트 자를걸어 빠트리는바람에
다음은..상상에...^^
아무것두 몰라예~~^^*
ticket~??이게 뭐라예??
살을 약간 붙여 추억의 조행기로 넘어가시죠.^^
반 백수 양아치 친구란 분이 혹시 소풍님?
그때 김양의 근황이 궁금하신 것을 보면...(머리속에 소설이 막 써집니다.)
추억의 복지아파트가 동부 이촌동에 있었군요.ㅎㅎ
제 마음이 다 아픕니다.
그림자님!
어허 딱 보이 선수시던데.^^
빤쮸 색깔로 커피내기 많이 해 보셨을듯 한데..
아부지와함께님!
돗자리 까셔야 되겠습니다.
추억의 조행기에 올릴까 약간 고민 하다가 자게방에..
저는 저 뭐시냐 권양이라고..따로..
이곳에서는 처음들어봅니다.
저는 지금도 지방에서 일할때는
자주 이용합니다.ㅎㅎㅎ
지방에는 아직도 많이 있는거 같더라구요~~~
"오봉파"를 아시는 군요. ^^
어쩌다 그때가 그립기도 하더군요.
그 짙은 음담에 패설도..
밖에 모릅니다^^
작년겨울 다방이 없다가 한군데 생겼습니다
막걸리집에서 형님들하고 막걸리 한잔하는데
형님친구분이 오셨는데 다방사장 이더군요
어쩌다보니 다방아가씨가 숙취에 좋은 마차를
갔다주고 영업이 끝났는지 오더니 내옆자리에
앉잤습니다
술자리는 계속돼고 ᆢ 유쾌한 대화가 오가고
술자리 끝났는데 30 미터도 떨어지지 않는 숙소에 저보고 차로 데려다달라고 ᆢ
데려다주고 ᆢ ㅎㅎ
집에 왔내요^^
그렇게 기발한 방법이 있었네요.
황제낚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