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여섯 시.
진주에 도착한 그가 길을 잃는다.
이십팔 년의 아득한 간극.
넓고 깊은 세월의 계곡을 그는 더듬더듬 기어간다.
그것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진주 여고 정문에 차를 멈춘 그가 울먹이듯 말한다.
당황하지 말구요. 침착하게 둘러봐요.
아내가 아이를 달래듯 그를 토닥인다.
어두워진 골목길을 서행하며 그는 불쑥 화가 난다.
희규네 집은 빌라가 서 있고,
성환이 집은 다세대 주택으로 변해 있다.
그의 허락과 동의 없이 추억을 강탈해 간 시간의 비정함에 그는 화가 난다.
가로등이 아스팔트 골목길에 이질감을 비추고 있다.
열 살부터 스물다섯 살까지 살았던 집 앞에서 그는 결국 절망하고 만다.
세상에 ! 건강원이라니 !
도대체 그 아름답던 것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
그만 가자, 라는 그의 말에 아내는 그래요, 라고 동의한다.
골목 어귀를 벗어나던 그가 문득 차를 멈춘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 녹슨 드럼통이 서 있다.
왜요?
아내가 그의 시선을 따라가며 묻는다.
공중전화야.
그가 몽환처럼 속삭인다.
어머 ! 옛날 전화기야. 어? 자기, 어디가요?
잠깐만. 이대로 가버리기엔 억울하잖아.
딸칵, 그가 전화기를 든다.
환청이라도 좋아. 한 번만, 딱 한 번만...
6733. 육고기에 칠을 하면 맛이 삼삼하지.
다이얼을 돌리는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린다.
네~. 육칠삼삼입니다~.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소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는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다.
온몸이 격렬하게 떨렸기 때문에 그는 두 손으로 수화기를 고쳐 잡는다.
베스 ! 베스 ! 통화 중이잖아 ! 조용히 해 !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개 짖는 소리와 꼬마의 나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다리에 힘이 풀린 그가 서서히 주저앉는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이상하다~. 전화 온 게 아니었나?
꼬마의 혼잣말을 듣는 순간 그가 다급히 말한다.
베스... 강아지 이름인가?
네. 아저씬 누구세요? 아버진 안 계신데요?
베스... 며칠 전에 변소에 빠졌었나?
아저씨가 어떻게 아세요? 아버지 친구예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주먹으로 막은 그가 겨우 말을 잇는다.
아버지께 꼭 화장실 뚜껑을 만들어 달래라.
네. 저도 그럴려고요.
그는 스스로에게, 무거워지면 안 된다고 다짐을 받는다.
6733. 육고기에 칠을 하면 맛이 삼삼하지.
우와~. 아저씨 천재 같아요 !
맹랑하구나. 밝아서 좋다.
늘 그렇진 않아요. 자주 우울해요.
불쌍하고 미련한 녀석...
힘드니?
뭐가요? 아... 사는 거요?
그래.
글쎄요. 뭐... 그렇죠.
그래도 꿈꾸는 걸 멈추진 마라.
라고 말을 해놓고 그는, 참 비루한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희망이... 아저씨, 그만할래요. 아버지한테 뭐라고 전할까요?
잠깐만, 한 마디만 할 테니 뒤 문장을 연결해 봐라.
말씀하세요.
사랑이 유치하고, 라고 그가 운을 뗀다.
희망이 천박하다, 라고 꼬마가 대답한다.
결국 그가 흐느끼기 시작한다.
불쌍한 녀석... 미련한 녀석...
아저씨, 울어요?
아니다... 네 이름이 뭐니?
피러요.
그... 그래, 피러야.
네.
힘들다고 생각 마라.
네.
언제나 그렇듯, 그랬듯이 말이야.
네.
지금 뭘 해야 하는지만 안다면 지금은 우리에게 아주 근사한 순간이란다.
네.
외롭겠지만, 잘 살아내라.
네.
그는 꼬마의 울먹이는 소리를 듣는다.
울고 있니?
네.
왜?
모르겠어요. 그냥 눈물이 나요. 근데요, 아저씨.
말하거라.
나는, 내 인생은 외로울까요?
아마도. 하지만 즐기게 되겠지.
네.
이만 끊을게. 외롭겠지만, 잘 살아내거라.
네. 아저씨도요.
격렬했던 떨림과 눈물과 흐느낌이 잦아든다.
후, 담배 연기를 허공에 뱉으며 그는 그제야 아내 생각을 한다.
그가 뒤돌아서서 차를 향해 걸어간다.
잠들어있는 아내 얼굴이 비친다.
차 문을 열며 그는 드럼통을 본다.
전화기가 있던 자리, 먼지처럼 내리는 가로등 불빛.

옛 추억 많이 밟고 오셨나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희미한 가로등 밑 녹슨 드럼통,
초로의 피러에게 노년의 누군가가 전화한다.
허구한 날 꽝이고, 라고 그가 운을 뗀다.
잡느니 잡고기다, 라고 초로의 피러가 대답한다.
격렬한 과거보단
소풍님과 함께 할 미래를---
형수님밖에 안보입니다
형수님 잘계시죠? 보고 싶습니다
잘 지내시죠?^^
이번 기회에 길을 옮겨 글을 써보심이 어떠신지요.
지필묵에 정성을 들이시면 강남에 빌딩 몇 채 쉬 올리실 듯합니다.^.~
무언가 펼져질듯 질듯 하면서 세월을 달리 했을뿐 그 마음은 늘 거기에 있음에 .....
토닥 토닥 어께를 감싸않아주고 싶습니다.
서울로 이사 와요`!!
얼음구멍도 뚫어주고 지랭이도 달아주고.....
맛난것도 사 주깨요`~ 힛 !!
아직도 네비를 두 개 틀고 다니시지요???
그래도 길을 못 찾으시니~~ㅜㅜ
양띠 형수님~~
올 해는 좀 더 건강하시길~~
수준낮고 세련되지 못한 세상 길잡이가 되길 빌어봅니다.
앞으로 외롭더라도 잘 살아봅시다
늘 행복하세요 ^^#
사진을 보니 확 깹니다.
무탈 하시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