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꿈이라 했었다.
여태껏 붕어 기록은 37cm에 머물러 있는 상태. 무릇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내심 다지고 또 다져보지만 그럴수록 4짜에 대한 강한 집착은
시간의 딱지만큼 두터워져만 갔다. 그런 연유로 대물낚시에 대한 공부가
그 동안 진지하고도 열정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자연 속에 안겨서 청풍을 읊조리고 명월을 희롱 한다고 뉘 나무랄 것이던고...
하지만 그것도 때가 있고 장소가 있음은 굳이 말할 것도 못된다.
밤 8시
세 명중 내게 가장 가까이 앉은 꾼(?)이 저수지 건너편에서도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전화를 해 덴다. 요는 안주거릴 가지고 빨리 오라는 것. 청강도인가 뭔가 하는 수초
제거용 낫이 불현 듯 생각났다. 물가로 덤불을 이루고 있는 잡목 때문에 그 사람 모습
은 볼 수 없지만, 대충 짐작으로 그 낫을 잡아당기면 한 순간에 조용해질 것 같다는
살벌한 생각도 들었다.
대물낚시꾼들이 왜 으스스한 산 속 소류지를 홀로 찾아가 교교한 달빛을 즐기는 넋
나간 귀신들을 혼비백산 놀라게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한 번 대물꾼은 영원한 대물
꾼이라고 골백번을 뇌까리더라도 난 그렇게 할 용기나 기백이 없다. 어떻게 그런 곳
에서 홀로 그 밤을 견뎌낼 수 있으랴!
밤 10시
그들의 지원병이 두 명 더 왔다. 그 두 명중에 제법 사글사글한 여자도 있는 듯 이따
금 잔물결이 일도록 자지러지는 듯 한 웃음소리와 고농질의 비음이 요란한 사내들 소
리와 섞여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목이 쉬도록 울부짖는 두견새 소릴 뒤덮어버렸다.
이제 대물낚시로써 밤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듯 보였다. 모처럼 작심을 하고 물가에
와 앉았더니만... 대물붕어는 공부나 집념 또는 분명한 정보 같은 것만으론 안 된다
는 생각이 들었다. 운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밤 2시
살을 얘는 듯 한 추위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느 시점부터인지
모르겠으나 난 그냥 그대로 의자에 앉아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귀를 막고 이빨을 악
물며 견디고 또 견디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린 것 같았다.
조용하다. 그야말로 쥐죽은 듯 고요했다. 곳곳에 드리워진 영롱한 케미라이트의 불빛
만이 그 아름다운 밤의 답천지를 지키고 있는 듯 보였다. 자연 속에서 핀셋으로 사람
만 집어내면 자연은 스스로 아름다워진다는 말이 실감난다. 도대체 뭘 얼마나 마셔뎄
는지 모르지만, 문제의 그 꾼(?)들도 조용해졌다. 지금도 저런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
다니... 잠에서 깬 난 한참을 생각해봤다. 간이라도 키워서 찾는 이 없는 산 속 소류지
로 가 으스스한 분위기를 홀로 견뎌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으로...
어찌 되었던 그들이 조용해지니 이젠 낚시터 같이 보였다. 붕어의 기억력이 2라고 했
으니 난 내심 그걸 믿고 싶었다. 금방 잊고 찾아오길 손꼽아 기다려 봤다. 미끼는 물
론 현장에 채집한 생새우.
하지만...
경망스런 잔챙이들만 이따금 들썩거릴 뿐 종래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붕어 기억
력 누가 2라고 했나 싶었다. 200이나 안 넘었으면 좋겠다.
아침 5시
그렇게 떠들든 그들이 갑자기 뭔가에 쫓기기라도 하듯 우세 두세 철수를 서두르고 있
었다. 철수 역시 요란하게 했다. 받침대라도 뽑아 씻는지 무지막지한 물소릴 냈다.
참으로 빈틈이 없는 사람들 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철저히 훼방을 놓기란 사실상 힘
든 일이 아니던가! 아예 작정하고 온 사람이면 몰라도... 쓰레기는 철저하게 주워야
한다며 난데없이 잡목 구석구석을 헤집기도 했다. 일단 그건 기특한 일이겠으나 그
땐 난 그것조차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저희가 쪼매 시끄러웠지예~! 지송하네요. 술이 좀 과해서...’
그 중 한 사람이 와 나름 데로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다소 왜소한 체격이었다. 비록
3대1이라지만 굳이 후배 녀석이 없더라도 능히 제압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라
는 생각이 들었다. 사과고 뭐고 간에 늦었지만, 딱아 패뿌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갈
등이 순간적으로 정확히 왼쪽 뇌 23번 자리를 물어뜯고 지나간다.
‘뭘유... 물가에 나오면 그렇수도 있지유...’
하지만 내 혀는 내가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인다. 물론 그들이 요란한 바퀴
소릴 시멘트 길바닥에 남겨두고 황급히 떠날 때 난 또 두 주먹을 불끈 쥐어야 했지
만... 그런데 참으로 괴이한 일은, 그들도 대물붕어를 노리고 왔다고 했다. 이른바 대
물꾼이라는 말이었다. 그것도 철저하게 밤 시간대만을 노리는... 그러기에 새벽으로
철수 한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볼 장 다 봤다는 태도였다. 난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내 눈엔 그들이 대물꾼은 고사하고 얼치기꾼 같이도 안 보었으니...
공부가 부족한 것인가? 미처 내가 모르는 대물낚시의 뭐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
각이 들었다. 그렇게 요란스럽게 떠들든 사람들이 스스로 대물낚시꾼이라 자처하고
갔으니...
하지만 난 믿고 싶다. 발소리는 물론이고 숨소리마저 조심하면서 대물 붕어와의 조우
를 신앙인들 같이 기다리는 내 자세가 분명 대물낚시의 기본이라고... 그러기에 감히
난 말할 수 있다.
난... 이미 대물낚시의 우등생이라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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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낚시는 첫째,둘째.... 마지막까지 인내심이 최우선이죠.
낚시꾼은 천차만별이요, 나또한 나도 모르게 소위 말하는 개꾼(?)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합니다.
자연에 들어가 자연과 동화되어 자연이 되면 인간의 모든 행위들을 포용하는 경지도 바라볼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너무 거창한가??
님을 대물낚시의 우등생으로 인정합니다.
즐낚하시기를......
큰고기를 잡았다고 모두가 고수는 아니겠지요
청버들님처럼 인내심이 있어야 대물도 만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재미난 조행기 많이 부탁드립니다
"운" 이 없게도 같이 하루밤을 보내셨군요.
청버들님의 인내심 한판승으로 게임 끝났습니다
그벌꾼들 중에 혼자 출조 했을때 또다른 벌꾼을 만났을때 과연
청버들님 처럼 인심을 발휘 할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다음번엔 조용한 밤에 대물이 덜컥 걸려 나오는 조행기 기대하겠습니다.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찌 신선처럼 여유자작 할수가 있겠습니까.
문득 옛날 기억이 나네요
몇해전 그날도 혼자 낙수를 하면서 밤을 꼬박세우고 새벽을 맞고있는데
전혀 인기척을 못느꼈는데 갑자기 뒤에서 어떤분이 속삭이듯 "좀 잡았습니까"
하더군요 순간 너무나 놀라 그만 물에 풍덩빠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을 욕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진정한 꾼이었던 것입니다.
혹 제가 낙수하는데 방해가 될까봐 뒤로 조심조심 발소리를 줄여서 오신분이니까요,
지금도 한번씩 그때일을 생각하면 혼자서 웃습니다.
모두가 한번쯤은 경험했던 낙수터의 소란스러움 글세요 진정한 꾼을 이야기 하기전에 먼저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그사람들의 의식세계를 고처 주어야만 해결되는문제일것 같군요
하여튼 글솜씨나 상황전달력에 무척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부디 낙수터에서 좋은 추억만을 만들어가는 그런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