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비교: 이인호와 채현국》
어떻게 살 것인가,
또 어떻게 늙을 것인가...
이인호 KBS이사장과 채현국 경남양산 효암학원 이사장.
두 사람은 내일 모레 80이다.
이 이사장은 78세, 채 이사장은 79세. 두 사람 모두 서울대를 나왔다.
이 이사장은 사학과, 채 이사장은 철학과. 두 사람 모두 올해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시각에 따라 견해 차이는 있겠지만 전반적인 평가는 정반대다.
이 이사장은 비난을 산 반면 채 이사장은 박수를 받았다.
두 사람 모두 젊은 시절 진보진영에서 활동한 공통점이 있다.
● 이인호 이사장
대학가 시위가 끊이지 않던 80년대 시절 서울대 교수로 있던 이 이사장은 러시아 혁명과 인텔리겐차의
역할에 대해 강의를 해 학생들의 인기를 끌었다.
또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계열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을 초청해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당시로선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이 이사장의 진보적 사회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80년대 당시 대표적 여성단체였던 ‘여성의 전화’를 후원하면서 핍박받는 여성들의 고통을 함께 나눴다.
또 역사학자로서 진보적 역사학술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가 출범하자 진보학자들과 함께 자문위원으로 참여하였으며,
전교조에서 교사의 역할에 대해 강의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적어도 민주정권 시절까지만 해도 그는 진보인사로 분류됐다.
문민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으로 와 달라는 청와대의 요청을 받기도 했으며,
국민의 정부에서는 여성 최초로 러시아 대사를 지냈으며, 이어 참여정부에서는 핀란드 대사를 지내는 등
적어도 겉으로는 진보진영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그런 이 이사장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2006년 뉴라이트가 주도한 ‘교과서포럼’에 이름을 올리면서 부터였다.
그가 우파진영으로 걸음을 옮긴 것은 바로 이 때 부터로 보인다.
그는 우선 이승만에 대해 과도한 추앙과 평가로 자신의 색깔을 본격 드러냈다.
박근혜 정권 출범 직후 청와대 초청모임에서 박 대통령에게 이승만을 비판적으로 다룬
‘백년전쟁’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후 그의 행보는 ‘친일·독재 비호’로 일관했다. 이승만에 대해서는 일방적인 미화,
찬양을 늘어놓은 반면 그의 독재나 비리에 대해서는 입 다물었다.
아울러 친일유림으로 평가되는 그의 조부(이명세)에 대해 수차례에 걸쳐 변호하는 발언을 하였다.
이인호 이사장의 조부 이명세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따르면, 조선유도연합회 상임참사.상임이사를 역임하면서 황도유학을 주창하였고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찬양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제 말 징병제실시 까지 찬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잇따른 친일 비호는 급기야 궤변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최근 그는 한 강연회에서 “친일파 청산은 소련의 지령이었다”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우선 사실과도 다르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은 한국인의 보편적 민족감정이었으며,
좌파는 물론 우파에서도 친일파 청산을 부르짖었다. 제헌국회에서 반민법이 통과된 사실만 봐도 그렇다.
엄격히 말하면 그는 서양사학자로서 한국 근현대사 전문가는 아니다.
지난 한겨레 신문과 인터뷰를 하였다.
나의 조부는(이명세) "유학의 세를 늘려가기 위해 일제 통치 체제하에서 타협하면서 사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친일을 단죄하면 일제시대 중산층은 다 친일파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답변했으면 어떠 하였을까?
"조부께서 일본 앞잡이 노릇을 했던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조부의 행위에 대해 국민께 석고대죄하고,
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 하겠다"라고 말이다. 자신이 대한민국 지도층이라면 말이다.
● 채현국 이사장
채현국 효암학원이사장이 세간에 널리 알려진 것은 연초 <한겨레>와의 인터뷰가 계기가 됐다.
‘시대의 어른’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 채 이사장의 인터뷰 기사는 현재 SNS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채 이사장의 ‘어록’들이 공유되고 있으며,
“오랜만에 ‘참인간’을 접한 것 같다”는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다.
채 이사장은 1960~70년대 강원도 삼척시 도계에서 ‘흥국 탄광’을 경영하며 한때 개인 소득세 납부액이
10위 안에 들 정도로 많을 돈을 벌었지만,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부자들과 달리 유신 시절 쫓기고
핍박받던 민주화 인사들을 도와주거나 직원인 광부들에게 재산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부를 사회에 환원했다.
채 이사장의 부친인 채기엽 선생도 일제 강점기 시절 중국에서 사업을 크게 일으켰고 그 돈으로
독립운동가들에게 재정적 도움을 줬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사업가로 성공했지만, 그는 “재산은 세상의 것인데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뿐이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닌데 더 잘 쓰는 사람한테 그냥 주면 된다”며 이를 삶에서 실천해 큰 울림을 줬다.
심지어 집 없는 해직기자에게 집을 사주기도 했다.
이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채 이사장은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를 위해 내놓고 현재 경남 양산 개운중·효암고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작업복 차림으로 학교 정원일을 하는 그를 학생들은 잘 알아보지 못 한다고 한다.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쏟아낸 말들은 명쾌하고 솔직담백했으며,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그 가운데 몇을 소개하자면...
"반드시! 햇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듯이, 옳은 소리에는 반드시 오류가 있는 법이다."
"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가 쉽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기업을 제대로 키워서 돈을 벌어 좋은 일에 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거 전부 거짓말이다. 꼭 돈을 벌어야 좋은 일 하나? 그건 핑계지.
돈을 가지려면 그걸 가지기 위해 그만큼 한 짓이 있다. 남 줄 거 덜 주고 돈 모으는 것 아닌가."
"자기 개인 재산이란 게 어딨나? 재산은 세상 것이다. 이 세상 것을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뿐이다.
그럼 세상에 나눠야 해. 그건 자식한테 물려줄 게 아니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니다...
보통 선생 연배에 이른 분들을 뵈면, 4·19에 열렬히 참여하고 독재에 반대했던 분들이 나이 들며
급격히 보수화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의제든 종북이냐 아니냐로 색칠을 해서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시하는데,
이런 세대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하나? 장의사적 직업이 문제다.
"세상엔 장의사적인 직업과 산파적인 직업이 있다."
장의사적인 직업은...
갈등이 필요한 세력, 모순이 있어야만 사는 세력이 장의사적인 직업인데, 판사 검사 변호사들은
범죄가 있어야 먹고살고 남의 불행이 있어야 성립하는 직업들 아닌가.
그중에 제일 고약한 게, 갈등이 있어야 설 자리가 생기는 정치가들이다.
이념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다. 남의 사이가 나빠져야만 말발 서고 화목하면 못 견디는….
난 그걸 장의사적인 직업이라고 한다."
산파적인 직업은..
"시시하게 사는 사람들, 월급 적게 받고 이웃하고 행복하게 살려는 사람들….
장의사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갈등을 먹고 사는 장의사적인 사람들이 이런 노인네들을 갈등 속에
불러들여서 이용하는 거다. 아무리 젊어서 날렸어도 늙고 정신력 약해지면 심심한 노인네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노인세대에 대해 한 말씀 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봐주지 마라.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봐주면 안된다.”며 요즘 한국의 노인들에 대해 극도의 비판과 혹평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요즘 한국의 일부 노인들이 나잇값을 못하고 있다고 일갈한 것이다.
비문에 "쓴맛이 사는 맛이다...그래도 단맛이 달더라.“ 이렇게 쓰고싶다.
"쓴맛조차도 사는 맛인데…. 오히려 인생이 쓸 때 거기서 삶이 깊어지니까. 그게 다 사람 사는 맛 아닌가."
채현국 어르신의 인생서사를 다음 한 구절로 표현하여 본다.
“‘늙음’과 ‘낡음’이 어떻게 다른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인생”
이인호 KBS이사장과, 채현국 효암학원이사장은
같은 또래로서 한 시대를 살아왔고, 젊어서는 같은 고민을 해온 두 사람이지만 지금 두 사람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다. 진위, 선악, 미추의 문제가 아니다. 지성인이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진실과 정의의 문제인 것이다. 두 이사장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
또 어떻게 늙을 것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고나 할까.
<사진>
이인호 KBS 이사장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자주 접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