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내 나이 열일곱 살에서 스물여섯 살까지, 십 년간의 인연이다. 그녀는 조그만 동산에서 나를 겁탈했다. 나는 동정이었고, 그녀는 경험자였으니 내가 당한 게 맞다(고 우겨본다.). 십 년의 일편단심? 그녀는 그랬으나 나는 아니었으니, 뭐 감동할 필요는 없다. 아파트 옥상에 숨어 담배를 피우던 열일곱 살 소년은 동네 양아치에게 희롱당하던 열일곱 살 소녀를 구해준다. (양아치 엉아는 소년이 형사과장의 아들이란 걸 익히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여튼, 덩치도 쬐그만 놈이 깍두기 엉아를 물리친 영화의 한 장면에 소녀는 소년에게 뻑이 간다. 그녀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자니, 그 아름다웠던 날들이 아려 코가 시큼해진다. 몇 번의 만남 후, 소년은 소녀의 집에 놀러 간다. 소녀가 잠깐 나간 사이, 소년은 장롱 밑에 노트 한 권이 있는 걸 본다. 롤러 스케이트장에서 만화주인공 같은 왕자님을 발견하고, 일 년 정도 왕자님 곁을 배회한 흔적이 적힌 일기장. 소년의 이름이며 일상, 그리고 동선까지. 소녀와의 만남이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에 소년은 배신감 대신에 권력을 택하기로 한다. 그녀와의 관계에서의 절대적 권력, 자신감 말이다. 늘 세상을 향한 호기심에 몸살을 앓던 소년과, 늘 그런 소년을 잡고자 했던 소녀. 또래 계집애들과 장난치던 골목길 어귀에 소녀가 서 있었다. ㅡ 그래좋아니가하고싶은거다해봐나는변함없이여기있을테니. 라는 소녀의 말에 소년은 기쁜 목소리로 답한다. ㅡ 잘생각했어제발기다리지말아줘. 열일곱 살 소년이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갔다 오는 동안(우리의 왕자님이 그가 되고, 소녀가 그녀가 될 만큼의 시간.),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찾지 않는다. 가끔 그녀가 그를 찾아왔고, 그는 무례하고 퉁명스럽고 짧게 말할 뿐이다. ㅡ 어왔냐? 그가 헉헉대며 그녀의 몸을 탐하는 동안, 아마 그녀는 울었을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나쁜 남자였다. 그녀는 그래도 좋다고 했지만. 겨울, 밤이었겠다. 진주 촉석루 돌담길에 그녀를 돌려세우고 벨트를 풀던 그의 손을 그녀가 꽉 잡는다. ㅡ 어쭈너답지않은데? 그녀가 그녀답지 않게 공격적인 눈빛으로 말한다. ㅡ 그만헤어져. ㅡ 다시말해봐기회는한번뿐이야. ㅡ 헤어져그만. ㅡ 그래고마웠다잘살아라. 반년 후, 그녀는 결혼을 한다. 밴드 마스터랑. 그녀와의 헤어짐이, 그리고 그녀의 결혼이 그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에게는 (처음부터)그녀가 '많은 그녀들' 중 하나일 뿐이었으니. 제대 후 복학을 앞두고 일어난 아버지의 실종과 집안의 몰락. 눈을 뜨면 희망이 바스러지는 소리를 들었고, 눈을 감으면 절망이 피어오르는 소리를 들었던 암울한 나날. 서울의 디자인 사무실에서 알바를 하며 미대 편입을 준비하던 그에게 그녀가 찾아온다. 그는 왜이혼했냐, 라고 묻지 않는다. 돌이켜생각하니나는정말나쁜놈이었어, 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말하지않아도네슬픔을다알아, 라는 눈빛으로 그가 울고 그녀가 울던 이태원의 장미여관 305호. 뜨겁던 체온이 식을 때쯤, 그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말한다. ㅡ 생각해보니우린여관이처음이네우리참가난했구나. ㅡ 가난해서가아니야니가산과들을좋아했지변태니까. ㅡ 말하고싶은게있는데... ㅡ 말하지마 ㅡ 무슨말인지알아? ㅡ 다알아너에관해서는. 알긴뭘알아건방지게,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뾰족하기에는 너무 지쳐있었고, 그녀가 정말 말랑했으니. 하고 싶은 말 서로 못하고 그렇게 헤어진 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나는 고향을 떠나왔고, 친구들을 끊었다. 나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으며, '혼자놀기'에 만족한다고 애써 자위하며 살았다. 다만, 때때로 외로울 때면 그 시간의 화석들을 캐내곤 하는데, 뽀얗게 쌓인 세월의 먼지를 불어내다 콜록콜록 기침도 하고, 그러다 가끔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 날의 풍경으로 인해 눈물도 지어보곤 한다. 추억의 골목 어귀엔 언제나 그녀가 서 있다. 누나처럼 웃으면서.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울컥해서는, 잠시 말을 못했다. ㅡ 이십육년전의목소리네. ㅡ 너도. ㅡ 찾기가쉽지않았을텐데. ㅡ 잘사니? ㅡ 너는? ㅡ 언제나어디쯤니가살고있다는생각이위로가됐어. 바닷가 오두막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지극히 편안해서는, 그녀에게 해줄 말을 예습해본다. 미안하다미안하다미안하다 # 혹 피러의 순결한 일상에 금이 갈까 염려가 된다면, 그만 걱정을 지워달라. 일탈하기엔 나는 너무 순결하고, 이탈하기엔 내 일상이 너무 바람직하다. 다만, 열일곱 살의 마음으로 엉엉 울어보고 싶을 뿐이다. 자, 저기 열일곱 살 소녀가 온다...
그녀를 만나기 전
그녀는 내 나이 열일곱 살에서 스물여섯 살까지, 십 년간의 인연이다. 그녀는 조그만 동산에서 나를 겁탈했다. 나는 동정이었고, 그녀는 경험자였으니 내가 당한 게 맞다(고 우겨본다.). 십 년의 일편단심? 그녀는 그랬으나 나는 아니었으니, 뭐 감동할 필요는 없다. 아파트 옥상에 숨어 담배를 피우던 열일곱 살 소년은 동네 양아치에게 희롱당하던 열일곱 살 소녀를 구해준다. (양아치 엉아는 소년이 형사과장의 아들이란 걸 익히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여튼, 덩치도 쬐그만 놈이 깍두기 엉아를 물리친 영화의 한 장면에 소녀는 소년에게 뻑이 간다. 그녀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자니, 그 아름다웠던 날들이 아려 코가 시큼해진다. 몇 번의 만남 후, 소년은 소녀의 집에 놀러 간다. 소녀가 잠깐 나간 사이, 소년은 장롱 밑에 노트 한 권이 있는 걸 본다. 롤러 스케이트장에서 만화주인공 같은 왕자님을 발견하고, 일 년 정도 왕자님 곁을 배회한 흔적이 적힌 일기장. 소년의 이름이며 일상, 그리고 동선까지. 소녀와의 만남이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에 소년은 배신감 대신에 권력을 택하기로 한다. 그녀와의 관계에서의 절대적 권력, 자신감 말이다. 늘 세상을 향한 호기심에 몸살을 앓던 소년과, 늘 그런 소년을 잡고자 했던 소녀. 또래 계집애들과 장난치던 골목길 어귀에 소녀가 서 있었다. ㅡ 그래좋아니가하고싶은거다해봐나는변함없이여기있을테니. 라는 소녀의 말에 소년은 기쁜 목소리로 답한다. ㅡ 잘생각했어제발기다리지말아줘. 열일곱 살 소년이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갔다 오는 동안(우리의 왕자님이 그가 되고, 소녀가 그녀가 될 만큼의 시간.),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찾지 않는다. 가끔 그녀가 그를 찾아왔고, 그는 무례하고 퉁명스럽고 짧게 말할 뿐이다. ㅡ 어왔냐? 그가 헉헉대며 그녀의 몸을 탐하는 동안, 아마 그녀는 울었을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나쁜 남자였다. 그녀는 그래도 좋다고 했지만. 겨울, 밤이었겠다. 진주 촉석루 돌담길에 그녀를 돌려세우고 벨트를 풀던 그의 손을 그녀가 꽉 잡는다. ㅡ 어쭈너답지않은데? 그녀가 그녀답지 않게 공격적인 눈빛으로 말한다. ㅡ 그만헤어져. ㅡ 다시말해봐기회는한번뿐이야. ㅡ 헤어져그만. ㅡ 그래고마웠다잘살아라. 반년 후, 그녀는 결혼을 한다. 밴드 마스터랑. 그녀와의 헤어짐이, 그리고 그녀의 결혼이 그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에게는 (처음부터)그녀가 '많은 그녀들' 중 하나일 뿐이었으니. 제대 후 복학을 앞두고 일어난 아버지의 실종과 집안의 몰락. 눈을 뜨면 희망이 바스러지는 소리를 들었고, 눈을 감으면 절망이 피어오르는 소리를 들었던 암울한 나날. 서울의 디자인 사무실에서 알바를 하며 미대 편입을 준비하던 그에게 그녀가 찾아온다. 그는 왜이혼했냐, 라고 묻지 않는다. 돌이켜생각하니나는정말나쁜놈이었어, 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말하지않아도네슬픔을다알아, 라는 눈빛으로 그가 울고 그녀가 울던 이태원의 장미여관 305호. 뜨겁던 체온이 식을 때쯤, 그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말한다. ㅡ 생각해보니우린여관이처음이네우리참가난했구나. ㅡ 가난해서가아니야니가산과들을좋아했지변태니까. ㅡ 말하고싶은게있는데... ㅡ 말하지마 ㅡ 무슨말인지알아? ㅡ 다알아너에관해서는. 알긴뭘알아건방지게,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뾰족하기에는 너무 지쳐있었고, 그녀가 정말 말랑했으니. 하고 싶은 말 서로 못하고 그렇게 헤어진 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나는 고향을 떠나왔고, 친구들을 끊었다. 나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으며, '혼자놀기'에 만족한다고 애써 자위하며 살았다. 다만, 때때로 외로울 때면 그 시간의 화석들을 캐내곤 하는데, 뽀얗게 쌓인 세월의 먼지를 불어내다 콜록콜록 기침도 하고, 그러다 가끔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 날의 풍경으로 인해 눈물도 지어보곤 한다. 추억의 골목 어귀엔 언제나 그녀가 서 있다. 누나처럼 웃으면서.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울컥해서는, 잠시 말을 못했다. ㅡ 이십육년전의목소리네. ㅡ 너도. ㅡ 찾기가쉽지않았을텐데. ㅡ 잘사니? ㅡ 너는? ㅡ 언제나어디쯤니가살고있다는생각이위로가됐어. 바닷가 오두막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지극히 편안해서는, 그녀에게 해줄 말을 예습해본다. 미안하다미안하다미안하다 # 혹 피러의 순결한 일상에 금이 갈까 염려가 된다면, 그만 걱정을 지워달라. 일탈하기엔 나는 너무 순결하고, 이탈하기엔 내 일상이 너무 바람직하다. 다만, 열일곱 살의 마음으로 엉엉 울어보고 싶을 뿐이다. 자, 저기 열일곱 살 소녀가 온다...
풉 ^^
ㅅ ㅅ
친구 누나가 자고 있었다 .
-중략-
그 이후
최고의 명작입니다.
얇은 종이로 된 그소설은 서점에서 안팔고 청량리역이나 세운상가2층에서
덩치 큰 엉아들이 비디오와 함께 팔았다는.....
그 소설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다는 소문도....
그 이른 나이에..
ㅋㅋ...
이런 주옥같은 글이 기다려지기 때문이다.
(피러! 이거슨 절때 아부성멘트……………………………………임^^)
장어에 양념을 겁나 섹씨하게 발라주던
그 까무잡잡한 누님은 잘 계시는지..
청바지를 얼마나 타이트하게 입었는지...
손주, 손녀 봤겠군요..
아님 피뤄얼신 수기인가요??
이거 감동해야 되는 거죠??
빛의 속도로~~~~
소설인지 아닌지 헷갈리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순결하게...
ㅋ완~~~죤~~~
ㅋ뻥 입니다~~~^^
그렇게 잔디를 짓이겼는데 클럽하우스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고
오토바이의 시동이꺼지고 30여분이 지났을까..
오토바이 주변에서 담뱃불이 희미하게 보이고
시동거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년은 소녀를 태우고 골프장 필드를 8자모양으로 짓이기고는
클럽하우스앞을 보란듯이 지나서 사라진다.
언제나 소년같은 피러형처럼 살꺼야 ~
야동 작가로 부업 한번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원작 피러
각색 소풍
감독 소박사
요래 만들면 돈좀 되겄는데.......ㅎㅎ
왜일까요...
비슷한 추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요...
피러형아~~!@@
밤새워 형아하고 오래전 기억을 꺼집어내고 싶어요
정말 순결한 형아~~~!@@
떫고 시큼한 추억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열 일곱 그 소녀....
혹시 보험 하는지 잘 확인 하시이소.
저는 아직도 붓고 있습니다.
저리 감성을 품고 계시는 피터님!
그저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피터님은 진정한 아티스트 !
소설같은 이야기 흘리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