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나
박군은 나와 함께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한 반에서 동문수학한 사이로
고교를 졸업한 후에는 서로 다른 대학에 가게 되었는데 으레 그러하듯 고교시절처럼 자주 함께 하지는 못하였고
각자의 학교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고 적응하느라 몹시 바빴다.
그와 나는 얼핏 셈을 해보아도 만 20년을 넘도록 친구인 셈인데
나도 박군도 성인군자는 아닌지라 때로는 다툼과 오해도 때로는 말하지 않은 불만도 있었다.
하지만 다소 강하다 싶었던 어린 시절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박군이라면 일단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것이 언젠가부터 내가 박군을 대하는 방법이었고
그것은 대학 1학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1995년 그 때 그 일 때문이었다.
그 해 11월의 어느 날 나는 아침일찍부터 수원에 위치한 경희대학교에 친구 곽양을 만나러 갔다.
미리 연락을 해두지 않고 그저 마음 내키는대로 찾아갔었는데
이미 전날 교수님으로부터 다음날이 휴강이라는 사실을 통보받아 내겐 수업이 없었을 뿐더러
느닷없이 찾아가 친구를 깜짝 놀래줄 요량으로 약속이나 사전 연락도 없이 그리하였다.
놀라면서도 즐거워 할 친구를 떠올리자 가는 길은 제법 멀고 복잡했지만 즐거움도 그만큼 컸다.
그러나 그 즐거움도 잠시였을 뿐이다.
좋은 뜻으로 몰래 하려는 일은 대부분 어깃장이 안 맞는 경우가 많듯
그 날 경희대에 무사히 도착한 후 삐삐로 연락을 해보니 곽양은 아침 일찍 학교에 등교하였다가
갑자기 휴강이 되는 바람에 같은 과 선배의 차를 얻어 타고 서울로 돌아갔다고 했다.
이미 일은 작은 컵에서 넘쳐버린 물처럼 거기까지 흘러내려 버렸고
나는 아쉬웠지만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잘못은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간 내게 있었으니 말이다.
놀래줄 요량으로 찾아갔는데 놀래줄 당사자가 없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욱 큰 문제는 거기서 벌어졌다.
곽양에게 온 음성메시지를 확인하고 발걸음을 돌려 한참을 걸어가다가 공중전화 위에 두었던 지갑이 생각난 것이다.
1분도 지나지 않아 돌아가 보았으나 이미 지갑 속의 돈은 가출을 했고 불행 중 다행으로 지갑은 그대로 있었다.
음성을 확인하고 수화기를 내려놓고 전화카드를 뽑았으니 그것이나마 건진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그때가 오전 10시 즈음이었고
주머니에 잔돈 푼 하나 없이 가진 것이라고는 알량한 전화카드 한 장 뿐이었으므로
나는 친구들에게 취할 수 있는 연락은 전부 시도해보기 시작했다.
쌀쌀한 날씨도 문제였지만 시장기는 나를 엄습하기 시작했고 집에 돌아갈 차비조차 없었다.
그 때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거나 시험을 코 앞에 두고있던 시기였는지라
모두들 시험만 치르고 뛰어오겠다는 답신과 함께 저녁때까지만 버티라는 희망적인(?) 음성메시지를 남겨주었지만
저녁까지 7~8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과 슬슬 심각해져오는 배고픔에 나는 절망했다.
결국 고민 끝에 나는 교내 어느 건물 모퉁이에서 몹시 착해 보이는 여성을 고르고 골라
살큼 다가가 주민등록증을 내밀고는 뻔뻔스레 차비를 빌게 되었고
그녀는 내게 수원 경희대에서 분당 오리역까지 운행하는 통학버스표를 끊어주었다.
사실 오리역에서 당시 본가였던 성남 집으로 돌아갈 지하철 요금도 필요했지만
차마 더 빌려달란 말을 못하고 나는 잠자코 그녀의 처사에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전화카드의 남은 잔액도 60원을 헤아리고 있었다. 결국 그 때 내가 가진 것이라곤 총 60원이었던 셈이다.
추위에 오래 시달린 후였기 때문인지, 점심도 못먹고 가슴을 졸인 덕분인지는 몰라도
난 버스에 오르자마자 잠에 빠져들었으며 결국 누군가 오리역에서 깨워줄 때까지 깊은 잠을 잤다.
나를 깨워준 사람은 다름아닌 통학버스표를 끊어준 그 여성분이었는데
그 분의 나를 쳐다보던 그 딱하다는 듯한 표정은 18년이 지난 지금에도 선명하디 선명하다.
오리역 앞은 그 당시만 해도 막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어 허허벌판이나 마찬가지였고
그 곳에서 집까지 걸어간다면 무려 5시간 이상을 허비해야 했으므로
60원이 남은 전화카드를 가지고 집까지 갈 방법을 만들어야 했다. 나는 최후의 수단으로 박군에게 음성을 남겼다.
오전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본 결과 자잘한 내용으로는 승부를 볼 수가 없었으니
뭔가 강력하면서도 녀석의 가슴 언저리를 감성적으로 유혹해낼 꺼리가 필요했다.
“박군아 나다. 지금 몸이 안 좋다. 오리역인데 못가겠다. 아 몸이 왜 이러지...”
그에게 음성메시지를 보내는데 30원 그리고 앞으로 그의 메시지를 확인하는데 30원이 들것으므로 난 그야말로 무일푼이었다.
고교 시절 폐수술을 한 적이 있고 박군도 그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기침 소리도 수화기 너머로 저장해주었고
지금은 흉내내려고 해도 낼 수 없는 간절한 연기가 고스란히 박군의 삐삐 음성메시지에 담겨졌다.
답신이 올 것을 기다리다가 삐삐가 울리고 메시지를 확인하면서 마지막 30원이 내려갈 때 나는 정말 다급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확인했다.
"지금 갈테니 조금만 참고 있어라"
박군은 그가 음성을 남긴 지 40분여가 지난 후 도착했다.
오리역 지하철 로비에서 그를 기다리던 나는 그가 긴 지하철 계단을 무섭게 뛰어 올라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계단을 그렇게나 다급하게 뛰어 올라오던 그 시간에 사실 그는 교양영어 시험을 치러야만 했다는 사실은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들었다.
나는 단지 집에 갈 차비가 없었을 뿐인데 박군은 내가 다급하다는 말을 듣고 시험을 포기하고 달려와 주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 폐수술을 받은 내가 걱정이 되어
아프다는 말 한마디에 황급히 출발해서 오리역에 도착하고도 마음이 안놓여 계단을 뛰어올라왔던 것이다.
당시 그는 그 말을 하며 쑥스러운 듯 웃었지만 나는 가슴이 벅찰 정도의 기쁨을 느꼈던 것 같다.
그것이 친구의 담뿍 담긴 정을 받아서 기쁜 것이었는지 , 아니면 내 완벽에 가까운 연기에 대한 기쁨인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나는 그 날 몹시 기쁘고 또 기쁘고 많이 기뻤다.
박군. 그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 동석한 자리에서의 그는 그저 빙그레 웃고 있을 뿐
묻는 말에나 대답을 겨우 할 정도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때때로 내 친구 박군은 숫기 없는 사람이나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쉽게 평가받기도 하지만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박군은 내게 친구가 가져야 할 몸가짐을 몸소 가르쳐 준 사람이었다.
물론 그 대가로 그는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 재수강을 해야했지만 말이다.
박군아 고맙다.
영준아빠님// 불x친구들 보고 싶은데 다들 가정이 있고 그러다보니 하하하
우리네 남자들 삶이 대부분 다 비슷한 것 같아요.
곽대장님// 덕담 감사드립니다. 늘 감기조심하시고 건강 챙기세요 :)
피터™님// 큰형님 제가 내일부터 일 때문에 의정부 가니깐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일단 아내한테 쫓겨나지 않게 일부터 해야 ㅠㅠ 군산을 가죠...
하하하하 썬글라스를 기대하세용~!!
박라울님// 지금도 제 곁에 있는 딱 하나의 친구입니다. 일도 같이 하고 있어요. ^^
붕어와춤을님// 피터 큰형님께 달려가고 싶은데... 썬글라스부터 마련해야 합니다.
그거 들고 가야 만나주실 것 같아요. 하하하 드리기로 약속을 해서~
한실님// 예 항상 저보다 더 배려하고 넉넉한 친구죠. 늘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소풍님// 과찬이십니다!!! 그냥 있었던 일 위주로 글 쓰는 게 취미인데
이렇게 덕담해주시니 가끔이라도 재미삼아 글 올려보겠습니다.
괜히 우쭐해지고 기분이 좋지만 경박하게 행동하지 않도록 주의할께요~
효천님// 예. 만20년 시간동안 거의 내내 근거리에서 함께 한 친구라서
꼭 형제 같지요. 요새는 일도 같이 하기 때문에 더 그렇고요.
사립옹님// 곽양은 그 후로도 저랑 친구처럼 지내다가 외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이후에 유학을 마치고 남편될 사람이 재미교포였는데 함께 한국에 들어와서 결혼식을 올렸고요
그 결혼식 사회를 제가 맡았었습니다. ^________^
곽양도 종종 국제전화로 안부를 묻거나 때때로 귀국할 때 만나곤 합니다.
두분..오래도록 의를 챙기소서^^*
하여간 친구 우정 잘 간직 하세요 ^^*
갑자기 불*진구가 보고 싶네요..
연락이나 해봐야겠습니다.
가슴 따뜻한글 감사합니다.ㅎ
늘 기분 좋은 일 많으시길 기원드립니다.
하늘이 노랗구요,
길빠닥이 벌떡 일나구요,
등에 식은 땀이...
여기 군산이구요.
아~ 몸이 왜 일치... ㅡ,.ㅡ"
아~ 몸이 왜일치~
부럽습니다...
혹시 그분 인가요 ㅎㅎ
달려와줄수 있는 친구가 있어 행복한 것이지요.
위에 피러 어르신 한테 함 달려가 보세요
"보냄상조"로 일단 연락 해 보시기 바랍니다.
황금빛잉어님!
이번 겨울 황금빛 잉어님의 글로 훈훈하리란
제 예상이 맞았습니다.
어렵지 않게 쉽게 쉽게 적으면서도 오롯이 그 감정을 일깨워 주는 ..
글도 잘 쓰시고 내용은 더 좋고 ..
댓글을 단 후에도 한참 여운이 남아 있는 ...
고수의 등장 이십니다. ^^
행복하시겠네요.
근데,
그날 일찍 갔다는 곽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臥釣名人님// 칭찬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그럴 실력도 깜냥도 안됩니다. ^___^
새벽출조님// 제 글이 늘 깁니다. 전 이해합니다. 그래도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영준아빠님// 불x친구들 보고 싶은데 다들 가정이 있고 그러다보니 하하하
우리네 남자들 삶이 대부분 다 비슷한 것 같아요.
곽대장님// 덕담 감사드립니다. 늘 감기조심하시고 건강 챙기세요 :)
피터™님// 큰형님 제가 내일부터 일 때문에 의정부 가니깐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일단 아내한테 쫓겨나지 않게 일부터 해야 ㅠㅠ 군산을 가죠...
하하하하 썬글라스를 기대하세용~!!
박라울님// 지금도 제 곁에 있는 딱 하나의 친구입니다. 일도 같이 하고 있어요. ^^
붕어와춤을님// 피터 큰형님께 달려가고 싶은데... 썬글라스부터 마련해야 합니다.
그거 들고 가야 만나주실 것 같아요. 하하하 드리기로 약속을 해서~
한실님// 예 항상 저보다 더 배려하고 넉넉한 친구죠. 늘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소풍님// 과찬이십니다!!! 그냥 있었던 일 위주로 글 쓰는 게 취미인데
이렇게 덕담해주시니 가끔이라도 재미삼아 글 올려보겠습니다.
괜히 우쭐해지고 기분이 좋지만 경박하게 행동하지 않도록 주의할께요~
효천님// 예. 만20년 시간동안 거의 내내 근거리에서 함께 한 친구라서
꼭 형제 같지요. 요새는 일도 같이 하기 때문에 더 그렇고요.
사립옹님// 곽양은 그 후로도 저랑 친구처럼 지내다가 외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이후에 유학을 마치고 남편될 사람이 재미교포였는데 함께 한국에 들어와서 결혼식을 올렸고요
그 결혼식 사회를 제가 맡았었습니다. ^________^
곽양도 종종 국제전화로 안부를 묻거나 때때로 귀국할 때 만나곤 합니다.
농담이 아니구요, 저는 선글라스가 너무 많습니다.
만약 오실 거라면, 커피 한 잔이면 됩니다.
그대가 내겐 선물이라니깐~
(느끼하구만~)
고급 커피인 렛쓰비를 용돈 모아 차곡차곡 사두겠습니당~
하하하하 느끼하지 않습니다. 저는 고백받은 남자입니;;;;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