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친구의 아들.딸등 두건의 "결혼식"참석에 해가는 줄 몰랐습니다.
예식장을 빌려하는식이 아니고 호텔뷔폐 결혼식이라 그런지 손님도 많고
온갓 "산해진미"가 너무 흔해서인지 귀한 음식에 대한 별 감흥이 없더라구요.
집으로 향하는길...
신호대기에 걸려 반대편 차선을 보니 예쁘게 꾸미고 치장한 웨딩카의 모습에ㅎ..신세대에 컨셉인지 모르겠지만.
제 아들녀석도 올해가 지나면 "아홉수"에 걸리고..허니 저기 반대 차선에 보이는 웨딩카가 한편 부럽기까지...
각설하고...
제 기억으론 적어도 약 40년전엔 결혼 혼수품목엔 여러가지가 있었겠지만 빠지지 않았던 것중에 "재봉틀"이란게 있었습니다.
제유년의 집에도 마치 물개?등처럼 곡선...또 어찌보면 흡사 돌고래?처럼 유선형의
미끈한 몸체의 "재봉툴"이 여름철엔 마루에 또 겨울철엔 건너방에 떡~허니 자릴잡고 있었습니다.
그 왜 있잖습니까?...발 앞꿈치와 뒷꿈치에 힘을 주며 앞.뒤로 구루던 재봉틀...기억들하시죠.
문헌을 보니...
재봉틀은 1790년경 영국사람 "T.세인트"가 맨처음 기계화를 시도하였고 1820년대에 프랑스사람 "시몽"이 특허를 얻었다내요.
그리고 1851년 미국의 "LM싱거"라는 사람의 HA형(표준형)이 적용됐다합니다.
혹!! 들어보셨는지요?? "싱거"재봉틀(미싱)을...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재봉틀은 대부분 "싱거"미싱이였습니다.
"싱거미싱(재봉틀)"은 당시 여러나라에서 생산 판매가 되였는데 영국을 비롯해 미국.러시아.독일 일본에 대만등
여러나라에서 생산이 되였습니다만 그중 "영국제"와 "미국제"를 최고로 쳤다합니다.
당시의 우리의 어머니들의 재봉틀은 거의 왜정시대에 쓰던 "싱거미싱"으로 문장도
별거없는 것으로"살림살이"의 척도가 되였음은 물론이였지요.
"평양"이 고향이시고 지금은 작고하신 저의 어머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6.25전쟁이 일어나자 피란을 가야하는
소식을 접하자 어머니들은 그 귀한 "싱거미싱"을 헌옷가지에 꽁꽁싸매 뒷곁에 혹은 앞마당 후미진곳에 묻었고
심지어는 몸체만 머리에 이고 가장들은 지게에 지고 피난을 떠났다 합니다.
훗날 피난지에서 돌아와 제일먼저 땅속에 감춰두었던 "재봉틀"의 무사함의 기쁨이란 말로 표현할수 없었겠지요.
어머님의 말씀으론 "재봉틀"의 본체를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도록 기를으로 닦고또 닦으면서
잃었던 자식을 되 찾은 기분이였다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가난한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는데도 재봉틀은 큰 몫을 했다합니다.
당시 "남대문"이나 "동대문"시장 노점엔 "재봉틀"만 가지고 시장에서 산 손님들의 옷을 즉석해서 늘리거나 줄이는
아주머니들이 참 많았고 저 역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청바지"를 줄자로 칫수를 재고 그 자리에서 옷을 줄여입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월님들~ 1960년대 혹 기억하시겠지요?
당시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새학기가 시작될즈음엔 의례 "가정환정조사"라는것을 했는데
그 용지에는 집에 있는 물건에 동그라미를 치곤했는데 "피아노""텔레비젼""라디오""시계"그리고 "재봉틀"도 있었습니다.
그럿게 "재봉틀"은 지금의 잣대로 보면 "富의 상징"이였다고나할까요...
국민학교 "실과"교과선지? 중학교 "기술"교과서에 "재봉틀"에 관한 공부도 있었는데
해서 시험도 봤다는.. "노루발"인가? 실감는 "북"?도 생각이 납니다.ㅎ
예전 7~ 80년대 우리나라를 먹여살렸던 산업의 역군 "재봉틀"
그 덕분인지 우리나라의 호경기였다고 생각합니다만...
열악한 "작업현장"에서 노동의 자유를 외치던 노래도 있었으니
아시죠들~~♪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유년의 시절에 어머님의 총예를 받았던 "재봉틀"이였는데 사라진지 오래...
지금은 바지단 줄이려면 아침마다 아파트계단을 오르내리는 세탁소 아저씨게 맡기고
값싸고 질좋~은 예쁜옷이 지천으로 널려 더이상 손바느질로 옷을 만들필요가 없어진 작금엔
찾아보지 힘든 생생한 추억거리중의 하나가 된것같습니다.
언젠가...
어느거리를 지나는데 예전에 그 귀하디 귀한 "싱거발재봉틀"이 장식용로 떡 하니 한자릴 차지하고 있고
주인의 작입대엔 전기로 구동되는 "전기식 재봉틀"이 주인의 손떼가 한껏 묻어있더라는...
※ "미싱"은 "머쉰"의 일본식 발음 입니다.
우리말은 "재봉틀" 아시죠...씨-__^익
지난글 그때 그시절...83(드라마 여로)에 다녀가시고 추억을 공감하시며
댓글로 용기를 주신 월님들께 고게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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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사진과 다르지만 저희어머니가 사용하신것
아직 저희 고향집에 있읍니다.
사각 나무박스안에 들어있는제품인데
이름 생각이나지 않네요.
위제품보다는 신형일듯 싶읍니다.
한번 배워보려하다가 손가락 박힐뻔한 기억이잇습니다 ㅎㅎ
아마도 싱거 보다 늦게(?)나왔는진 모르겠지만
어머님의 애장품였습니다
국민학교 들어가기 직전에
집에 도둑이 들어서 미싱 대가리(?) 가져 가려다 나무로된 윗 덮게가 닫히는 소리에 잠들이 깨서 미싱은 무사했다는,,,
추억이네요,,,,,^^&
여고생들은 실과 가사 시간에 필수로 배우던 것이었고.
그 언니들이 먼지나는 캄캄한 다락방에서 선적일 맞추느라
열나 밟아서 수출 10억불 100억불 달성했다고 잔치했을 겁니다.
북실패 노루발 밑실 윗실... 바늘 부러지면 갈아 주기도 하고.
옷감을 구해 직접 옷해입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면 믿기나 할런지.
발로 페달(?)을 밟는 거였던가~?
모르겧네요..ㅎ
재미있게 읽고갑니다^^
입고 신는것보다는 먹고 자는것이 우선이였던 가난했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비록 서로가 어려웠지만,
이웃간의 정은 초가집 흙담을 넘어 전달 또 전달되고, 음식이 담긴 그릇이 또다른 음식으로 바뀌어 돌아오던
그때 그시절의 정이 그립기만 합니다.
개조해서 쓰고 있읍니다.
스탠드에서 앉은뱅이로...
붕어 아닌 재봉틀 잘보고 갑니다.
아니 승~리!
선배님 안부 살피고 갑니다^^*
어디에있는지 몰겠네요~*
필ㅡㅡ승!!좋은 한주가되십시요ㅡㅡ^^~
제 옷을 만들어 주시거나 고쳐서 주시고
낚시 가방도 손수 만드셨지요.
요즈음 재봉질 할 일이 있으면 수선집에 가지만
그때마다 아부지 생각이 나네요.
할머니랑 어머니께서 재봉틀 박는소리를
들어면서 잠든기억이 나는군요
옛추억 되살려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잘읽고 갑니다
장난치고 그랬네요 ㅎㅎ
옛생각납니다 별게 다 신기했었던...
건강하십시요~
집에 전기 재봉틀이 있기는한데
제가 아주 가끔 낚시용품수리할때 사용하고 다른 식구들은 처다도 안본다는... ...
미싱 들려와서는 삼배옷 대충 만들어 주셨는데 까칠하여 안입는다꼬 혼 많ㅇ ㅣ났지요. ㅎㅎ
재봉털이 살림 밑천으로 으뜸인 가정도 많아지요.
60년도 저희집 아래채에서 유아복을 만드는 제품 공장을 했어지요.^^*
와바리 시다 오바르크..
일하시는 분들이 자주 쓰던 단어들입니다.^^*
제가 한 재봉합니더ㅎㅎ
재봉이라면 손,발,모터,컴터자수까지 쪼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