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시대까지는 띠(茅) 풀의 줄기를 찌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이 ''띠''가 구개음화를 거쳐 ''찌''로 변했을 것이라고 보는 설이다.
이 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군산 및 이리 지역의 전북권이나 충남 보령·서천 등지에서
지금도 찌를 ''띠''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을 그 증거로 제시한다.
2. ''띠운다''라는 말의 어간 ''띄'' 또는 ''뜨다''의 ''뜨''에 행위의 주체를 이르는 ''이''를 붙여
''띄+이=띄''가 되었으며 이로부터 ''띄우는 것''이라는 어미의 ''띠''가 나왔고
이것이 구개음화를 거쳐 현재의 ''찌''가 되었다고 보는 발생설이다.
다시 말해서 ''뜨다(또는 띄우다)''라는 용언의 어간''뜨(띄)''에 주체격의 어간 ''이''가 결합한
''뜨(띄)+이''에서 ''띄''가 나왔고 ''띄''>띠>찌로 변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언어학적이 관점에서의 발생설은 타당성이 매우 높고 1번의 경우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3. 조선시대 성균관에서 [사서삼경]을 강독할 대 매일의 강의내용과 강의제목을 선정하는데
사용하던 것으로, 수강생이 뽑던 길이 17cm에 폭 5mm 가량의 대쪽을 ''찌''라고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와 같은 여러 개의 찌에 [사서]와 [삼경]의 각 편이나 장의 글귀를 하나씩 따로 써서 길이 18cm,
직경11cm 크기의 찌통(이는 經筒을 말함)에 넣고 이들 가운데 하나를 뽑아서 뽑힌 장이나 편을
그날의 강의제목으로 삼았다는 데서 순우리말 ''찌''가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폭이 좁고 가늘며 긴 나무 조각을 우리말로 찌라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자료이다.
저도 몰라요 같이 기다려 봅시다 ㅎㅎ
찌찌는 두개고 찌는 한개!